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스스로 자립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지원과 도움이 필요하다. 독일에는 발달장애인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경제적·사회적 제도가 마련돼 있다.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위한 독일의 지원제도를 이해하기 위해 RBO 사회복지법인의 이용인 L의 실제 사례를 인용하고자 RBO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통합적 시설을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이다. 법인이 운영하는 시설·분과는 장애인 작업장, 장애인·비장애인 통합 유치원, 발달장애인 청소년 지원, 발달장애인 부모와 자녀 지원, 성인발달장애인 자립지원, 그룹홈 운영,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문화·체육지원 센터이다.

L은 25세의 청년으로 RBO 사회복지법인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작업장의 직원이다. 1993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이 빨래방은 약 30명의 발달장애인이 일하고 있다. 이들은 법인의 다른 시설에서 나온 빨랫감이 배달되면 분류, 세탁, 건조, 다림질을 조별로 나눠 작업한다. L은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7시부터 오후 1시까지 점심시간을 포함한 하루 6시간의 작업을 6년째하고 있다.

L은 성인이 된 후 독립해 혼자 살고 있다, 아버지와 형제자매가 있지만, 아버지는 우울증과 지병이 있고, 형제자매도 각각의 사정들로 인해 서로 왕래가 거의 없다.

L이 사는 곳은 주택협동조합에서 관리를 맡고 있는 아파트다. 3년 전까지 법인에서 운영하는 그룹홈에서 4명의 다른 동거인들과 같이 지냈다. 동거인들과 특별히 문제는 없었지만 혼자 자립해 살아보고 싶었기 때문에 담당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아 작은 아파트를 구했다. 아파트 월세와 수도 및 난방요금은 사회복지청이 부담한다. 이외 기초생활수급비와 작업장에서 일하면서 받는 급여는 생활비에 사용하고 저축한다.

L은 작업장에서 보내는 시간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월요일과 금요일 일주일에 두 번 사회복지사와 생활에 불편함이 없는지 면담을 한다. 화요일에는 연극부에서 내년 1월 공연을 위해 단원들과 함께 연습을 한다. 수요일에는 문화·체육 활동 지원센터에서 합창단, 목요일에는 댄스 수업에 참가한다.

L은 자신의 재정상태를 관리해 주는 성년후견인이 따로 있는데 정기적으로 전화 면담을 하고 도움이 필요하면 요청을 한다. L이 가족의 도움 없이도 자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이를 뒷받침하는 독일 사회의 다양한 지원 덕분이다. 이 글에서는 어떠한 제도들이 이를 가능하게 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발달장애인 자립을 위한 독일의 지원제도

1) 경제적 지원: 기초생계급여와 연금 지급

L이 스스로 독립할 수 있게 경제적 밑바탕이 되는 것은 기초생계급여이다. 사회법전 제12권 41조에 따르면 기초생계급여는 만18세에서 65세 사이의 근로 능력 저하·상실로 일을 통해 생계를 영위할 수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지원된다.

L의 경우 선천적 지적 능력 저하로 인해 일반 노동시장이 아닌 장애인 작업장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대상자에 해당된다. L처럼 혼자 살지 않고 부모와 함께 거주하고 있는 경우에도 기초생계급여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의 부담을 경감시켜주기 위해서이다.

기초생계급여 대상자는 월세, 난방 및 수도요금, 건강·요양 보험료와 생활비를 지급받는다. 또한 보행·시각장애 대상자의 경우 추가 수당을 지급받을 수 있다. 기초생계급여자는 공보험의 혜택을 받으며 병원 진료시 따로 금액을 지불하지 않는다. 지병이 있는 경우 1년에 70유로(약 10만원)를 보험사에 납부하면 추가 부담 없이 필요한 약을 지원받을 수 있다.

월세, 난방 및 수도요금, 건강·요양 보험료를 제하고 L의 계좌에 들어오는 금액은 2020년 기준 439유로(약 60만원)이다. 주거비용, 공과금, 보험료를 사회복지청에서 부담하기 때문에 이 돈은 L의 순수 생활비이다.

발달장애인에게 주어지는 또 다른 경제적 지원은 ‘노동능력 감소에 따른 연금’지급이다. 사회법전 제6권 43조에 따르면 연금수령의 조건은 노동 시작 후 20년 후 충족된다. L의 경우 현재 6년을 일했기 때문에 14년이 지나면 연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 연금 액수는 장애등급, 나이, 근속 기간 등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계산되며 약 950유로(약 130만원) 정도이다. 연금을 받게 되면 월세, 난방 및 수도요금을 사회복지청에서 보조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지불해야 한다.

