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자 : 이승기 성신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토론자 : 김정희 한국장애인개발원 정책연구본부 본부장
윤선희 한국정신재활시설협회 사무총장
박상호 안산시장애인복지관 관장

“장애등급제가 6개에서 2개 등급으로 개편되었음에도 의학적 모델 위주의 장애 판정 체계가 여전히 만연해 있어 장애인의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적절한 서비스와 지원에 접근을 제한하고 있다.” 지난달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가 채택한 ‘우리나라의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이행에 대한 최종견해’에 언급된 내용이다. 2019년 정부가 ‘수요자 중심 맞춤형 지원체계 구축’이라는 목표를 내걸고 31년 만에 장애등급제 폐지를 발표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의미다. 학계와 현장의 전문가 네 명이 함께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장애인복지의 현실과 한계를 돌아봤다. 이들이 말하는 진정한 수요자 중심 맞춤형 지원체계는 어떤 그림일까?

(왼쪽부터)이승기 성신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윤선희 한국정신재활시설협회 사무총장, 김정희 한국장애인개발원 정책연구본부 본부장, 박상호 안산시장애인복지관 관장
(왼쪽부터)이승기 성신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윤선희 한국정신재활시설협회 사무총장, 김정희 한국장애인개발원 정책연구본부 본부장, 박상호 안산시장애인복지관 관장

 

사회 : 한국장애인개발원에서 장애등급제 폐지 관련 많은 역할을 해 왔는데 2019년 7월부터 시행된 장애등급제 폐지의 배경과 정책 입안과정, 의의에 대해 설명해 달라.

김정희 : 1988년부터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대부분 급여 자격기준이 장애 등록 여부나 의학적으로 구분된 장애등급으로 결정되어 왔다. 이는 장애인복지 발전 초기에 새로운 사업을 설계·확장하는 데는 행정적으로 용이했지만 의학적 판단에 따른 급여와 서비스 수급 수준을 결정하는 방식은 정책 목표와 장애인의 욕구가 불일치하는 문제를 야기했다.

2014년에는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가 우리 정부의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1차 국가보고서에 대해 ‘장애인복지법이 협약에서 주장하는 장애인에 대한 인권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라. 장애등급판정 제도를 재검토하라. 정신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유형의 장애인에게로 서비스를 확대하라’는 내용의 최종 견해를 제시했고, 이를 우리 정부가 수용하면서 2010년 ‘장애인복지 인프라 개편 사업’에 착수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장애판정 체계 개편 논의가 시작됐고, 이후 민·관·학이 참여하는 협의체 운영, 연구·시범사업을 거쳐 문재인 정부는 장애등급제 폐지를 ‘제5차 장애인 정책 종합계획’의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2019년 7월 중증과 경증으로 단순화하는 형태로나마 등급제가 폐지됐고, 폐지 2년차였던 지난해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제도 개편의 성과와 한
계에 대한 중간평가를 실시했다. 이에 따르면 장애등급제가 폐지되면서 중앙정부 및 공공기관이 시행하던 129개 장애인복지서비스 중 32개에서 대상자 선정 기준이 변경됐고, 특히 중앙정부 서비스 중 23개 사업은 지원 대상이 확대됐다. 832개 지자체 사업 중에서는 74개가 변경됐는데 70개 서비스는 확대, 4개 서비스는 축소됐다. 전반적으로 수급자와 예산 규모 측면에서 수급자는 25만 명, 예산은 854억 원이 증가해 표면적으로는 제도적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 : 장애등급제 폐지 개편 이후 장애인복지관과 같은 서비스 제공자와 서비스를 이용하는 장애인 입장에서 체감하는 변화는?

박상호 : 이전부터 장애인복지 현장에서는 자체적인 사정체계에 따라 서비스 내용을 조정하고 지원을 달리하고 있었기에 큰 변화를 느끼기 어렵다. 일부에서는 오히려
최중증 장애인을 더 세밀하게 구분해야 할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등급제 폐지 전에는 1~3급 장애인이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는데 현재는 ‘장애인 서비스지원 종합조사(이하 종합조사)’를 거쳐 서비스 자격을 인정받으면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다만 그 수가 많지 않다. 안산시장애인복지관에서 과거 4~6급으로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던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게 된 사례는 2%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모두 시각장애인이었다.

