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는 2023년 2월부터 15명 이상이 근무하는 사업장에 ‘가족 및 가정폭력 피해자를 위한 유급휴가(Paid family and domestic violence leave)’ 제도가 도입됐다. 15명 이하 사업장의 경우는 올해 8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며, 7월까지 기존의 5일 무급 가족 및 가정폭력 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

제도의 주요 내용

공정 근로 시스템(Fair Work System)의 보호를 받는 약 1100만명의 근로자들은 정규직, 비정규직 등의 고용 유형과 무관하게 12개월 동안 10일의 유급가족 및 가정폭력 휴가를 받을 수 있다. 이 휴가는 연차 휴가나 병가처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누적되는 것이 아니며, 고용 이후 10일 전체를 우선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휴가를 사용하지 않는다해서 해마다 누적되지 않으며, 매년 직원의 근무 기념일에 갱신된다.

직원은 가족 및 가정폭력에 의한 피해 사항을 처리하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경우에 이 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 자신 또는 가까운 친척의 안전을 위한 조치, 법원 심리 참석, 경찰 서비스 이용, 상담 참석, 의료·재정·법률 전문가와의 약속 참석 등이 해당된다.

휴가 사용 시 지급되는 급여의 경우, 정규직 직원(풀타임, 파트타임)은 휴가를 받지 않았더라면 일했을 시간에 대해 전체 임금 비율로 지급된다. 비정규직 직원은 휴가를 받은 기간 동안 근무하도록 등록된 시간에 대해 전액 급여를 받는다.

직원은 연차 휴가 등을 보내고 있는 동안에도 유급가족 및 가정폭력 휴가를 사용할 수 있으며, 이 경우 휴가 기간의 10일 이내는 유급가족 및 가정폭력 휴가로 대체된다.

유급가족 및 가정폭력 휴가에 대한 정보를 급여명세서에 기록하는 방법과 일부 과도기적 규칙을 포함하여 어떤 정보를 포함하지 않아야 하는지에 대한 규칙이 있다. 이는 휴가를 사용할 때 직원의 안전에 대한 위험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 고용주는 잔여 휴가 일수와 직원이 사용한 모든 휴가를 기록해야 한다. 하지만 급여명세서에는 사용한 휴가 및 잔여 휴가 일수를 포함해 유급가족 및 가정폭력 휴가를 언급해서는 안 된다.

2023년 2월 4일부터 유급가족 및 가정폭력 휴가를 사용한 직원의 급여명세서에는 정규 근무시간 또는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종류의 급여 등으로 기록해야 한다. 만약 직원이 급여명세서에 다른 유형의 휴가(예: 연차 휴가)로 유급가족 및 가정폭력 휴가로 소요된 시간이 기록되기를 요청한다면, 고용주는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직원이 유급가족 및 가정폭력 휴가를 사용한 경우, 고용주는 이를 급여명세서에 가능한 한 직원이 이 휴가를 가지 않은 것처럼 기록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올해 6월 4일까지는 이 휴가 기간을 급여명세서에 기타 휴가 등 다른 유형의 휴가로 기재할 수 있으며, 이는 고용주가 급여시스템을 정비하도록 유예기간을 둔 것이다.

직원은 고용주에게 의무적으로 휴가사용에 대해 통지해야 하며 증거를 제공해야 한다. 고용주는 직원의 동의, 법에 따라 정보를 처리해야 하는 경우, 직원이나 다른 사람의 생명, 건강 및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직원이 이 휴가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만 직원의 휴가 사용과 이유 등에 대한 정보를 사용할 수 있다.

 

호주 가족 및 가정폭력 실태

유급가족 및 가정폭력 휴가제도 도입은 ‘폭력 현황에 대한 심각성과 잘못된 사회적 인식’에서 기인한다. 호주 정부가 노동 환경에서 바라본 가족 및 가정폭력은 가까운 친척, 현재·이전 파트너 또는 가족구성원이 근로자에게 강요나 통제, 해를 끼치거나 두려움을 유발하려는 목적으로 행하는 폭력, 위협 또는 기타 학대 행위로 규정된다.

