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말연시 때 느끼는 분위기는 비슷하다.

종로나 대학로, 명동 거리를 걷다 보면 크리스마스의 설레임을 앞세운 상업주의의 화려함이 지나가는 행인을 유혹한다. '연인들을 위한 X-마스 특선' '연말 특별 감사 대바겐' '마지막세일 기회' 등 제목은 좋다.

윤리교육을 제대로 받아서였을까? 모름지기 상업주의와 천민자본주의는 형이하학적인 부류들이기에 '사랑'이나 '종교' '순수' 같은 단어와는 가까워지거나 조합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마음은 그렇게 먹고 있다. 현실에서는 지갑이 두터워졌으면 하는 바람에 복권 판매소 앞에 줄을 서는 일이 있더라도…

그런데 얼마전 내가 가진 편견(?)이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것도 상업주의의 총아라 하는 TV홈쇼핑에서.

"여러분! 매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전국에서 전화가 폭주해서 상담원들과의 통화가 매우 어렵습니다!"

평소에 듣던 쇼 호스트의 익숙한 호들갑이건만 판매하고 있는 2000원짜리 도시락은 정말 '물건'이었다. CJ홈쇼핑과 W사회복지단체가 지난달 22일 공동으로 진행한 '사랑의 도시락' 성금방송은 기획의 신선함이 돋보였다. 아마 도시락이 5000원쯤 했다면 그렇게 많이 팔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방송은 소비자가 도시락을 구입한 뒤 결식아동에게 도시락을 기부하는 사회공헌프로그램이다. 자신의 카드에서 돈이 나가고 도시락은 아이들이 받는 것. 첫 방송 당시 20분만에 1억원 상당(5만개 분량)이 매진되면서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대박을 냈고 부랴부랴 사흘만에 2차 방송을 편성했다. 2차 방송도 매진행진을 이어갔다.

사회복지분야에서 도시락을 활용한 사랑나누기는 10여년전부터 있어왔다. 누구도 남다른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홈쇼핑 역시 상품판매 외에는 금쪽같은 방송시간대를 허비할 것 같지 않았는데 이 둘이 만나 일을 낸 것이다.

당초 어느쪽에서 나온 기획일까? W복지단체에서 나왔다면 사회복지 전문가로서의 '깨는 기획력'이 돋보인 셈이고 CJ홈쇼핑에서 나왔다면 사회복지마저 홍보수단으로 활용한 그들의 '도발적 마케팅'이 먹힌 셈이다. 여하튼 만루홈런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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