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목소리를 듣는다 Ⅰ (노숙인)

남기철 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남기철 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노숙인과 노숙문제는 사회복지의 여러 분야 중 비교적 낯설고 오해가 많은 분야이기도 하다. 단어의 뜻 자체로 노숙인(露宿人)은 이슬을 맞고 자는 사람, 즉 적절한 주거가 없는 경우를 말한다. 노숙은 인구학적 특성이나 진단에 의한 특성이 아니라 상태에 기반한 성격, 그것도 시간에 따라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상태에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회복지실천의 주요 대상 집단과는 차이가 있다.

 

사람이 아닌 사회문제로서 노숙

노인, 아동, 장애인 등과 노숙인이라는 분류는 차이가 난다. 사람의 주거상태 안정성은 수시로 달라지기도 하고, 역동적인 과정에 해당하는데 이 역동성의 한 국면을 가지고 ‘노숙’이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주택 보급률은 100%를 조금 더 넘어서 통계상으로는 가구 수보다 주택의 수가 약간 더 많다. 하지만 주택의 배분 상황이 고르지 않고, 지역적 편차나 주택가격의 문제로 인해 전체 사회구성원 중 일부는 주거가 불안정하거나 극단적으로는 일정한 주거가 확보되지 못해 노숙생활을 하는 사람이 일정한 수만큼 발생할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경쟁에 취약한 시민들이 주거위험과 노숙상황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주거공간은 개인의 사적인 재생산과 프라이버시를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노숙, 즉 주거공간의 결여는 심리사회적 기능수행에서 심각한 외상을 가져오게 된다. 알코올 중독이나 불안, 조현병 등과 같은 상황은 개인의 노숙 원인이 되기도 하고, 결과가 되기도 한다. 주거취약성이라는 핵심 조건에 사전적으로, 그리고 사후적으로 나타나는 심리사회적 외상, 사회적 관계의 단절이나 편향성, 극도의 빈곤 등이 맞물리면서 노숙문제의 복잡한 역동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데 우리사회에서는 흔히 노숙의 문제를 ‘사람의 특성적 측면을 통해서만 설명’하려는 경우들이 있었다. 뭔가 특별하고 기이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노숙을 한다는 식이다. 이 경우, 노숙생활을 원한다 혹은 스스로 원해서 하는 노숙이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되고, 본인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기반된다.

사회복지에서 전형적인 ‘복지수급 자격이 없는 빈민(undeserving poor)’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만성노숙인의 경우에는 특히 장애나 정신건강, 알코올중독 등의 문제를 같이 가지고 있음에도 해당 사회복지체계에서조차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노숙하는 장애인이 장애인복지체계의 서비스를 받지 못하거나 노숙하는 정신장애인이 정신보건 서비스 체계의 서비스를 잘 받지 못하는 식이다. 20세기 말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거리노숙인이 급증했던 시기에 사회적 낙인은 조금 완화되기도 했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성실한 특성을 가진 사람’ 혹은 ‘사회 일반인들과 다르지 않은 보통의 사람’들이 거리생활로 내몰리는 것을 목격하면서 변화가 나타났다. 실직노숙인이라는 용어가 이때 등장하기도 했다. 현대적인 노숙인복지체계가 본격적으로 모색된 것도 이 시기였다.

 

노숙인 규모와 대응정책

우리나라의 노숙인 수는 2021년 말의 전국조사에서 확인한 바로 8956명, 쪽방 주민을 더하면 1만4404명이다. 이 중 거리에서 생활하는 거리노숙인이 1595명이다. 5년 전의 같은 조사방식에서 1만7532명에 비해 감소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노숙인의 수가 감소추세를 나타내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노숙인의 규모를 이 수치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곤란하다. 노숙인의 수를 집계하는 방식은 PIT(point in time count)라 하여 노숙인이 있다고 알려진 장소에서 일정 시간에 조사원이 일제히 수를 세는 방식으로 집계되고 있다. 때문에 노숙인으로 보이지 않아 조사원이 집계에 포함시키지 않거나(uncounted homeless) 노숙인의 수를 세는 장소가 아닌 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노숙인의 경우(uncountable homeless)에는 집계에서 누락된다. 또 특정 시점에만 집계가 이루어지므로 집계가 이루어지는 날은 (돈이 있어서) 찜질방이나 PC방 등에서 잤지만 다른 날에는 거리노숙을 하기도 하는 노숙인은 집계에 포함되지 않는다. 노숙과 숙박업소를 전전하는 경우도 노숙인에 포함돼야 한다. 때문에 우리나라의 노숙인 규모는 약 1만명이라는 수치보다는 훨씬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다른 서구국가에 비해 인구 대비 노숙인의 규모가 크지 않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농경사회의 전통적 관념이 남아 있어 일정한 거주지를 가지지 못한 사람에 대한 낙인이 심한 편이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의 노숙인복지정책이 활성화되기 이전에도 서구국가에 비해 노숙인의 수가 많지 않은 사회적 배경이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과거 부랑자 혹은 부랑인이라 부르며 그에 대한 대규모 단속과 수용을 사회적 대책으로 삼았던 바 있다. 필연적으로 우리나라 노숙인복지체계는 형제복지원 사건과 같은 인권침해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지금도 노숙인을 보이지 않게 하려는 비가시화의 정책 동기가 곳곳에서 발견되곤 한다.

