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스마트 복지,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박영란 강남대학교 실버산업학과 교수
박영란 강남대학교 실버산업학과 교수

디지털 전환 시대 마주하기

대선 직후 사회복지분야에서는 ‘복지시설을 디지털-스마트 복지시설로 업그레이드 하겠습니다’라는 공약에 주목했다. 이 공약은 △사회서비스 디지털 현황 진단 및 디지털 전환 모델 개발 △서비스 제공 인력 디지털 역량 제고 교육 확대 △스마트 복지시설 선도사업 전국운영 확대라고 하는 사회복지분야 디지털 전환 실현을 위한 비교적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한편으로는 한국사회복지협의회가 지난 2년간 제시하고 추진해온 ‘스마트 복지’ 어젠다의 실현 가능성이 생겨 반갑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방대한 사업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추진해야 할지에 대한 우려도 크다.

코로나19 위기는 사회복지분야의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 담론과 기회를 확산시켰다. 그동안 한국사회복지협의회는 코로나19 위기로 가속화된 디지털화 환경에서 포용적 사회정책 마련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공론의 장을 마련하고, 사회통합과 사회복지를 위한 ICT 역할의 주요 이슈, 국내외 사회복지분야 ICT 적용 성공사례, 차세대 한국형 e-welfare 로드맵, 스마트 복지센터 건립의 필요성 등 다양한 정보와 어젠다를 공유한 바 있다. 2018년 정부가 발표한 ‘제4차 산업혁명 대응계획(I-KOREA 4.0)’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사회복지분야의 디지털 전환 과제를 발굴하고, 보다 적극적인 조치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I-KOREA 4.0은 코로나19 이후 디지털 뉴딜 정책으로 내용이 보완됐다. 그러나 디지털 뉴딜 정책에는 스마트 홈, 스마트 시티, 스마트 공장, 스마트 병원, 스마트 농장 등 단어는 많았지만 스마트 복지와 사회복지서비스 전달체계의 디지털 전환에 관한 내용은 매우 미흡했다. 이것은 정책 개발 단계에서 사회복지분야의 디지털 전환 수요가 발굴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이기도 하다. 그동안 사회복지분야에서는 디지털 전환보다는 시설의 정보화, 정보 불평등 및 디지털 격차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더 컸다. 시설평가에 정보화 관련 지표가 포함되어 있고, 현장의 많은 사회복지사들이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을 이용하고 있지만 이것을 ‘사회복지와 디지털 전환’ 관점에서 접근하는 프로젝트는 아직 많지 않다.

그렇다면 사회복지의 디지털 전환과 스마트 복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디지털 전환은 최근 현장에서 확대되고 있는 비대면 서비스와 스마트 기기 및 플랫폼을 활용한 혁신 서비스 제공 이상의 과업을 의미한다. 기업 경영분야에서는 디지털 전환을 “변화하는 비즈니스 환경과 시장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디지털 기술로 기존의 비즈니스 프로세스, 문화, 고객 경험을 개선하거나 새롭게 창출하는 과정”으로 정의한다.(독일 SAP社 홈페이지) 즉, ‘디지털 전환이 곧 비즈니스 재구성’이라는 개념이다. 이와 같은 개념 정의에 비추어 보면, 사회복지의 디지털 전환은 사업의 모든 영역에서 디지털 기술과 솔루션을 통합하는 과정으로 이것은 기술적 변화인 동시에 기관의 운영 방식과 서비스 제공 방식에 있어서 근본적인 변화를 필요로 하는 문화적 변화이다. 바야흐로 디지털 전환 시대의 도래는 사회복지서비스 전달체계가 추구하는 ‘클라이언트 중심의 통합서비스 제공’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기술 환경이 갖추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현장에는 서비스 이용자의 욕구를 제대로 파악·진단하고, 개별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며, 보다 효과적·효율적인 서비스 전달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 운영 매뉴얼과 많은 사회복지 전문가들이 존재한다. 사회복지 실천 현장은 컴퓨터와 인터넷 보급이 시작된 이후 아날로그 형식의 정보와 문서를 디지털 형식으로 변환하고, 사회보장정보시스템 구축을 통해 업무의 디지털화를 추진해 왔다. 그러나 갑자기 급부상한 인공지능에 기반한 디지털 전환 모델을 사회복지 현장에 적용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마주하는 현실은 미지의 세계, 단시간에 올라갈 수 없는 높은 산이 앞에 있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디지털 전환을 위한 변화의 시나리오 함께 쓰기

사회복지 업무 프로세스의 디지털화에서 더 나아가 디지털 전환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전환에 대한 정책적 의지와 변화 시나리오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영리 기업들이 디지털 전환에 많은 투자를 하는 이유는 빠르게 변화하는 경쟁 환경과 고객의 요구에 대응해서 새로운 가치와 수익을 창출해 살아남겠다는 분명한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사회복지분야는 대부분 눈에 잘 보이지도 않고, 계량적으로 측정하기도 어려운 사회적 가치 창출을 목표로 하다 보니 큰 규모의 재정적 투자를 필요로 하는 디지털 전환 사업의 타당성을 주장 또는 입증하기 어렵다. 따라서 수십억 또는 수백억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 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 전사적 자원 관리) 시장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사회복지 조직도 이미 이용자 관리 등을 위한 일종의 ERP를 활용하고 있으며, 이를 지속적으로 고도화시켜 나가는 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