윤선희 : 이용자 입장에서도 당초 1~3급만 있었던 정신장애 분야에 경증으로 판정되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한 것 외에는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다. 다만 정신장애인의 경우, 종합조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려워지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이때문에 현장에서는 장애등급제 폐지로 개인별 맞춤형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해 질 것이라는 기대가 실망으로 변했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한 번에 완전히 폐지하는 것이 나았겠다는 아쉬움도 있다.

 

사회 : 기대했던 만큼 장애등급제 폐지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의견이다. 정부가 2022년까지 장애등급제를 완전히 폐지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는데 2023년을 두 달 앞둔 지금까지도 관련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어떤 점 때문에 지체되고 있다고 보나? 그리고 등급제 완전 폐지 필요성과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윤선희 : 완전 폐지가 바람직하다. 최근 장애인, 정신건강 영역의 패러다임이 의학적 모델에서 사회적 모델, 인권 모델로 변화하고 있고, 국내외를 막론하고 장애인의 선택권과 자기결정권이 강조되면서 향후 장애인 개별욕구에 부응하는 서비스 제공 요구는 더욱 커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과정에서 등급제 폐지는 자연스럽게 맞춤형 서비스를 이끌어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도구다. 장애등급제 폐지는 보조금 지급 방식 변화와도 맞물려있다. 정부·지자체가 시설이 아닌 장애인에게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게 된다면, 기존 지급 방식에 익숙해져 있는 시설들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충분한 연구를 통해 등급제 완전 폐지 이후의 장애인복지정책의 변화상을 우선 정립하고, 실행 과정에서는 활발한 논의를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등급제 완전 폐지를 이루어나가야 한다.

박상호 : 이미 현장에서는 서비스 제공에 장애등급제가 절대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병원에서 암 환자에게 진행 정도에 따라 1~4기를 진단하면서도 환자마다 치료방법을 달리하듯 이미 장애인복지 현장에서는 같은 등급의 장애인이라도 개별적인 상태 등 종합적인 판단에 따라 필요한 서비스를 구성해 제공하고 있다. 장애등급제에 익숙해져버린 현실에서 일반 국민뿐 아니라 정책·현장 전문가들까지 장애등급제 없이 장애인복지 업무가 어떻게 운영될지, 서비스 제공은 제대로 될지 우려하고 있는 점이 지체되는 이유로 본다.

김정희 : 장애등급제를 완전 폐지하기 위해서는 개인예산제 도입뿐 아니라 장애인등록제가 함께 폐지돼야 한다. 당장은 장애인의 개별적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현행 종합조사를 지속 보완하고, 장애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서비스의 종류와 양을 늘려나가면서 개인예산제 도입과 장애인등록제 폐지·개편에 대한 논의를 가속화해야 한다. 장애등급제 완전 폐지가 지체되는 이유로는 등급제 폐지로 급여·서비스가 축소되거나 이전에는 이용할 수 있던 서비스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장애인들의 우려 섞인 여론과 실제로 대상에서 탈락된 장애인들의 불만이 발현될 경우에 대한 부담이 크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다.

윤선희 : 예산 부담이 크기 때문이라고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 같다. 장애등급제 폐지는 단순히 장애등급만을 폐지하는 것을 넘어 서비스 전달체계, 다양한 감면 제도와 혜택 등 거의 모든 정부부처가 연관된 사업과 서비스를 변경해야 함을 뜻한다. 이를 한꺼번에 모두 해결하기 어렵기에 단계적 추진을 결정했을 것으로 본다. 또한 정권이 바뀌면서 정책기조가 변화하는 것도 등급제 완전 폐지가 지체되는 한 이유일 수 있다.

