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 해결 위해 사민주의 복지국가, 적극적 시민 역할 등 대안 나와

기획주제 세션(‘심화되는 불평등 속에서 사회적 연대성을 다시 묻다’)에서 ‘양극화와 사회연대’에 대해 발제를 맡은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토론자들과의견을 나누고 있다.
기획주제 세션(‘심화되는 불평등 속에서 사회적 연대성을 다시 묻다’)에서 ‘양극화와 사회연대’에 대해 발제를 맡은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토론자들과의견을 나누고 있다.

11개 학회 참여로 다채로운 공론의 장 열려

한국사회복지학회는 노인·아동·장애인을 비롯해 정책·행정, 그리고 학교·의료·정신건강 등 11개 사회복지학 전문영역 학회들과 함께 10월 24일 연세대학교 백양누리 컨퍼런스 홀에서 ‘사회복지 공론장을 열고, 사회복지, 그 사회성을 다시 묻다’라는 주제로 공동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학술대회 참여자들에게 가장 주목을 끌었던 첫 번째 기획주제는 ‘심화되는 불평등 속에서 사회적 연대성을 다시 묻다’였다. 이 주제와 관련해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양극화외 사회연대’를, 최영준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가 ‘자유안정성 복지국가: 적극적 시민의 역할’을 주제로 발표를 맡았다.

‘시장주의’ 와 ‘능력주의’ 가 불평등 심화 초래

첫 번째 발제에 나선 구인회 교수는 “인류 사회에서 불평등은 정착사회로의 이행과 함께 등장했다”며, “국가 출현과 지배 계급인 엘리트 형성이 진척됨에 따라 불평등 증대가 이루어졌고, 전쟁과 혁명 등은 불평등을 증폭시키거나 반전시키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불평등이 최고조에 달한 것은 산업혁명이 진척되고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확산되면서 생산성이 빠르게 늘고, 그 과실의 분배에서 격차가 확대된 이후”라고 지적했다.

구 교수는 “21세기의 불평등 심화를 초래한 가장 주된 원인은 ‘시장주의적 세계화’와 ‘능력주의 확산’에 있다”는 생각을 밝혔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복지국가의 등장 이래 시장 질서는 항상 국가의 개입과 규제의 대상이 되었고,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국가 개입 속에 존재했다”며, “그러나 국제적 수준에서의 협력적 시장 규제 장치 없이 진행된 세계화는 각각의 복지국가 수준에서의 노력을 크게 제한하는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러한 세계화된 시장주의 질서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고급 엘리트는 과거에 비할 바 없는 보상을 향유하게 됐지만 국제경쟁력을 잃은 산업에 종사하는 근로대중은 생계 기반을 잃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분배 체계가 개인의 기술과 재능의 결과라는 능력주의 신화에 의해 강고하게 지지되면서 주류 정치제도 속에서 하층 근로대중의 이해가 반영될 길이 차단됐다고 했다.

구 교수는 “과거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 유럽의 반이민 극우정치세력의 상승은 세계화와 능력주의 지배엘리트에 대한 근로대중의 반발이 작용했다”며 “한국에서는 수출주도 경제의 성장으로 세계화의 혜택을 근로대중이 향유하면서 세계화에 대한 반발은 농민층 등 일부 집단에 제한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공정성을 벗어난 지배엘리트의 처신에 대한 일반 대중의 반감은 능력주의 분배질서로부터의 소외감이 증대하고 있다”고 시사했다.

21세기 불평등은 ‘계층 이동성’이 화두

구 교수는 “우리나라의 양극화는 빈곤 악화에 대한 관심과 계층 격차 확대에 대한 우려가 결합되는 초기 단계를 넘어서 계층 상승 이동의 기회가 차단되면서 계층 격차가 세대 간에 세습된다는 우려가 증대되는 시기로 이행하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20세기와 21세기 복지국가의 불평등과 관련된 주된 질문은 변화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구 교수 의견에 따르면, 20세기 복지국가의 핵심적 과제가 빈곤 해소에 있었고, 불평등과 관련된 주된 질문이 ‘불평등 악화 상황에서 빈곤 해소가 가능한가?’였다면, 21세기에 새로이 제기되는 질문은 ‘불평등 악화 속에서 이동성 증대가 가능한가?’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개인의 출발점이 종착지를 규정하고, 부모의 지위가 자녀의 지위를 결정하는 고착된 위계 사회를 피하고자 하는 것이 공정한 사회의 최소 요건이라는 점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불평등 악화 그 자체로도 심각한 문제인데 만약에 불평등 악화가 계층 이동성을 저해하는 수준이라면, 그 심각성의 정도는 달라진다”고 했다.

구 교수는 소득불평등이 높은 사회일수록 세대 간 소득이동성이 떨어지는 양상을 보여주는 위대한 갯츠비 곡선(Great Gatsby Curve)을 근거로 소득불평등이 낮은 북구 국가들이 높은 이동성을 보이는 반면에 소득 불평등이 높은 남미 국가들이 낮은 이동성을 드러내는 점을 예시로 들었다. 또한 2018년 OECD 자료를 통해 서구 국가들 중 미국, 영국, 포르투갈 등이 불평등은 높고 소득이동성이 떨어지는 양상을 확인시켰다.

그는 “위대한 갯츠비 곡선이 불평등과 이동성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있어서 우리나라 상황에도 들어맞는 것 같다”며 “2000년대 들어 양극화가 우리 사회의 큰 문제로 제기됐고,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나면서 이동성의 하락이 새로운 쟁점으로 등장했다”고 밝혔다.

