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지에서 ‘보장성’과 ‘재정건전성’이라는 딜레마로 정책당국자들의 고심이 깊어져 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본에서는 ‘전세대형 사회보장개혁( 全世代型社会保障改革)’이라는 이름 아래 사회보장제도의 총체적 개혁이 추진되고 있다. 어떠한 배경에서 사회보장 개혁이 추진되고 있으며 그 원칙과 내용이 어떠한 것인지에, 2022년 12월 16일에 발표된 ‘전세대형 사회보장 구축회의(全世代型社会保障構築会議)'보고서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그 시사점에 대해 생각해보자

‘전세대형’ 사회보장이란

전세대형 사회보장개혁은 공적연금, 의료보장, 개호보험 등의 사회보장제도에 더해 보육 및 육아지원을 통한 저출산 해소방안과 노동개혁을 포함한 횡단적 개혁이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인생 100세 시대의 도래를 감안해 ‘자조(自助)·공조(共助)·공조(公助)’, 그리고 ‘유대(絆)’를 축으로, 노인 세대를 포함하여 아이들과 육아세대, 현역세대까지 폭넓은 세대들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을 지지하는 사회보장제도’로 정의된다.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사회보장제도 개혁

일본이 본격적으로 사회보장제도 개혁에 착수하게 된 배경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위기의식’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위기의식은 크게 △사회·경제적 요인 △인구학적 요인 △재정적 요인에 의해 촉발된 것으로 풀이된다. 흔히 ‘잃어버린 20년’이라 부르는 장기 경기침체의 악조건 가운데 잇달아 발생한 리먼 쇼크와 동일본대지진은 정책당국자들의 위기의식이 표면화되는 계기가 됐다. 또한 총인구 감소가 시작된 해가 2011년이라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일본은 1970년에 고령인구의 비율이 7%를 돌파하며 고령화사회에 진입하고, 2007년에는 20%를 돌파하면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총인구 감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현실로 다가왔다는 사실은 일본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심각한 재정악화 또한 위기의식을 고조시킨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2010년 일반회계총액의 내용을 살펴보면, 당시 역대 최대규모였던 일반회계 예산 92조2992억엔 중 공채의존도가 무려 48%에 달했으며, 그 중 사회보장 관계비는 일반세출 예산인 53조4542억엔의 절반을 넘는 27조2686엔을 기록했다. 사회보장 관계비의 팽창이 보장성 강화에 따른 것이 아닌 고령화로 인한 연금 및 의료비의 자연증가에 기인한 결과라는 점이 문제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일본 정부의 위기의식은 2011년 12월에 발표한 ‘일본재생의 기본전략-위기의 극복과 프런티어로의 도전’이라는 보고서에 여실히 드러나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거대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라는 이 보고서의 첫 문장은 국가보고서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비장한 표현을 통해 직면한 상황에 대한 위기의식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다. 이 보고서는 일본의 상황을 ‘역사적 위기’이자 발전과 쇠퇴의 중대한 ‘분기점’으로 묘사하면서 중대과제 중 하 나로 재정건전성의 확보를 위한 사회보장·조세일체개혁(社会保障·税一体改革)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역사적 전환기가 된 ‘전세대형 사회보장 구축회의 보고서’

이와 같은 맥락의 연장선상에서 2012년 8월에 가결, 성립된 ‘사회보장과 조세의 일체개혁관련법 8법()’은 현재 진행중인 사회보장 개혁의 방향성을 규정한 것으로 평가된다. 예컨대 동법 1조는 ‘…(중략)…자조(自助)·공조(共助)·공조(公助) 원칙의 정합성에 유의하면서, 국민이 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가족구성원 상호 간 또는 국민 상호 간 상부상조를 촉진하는 제도를 구축하여 (사회보장의) 실현을 지원해 나갈 것’이라는 기본방침을 규정하고 있다. 소위 ‘가족주의 체제’로 평가되는 일본의 복지체제가 극복해야 할 과제로서 인식되는 가운데 보다 나은 삶을 위한 개인 및 공동체의 노력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또한 동법 제4조4항은 ‘사회보장비용을 모든 세대가 공평하게 부담하는 관점에서, …(중략)…소비세와 지방세의 증세를 통한 수입으로 재원을 확보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2014년과 2019년 두 차례에 걸친 소비세율 인상의 법적 근거가 됨과 동시에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재정운용에 있어 ‘모든 세대의 공평한 부담’이 원칙으로 제시된 첫 사례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본 정부는 2019년 9월 20일, 의장인 총리를 중심으로 주요 관료들과 전문가, 경제인 등으로 구성된 ‘전세대형 사회보장 검토회의’를 개최하고, 2020년 12월 14일에 12회에 걸친 논의를 통해 구체화된 기본방침을 확정했다. 그리고 2021년 11월 9일에는 기본방침을 토대로 한 구체적인 방향성 모색을 목표로 ‘전세대형 사회보장 구축회의’를 재구성하고, 총 12회의 논의를 통해 2022년 12월 16일에 ‘전세대형 사회보장 구축회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발표된 구축회의 보고서가 일본의 현주소를 ‘역사적 전환기’로 규정하고 있는 점은 12년 전의 위기의식과 관점을 계승한 결과물임을 방증하는 부분이다.

