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의 스티븐 호킹'으로 불리는 이상묵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가 연일 화제다. 2006년 7월 미국에서의 교통사고로 전신마비 장애인이 된 이교수는 이후 LA의 재활전문병원에서 피눈물나는 재활 끝에 올해 다시 서울대 강단에 섰다.

놀라운 것은 그 다음이다. 목 아래가 모두 전신마비인 이교수는 머리 뒷받침에 센서가 장착된 '전동휠체어 조종간', 이마에 붙어 있는 스티커 센서인 '헤드 마우스', 입김으로 작동하는 '마우스', 언어로 말하면 문자로 자동 변화되는 '음성인식 프로그램용 마이크' 등 최첨단 보조기기를 통해 능수능란하게 강의를 이어갔다.

이 교수가 사용한 보조기기들은 모두 미국의 '컴퓨터를 활용한 재활센터'에서 제공한 기기였다. 이 교수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은 줄기세포가 아니라 현실적인 정보기술(IT)"이라며 "미국에서는 의사소통을 위한 장비와 소프트웨어가 300만원도 안 된다"고 말했다.

■ 외국 수준과 '하늘과 땅'
최근 이상묵 교수가 각 언론사의 화제면을 연일 장식하면서 걸음마 수준에 불과한 우리나라 보조공학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소장 오길승)가 지난해 덴마크와 스웨덴을 둘러보고 내놓은 '보조공학 보고서'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와 해외 선진국의 보조공학 수준이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임을 알 수 있다.

보고서에서 '일종의 정신적 공황(?) 상태에까지 빠졌다'고 한 덴마크의 경우, 인구 530만명에 보조공학관련 예산은 약 7200억원으로 장애인에게 지급되는 보조기구 품목은 3만 6000여개에 달한다.

인구가 4800만명인 우리나라의 보조공학 관련 예산이 약 518억원 정도니까, 덴마크의 인구를 4800만명으로 가정하면 예산은 6조 5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우리보다 약 125배가 많은 셈이라는게 현지를 다녀온 연수단의 판단이다. 비율로 따지자면 우리나라는 덴마크의 0,8% 수준이다.

보조기구 품목수도 우리나라의 경우 아무리 넉넉하게 잡아도 220여 품목 정도에 불과하므로 160배의 차이를 보인다.

이웃 일본의 경우도 우리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일본은 재활보조기구전문점만 전국에 8,000여개 이상 산재해 있을 정도로 보조기구는 이미 산업화됐다. 지난 1989년에는 보조기구에 대한 정보제공과 보급촉진을 위해 7000억원 규모의 국채를 발행, 재단법인 테크노에이드협회도 설립했다.

미국은 민간시장까지 합쳐 한 해 보조기구 시장규모가 55조원에 이를 뿐만 아니라 그 종류만도 2만 5000가지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판 스티븐 호킹'으로 불리는 이상묵 교수의 교단 복귀를 계기로 보조공학에 대한 관심이 드높다. 19일 박은수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이사장(왼쪽)으로부터 보조공학기기명예체험단 위촉패를 받고 있는 이상묵 교수(오른쪽).
'한국판 스티븐 호킹'으로 불리는 이상묵 교수의 교단 복귀를 계기로 보조공학에 대한 관심이 드높다. 19일 박은수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이사장(왼쪽)으로부터 보조공학기기명예체험단 위촉패를 받고 있는 이상묵 교수(오른쪽).

'한국판 스티븐 호킹'으로 불리는 이상묵 교수의 교단 복귀를 계기로 보조공학에 대한 관심이 드높다. 19일 박은수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이사장(왼쪽)으로부터 보조공학기기명예체험단 위촉패를 받고 있는 이상묵 교수(오른쪽).
■ 그나마도 예산 낭비
문제는 단순한 규모의 차이만이 아니다.

오길승 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 소장은 지난해 8월 열린 '장애인 자립생활을 위한 보조공학법 제정방향' 토론회에서 "보건산업진흥원의 경우 연간 8억 6000만원, 산업자원부는 장애인관련기술 과제 31억원원, 과학기술부는 '지능형 로봇, 시각장애용 안내로봇, 작업보조용 로봇, 보행보조로봇, 책읽어주는 로봇, 각종 의지 제어 장치 등'을 지원했지만 상용화에 성공한 것은 거의 없다"며 장애인 당사자의 욕구와 관계 없는 기기 개발에 예산만 낭비했음을 꼬집었다.

오 소장은 "우리나라처럼 장애인복지 예산이 충분히 못한 상황에서는 오히려 선진국에서 개발된 재활보조기구를 수입해서 우리나라 장애인들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훨씬 경비효율적"이라며 "우선적으로는 장애인에게 필요한 재활보조기구를 찾아서 연결해주는 장애인개인별 맞춤형 서비스 체계의 확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근본적 차이는 '인식 체계'
그렇다면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이 같은 격차의 근원은 무엇일까? 그 해답은 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가 전한 현지 보조공학 서비스 담당자의 말에 생생히 담겨 있다.

"한 사람의 장애인이나 노인 즉, 신체가 불편한 사람에게 보행기구를 지급할 경우 예산은 약 30만원 정도 소요되는 반면, 음식을 나르거나 심부름을 하기 위한 활동보조인의 투입을 절감할 수 있고 또한 넘어지지 않아 부상을 예방할 수 있어 병원비를 절감할 수 있기 때문에 궁긍적으로 매우 많은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 때문에 어떻게 보조기구, 보조공학서비스를 활성화시키지 않을 수 있는가?"

요즘 이명박 정부가 부르짖고 있는 '예방적 복지, 능동적 복지'에 다름 아니다.

공단 내 보조공학전시관인 '해피스페이스' 둘러보는 이상묵 교수.
공단 내 보조공학전시관인 '해피스페이스' 둘러보는 이상묵 교수.

공단 내 보조공학전시관인 '해피스페이스' 둘러보는 이상묵 교수.
오길승 소장은 "장애인을 바꾸는 것보다 사회를 바꾸는 것이 오히려 훨씬 쉬운 일이고 선택의 여지 없이 중요하다"며 "사회를 바꾸는 일 중에 하나는 적절한 재활보조기구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포함된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보조공학 발전을 위한 최근의 활발한 움직임은 환영할 만하다. 기존 킨텍스 단독주관으로 개최되던 '시니어엑스포'를 올해부터는 보건복지부가족부와 지식경제부는 물론 장애재활보조공학 관련단체까지 포함해 총 19개 관련 유관기관이 공동으로 개최키로 한 것이다.

또한 '보조테크놀로지 관련 법률' 제정을 위한 움직임도 전개되는 등 재활보조기기의 활성화를 촉진하기 위해 범 민ㆍ관 단체가 뜻을 모으고 있다는 점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상묵 교수는 19일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강연에서 입김으로 움직이는 마우스로 컴퓨터를 작동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작은 정보기술(IT) 하나가 나같이 손도 못 쓰는 장애인을 쓸모 있는 사람으로 바꿔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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