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당하며 노예생활 해온 지적장애인, 25년만에 가족 품으로

십 년이 넘게 사회복지공무원으로 일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일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를 처음 만난 건 가을 햇살이 쏟아지던 기분 좋은 날이었다. 황금빛 나락이 바람에 몸을 흔드는 화창한 가을날, 소풍 나서듯 찾아간 가정방문에서 그는 허름한 옷을 입고 쉴 새 없이 정미기 사이를 오가며 가마니를 나르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너무 마른 몸과 휘어진 척추에 다리를 절며 다가오는 그를 보고 흠칫 놀랐다. 보호자들은 본인들과 같이 상담하기를 원했지만 지적장애인은 평소 심리적으로 보호자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커 동반 상담에서는 마음속 이야기를 듣기 힘들다. 나는 먼지투성이 그를 차에 태워 그가 살고 있는 농막으로 들어갔다.

농기계 창고의 한구석을 개조해 만든 방에는 작은 옷장과 TV가 하나 놓여 있는 단출한 살림이었는데 커다란 창고에는 갖가지 농기계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고 농기계에서 풍겨 나오는 오래된 기름 냄새가 방을 가득 채웠다. 방에 들어선 그는 갑자기 허리띠를 풀더니 웃옷을 주섬주섬 들어 올려 사고로 다쳤다는 허리를 보여주며 작은 목소리로 “아파. 아파”라고 얘기했다. 휘어진 척추가 그대로 드러난 마른 몸에는 그가 견뎌온 세월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다.

“아파. 아파” 귀 기울여 줄 누군가를 기다린 대상자

자신의 기본적인 인적 사항도 말할 수 없는 대화 수준이었지만 아주 또렷한 목소리로 “아파. 아파”하고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본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작은 옷장을 뒤져 서랍 깊숙한 곳에 숨겨둔 홍삼사탕 한 알을 내 손에 쥐여주면서 아프다고 연달아 이야기하는 그를 남겨두고, 의례적인 상담인척 보호자를 안심시키고 사무실로 돌아와 장애인권익옹호기관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틀 후 장애인권익옹호기관 담당자는 ○○씨를 만나러 왔고 학대 정황이 너무나 명백해 대상자를 즉시 쉼터로 분리하고 광역지방경찰청에 장애인 학대 관련 내용을 신고했다. 정식 기소가 이뤄지기 전까지 관련 자료를 모으는 한 달간 나는 살얼음판을 걷는 듯 위태로웠다.

보호자는 그가 거주하던 마을의 이장님 내외였고 주민들의 신망이 두터운 사람들이었다. 그 이장님의 동생과 조카는 내가 일하는 지자체의 공무원이었으며, ○○씨의 쉼터 분리 이후 이장님은 나를 찾아와 농사일이 너무 바쁘니 ○○씨를 되찾아올 수 없냐고 하소연하는 일도 있었다. 내가 신고자인 걸 알아챌까 봐 가슴을 졸이던 시간이 지난 다음 이장님 내외는 법정 구속됐다. 장애인 학대 건으로는 드물게 7년의 법정형을 받고 수감됐다는 점이 그들의 죄질이 얼마나 심각한 상태였는지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수십 년간 이어진 강제노동과 급여 착복이 있었고 수사 과정 중에 타시군의 염전에서 오랫동안 노예생활을 했고 일하던 도중 경운기 사고를 당했는데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척추 장애인이 된 과거도 드러났다. 원래 생활하던 곳에서는 다른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보호자들은 이 사람의 가족들이 찾을 수 없도록 무적자로 등록하여 새로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는 치밀함을 보였다. 소름 끼치는 순간이었다.

○○씨는 쉼터에서 쉬는 동안 유전자 검사를 통해 가족을 찾았다. 가족들은 법원의 사망 실종선고가 내려진 상황에서도 ○○씨 찾기를 포기하지 않고 실종자 가족 유전자 등록을 해놓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난히 사이가 좋았던 시집간 누나를 보러 간다고 집을 나선 그가 다시 집에 돌아가기까지 25년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묵묵히 사회복지공무원으로 오늘을 살아갈 뿐

이장님 내외가 구속된 후 마을 주민들은 탄원서를 작성해 경찰서로 보냈다. 자신들이 봤을 때는 오갈 곳 없는 지적장애인을 먹여주고 입혀주고 거둬준 아주 훌륭한 사람이라는 게 탄원서의 요지였다. 주민들도 보았을 것이다. 허리가 휜 ○○씨가 이장님 정미소에서 밤낮없이 일하는 것을.

한 번은 ○○씨가 이장님 집을 탈출하여 인근 마을 폐가에 숨어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경찰은 보호자의 신고를 받고 단순 가출사건으로 처리한 후 필사의 탈출을 감행한 그를 다시 보호자의 농막으로 데려다준 일도 있었다. 출동한 경찰도 보았을 것이다. 그가 갇혀있는 좁디좁은 농막을. 하지만 그들은 그게 잘못됐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나무처럼 ○○씨는 사람들의 시선 밖으로 밀려났고 아무도 그의 구조요청을 알아채지 못했다.

몇 달 후 다시 만난 ○○씨는 깨끗한 옷을 입고 살이 통통하게 올라 뽀얀 얼굴빛으로 내 손을 꼭 잡으면서 웃었다. 함께 실종된 ○○씨의 엄마를 찾기 위해 그의 사연이 방송에 소개되었고 지자체는 지역의 이미지를 관리하느라 사건이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런 일의 배후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대상자를 구하고 장애인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사회복지공무원의 활약이 있다는 사실은 늘 지워진다. 그가 내 손에 쥐여준 홍삼사탕은 목이 메어와 영영 먹을 수 없겠지만 지금이라도 그가 행복하게 웃을 수 있어서 나는 묵묵히 사회복지공무원으로 오늘을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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