 

사회 :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장애인 서비스지원 종합조사 도입의 의의와 유용성, 문제점이나 한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김정희 : 종합조사를 통해 개인의 서비스 필요에 따라서 서비스를 지원하기 위해 장애인의 욕구나 환경을 부족하나마 종합적으로 평가하게 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등급제 폐지로 이를 대신할 기준이 필요해짐에 따라 마련된 종합조사는 초기상담, 복지욕구 조사, 서비스 분야별 필요도 평가로 구성되어있다. 2019년 7월 활동지원서비스, 보조기기, 거주 지원, 주간활동, 응급안전 알림 서비스에 우선 도입됐고, 2020년에는 특별교통수단, 장애인 전용 주차 등 이동지원 서비스에 적용됐으며, 현재는 소득·고용 분야 급여·서비스에까지 확대 적용하기 위한 연구와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다.

한국장애인개발원 연구에 따르면 종합조사 시행 후 지난해 2월까지의 조사건수는 약 13만 건으로 중복을 제외하면 11만 5939명이 조사를 받았다. 이 중 90.97%가 활동지원서비스 대상이었고, 전반적으로 급여량 상승이 확인됐으며, 급여의 형평성 차원에서도 뚜렷한 개선세를 보였다. 평균 서비스 필요 시간 대비 평균 급여 시간으로 측정해 본 평균 충족도의 변화는 미미하게 나타났지만 대신 개인별 충족도는 크게 개선됐다. 또한 서비스 적격자 비율은 활동지원서비스, 거주 시설, 보조기기 모두 90% 이상으로 나타났지만 이동 지원 서비스는 17.5%로 낮게 나타나 조정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박상호 : 장애 특성과 유형에 따라 서비스에 대한 욕구가 다른 만큼 종합조사가 모든 서비스에 대한 욕구를 측정하기는 어렵다. 서비스별로 더 정교하게 욕구를 측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제대로 된 맞춤형 서비스가 될 수 있다. 또한 개인의 환경과 욕구는 계속 변할 수 있으므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환류를 통해 서비스량이나 종류를 조정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서비스 기관과 관계 공무원에게 권한을 부여하고, 이해관계자들과 원활하게 소통하면서 조율할 수 있도록 해야 이러한 체계를 만들 수 있다.

윤선희 : 종합조사를 개발할 때, 시각장애인과 정신장애인을 위한 별도 조사표 적용을 요구하는 의견이 있었다. 이들은 일상생활 수행능력(Activities of Daily Living, ADL)을 평가해 서비스량이 결정된다면, 종합조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들이 금융자동화기기에서 현금을 인출하려면 기기가 있는 곳까지 이동할 수는 있어도 기기를 조작해 현금을 인출하기는 어렵다. 이와 같은 장애 유형에 따른 세부적인 특수성을 담아내지 못하는 종합조사의 한계를 통합사례관리와의 연계 적용을 통해 개선할 수 있다. 그리고 조속히 부양의무제를 완전 폐지해서 장애인의 경제적 상황을 파악할 때, 가구 소득이 아닌 개인 소득을 확인하는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김정희 : 장애계에서 제기한 문제 중 첫 번째는 일부 대상자의 급여량이 기존에 비해 하락한다는 것이다. 실제 조사해 보니 종합조사 시행 이후 평균 급여량은 약간 상승했지만 실제로 일부 감소한 경우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급여량이 줄어든 경우만을 보면, 월 30시간 이하 하락한 경우가 78.4%로 큰 비중을 차지했지만 120시간 이상 크게 감소한 경우도 1.15% 있었다. 이렇게 급격한 급여량 감소에 따른 생활 변화를 최소화하기 위해 더욱 탄력적인 제도 운용이 필요해 보인다.