연금을 수령하면서도 장애인 작업장에서 계속 일을 할 수 있는데, 이 경우 건강·요양 보험료는 작업장의 사업자가 부담한다. 이들이 받는 급여는 근속 기간, 수행능력에 따라 인상되지만, 평균적으로 200~300유로(약 25~40만원)의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따라서 장애인 작업장의 임금 조건이 개선돼야 한다는 의견이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을 위해서 기초생계급여와 연금이 지급되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임금인상은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65세가 되면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정년퇴직을 한 후 공적연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 이 밖에도 월세를 보조해 주는 주거급여도 신청할 수 있다.

2) 법적 지원: 성년후견인제도

독일 민법 제1896조에 따른 성년후견인 제도는 1992년 1월 1일 발효된 성년후견법에 의해 창설됐다. 피성년후견인이 질병, 장애, 노령 및 그밖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 가정법원이 성년후견개시 심판 후에 성년후견인을 선임한다. 성년후견인으로 가족, 직업 성년후견인, 법률가, 사회복지사 등이 배정될 수 있다. 성년후견인은 피성년후견인의 재산 관리 및 행정업무처리, 의료 행위에 대한 결정권 행사 등의 업무를 맡는다.

가족의 도움 없이 혼자 살고 있는 L은 직업성년후견인의 도움을 받고 있다. L은 후견인과 전화로 연락을 하고 있으며 매달 한 번 사무실을 방문해 면담을 가진다. 성년후견인의 중요한 업무는 L의 재정상태를 관리하는 것이다. L은 개인 현금카드를 쓸 수 있고 인터넷 뱅킹 등 은행 업무를 볼 수 있지만, 후견인은 정기적으로 L의 통장 내역을 확인한다.

이 밖에도 기초생계급여 연장 신청, 인터넷·핸드폰 계약, 거주하고 있는 집의 보수공사 계약 등 다양한 행정업무를 L의 성년후견인이 담당한다. L이 사고 나 질병으로 인해 병원 진료와 입원이 필요한 경우에도 후견인의 동의가 필요하다.

성년후견은 2년 혹은 3년마다 가정법원 담당판사의 심의를 거친 후 연장될 수 있다. 심의에는 성년후견인, 피성년후견인, 담당 사회복지사가 동석한다. 또한 피성년후견인이 성년후견인 변경을 요청하는 신청서를 낸다면 법원이 이를 받아들일지 심사한 후 결과를 통보한다.

3) 노동·근로 지원

위에서 언급했듯이 L은 RBO 사회복지법인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작업장의 빨래방에서 일하고 있다. 이 작업장에는 빨래방, 재활용, 요리, 고무, 디지털 저장, 예술, 정원, 수공업, 목공예 등 총 12개의 분과가 있으며 약 630명의 발달 장애인이 일하고 있다. 이용인들은 12주 동안 1주일 단위로 모든 분과를 체험해 본다. 그 후 일자리 담당자와 면담을 가진 후 어떤 분과에서 일할지 결정한 다음 6주간의 실습 기간을 가진다.

L의 경우 처음에 재활용 분과로 가서 실습을 했었는데 본인과 맞지 않아서 면담 후에 빨래방으로 옮겼고 지금까지 만족하면서 일을 하고 있다. 지속적인 근로활동이 중요하기 때문에 흥미와 적성에 맞는 일자리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 실습 기간 동안 여러 번 면담을 한 후 최종 결정을 한다. 이용인들은 그룹 담당자들의 지도하에 소규모 그룹으로 나누어져 일을 하며 그룹당 인원은 최대 12명을 넘지 않는다. 근로시간은 4~8시간 사이로 이용인 담당의사의 소견서를 바탕으로 작업장 담당자와 사회복지사가 함께 상의한 후 결정한다.

장애인 작업장의 운영 목적은 이용인들이 스스로 하루 일과를 보낼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이들은 출근 후 아침·점심식사, 근로시간, 휴식시간 등으로 채워진 하루를 보내며 이를 통해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글을 읽고 쓰는 능력, 계산능력이 부족한 이들을 위한 수업도 개설돼 있다. 이들은 1년에 최소 30일의 휴가를 보장받으며 근속연수에 따라 휴가 기간이 늘어난다. 또한 작업장에는 심리상담사가 배치돼 있어 정기적인 상담을 통해 이들의 상태를 살핀다.