 

개혁의 목적과 4가지 달성 과제

전세대형 사회보장 구축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개혁의 목적은 총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로 저출산 및 인구감소의 흐름 억제다. 저출산 문제를 국가의 존속 그 자체를 결정짓는 중대한 과제라고 규정하고, 이를 위해 보육 및 육아지원, 청년세대 지원을 강화해 나갈 것임을 밝히고 있다. 둘째로 초고 령사회에 대한 대비이다. 이를 위한 구체적 과제로 여성과 고령자의 사회진출을 촉진하는 관점에서 비정규직 및 단시간근로자, 플랫폼 노동자 등 다양한 근로형태를 포괄하는 사회보장제도의 정비, 그리고 부담능력을 기준으로 모든 세대가 공평하게 사회보장급여에 필요한 비용을 부담하는 부담/급여체계의 재정비를 제시하고 있다. 셋째로 지역의 상부상조 강화이다. 1인가구의 증가에 따른 고독 및 고립 문제의 해소방안으로써 주민들 간의 호조(互助), 즉 상부상조의 기능강화를 통한 지역 단위의 의료, 개호, 복지체제 구축 및 정비를 제시하고 있다.

보고서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향으로 △보육 및 육아지원 확대 △다양한 근로형태에 중립적인 사회보장제도 구축 △의료보험 및 개호보험제도의 개혁 △지역공생사회(地域共生社会)의 실현 등을 차례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방향성에 입각하여 현재까지 진행된 개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가장 큰 특징은 부담능력에 따라 모든 세대가 공평하게 부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저출산 해소와 청년세대 지원을 위한 재원마련의 수단으로서 고령자에 대한 다양한 급여를 축소하는 방법을 택했다는 점이다. 그 의미와 시사점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전세대형 사회보장의 시사점

먼저, ‘전세대형’이라는 수식어의 적절성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회보장은 본질적으로 전 세대를 아우르는 제도적 장치이다. 현대 복지국가는 공적연금 및 의료보장, 공공부조 등으로 대표되는 전통적 사회보장제도에 더불어 사회복지서비스 및 노동시장 정책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 위험에 대응한다. 전통적 사회보장제도가 구 사회위험(old social risk), 즉 노령, 실업, 질병, 장애 등으로 인한 소득능력의 상실에 대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면, 사회복지서비스 및 노동시장 정책은 탈산업사회로의 이행에 따른 신사회위험(new social risk), 즉 청년실업, 빈곤의 확대 및 소득양극화,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에 의한 출산율 저하 등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공적연금 및 의료보장 등의 전통적 사회보장제도는 구사회위험으로 인한 소득능력의 상실에 대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기에 고령자 세대에 급여가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사회연대의 원칙을 기반으로 누구나가 삶의 어느 시점에서 맞닥뜨리게 되거나 그럴 개연성이 높은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특정 세대를 위한 제도로 이해하는 것은 명백한 오해다. 물론 장기적 관점에서 재정안정성을 추구하기 위한 세부조정의 필요성을 부정하지는 않으나 사회보장제도의 목적과 본질을 도외시한 접근은 부적절한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전세대형’이라는 수식어를 사회보장제도의 철학적 근간과 중심원리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용어의 적절성에 대해 의문이 남는다. 특히 신사회위험에의 대응을 위한 재원 확보를 위한 방법으로 전통적 사회보장제도의 축소라는 정책적 수단을 선택하고 있다는 부분에서는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학계에서 ‘전세대형이라는 말은 레토릭에 불과하다’라는 신랄한 비판이 터져 나오는 이유다. 이는 오히려 일본이 제도개혁을 통해 표방하고 있는 ‘세대통합’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세대갈등의 점화장치가 될 개연성이 있다. 또한 이러한 형태로의 개혁은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현역세대의 불신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일례로 20대에서 50대까지의 성인 200명을 대상으로 공적연금에 대한 인식에 대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95%가 연금을 수령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을 갖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전혀 문제가 없다고 응답한 사람은 2%에 불과했다. 또한 공적연금에만 의존하여 생활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무려 98%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미국의 정치경제학자인 스벤 스타인모(Sven Steinmo)는 스웨덴과 일본, 미국 등 3개국의 비교를 통해 일본이 직면한 최대의 과제는 재정악화도 인구감소도 아닌 바로 정책당국자들이 어떠한 선택도 할 수 없게 만드는 뿌리깊은 정치불신이라고 분석했다.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재정건전성 확보가 중요한 과제임은 분명하지만 제도와 정부에 대한 신뢰회복 또한 중대한 과제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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