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 어린 말은 마음을 울리는 힘이 있다는 걸 깨달아

최범열 사단법인 그린라이트 기획1팀장
최범열 사단법인 그린라이트 기획1팀장

낯설었다. 대학교 4학년 2학기에 우연히 발을 디딘 복지현장은 생각과는 너무나도 다른 세계였다. 특히 기업사회공헌이라는 분야는 더 생소했다.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달리 후원하는 기업에 특화된 프로그램을 기획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기업의 입장도 고려하고, 서비스를 받는 고객의 입장도 고려해야 했다. 사회초년생에게는 녹록지 않은, 개념조차 잡기 힘든 난해함이었다.

나의 착함은 좋음이 아니었으며, 선한 말은 좋은 말이 아니었다. 의도와는 다르게 결과는 내 마음같지 않았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무엇을 잘했는지도 모른 채,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급한지도 모르는 혼란스러운 나날이었다. 날이 선 말들과 차가운 표정들은 몸과 마음을 갉아먹고 있었다. 어디서 이렇게 딱 맞아떨어지는 말을 찾았을까 싶을 정도로 우리 모두는 ‘무심코 던진 돌에 맞아 죽은 개구리’였다.

그러면서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직장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취약계층의 이동권을 증진시키기 위해 다양한 기업의 사회공헌사업을 하는 모빌리티 전문 NGO에서 장애인 여행지원 사업을 전담하면서 많은 일을 겪었고,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마음에 난 생채기들은 새살이 돋아나지는 않았지만, 단단한 딱지가 생겼다.

‘마음을 담자’, ‘진심을 담자’

‘들어오는 출입문이 나를 잡아먹는 악마의 모습으로 변하는 악몽을 자주 꾸곤 한다’며 떠나던 동료가 있던 시기, 9년이 지난 지금도 마음속에 꽂혀있는 아픈 말들과 생생히 기억나는 기분 나쁜 표정들이 익숙해져 갈 시기, ‘그래 나만 가만히 있으면 돼. 그냥 있자’라는 마음을 수백 번 되뇌고 있었던 시기로 기억한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아니 뜨거웠다. 좋은 말은 단순히 듣기 좋은 단어 하나가 아닌, 마음이 담긴 표정과 손짓, 그리고 느껴지는 공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오랜만에 고향으로 떠나기 위해 명절 기념 여행비를 지원받았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고향으로 떠나지 못하셨던 할아버지. 고향으로 갈 수 없었던 당사자의 마음은 좋지 않았겠지만, 다른 분들과의 형평성을 위해 비용을 환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우리가 잘못한 건데, 이렇게 마음을 써주어 고맙다”는 말을 쉬지 않고 숨쉬듯 뱉었다. 우리는 손을 잡고 한참을 서로 고마워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뭐가 그리 서로 고마웠는지 모르겠다. 무언가를 할 때 상대방에게 고마움을 바란다거나, 대가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럴 성격도 안된다.

그러나 고맙다는 진심 어린말은 마음을 울리는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사도, 동료도, 그 많던 고객들도 몰라주었던 나의 착함이, 선함이, 의도가 전해지는 첫 순간이었다.

그 후 딱딱하기만 했던 내 서비스 정신에는 항상 ‘마음을 담자’, ‘진심을 담자’라는 생각이 박히게 되었고 고객이나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감사하다’,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하게 되었다. 물론, 바쁘거나 힘이 들 때는 말로만 표현을 할 때도 있겠지만, 내 마음이 최대한 전달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얼마 전, 화려했던 불빛이 너무 일찍 사라지고 사람들의 표정을 점점 알 수 없게 되기 시작할 무렵,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골목길, 차가 진입할 수 없어 오랜 시간을 걸어가야 했던 집들을 들러 방역서비스를 했다.

“아이고 젊은이들이 고생이 많아, 내가 참 고마워.”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몸을 눕히면 겨우 뒤척일 수만 있는 작은 공간에 홀로 계신 할머니가 해주신 말씀. 긴팔을 입을까 고민했던 그날과 어울리지 않은 따뜻했던 음성과 눈빛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 후로 코로나19로 인해 밖으로 더욱더 돌아다니기 힘든 장애인 가정에 방역서비스를 하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로 이어진 방역복은 땀으로 젖어 갔지만, 그만큼 형언할 수 없는 뿌듯함도 마음속에 젖어 들어왔다.

“그럼에도 난 이 길을 계속…”

일을 하면서 두 번의 말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한 번은 “너네 나 때문에 돈 버는 거 알지?”라는 말을 들었을 때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땐, ‘이게 뭔가… 이런 말을 들으려고 일하고 있나. 왜 이 길을 선택했을까’ 별별 생각을 다하며, 후회하고 한참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또 한 번은 “좋은 일을 하시는데, 월급은 적게 받으셔도 되죠 뭐”라는 말이었다. 내가 사회복지를 선택한 것은 단지 좋은 일만 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돈도 많이 벌고 싶다. 누군가에겐 생산적인 활동이 아닌 돈을 쓰기만 하는 소비적인 활동으로만 비치는 게 안타까웠다.

이제는 진심으로 기뻐하며, 마음을 담아 말해주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힘을 같이 하는 동료들을 생각하니 뿌듯하게 일할 수 있다.

물론 앞으로 복지를 하면서 내가 하는 일들이 내가 원하는 만큼 누군가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 나로 인해(혹은 나를 떠올렸을 때) 잠시라도 기뻐하고, 잠시라도 즐거워하며, 잠시라도 기분 좋아지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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