4) 문화·체육 활동 지원

RBO 사회복지법인에는 발달장애인들의 문화·체육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센터가 개설돼 있다. 이용인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제공되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프로그램은 요가·댄스·필라테스 등의 체육활동, 요리교실, 합창단, 연극, 스마트폰 배우기, 뜨개질 교실 등 다양하다. 작업장에서 일하는 이용인들은 오후 일과를 마치고 센터에 와서 자신이 원하는 활동에 참여한다. 일하지 않는 발달장애인들도 센터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하루를 보낸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L은 화요일에 연극, 수요일에 합창단, 목요일에 댄스 수업에 참가한다. 이러한 정기적인 문화·체육 활동은 스트레스 해소를 돕고 일과 취미활동의 균형을 맞출 수 있게 해준다. 센터 안에는 아침·점심식사, 음료 등을 파는 카페가 있는데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 역시 작업장에 소속된 발달장애인들이다. 카페는 이용인들이 친구를 만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제공된다.

센터는 그룹 여행에 참여할 대상자를 정기적으로 모집한다. 독일 및 유럽의 다른 도시를 7~14일 동안 담당자와 함께 소규모 그룹으로 여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여행경비는 자비 부담이기 때문에 매달 받는 보조금과 작업장 월급의 일정 부분을 저축해 비용을 마련한다. 이는 충동적인 소비를 자제하고 저축의 개념을 심어주기 위한 교육목적의 일환이다. L은 저축한 돈으로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2019년 여름 14일 동안 그리스 산토리니 여행을 다녀왔다.

5) 전담 사회복지사 지원

발달장애인들이 스스로 자립해서 살아가기 위해 생활 전반에 걸쳐 도움을 주는 전담 사회복지사가 필요하다. L처럼 부모·형제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이용인의 경우 사회복지사는 직장생활, 교우관계 등을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정서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기도 하다.

L은 일주일에 두번 월요일과 금요일에 정기적으로 사회복지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요청을 한다. 사회복지사는 장애인 작업장의 담당자를 정기적으로 만나 이용인의 근로시간, 직장 내 동료들과의 관계, 질병으로 인한 휴직 등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소통한다. 이용인들의 주거문제 역시 사회복지사가 담당하고 있는 부분이다.

L의 경우 혼자 살 수 있다고 결정된 다음 거주할 곳을 찾는데 약 반년이 소요됐다. 이 과정은 사회복지사와 L의 재산 관리를 맡는 성년후견인이 협력해 진행했다. 또한 가정의, 전문의 등이 정기적으로 병원 진료에 동행해 이용인의 건강 상태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고 진료 내용을 문서로 남긴다. 사고, 질병으로 인해 거동이 불편한 이용인의 경우 작업장과 병원 진료를 위해 정기적으로 이동 수단을 이용할 수 있다. 이 비용은 사회복지청과 건강보험사가 부담하며 사회복지사가 해당 업무를 맡는다.

발달장애인은 어렸을 때 가족의 돌봄 공백, 사회생활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등으로 인해 각종 심리적 질병을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를 완화시켜줄 수 있도록 사회복지사가 전문 심리상담사와 정신과 전문의를 찾아준다. 장애인 작업장에서 일하다가 일반 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과정을 조력해 주는 것도 사회복지사의 역할이다. 이 밖에도 이용인들의 가족 상담과 결혼 관련 등 장래 계획에 관해 상담하고 준비를 도와주는 것도 사회복지사가 담당하고 있다.

조력자들의 도움으로 자신의 인생 살아가

위의 사례와 같이 기초생계급여와 연금은 발달장애인이 스스로 생계를 꾸려 나갈 수 있는 경제적 보호장치이다. 복지법인을 통한 직업, 문화·체육활동의 지원과 전담 사회복지사, 성년후견인 배정 등은 발달장애인이 사회에 잘 융합돼 살아갈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사회적 장치들이다.

발달장애인은 장애인 작업장에서 동료들과 일하면서 사회성을 기르고 일과를 규칙적으로 설계하며 문화·체육 활동을 통해 여가를 즐길 수 있다. 성년후견인은 이들의 법적인 업무를 대행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전담 사회복지사는 이들이 필요한 각종 사회적 네트워크를 어려움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연결고리 역할을 해준다.

L의 자립 의지가 분명했더라도 이 같은 경제적인 도움과 각종 지원제도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L은 이와 같은 조력자들 덕분에 가족의 도움 없이도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최근 L은 엑셀 프로그램을 발달장애인의 눈높이에 맞게 쉽게 설명해 주는 교육에 참가하고 있다. 앞으로의 목표는 프로그램을 잘 익힌 다음 활동하고 있는 연극부에서 예산을 담당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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