2019년 7월 1일, 정부는 2022년까지 3단계에 걸쳐 단계적으로 장애등급제를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이날은 1988년 도입된 이후 장애인복지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이자 서비스 대상자 선정 기준으로 철옹성처럼 절대 무너질 것 같지 않던 장애등급제가 31년만에 폐지된 역사적이고 혁신적인 사건이 일어난 날로 기록될 만하다. 장애등급제 폐지는 단순히 장애등급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공급자 중심의 장애인복지를 전면 재편하고, 수요자 중심으로 전환을 도모하는 완전한 체질 개선을 의미한다.
장애등급제가 폐지된 후 3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장애등급제 폐지로 장애인들의 삶의 질은 과연 나아졌을까? 정부는 장애등급제 폐지로 달성하고자 했던 수요자 중심의 맞춤형 복지체계를 구축·실천하고 있는지 자문하고 해답을 구할 때가 됐다. 이를 위해 장애등급제 폐지의 본질적 의미를 되새기며 등급제 폐지 이후 불거진 다양한 문제점들을 짚어보고, 해결책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심석순 부산장신대학교 기독교사회복지상담학과 교수
심석순 부산장신대학교 기독교사회복지상담학과 교수

장애등급제 폐지의 의미와 추진내용

장애등급제 폐지는 그간 의학적 진단만으로 장애를 판정해오면서 불거진 여러 문제들에 대한 해법의 일환으로 제기됐다. 장애등급제는 그동안 장애 판정 오류와 판정에 대한 불신, 사람에게 등급을 매기는 반인권적인 제도, 다양하고 복잡한 서비스 영역에 획일적이고 단순한 등급만을 적용해 복지사각지대 유발, 개별 환경과 욕구를 고려치 않은 공급자 중심의 체계와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에서 기인한 제도 등 끊임없는 비판에 직면해왔다. 특히 장애등급에 따른 일률적 서비스 제공은 개별 욕구와 환경이 제각각인 개별 장애인들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꾸준히 개선 필요성이 지적되어 왔다.

이런 와중에 장애등급제 폐지 논의는 2007년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가 도입되면서 본격화됐다. 도입 당시 서비스 대상자는 1급 중증장애인으로만 한정했는데 이를 장애등급에 상관없이 욕구가 있는 모든 장애인들이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요구가 점차 확산되면서 장애등급제 폐지는 장애인복지정책의 핵심 어젠다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2012년 장애등급제 폐지가 대선공약으로 거론되고, 이듬해에는 ‘장애판정체계기획단’이 구성되어 등급제 폐지를 위한 준비과정으로 장애등급 의 학적 기준 정비, 장애인 소득보장 개편, 장애인 감면·할인제도 및 복지서비스 전달체계 개편 등이 논의됐다. 2014년에는 장애인종합판정개편지원단이 구성되고,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장애등급제 개편 시범사업이 실시됐다. 2016년 6월부터 6개월에 걸쳐 시행된 시범사업은 장애등급을 없애고, 맞춤형 지원서비스를 운영하는 형태로 추진됐다. 2017년에는 ‘장애등급제 폐지 민관협의체’가 운영됐고, 2018년에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한 범정부 관계부처 간에 시행준비단을 구성하여 장애등급제 폐지를 국정과제로 채택하고 논의를 거듭한 끝에 드디어 2019년 7월 장애등급제 폐지가 단행됐다.

정부는 장애등급을 일거에 폐지하면 예기치 못한 혼란들이 야기될 수 있다고 판단, 이를 사전에 차단하고, 시행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문제들을 보완하겠다는 의도로 서비스 이행의 완충기간을 두어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우선 기존 6등급으로 나누던 장애등급은 폐지하고, 장애인 등록을 위한 심사결과를 장애 정도에 따라 심한 장애인과 심하지 않은 장애인으로 간소화했다. 특히 서비스지원 종합조사 방식을 도입하여 장애인의 삶에 미치는 체감도가 높고, 예산규모가 큰 서비스부터 서비스지원 종합조사를 단계적으로 확대 적용하는 방침을 세웠다.

1단계는 1999년 7월부터 적용된 일상생활지원 영역으로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보조기기 지급 등이 이에 속했다. 2단계는 2020년 10월 시행을 목표로 한 이동지원영역으로 특별교통수단, 장애인주차표지 등이 해당된다. 2022년 시행을 목표로 하는 3단계에는 소득·고용지원 영역으로 장애인연금, 장애인 의무고용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현재 1단계 일상생활지원 영역과 2단계 이동지원영역은 서비스지원 종합조사가 시행되고 있지만 3단계 소득·고용지원 영역은 당초 시행 계획과 달리 여전히 시범사업 단계에 머물러 있다.