또 다른 한계로는 특별히 높은 수준의 욕구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활동지원서비스가 아닌 다른 서비스로 욕구에 대응하거나 활동지원 급여 산출 시 별도 기준을 적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종합조사의 평가영역별 배점과 활동지원서비스 지원 필요성 간 관련성이 낮다는 점도 개선이 필요하다. 활동지원서비스의 기본 취지는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지만 종합조사에서 사회활동 영역은 7.51%로 매우 낮게 반영되어 있고, 가구환경 영역은 55.96%를 차지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현행 종합조사는 신체적·기능적 제약을 평가하는 도구에 가깝다. 주요 선진국에서는 손상 기준이 아닌 일상생활이나 사회 참여 등의 기능 제약 정도에 따라 장애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장애판단 기준으로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기능장애건강분류(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Functioning, Disability and Health, ICF) 개념을 지향하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도 대상자의 욕구를 보다 종합적으로 사정할 수 있는 전문가를 확보해 나가면서 장기적으로는 서비스 이용의 유연성을 강화해야 한다.

 

사회 : 종합조사 전문 전담인력 양성방안을 제안한다면?

윤선희 : 낮은 비용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민관 파트너십을 활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신장애인에 대한 조사 의뢰가 주민센터에 접수되면, 주민센터는 민간 전문 기관에 조사 지원을 요청하고, 여기에 해당 기관이 발 빠르게 대처하는 식이다. 좀 더 충분한 예산이 있다면, 주민센터마다 정신건강전문요원을 배치해서 평상시에는 정신건강 증진·예방 사업을 맡기고, 유사시에는 조사요원으로 활용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다만 조사요원 확충을 위해 정신장애인에 대한 평가에 정신건강전문요원이 아닌 일반 사회복지종사자를 활용하는 체계를 만드는 것은 유의해야 한다. 일반 사회복지종사자가 정신장애에 대한 일시적인 교육을 받는다고 정신장애인을 위한 사례관리를 하기는 어렵다. 일반 사회복지종사자를 활용한 대응체계는 정신장애인을 만나면 정신건강센터 등 전문기관에 연계하기 바쁜 지금의 형태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박상호 :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비해 사회복지, 장애인복지 분야 전문가가 부족하거나 전문성이 낮지 않음에도 정부는 민간 전문가에게 권한을 부여하거나 결정하는 역할을 맡기는 것을 주저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전문가의 양적 확충보다도 장애인에 대한 모니터링, 환류 시스템을 정교하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전문가의 의견이 환류체계를 통해 전달되면, 이를 다른 정보와 결합해 장애인의 욕구를 더 잘 반영한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다.

김정희 : 장애인을 처음 만나는 조사요원의 판단이 향후 서비스 방향과 장애인의 삶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조사요원들이 모든 장애에 대한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향후 개인예산제 도입을 준비하는 차원에서라도 이들이 정신장애와 같은 특정 장애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갖출 수 있도록 교육을 강화하고, 교육만으로 전문성을 쉽게 갖추기 어려운 일부 장애 유형에 한해서라도 정부·지자체와 민간 전문가가 서로 협력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사회 :장애인이 원하는 서비스를 직접 선택해 이용하도록 하는 개인예산제 도입이 이번 정부 국정과제로 추진 중이다. 이에 대한 생각은?

윤선희 : 장애인의 욕구에 따라 서비스의 선택권을 부여하는 개인예산제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다만 정부·지자체 보조금에 기대어 운영하고 있는 시설에서는 개인예산제 도입으로 시설에 대한 보조금이 축소되는 것을 우려한다. 서비스 제공에 민간 부문의 역할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고려하면, 민간 시설의 역할과 참여가 필수적이다. 장애등급제 완전 폐지와 개인예산제를 원활히 도입·안착시키려면, 민간서비스 공급자와 장애인 당사자, 정부·지자체 간의 활발한 논의를 통해 입장차를 줄여야 한다.

김정희 : 등급제 폐지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개인예산제가 새 정부 국정과제로 발표된 후 많은 연구자들이 임기 내에 구체적인 실현방안이 갖춰질 수 있을지, 선진국에 비해 개인예산제 범위에 포함될 수 있는 급여가 현저히 적은 현실에서 결국 공공 중심의 서비스 확충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개인예산제를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면, 단기적으로는 현행 종합조사를 활용해서 바우처 방식으로 제공되고 있는 활동지원서비스 등의 서비스 총량을 도출하고, 적정서비스 단가를 책정하여 가능한 부분부터 시작한 후, 장기적으로 개인예산제 적용 서비스 범위를 주간보호시설 등 이용시설과 거주시설까지 점차 확대해 나가야 한다.

