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은 사회적 책임…"정신건강 예산 늘리고 AI 활용을"

韓 자살률 OECD 2배, 정신건강 예산 비중은 1.7% AI 기반 빅데이터·챗봇·표정분석 등 조기경보 제안

2025-07-10     편집팀
지난 29일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2025 정신건강 국회 세미나가 열렸다.  [사진=뉴시스]

우리나라가 2003년부터 2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자살률 1위에서 벗어나려면 자살을 사회적 문제로 인식해 정신건강 예산을 대폭 늘리고 인공지능(AI)을 적극 활용해 자살 위험을 조기에 예측할 필요가 있다는 전문가들의 제언이 나왔다.

9일 의료계 등에 따르면 한국의 자살률은 2023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27.3명으로 OECD 평균(11.1명)의 두 배를 넘는다. 지난해 잠정 자살 사망자는 1만 4439명으로 하루 평균 약 40명에 이르고, 자살 또는 자살 시도로 소요된 사회경제적 비용은 연 5조 3895억 원(보건복지부 추계)에 달한다.

나종호 미국 예일대 의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최근 ‘예방·회복 중심 자살-정신건강 전략’을 주제로 열린 '2025 정신건강 국회 세미나'에 참석해 "자살은 개인의 선택을 넘어 국가의 책임"이라며 국가 차원의 보건예산 확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나 교수는 "노르웨이 '제로 수어사이드 비전(Zero suicide vision)'을 제시하며 '단 한 사람도 자살로 잃을 수 없다'는 가치가 담긴 선언문을 발표했다"면서 "자살은 정신적·사회적·생물학적 원인의 총체로, 사회적 책임이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서 자살 예방 정책을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 교수는 일본이 2006년 ‘자살대책기본법’을 제정해 ‘단 한 사람도 자살로 내몰리지 않는 사회’를 선언한 후 자살률을 40% 가까이 낮춘 사례도 소개했다.

자살률이 높았던 일본은 2006년 아베 총리가 임기를 시작한 첫 해부터 자살을 공공정책 차원에서 다루기 시작해 2006년부터 10년간 자살률을 30% 낮췄다. 2017년 연간 자살자 수는 2만1302명으로 자살률이 가장 높았던 2003년(연간 자살자 3만4000명)에 비해 37.3% 감소했다.

일본은 국가에서 예산을 지원하고 각 지자체는 농촌·고립 지역 중심으로 찾아가는 정신건강 서비스 같은 지역별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보건소, 경찰, 복지기관 간 협력체계도 강화했다.

일본은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중년 남성 자살이 급증하자 채무상담, 긴급 생계지원, 재취업 지원 확대에 나섰다. 2018년에는 과로사 방지법을 제정해 장시간 노동을 제한하고 휴식권을 보장했다. 정신건강 서비스도 개선했다. 특히 청소년과 중장년 남성을 대상으로 정신과 치료의 접근성을 향상시켰다.

그 결과 일본의 자살률은 2003년 인구 10만명당 약 27명으로 정점에 달했다가 감소해 2023년 기준 약 16.5명으로 낮아졌다. 특히 2019년에는 자살자 수가 처음으로 2만명 이하로 감소했다.

나 교수는 한국도 국가 차원에서 자살문제를 책임져야 하고 국민적 인식 제고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는 "한국의 정신 건강 예산은 전체 보건예산의 1.7%에 불과하다"면서 "전체 보건예산 중 정신건강 예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5%인 일본의 3분의1 수준"이라고 말했다. 2021년 기준 일본의 자살 대책 관련 예산은 8300억 원인 반면 한국은 450억 원에 그쳤다.

AI 기반 빅데이터, 챗봇, 음성·표정 분석 등을 활용해 자살 위험을 조기에 예측해 자살 예방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용 전 세계은행 총재는 세미나 기조강연에서 “정신건강 문제와 자살 예방을 개인의 문제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사회와 경제 전반에 걸친 중대한 사안으로 인식돼야 한다"면서 "생명을 지키기 위한 지속적이고 의미 있는 변화를 이루려면 공공, 민간, 학계의 긴밀한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기존에 검증된 방법들과 더불어 AI와 같은 혁신적인 기술과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우리나라의 자살 예방 역량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했다.

한지아 국민의힘 의원은 “빅데이터를 활용한 위험 예측, 챗봇 상담, 음성·표정 기반 위기 탐지 등 AI 도구는 빠르고 정밀하며 따뜻한 돌봄의 가능성을 제시한다”면서 "입법·예산을 통해 현장 적용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차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사회적 죽음이 자살"이라면서 “자살률은 정부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핵심 척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AI를 어떻게 활용해 대처하느냐에 따라 정신건강 문제와 자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키가 될 수 있다"면서 "지역사회와 민관 협력 모델을 적용해 해결하는 방안을 고려해 보겠다”고 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