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이 땅의 전통적인 삶의 모습들이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흔히 볼 수 있었던 것들이 내일이 멀다하고 사라져가고 있다. 초가가 스레이트 집으로, 논과 밭이 아파트로 탈바꿈하는 세상에서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이 땅의 전통적인 삶의 모습들이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흔히 볼 수 있었던 것들이 내일이 멀다하고 사라져가고 있다. 초가가 스레이트 집으로, 논과 밭이 아파트로 탈바꿈하는 세상에서 전통적인 가치를 얘기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그런 개발의 와중에서도 옛 모습들이 잘 보존된 것들이 더러 있으니 민속마을도 그 중의 하나이다. 그곳에 가면 정(情)이 있다. 멋이 있다. 빈 틈 없이 돌아가는 일상에 묶여 잊고 지냈던 고향 풍경이 오롯이 담겨 있다. 온양에서 남쪽으로 약 8km 거리에는 '전통건조물보존지구'로 지정된 외암리민속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충청도 사람들의 느긋하고 여유로운 성품과 전통이 그대로 배인 아늑한 삶터이다.

'전통건조물보존지구'는 지은 지 1백년 이상된 옛집들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에서 지정한 마을이다. 법으로 지정된 마을인 만큼 옛집을 복원할 때 국비·도비를 포함, 복원 비용을 전액 지원 받는다. 이 마을은 조선조 말엽 충청도 양반집의 전통 양식을 그대로 간직한 전형적인 반촌(班村-양반들이 많이 사는 마을)이다.

외암리민속마을은 지금으로부터 약 4백여 년 전, 그러니까 조선시대 중엽 명종(1534-1567) 때에 장사랑 벼슬을 지낸 이정 일가가 낙향하여 정착한 곳으로 이정의 6대손인 이간이 설화산의 우뚝 솟은 봉우리를 따서 호를 '외암'이라 짓고 마을 이름도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 지금은 그 후손들이 선조의 터를 일구고 있다.

마을로 들어서면 밤나무를 깎아 만든 장승이 반갑게 맞아준다. 반석교를 지나면 좌측으로 소담스런 정자와 물레방아가 보인다. 눈 덮인 설화산과 그 밑으로 옹기종기 들어선 옛집들은 더없이 온화하고 다사로워 이곳이 예사로운 땅이 아님을 확인시켜 준다. 뭔가 미묘한 기류가 넘실거리는 까닭이다. 4km가 넘는 마을의 돌담 고샅길은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걷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마을 옆으로는 개울물이 흘러내린다. 오래 전에 화산이었다는 마을 뒤편 설화산 계곡에서 흘러내려오는 이 개울물은 예나 이제나 마을 사람들의 든든한 자연자원이다. 거미줄처럼 얽힌 골목길을 따라가노라면 곳곳에 '이참판댁', '영암군수댁', '송화군수댁' 하는 안내 팻말이 보이고, 마을 중간에는 550년 된 느티나무와 이제는 거의 자취를 감춘 연자방아, 디딜방아가 아련한 향수를 자극한다.

80여 가구가 살고 있는 마을에는 원형을 그대로 간직한 영암댁, 참판댁, 외암종가댁, 송화댁 등 기와집 10여 채와 초가집 50여 채가 남아 있다. 마을 전체가 중요 민속자료로 자연석으로 쌓은 나직한 돌담은 고향 마을에 온 것처럼 정겹다.

130여 년의 내력을 자랑하는 이참판 댁에 들어가면 전통 한옥 구조의 전형을 보게 된다. 집을 아늑하게 감싼 돌담이며 솟을대문, 장독대, 살림살이까지 옛 멋이 그대로 살아있다. 조선말기 참판 벼슬을 지낸 퇴호 이정렬 선생이 고종으로부터 재목을 하사 받아 지은 집으로 서울 '낙선재'의 축소판으로 불린다. 이 집의 생활도구(200여 점)들은 외암마을에서 가까운 온양민속박물관에 기탁, 전시하고 있다.

영암댁(건재고택)은 이간 선생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온 집으로 영암군수를 지낸 이상익 씨가 1892년에 새롭게 중건한 집이다. 집을 둘러싸고 있는 각종 과실수와 작은 폭포, 연못, 돌다리, 징검다리가 어우러져 한국 전통민가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영암댁(민속자료 233호)은 980여 평에 달하는 대가로 현재는 후손인 이준경 씨(61세) 내외가 꾸려가고 있다. 영암댁에서 특히 눈여겨 볼 것은 안채와 사랑채를 연결하는 담장(내외담)과 잘 짜여진 정원이다. 굴뚝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가 꽤나 목가적이다. 소나무, 단풍나무, 등나무, 시어대 따위의 낙엽 활엽수가 가득 심어진 정원은 '한국의 정원 1백선'에 꼽힐 만큼 멋과 풍류가 가득해 전국의 건축·조경학과 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고풍스런 기둥마다 걸려있는 주련 글씨와 외암서사(巍巖書社), 청등백석산장(靑藤白石山莊), 건재장(健齋莊), 고역당(古易堂), 우하산장(雨荷山莊), 설화산장(雪華山莊) 같은 편액은 이 집의 품격을 한층 높여준다.

외암리 마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물이 바로 연엽주(무형문화재 11호)다. 20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연엽주'는 찰쌀, 멥쌀, 누룩, 연근, 솔잎, 감초를 넣고 15일간 숙성해 만든다. 이참판 댁에 가면 그 집안의 10대 손인 이득선 씨가 그 술을 빚고 있다. 연엽주는 제조과정이 까다롭다. 지극 정성이 없으면 제대로 된 술이 나올 수 없다고 믿었다. 한밤중 자시(子時)에 그릇을 놓고 이슬을 받는다. 만세력(萬歲曆)을 보고 좋은 달과 날짜를 택일하였고 술독을 놓는 방향까지 따졌다. 술 담그는 날에는 정갈하게 목욕재계하고 작업할 때는 침이 튀지 말라고 입에다 창호지를 물고 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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