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은 이제 지방선거 공약을 넘어 국가의 진정한 교육 경쟁력 제고를 위한 이슈로 좀더 고민하고 그 해결책을 다듬어나가야 할 때다.

이형용국민일보 수석논설위원
이형용국민일보 수석논설위원

이형용
국민일보 수석논설위원서울 강남구의 10억원대 아파트에 살고 있고 땅도 적잖게 있는 퇴직 선배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최근 고1 아들의 학교로부터 "무상급식을 받겠느냐"며 "원하면 3년간 학비도 무상으로 해주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선배가 퇴직하면서 사업하는 딸 밑으로 의료보험을 옮겼는데, 복지행정의 허점으로 무상 급식과 무료 학비가 필요한 수혜 계층으로 분류가 된 것이다.

선배가 아들에게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으니 아들은 거리낌 없이 "받겠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금지옥엽으로 키운 늦둥이인 아들은 무상급식과 무료 학비를 받는 게 알려져도 친구들에게 꿀릴 게 없다고 생각했던지 조금도 창피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선배도 거저 주겠다는 거 못 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3년간 500만~600만원에 이르는 혜택을 모두 받기로 했다며 껄껄 웃었다.

6·2지방선거에서 진보 성향 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됨으로써 전면 무상급식 시대가 곧 열릴 전망이다. 그런데 문제는 강남처럼 돈 많은 부자 동네는 자치단체장과 합의만 하면 당장에라도 무상급식을 실시할 수가 있지만,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들은 막대한 재원의 확보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경기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도(道)와 기초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는 50% 이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결국 무상급식을 확대하려면 세금을 더 거두거나, 아니면 기존의 교육 부문 예산을 대거 전용할 수밖에 없다. 부잣집 아이들까지 공짜 점심을 주기 위해 학력 신장 등에 투입돼 온 교육 예산을 삭감한다는 것은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가령 강원도의 경우 초중고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하려면 1,000억원의 추가 재원이 필요한데, 이는 강원도교육청의 한해 가용예산을 모두 쏟아부어야 가능하다.

또 2005~2008년 지방재정 적자는 연평균 33조 4,000억원, 지방교육재정 적자는 연평균 30조 6,000억원에 달했다. 지방 적자가 중앙재정 흑자(81조 9,000억원)의 80.6%를 잠식하고 있다.

무상급식을 '교육 과정을 위한 국가의 의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다른 시급한 교육 예산이 충분히 확보된 후에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에 나는 여전히 동의하고 있다.

무상급식 시행 시기가 지자체마다 달라 발생하는 지자체 간 역차별 문제도 두고두고 문제가 될 것이다. 충북과 전북은 내년 중에 초중학교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할 예정인 반면, 단체장이 한나라당인 부산과 대구는 무상급식 대상을 전체 학생의 30% 수준까지 단계적으로 늘릴 계획이다. 좁은 국토에서 지자체마다 상반된 교육정책이 시행되면서 교육자치 단체 간에 초래하게 될 혼란과 갈등도 적잖을 것이다.

1960년대, 가난한 집 아이들은 점심으로 미국의 구호물자인 강냉이 빵과 죽을 배급받았다. 도시락을 싸온 아이들은 그 강냉이 빵과 바꿔 먹어가며 가난한 집 급우들과 우정을 쌓았다. 그때 아이들도 지금처럼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무상급식을 받는 급우들을 '왕따'시키기보다는 도시락과 강냉이빵의 '교환과 나눔'을 통해 어려운 급우들과 하나가 되는 공동체 정신을 배운 것이다.

눈칫밥 안 먹이자고 부잣집 아이들까지 밥 다 먹여주느라 교육 예산을 탕진하고 나면 사각지대에 놓인 청소년들을 위한 다른 교육 복지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셈이란 말인가.

무상급식보다 저소득층, 결손가정 자녀 학습비 등 더 급한 복지수요가 수두룩하다. 특히 대도시와 농어촌 지역의 학력 격차가 큰 상황에서 지방의 두뇌유출은 위기 수준이다. 2009년 10~19세의 학생인구 이동을 보면 서울 4,918명, 경기 1,871명으로 순유입이 발생했지만, 경남은 -1,871명, 전남 -1,778명, 울산 -1,310명으로 학생 수가 감소했다. 무상급식 전면 실시에 앞서 기숙학교, 전원형 대안학교 등 공동체 생활학습 기회를 제공해 지방의 교육경쟁력을 강화해야 할 때다.

경제 대국인 독일, 영국, 프랑스도 기존의 복지를 줄이는 긴축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월스트리트 저널 보도에 따르면 재정난에 시달려온 미국 뉴욕시도 내년부터 학교의 무상급식을 줄일 예정이라고 한다.

지자체들의 낮은 재정자립도를 감안하면 무상급식 예산 지원 규모와 실시 시기를 탄력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전국의 교육감과 지자체장들이 함께 참여하는 기구를 통해 '원칙있고 통일된' 무상급식 해법을 찾아야 한다.

무상급식은 이제 지방선거 공약을 넘어 국가의 진정한 교육 경쟁력 제고를 위한 이슈로 좀더 고민하고 그 해결책을 다듬어나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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