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근 대구대학교 교수
김문근 대구대학교 교수

불과 1년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코로나19 대확산으로 우리 삶의 토대는 근본부터 허물어졌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국가와 방역당국의 헌신, 의료기관과 의료진의 수고, 시민들의 적극적인 협조 덕분에 서구 주요 선진국보다 감염자 규모나 치명률이 월등히 낮다는 점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대량 검사와 감염경로 추적 등 추가 감염 차단 조치가 효과를 발휘한 덕분에 국가의 전면적인 봉쇄 없이 어느 정도 산업기반이 유지되고 있어 서구 국가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그동안 정부가 적극 추진한 방역정책은 비일관적이라는 비판도 많이 받았으나 방역과 경제를 함께 고려해야 하기에 정부의 선택지가 많지는 않았으리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감염병 경보단계에 따라 규제가 적용되는 사회적 모임의 유형과 규모, 영업장 유형, 규제지역이 세분화되고, 규제기간도 탄력적으로 적용됐다. 그럼에도 종교시설, 광장의 정치적 집회, 밀폐된 실내 영업장 등에 대한 규제와 관련해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특히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지원 및 규제를 적용받는 사회복지 영역은 가장 강력한 규제가 적용됐다. 대부분의 사회복지시설과 기관은 지난 2월 이후 정상적인 운영이 제한됐으며, 일부 방역규제가 완화되는 기간에 한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고려한 부분적 운영이 이루어졌다. 지방자치단체로서는 처음 경험하는 치명적인 감염병 대확산을 막기 위해 사회복지시설 및 기관의 운영을 최대한 규제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온 사회가 코로나19 확산 차단에 전념하는 동안 국가는 감염병 사태가 초래할 수 있는 심리사회적 트라우마 및 스트레스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국가트라우마센터는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와 협력해 ‘감염병 심리사회적 방역지침’을 제작·보급하며, 심리사회적 지원을 제공했으며, 보건복지부는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와 함께 코로나19 확산이후 국민정신건강을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해(3월, 5월, 9월) 그 결과를 발표했다. 초기에 코로나19 감염이 심각하게 확산된 대구지역의 정신건강은 확연하게 악화됐고, 이후 다소 완만하게 개선됐으나 여전히 예년에 비해 우울이나 불안 등은 높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이후에 서울, 대전, 울산 등 코로나 확진이 증가한 지역은 예외 없이 우울문제가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감염병 확산 이후 심리사회적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처는 상당히 체계적이었고, 국민의 정신건강 문제 예방에 상당히 기여했을 것이다.

코로나19 확산과 심리사회적 지원의 한계

그럼에도 지역사회의 시민들에게 코로나19 대확산에 따른 심리사회적 지원의 한계는 무엇이었는지 점검하고 향후 정책적 대응을 보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010년 이후 정부의 정신건강정책은 정신건강문제의 예방과 정신건강증진을 주요 정책 전략으로 채택하고 있다. 중증 정신질환과 자살문제 예방을 위해 조기에 정신건강문제를 검사해 조기치료를 유도하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우울증 및 스트레스에 대한 선별검사, 자살 위험성에 대한 선별검사가 강조돼 왔다.

이러한 정부의 정책 전략은 그 자체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정신건강문제를 유발할 수 있는 지역사회환경을 개선하고 정신건강관리 역량을 향상시키고, 개개인의 정신건강 회복탄력성을 향상시키는 것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 조기발견 및 조기치료 전략은 정신건강 고위험군을 신속하게 치료체계로 편입시켜 중증 정신질환으로 이환을 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바람직하지만 정신건강을 증진해 정신건강문제 발생을 예방하는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사회복지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정신건강증진을 위해 어떤 사회적 대응이 필요할까? 우선 사회적 스트레스가 많고, 사회 지지체계가 취약한 사회복지서비스 이용자들이 코로나19 확산 후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공적 재정 지원과 지도감독을 받는 사회복지기관 및 시설은 방역 규제가 가장 엄격하게 적용됐고, 그 결과 사회복지서비스를 이용하던 사회 취약계층 구성원들은 서비스 단절과 함께 사회지지체계 단절을 직면하게 됐다.

사회지지체계가 취약한 지역사회의 노인, 장애인, 아동 및 청소년 등은 그동안 이용해 왔던 노인복지관, 경로당(노인정), 장애인복지관 및 주간보호센터, 재활시설, 지역아동센터 등이 운영을 중단하거나 축소 운영함에 따라 가정에서 머물러야 했다. 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과 노인, 정신의료기관에 입원 중인 정신질환자 등은 외부 면회가 금지되고, 외부 강사 및 자원봉사자 등이 담당하던 주요 프로그램도 중단돼 사실상 집단적인 격리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급격한 사회적 단절과 일상의 붕괴는 사회복지 이용자들의 정신건강에도 부정적 영향을 야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울과 관련한 사회심리이론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은 특히 사회복지 이용자들의 정신건강에 위기로 작용할 개연성이 높다. 우선 방역 규제로 자유로운 활동이 제한되면 개인의 자율적 동기가 손상되고 이는 곧 정신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셀리그만(Seligman)에 따르면 불가항력적인 스트레스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인지 행동적 손상이 발생해 무기력이 학습될 수 있고, 정신건강에도 부정적 영향이 있기 때문이다. 방역 규제로 인해 삶의 반경이 급격히 좁아지고 사회적 관계가 단절 및 축소됐지만 개인적으로 대처할 만한 대안이 마땅하지 않은 상태가 장기화되면서 사회복지 이용자들은 무력감을 경험하고, 우울 증상이 심화되기 쉬운 상황에 있다.