노숙인복지정책은 20세기 말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에서 전환점을 가져왔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수용보호와 단속을 넘어선 지원대책이 만들어지기시작했다. 노숙인에 대한 본격적인 사회복지체계의 출발이라 할 수 있다. 부랑인복지시설 운영 이상의 질적 대응도 모색하고 있다. 이를 반영해 관계 법률(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고 노숙인복지 종합계획이 만들어져 정책기조를 이루고 있다. 1년 여 전인 지난 2021년 말에 ‘제2차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 종합계획’이 사회보장위원회에서 심의·의결 됐다. 여기에서는 노숙 예방 등을 위한 거리현장 지원, 건강권 보장을 위한 의료지원, 안정적인 주거생활을 위한 주거지원, 지역사회 재정착을 위한 복지서비스, 정책지원 강화를 위한 인프라 구축 등 5대 분야 11개 정책과제를 핵심적인 내용으로 제시하고 있다. 노숙인이 가장 많이 밀집해 있는 서울지역에서는 독자적인 계획과 관련 조례 등을 통해 지원주택 등 선도적인 복지모
델도 모색하고 있다. 과거에 노숙인을 건전한 사회 풍속을 저해하는 사람(부랑인)으로 취급하여 단속 혹은 수용하던 것 위주로 공공이 활동하던 양상에 비해서 분명히 진일보한 것이다.

 

주거와 인권에 대한 옹호로서의 노숙인복지

서구국가에서는 주거우선(housing first)을 노숙인 정책의 기본 모토로 설정하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해서 부분적으로 비판이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주거우선 원칙에 따라 기획되고, 집행되는 정책방향이 전통적인 사회복지 개입에 대한 투자를 소홀하게 만들고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노숙문제에 대해 주거우선의 접근이 충분히 관철되지 못하고 있다. 서구의 노숙인복지 경험에서 신규노숙인의 증가는 저렴주거(affordable housing)의 빈약성, 만성노숙인의 증가는 지원주택(supported housing)의 빈약성을 나타낸다고 말하곤 한다. 빈곤층이 활용할 수 있는 주택이나 공공주택의 부족 때문에 노숙상황이 발생하는 하방압력이 강화되고, 노숙생활로 인해 심화되는 심리사회적 문제에 대해 주택과 사회서비스가 통합적으로 제공되어야 하는데 이 부족함이 만성적인 노숙생활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때문에 노숙인에 대한 사회복지적 접근은 주거측면에서의 지원이 핵심적 요소가 돼야 한다.

물론 노숙의 문제는 주거만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 개인의 심리사회적 기능수행, 사회적 지지 등의 복합적 문제가 결합되어 있다. 일정 기간 이상의 노숙생활 경험이나 혹은 노숙생활에 이르기까지 나타나는 상실의 경험으로 인해 발생한 다양한 트라우마는 단지 주거지의 제공만으로는 사회적 기능수행을 회복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주거와 맞물려 사회복지실천은 필수적이다. 불행히도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주거복지, 주거와 관련된 사회복지실천의 경험과 체계성이 아직은 부족하다.

 

“재정적 빈약성은 인권침해의 문제”

노숙인의 복지욕구는 매우 크다. 노숙인에 대해 증오범죄라 할 수 있는 폭행 등도 일상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명의도용 범죄나 불법적인 요양병원 유인 입원 조치 등도 크게 문제가 됐다. 코로나19 시기 무료급식의 제한으로 거리노숙인들은 하루 식사 횟수 자체가 줄어들었던 바 있다. 노숙인에 대한 진료는 지정병원에서만 가능한데 많은 경우, 노숙인 진료지정병원이 공공병원으로 제한되어 있는 상황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공공병원들이 코로나 진료병원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노숙인들은 일상적으로 필요한 의료접근 통로 자체가 막혀 있기도 했다. 상당히 매서웠던 지난 겨울의 한파 속에서 노숙인들의 이용시설이라 할 수 있는 임시숙소에서는 난방비 폭등으로 인해 민간을 대상으로 긴급모금을 해야 했다. 물론 노숙인시설만이 아닌 많은 거주시설들도 마찬가지 문제를 경험했을 것이다. 노숙인생활시설의 운영에 대한 업무가 지방이양되면서 지역별로 급식 단가부터 들쑥날쑥하다. 실제 급식을 위해 터무니없이 부족한 비용인 경우가 대부분의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사실 사회복지의 전문적 문제를 논하기 이전에 국가의 재정지원 빈약성은 기본적인 인권침해의 문제라 해야 할 수준이다. 제도와 정책적으로 제한된 환경때문에 노숙인복지 현장의 실무자들이나 노숙인 인권옹호를 위해 활동하는 단체 등 사회복지 실천가들이 개인적인 자원연계 기술과 임기응변으로 이 과도한 하중을 감내하고 있는 현실이다.

일각에서는 노숙인의 자활의지를 문제 삼기도 한다. 설혹 노숙인의 독립적 생활의지가 취약한 것이 중요한 요인이라고 해도 의지를 고양시키자는 것만으로 전문적 개입의 요체를 삼기는 어렵다. 노숙문제에 대응하는 사회복지정책과 실천에서 노숙인이 의존적 습성에서 벗어나 스스로 생활하도록 한다면서 결국 좁은 의미의 자활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성과도 없고, 개인을 비난하는 부작용의 우려가 클 수 있다. 노숙인이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 기본권이라 할 수 있는 주거생활과 지역사회통합생활 영위가 어떠한 부분에서 제약되고 있는지를 살펴 극복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이다. 그리고 이 의무의 가장 일선에 사회적 책임을 가진 전문가체계로서 사회복지사가 있다. 현 시점에서 노숙인복지는 주거박탈로 인해 나타나는 노숙인의 인권문제를 제일의 화두에 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배제된 집단에 대한 옹호는 사회복지 전문성 본연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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