사람과 집단의 변화를 추구하는 사회서비스는 물건을 만드는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표준화된 업무 공정이 불분명하다. 특히 현장에는 사람을 위해 사람이 직접 제공하는 서비스가 가장 중요하며, 기술이 개입하는 것은 비인간적인 일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그러나 사회서비스 조직 또한 업무의 표준화를 요구받는 시대이며, 개별 단위사업들과 조직 운영의 효과성 및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최첨단 디지털 인프라 구축이 요구된다.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 이용자 DB 관리, 업무의 자동화, 실시간 서비스 이용자 데이터 확인에 따른 개입 등을 통해 서비스의 효과성과 효율성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시대를 겪으면서 현장에는 사물인터넷 기반 센서, 인공지능 스피커와 로봇 등이 보급되고, 이러한 기기들을 통해 수집된 데이터를 활용한 서비스 모델들이 개발되고 있다. 가상현실, 챗봇, 모바일 기기들을 활용한 서비스도 제공되고 있다. 그럼에도 환자 진료와 치료 과정에서 활용되는 다양한 기기들을 갖춘 스마트 병원에 비하면 사회복지 서비스 현장은 아직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고 있다.

사회복지 현장 또한 바야흐로 변화의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하는 시대다. ‘복지시설을 디지털-스마트 복지시설로 업그레이드 하겠습니다’라는 문구를 보아도 아직 무엇을 어디에서부터 시작할지 큰 그림이 잘 보이지 않는 불분명한 상황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이 사회복지의 디지털 전환과 스마트 복지 프로젝트를 본격 추진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는 것이다. 이제 스마트 복지의 개념과 체계적인 정책 로드맵을 함께 만들고 실천해나가야 할 것이다.

 

지속가능한 스마트 복지 생태계 만들기

처음에 언급하였듯이 디지털-스마트 복지지설 확대 정책은 사회서비스 디지털 현황 진단 및 디지털 전환 모델 개발, 서비스 제공 인력 디지털 역량 제고 교육 확대, 스마트 복지시설 선도사업 및 전국운영 확대의 세부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회복지의 디지털 전환 시나리오 소재들을 구체화시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반영될 필요가 있다.

첫째, 사회서비스 현장의 수요를 기반으로 하는 DNA(Data, Network, Artificial Intelligence) 관련 예산을 확보함으로써 사회서비스분야에 적합한 기술 개발 및 혁신적인 서비스 전달체계를 구축한다.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제안요청서 초안을 작성하는 팀이 필요하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정확한 자료를 토대로 신규 사업이 발굴 또는 개발되어야 이를 근거로 제안요청서를 작성할 수 있기 때문에 우선 사회복지 현장에서는 기관별 실무자들을 중심으로 디지털 전환 TF팀을 구성하고, 관계 기관들이 제안요청서를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는 네트워크를 만들 필요가 있다. 사회서비스 전달체계의 인터넷 환경, ICT 기기 활용 현황, 사회서비스 제공자 및 이용자의 디지털 역량 수준 등을 신속히 진단하고, 이를 토대로 발전계획이 나와야 한다. 디지털 전환은 조직과 사업 혁신의 하위 개념이며, 복지서비스 제공 프로세스에 대한 재설계가 우선되어야 가능한 과업이기 때문이다. 서비스 디자인이 먼저 이루어지고, 이에 필요한 디지털 기술이 논의되어야 한다.

둘째, 디지털 전환 DNA를 갖춘 전문인력 양성과 서비스 이용자의 디지털 문해력 향상이 필요하다. 사회서비스 제공자의 디지털 역량 강화 없이는 스마트 복지 구현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사회복지사 등 관련 인력 양성과정에 아직 디지털 역량 교육내용은 거의 없다. 사회서비스분야의 디지털 역량 진단 결과에 따른 사회서비스 직무별 디지털 역량 강화 교육과정 개발, 사회서비스 디지털 역량강화 교육과정 운영 인프라 구축, 사회서비스 인력 대상 디지털 역량 보수교육체계 운영이 필요하다. 스마트 복지와 윤리적 이슈 등 구체적인 교육과정 개발 또한 시급하다. 사회복지 현장은 디지털 기반 서비스 제공 인프라가 취약하고, 사용자들의 디지털 격차로 제약이 많은 상황이다. 수요자 중심의 기술 개발이 아직 부족한 현실 속에서 사회서비스 이용자들의 디지털 문해 교육 인프라 구축도 시급한 과제이다.

셋째, 지속가능한 스마트 복지 생태계를 구축해나갈 필요가 있다. 스마트 복지기술이 연구소나 실험실에서 개발되어 사회복지 서비스 현장에서 활용되기까지의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경로 또한 다양하다. 새로운 기술의 시장 창출, 조달 방법 등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공공과 민간부문의 협업 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 지속가능한 스마트 복지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관련 법과 정책, 서비스와 급여, 중앙·지자체·전달체계 등 조직, 서비스 이용자·제공자 등 개인의 관점에서 제도를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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