사민주의와 누진세가 사회적 연대 회복의 핵심

구 교수는 여러 국가들 사이에서 빈곤과 불평등 수준에 큰 차이가 나는 원인을 복지국가의 재분배 기능 차이라는 의견을 보이면서 대표적으로 미국과 유럽의 불평등 수준 차이는 유럽의 발전된 복지국가 때문이라고 봤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높은 불평등도 복지국가의 미약함 때문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생산주의적 복지와 감세국가에 기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양극화 시대를 맞아 우리나라 복지국가의 재분배적, 사회보호적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이며 양극화 대책으로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 △조세정책 △교육정책을 제시하며 이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특히나 사민주의 복지국가의 건설과 누진적 조세재정 강화야 말로 양극화 해소와 사회적 연대 회복의 열쇠임을 강조했다.

구 교수는 “14세기의 흑사병은 재앙이었지만 평등을 높이는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코로나19는 덜 세계화되고, 더 디지털화된 세상, 그리고 더 불평등한 세상을 몰고 왔다”며 “감염병 시대라는 새로운 도전은 이를 가속화할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가 생산주의적 복지와 감세국가의 과거를 극복하고, 사회민주주의적 복지국가와 누진적 조세 개혁의 추진을 통해서 대전환을 이루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적극적 시민과 자유안정성 복지국가

두 번째 발제에 나선 최영준 교수는 “코로나가 만들어낸 거대한 변화와 불확실성은 정책의 창을 활짝 열어놓았지만 정책 현장에서 논의되고 있는 정책개혁과 대안의 방향은 아쉽게도 ‘2019년으로의 회복’ 정도의 목표만이 보인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근본적 변환의 시기에 패러다임적 변화 가능성은 닫아두고, 어려운 사람부터 먼저 도와주자 정도의 논의가 2020년 코로나를 보내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최 교수는 “코로나 원년이 더 적극적으로 비전을 만들고 새로운 복지국가를 디자인해야 하는 가장 적기이자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핵심은 시민 개개인들이며, 관료주의와 시장 그리고 가족에 대한 개인들이 자유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21세기 민주적 사회와 복지국가를 만들어가는 출발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안정성과 이에 기반하여 자율성과 삶의 영향을 가진 개인들을 ‘적극적 시민’이라 명하고, 이러한 적극적 시민이 만들어내는, 그리고 적극적 시민이 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지원하는 복지국가를 ‘자유안정성 복지국가’라 명했다.

적극적 시민은 사회적 응집력을 높이고, 민주주의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참여에 적극적인 시민을 일컫는 것이다. 자유안정성 복지국가는 개인의 협상력을 높여주고, 타인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어주는 안정성에 주목하며 개인이 자율적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복지국가이다.

시민과 시민사회 역할 재조명 필요

최 교수는 “2020년을 맞이해 복지국가는 새로운 위험을 맞이하고 있다”며 “2007~2008년 경제위기 이후부터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탈세계화, 감염병, 기후변화, 디지털화, 그리고 고령화 등 다양한 종류의 불확실성이 빠르게 퍼져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중권력을 가지고 있는 시민과 시민사회를 다시 조명해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럽국가에서 시민과 시민을 대표했던 노동조합과 자발적 조직들은 △국가와 시장의 견제자 △국가 및 시장의 인재를 키워내는 화수분 △국가와 시장이 부딪히는 공간에 연골과 모퉁이 돌, 때로는 완충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 온바 있음을 실례로 들었다. 이를 통해 분권화되고, 활발한 시민들의 정치참여가 필요하며 개인과 시민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20세기 산업사회에서 개인의 자율성과 협상력을 부여했던 것은 분권화된 민주주의 제도, 노동조합, 안정적인 노동시장, 그리고 탈상품화를 가능하게 하는 복지국가”였다며, “개인과 시민의 역할을 높여주었던 20세기의 제도들은 21세기에도 유효한 수단이 된다”고 말했다.

자유안정성 복지국가의 핵심은 ‘연대’

그는 자유안정성 복지국가의 모습에 대해 사민주의 복지국가 모델인 스웨덴을 사례로 제시했다. 스웨덴은 사민주의 복지국가를 공고히 해 나간 1940년대부터 1960년대에 ‘강한 국가’가 아니라 ‘강한 사회’를 슬로건으로 내세웠고, ‘연대·협동·함께’라는 정신을 이루기 위해 개인을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에서 보호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복지국가 전략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최교수는 “자유안정성 복지국가에서는 ‘연대’가 핵심적 원리로 작용한다”고 주장했다.

타인에 대한 관용이나 공동체와 연대를 위한 활동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 속에서 개인들에게 안정성을 부여하고, 자율성을 높여주는 것이 우리의 비전이 될 수 있고, 또한 적극적 시민을 통해 변화될 우리 사회와 민주주의, 그리고 경제체제 역시 우리의 비전이라고 했다.

끝으로 그는 “복지국가가 모든 것의 해답이 될 수는 없다”면서 “큰 것을 바꾸는 것이 작은 것 하나 바꾸는 것보다 더 어려울까?”라고 의문을 던졌다. 그리고 이에 대해 “꼭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복지국가 변화를 패러다임 관점에서 볼 수 있어야 자유안정성 복지국가가 현실화될 것이라고 마무리했다.

저작권자 © 복지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