장애등급제 폐지의 본질은 개별 장애인의 다양한 욕구를 반영한 서비스 지원기반을 마련하고, 수요자 중심의 접근성 높은 맞춤형 지원체계를 구축하는 데 있다. 개별 장애인의 신체적·정신적 손상 정도와 근로능력 정도, 서비스 욕구, 생활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맞춤형 지원을 실시해 장애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게 그것이다. 하지만 장애등급제 폐지가 시행되고 서비스지원 종합조사가 도입되면서 여러 잡음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장애등급제 폐지로 드러난 문제점

장애등급제 폐지가 발표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정상궤도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장애등급제 폐지 전과 비교해 달라진 것을 체감할 수 없다는 비판과 함께 허울뿐인 개혁으로 장애등급제 폐지의 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장애등급제 폐지는 그 태생부터 여러 한계점을 품고 시행됐다. 대표적으로는 장애등급을 폐지한다고 했지만 실제는 기존의 6개 등급을 중증과 경증으로 간소화한 것에 불과해 사실상 등급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 수요자 중심의 맞춤형 복지체계를 구축하겠다고 했지만 이를 실행에 옮길 충분한 예산 확보와 급여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아 현실적으로 구현되지 않고 있다는 점, 장애유형과 특성, 이들이 처한 환경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지 못해 서비스지원 종합조사표를 적용하여 서비스대상을 선정하게 되면 서비스 대상과 규모가 축소될 수 있다는 지적들이 그것이다. 이 같은 문제점
은 본격적인 제도 추진과정에서 실제로 드러나고 있다.

서비스지원 종합조사표를 예로 들어 보자. 종합조사표는 기능제한(532점), 사회활동(최대 24점), 가구환경(최대 40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기능제한은 일상생활동작(318점), 수단적 일상생활동작(120점), 인지행동특성(94점), 사회활동은 직장생활(24점), 학교생활(12점), 가구환경은 가구특성(36점)과 주거특성(4점)을 포함하고 있다. 사회활동과 가구환경은 각 영역에서 두 가지 항목이 중복되더라도 항목 간 점수는 합산하지 않는다.

종합조사표의 구성과 내용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첫째, 기능제한의 점수 비중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기능제한 항목은 장애 수준을 평가하는데 있어 의료적 관점을 고수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장애판정에 의료적 비중이 여전히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둘째, 조사문항이 장애유형과 개별 장애인이 처한 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종합조사표 문항 점수는 장애유형과 특성이 고려되지 않은 채 기계적으로 배점되어 있다. 그 결과 일상생활이나 사회활동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이라고 할지라도 중복장애가 없으면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실례로 중증이지만 기능제한 정도가 덜한 시각·청각장애인, 지적·자폐성 장애인들은 종합조사표를 통해 조사한 결과, 이전에 받았던 서비스 점수 보다 새로 받은 점수가 대폭 하락하여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이용시간이 이전보다 줄어들거나 심지어 구간 외로 판정받아 탈락하는 사례들이 속출했다. 특히, 이러한 현상은 인지행동기능은 현저히 떨어지지만 다른 장애유형보다 일상생활동작과 수단적 일상생활동작의 기능이 비교적 양호한 지적·자폐성 장애인에게서 더 극명하게 나타났다.

 

장애등급제 폐지로 드러난 논란 해소를 위한 제언

장애등급제 폐지로 인해 노출된 여러 논란들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등급제 폐지를 단행한 이유를 대변하고 있는 장애등급제 폐지의 당초 취지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등급제 폐지는 개별 장애인의 욕구를 반영한 서비스 지원 기반 마련과 수요자 중심의 맞춤형 지원체계 구축에 그 목적이 있다. 논란 해소를 위한 해법은 이러한 목적 달성에 적합한 최적의 대안을 찾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두 가지를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전달체계와 예산지원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 전달체계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장애감수성이 높은 전문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일선 주민자치센터와 장애 판정을 전담하고 조사를 맡고 있는 국민연금공단에 장애감수성이 높은 장애인복지 전문가를 발굴·배치하고, 이들에게 장애인의 욕구에 적합한 지역 민간자원의 발굴·연계 역할을 맡겨야 한다. 예산지원 방식은 서비스 제공기관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에서 이용자인 장애인에게 직접 현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개혁해 장애인의 서비스 선택권과 통제권을 보장해야 한다. 영국과 미국 등 장애인복지선진국에서는 직접 지불 방식의 ‘개인예산제’를 이미 2000년 초반부터 도입·시행하고 있다. 개인예산제는 예산의 효율적 사용과 장애인의 서비스 선택권을 보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많은 예산지원 방식이다. 예산 증액이 녹록치 않은 한국에서 도입을 적극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둘째, 수요자 중심의 맞춤형 지원체계 구현을 위해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기능장애건강분류(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Functioning, Disability and Health, ICF)’ 모델을 폭넓게 반영한 서비스지원 종합조사표 개선이 필요하다. 맞춤형 지원은 개별 장애인의 서비스 욕구에 걸맞는 서비스와 급여를 제공하는 것이다. ICF 모형은 장애를 개인의 손상과 기능, 환경요인 간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이 종합조사표에 반영된다면, 개별 장애인의 서비스 욕구와 필요도, 생활환경 등을 더 종합적으로 상세하게 판단할 수 있고, 맞춤형 지원계획 수립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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