2016년 호주 통계청에서 실시한 개인안전조사(Personal Safety Survey)에 따르면 약 360만명의 호주 성인(인구의 20%)이 15세 이후 신체적·성적 가족 및 가정폭력을 경험했다. 15세 이후 현재 파트너(5.7%)보다 이전 파트너(15%)로부터 정서적 학대를 경험한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 12개월 동안은 이전 파트너(1.6%)보다 현재 파트너(3.0%) 사이에서 더 흔했다. 약 220만명(인구의 12%)이 15세 이후 성폭력(위협·폭행)을 경험했으며, 모든 유형의 가해자 관계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더 컸다.

이런 폭력은 성, 연령, 지역 등과 상관없이 발생하지만 아이들은 더 취약하다. 조사 참가자인 18세 이상 성인들 중 6.9%(약 130만명)는 가족구성원에 의한 신체적 학대를, 3.3%(약60만명)는 성적 학대를 15세 이전에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여성의 경우 남성보다 더 가족, 가정 및 성폭력의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전국 여성폭력에 대한 공동체 태도 조사(The National Community Attitudes towards Violence against Women Survey)’를 통해 가족 및 가정폭력이 발생하는 데는 사회적 태도와 규범이 영향을 끼치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호주인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반대하고 폭력에 대해 잘 이해하는 등 고무적인 결과를 보였지만 개선이 요구되는 부분이 발견됐다.

첫째, 여성에 대한 폭력을 지지하는 태도이다. 3명 중 1명(32%)의 호주인은 폭력을 행사하는 파트너를 떠나지 않는 여성에게 계속되는 폭력에 대한 일부 책임이 있다고 믿었다. 5명 중 2명 이상(42%)은 성폭행을 고소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남성에게 복수하는 방법이라는 데 동의했다. 5명 중 1명(20%)은 폭력이 일상적인 스트레스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믿었다. 5명 중 1명 이상(21%)은 때때로 여성이 남성을 화나게 하여 의도치 않게 여성을 때릴 수 있다는 데 동의했다. 

둘째, 잘못된 여성에 대한 폭력의 이해이다. 호주인 3명 중 1명 이상(34%)은 여성이 낯선 사람보다 아는 사람에게 성폭행을 당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사실을 몰랐다. 5명 중 2명은 가정폭력 문제에 대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을 몰랐다. 3명 중 2명 이상(64%)은 남성이 가정폭력 가해자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인식했지만 2013년에서 2017년 사이 7%나 감소했다. 또 5명 중 1명(19%)은 여성이 남성보다 가정폭력으로 인해 신체적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제도에 대한 의견과 유의점

오랜 기간 동안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유급휴가 제도를 요구해 온 호주 노동계는 ‘매우 고무적’이라며 반기는 분위기다. 호주노동조합협의회(Australian Council of Trade Unions) 미셸 오닐(Michele O'Neil) 회장은 성명을 통해 유급 가족 및 가정폭력 휴가를 위해 10년 이상 캠페인을 지속한 조합원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이들의 헌신과 결단이 생명을 구할 것이라 했다.

법안을 상정했던 토니 버크 고용 및 노사관계부 장관은 “근로자들은 그들이 안전과 급여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없어야 한다”며 “이 휴가는 생명을 살리는 직장 내 권리”라고 말했다. 아만다 리쉬어스 사회서비스부 장관은 “호주에서 10일에 한 명의 여성이 이전 또는 현재 파트너에 의해 살해된다. 이들은 주로 우리의 직장에서 고용되어 일하고 있는 여성들”이라며 “이 휴가는 폭력을 경험하는 여성과 아동들을 위한 또 하나의 지원책”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제도에 대해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18년 7월 뉴질랜드 의회는 가정폭력 피해자를 위한 10일 간의 유급휴가 지원에 대한 법안을 찬성 63표, 반대 57표로 통과시켰다.

피해자들이 새로운 터전을 찾고, 자신과 자녀 등을 보호할 시간을 갖는 등 긍정적인 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대 의견이 많았던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휴가를 사용하는 직원들에게 주는 급여가 중소 규모의 사업장의 고용주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과 고용주가 가정폭력 피해자로 의심되는 사람을 처음부터 고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제도의 정착을 위해 앞으로의 호주 정부의 역할과 대응이 주목된다.

저작권자 © 복지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