박상호 : 개인예산제의 근본 취지는 장애인의 욕구에 따라 서비스 비용을 지불하게 하는 것을 넘어 개인별 특성에 맞는 삶을 보장하는 것이다. 개인예산제를 도입한다며 현행 바우처 방식을 활용하거나 기존 서비스를 확대하면서 개인예산제로 이름만 바꿔서는 장애계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그렇다고 공적재정 확충 등 모든 여건부터 갖춘 후 개인예산제를 도입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현재 정교화하고 있는 수요자 중심 맞춤형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가능한 서비스 영역부터 단계적으로 개인예산제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투 트랙 전략이 효과적일 것이다

윤선희 : 개인예산제를 고정된 서비스에 기계적으로 장애인이 비용을 지불하는 바우처 방식으로 운영한다면, 취지가 크게 퇴색할 것이다. 개인예산제를 제대로 추진하려면 적절한 예산을 배정하고,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수립한 예산을 컨설팅을 통해 조정하는 형태로 실제 사업을 해 봐야 한다. 바우처 방식 확대를 개인예산제 도입으로 간주한다면, 완전히 폐지하겠다던 장애등급제가 여전히 남아 갈등을 일으키는 지금과 다를 것이 없다.

 

사회 : 등급제 폐지에 대해 미처 언급하지 못했던 내용을 포함해 우리나라 장애인복지 발전방안을 제언해달라.

윤선희 : 민관 파트너십이 강화되면 정책 효과가 더욱 높아질 수 있다. 또한 읍면동 허브화를 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이를 활용해 복지 전달체계가 원활히 작동되기를 희망한다. 다음으로 정신장애인에 대한 법적 개념 변화가 필요하다.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른 정신질환자에 대한 정의가 ‘장애인복지법’이 정하는 정신장애인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고 있다. 한쪽에서는 환자로, 다른 쪽에서는 장애인으로 분류하면서 현장의 혼선이 크다. 정신질환자에게도 정신장애인과 같은 서비스 전달체계를 통해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형평성을 높이는 방법이다.

박상호 : 사회·경제가 발전하면서 장애인복지 또한 크게 확장되어 왔다. 다만 수요자 중심의 맞춤형 서비스, 개인예산제는 단순히 선택권만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장애인의 자기주도성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려면 많은 예산이 필요한데 이는 정치인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의 공감이 필요한 일이다. 장애인복지를 확충하는 것이 장애인만 특별히 지원하거나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도 사회구성원으로서 보통의 삶을 살아가게 하기 위한 것임을 널리 알리고,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국민들을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김정희 : 유엔에서는 정신장애인을 표현할 때, ‘심리사회적 장애인’이라고 표현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는 장애를 상대적 개념이자 ‘환경 속의 인간’을 강조하는 생태체계이론적 관점에서 인간과 환경 간의 관계 역동성에 기반한 시각으로 정의하고, 이 관점을 종합조사에 반영해야 한다.

소수 장애인들의 권익을 지키는 문제도 매우 중요하다. 2000년 심장장애와 신장장애가, 2003년부터는 간, 호흡기, 장루·요루, 뇌전증이 장애 유형에 편입됐는데 이들은 판정 기준에 의해 장애인으로 인정받기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고,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 또한 매우 낮다. 우리가 소수 장애인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삶에 선택의 폭을 더욱 넓혀주어야 한다.

미흡한 점이 있지만 장애등급제를 폐지한 정책 방향이 잘못된 것은 아닌 만큼 부족한 것들을 개선해 나가려는 노력에 힘을 모아야 한다. 실제적으로 장애 정도를 어떤 방식으로 측정하고 그에 따른 서비스를 구현할 것인지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복지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