또한 벡(Beck)에 따르면 자아, 경험(현재), 미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우울 증상을 심화시킬 수 있다. 감염병 확산 이후 일자리 악화, 사회적 단절,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의 증가 등은 특히 한계계층의 삶에 더욱 부정적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상황에서 자아, 현재의 경험, 미래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정신건강 증진 위한 사회적 대응 필요

이처럼 정신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코로나19 확산이 적어도 내년까지는 지속돼 장기화될 것으로 예측되므로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의 정신건강을 위한 사회적 대응이 요구된다. 단지 사회심리적 방역지침을 보급하고 스스로 정신건강을 유지하도록 촉구하는 데서 멈출 것이 아니라 사회복지서비스체계를 적극 활용해 사회복지서비스 및 사회적 지지를 제공해 정신건강을 증진할 필요가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방역을 위해 사회복지기관의 정상적인 운영을 통제하기만 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감염병 확산의 위험을 최소화하며 대안적 방식으로 사회복지서비스 및 사회적 지지를 제공할 수 있는지 대응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번 감염병의 백신 및 치료제가 개발되더라도 유사한 감염병 사태는 얼마든지 재현될 수 있으므로 감염병의 위험 가운데서도 사회복지서비스를 정상화시킬 정책대안을 모색하는 것은 미래를 위해 더욱 중요하다. 코로나19 감염병 확산으로 일종의 심리적 트라우마를 경험한 정부와 지자체는 향후에도 유사한 감염병에 대해 극도의 민감한 대응을 하게 할 개연성이 높다. 즉 감염병 예방을 위한 강도 높은 방역 규제는 새로운 일상(뉴노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감염병 확산 중 적용 가능한 대안적인 사회복지서비스 및 심리적 지원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중요한 정책 과제임에 틀림없다.

오늘도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들로부터 코로나19 확산을 최소화하기 위해 따라야 할 위생수칙, 사회적 거리두기 및 사회활동 자제를 촉구하는 재난문자는 끊임없이 전달되고 있다. 장기화되는 코로나19 확산은 두려움과 염려, 스트레스와 우울 등으로 이어져 정신건강을 위협한다. 이러한 새로운 일상 가운데, 정부 및 지자체는 다양한 방식으로 취약계층과 국민들을 위한 사회복지서비스 및 심리지원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감염병 확산에 대응해 비즈니스조직은 언택트 접근을 강화해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있는데, 정부와 지자체는 왜 사회복지서비스 및 심리적 지원과 관련해 로우택트, 언택트 혹은 온택트 등 대안적서비스모델을 적극 개발해 취약계층과 시민들을 지원하지 않는가? 일부 선도적 복지기관들이 방문형 서비스와 언택트 서비스를 자체적으로 개발해 이용자들의 고립을 방지하고, 지속적인 서비스 지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대안적 서비스 및 지원모형 개발을 개별 기관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정부와 지자체가 연구개발 예산을 지원해 적합한 모델을 개발한 후 신속하게 전국으로 보급할 필요가 있다.

불안과 공포, 염려 완화해 줄 ‘사회적 통합’과 ‘포용’ 절실

또한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가장 강력한 통제가 가해졌던 서비스업과 교육·문화·관광·체육·종교 영역에서 대안적 모형 개발을 통해 시민의 정신건강을 증진할 필요가 있다. 서비스업과 교육·문화·관광·체육·종교 등은 시민들의 정신건강과 가장 관련성이 높은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역에서도 정부와 지자체는 대안적인 운영 모형의 개발과 적용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민간영역은 자발성 및 창의성이 높아 정부 및 지자체의 제한적인 지원만으로도 대안적인 모델을 개발해 나갈 동기가 있다.

최근 필자가 소속된 대구대학교에서는 지난 10월 중순 기숙사에 거주하거나 부분적인 등교수업을 하는 학생들을 위해 야외 광장에서 소규모 클래식 공연을 열었다. 함신익과 심포니S.O.N.G(심포니송)이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전국으로 찾아가는 콘서트를 기획했는데 대구대학교가 지원을 받아 가을밤 캠퍼스는 모처럼 활기가 넘쳐났다. 윙트럭을 활용해 야외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며 공연했는데 참으로 창의적 접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서비스 업종이나 교육·문화·관광·체육·종교 영역에 대해 이러한 창의적 접근을 다양하게 장려하고 지원한다면 감염병 확산이라는 새로운 일상 가운데서도 우리의 정신건강을 향상시킬 수 있고, 관련 분야의 지나친 위축과 침체로 인한 사회적 부작용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코로나19 확산으로 자연스럽게 감염병에 대한 공포가 증가하고, 그 결과 감염자 및 감염 위험성을 높일 수 있는 활동, 사회단체 및 그 구성원들에 대한 편견, 차별, 혐오가 날로 증가하고 있다. 사회심리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누구나 생명과 안전에 위협을 경험하게 되면 개방적 태도와 관용적 태도는 약화되고, 차별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기 쉽다.

코로나19 확산 국면에서 우리의 내면은 불안과 공포, 염려로 가득하다. 그럴수록 불안과 공포, 염려를 완화해 줄 수 있는 사회적 통합과 포용이 요구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여론 주도층과 정당 정치인, 종교인 등 사회통합을 주도해야 할 사회의 리더에게 이런 통합적 리더십과 커뮤니케이션을 부탁하고 싶다. 감염병 확산 가운데 편견과 차별, 혐오가 증가하면 사회의 누군가는 그로 인해 정신건강이 위협받을 수도 있으므로 통합과 관용, 포용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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