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찬영 교수
윤찬영 교수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기초법’)은 1999년 8월 국회를 통과하여 9월7일 공포되었고, 이듬해인 2000년 10월 1일 시행되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가 내세운 국정기조인 ‘생산적 복지’의 꽃으로 표현되었던 기초법이었다.

이제 2020년은 이 법이 시행된 지 만 20년이 되는 해이다. 그 동안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사회복지제도처럼 쓰이고 불리워 졌지만, 여전히 많은 문제제기를 받고 있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20년을 정리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뭔가 대단할 것 같으면서도 이렇다 하게 주장할 만한 것이 딱히 보이지 않는 제도이다. 탄생 당시 시민사회의 열화와 같은 지지와 성원이 있었고, 그 동안 수많은 원성의 대상이 되었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이다.

우선, 생산적 복지부터 돌이켜 보자. 당시 영국 노동당 정부의 수상이었던 토니 블레어(T.Blair)가 주창했던 ‘제3의 길(The 3rd Way)’을 벤치마킹한 것이 ‘생산적 복지’였다. 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상황에서 그들이 요구하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게다가 그들조차 빈약한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도록 요구했으니, 시장론자를 만족시킬 시장의 개혁방안과 그로 인해 어려움을 겪게 될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복지를 하되 시장에 맞게 하겠다는 ‘생산적 복지’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이어 제3의 국정기조로 선포되었고, 이에 부합하는 정책으로 기초법이 제정되었던 것이다.

◇ 기초법이 갖는 ‘두 가지’의미

이러한 기초법에 대하여 두 가지 관점에서 평가를 하고 싶다.

첫째, 비로소 일제의 유산에서 벗어난 사회복지제도였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을 국가가 돌보는 당시의 공공부조제도는 생활보호법이었다. 1944년 일제는 조선구호령을 공포하여 부조제도를 도입하였다. 일본에는 구호법을 실시했지만 식민지 조선에는 위상을 낮춰 구호령을 적용했던 것이다. 우리는 해방 이후에도 새로운 입법을 하지 못한 채 조선구호령을 기준으로 구빈행정을 해왔다. 박정희 군사정권의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조선구호령을 ‘생활보호법’이라는 이름으로 제정하였다. 우리의 구빈제도는 이 상태로 1999년까지 이어졌다. 55년 만에 식민지 법을 폐지하고 새로운 입법으로 기초법을 제정하게 되어 비로소 우리의 공공부조 제도를 갖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점을 말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사회복지법을 연구하는 필자로서는 부족하더라도 우리 법을 갖게 됐다는 점이 무엇보다 뭉클하게 다가왔다.

둘째, 대한민국 사회복지의 빙하기 같은 시대를 마감하고 해빙기에 접어들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기초법은 시민사회의 제정추진 운동에 힘입어 제정되었다. 우리나라 입법사상 아래로부터의 동력에 의해 제정된 최초의 사례가 아닐까 한다. 많은 한계점이 있었고 불완전했지만 국민이 국가를 향하여 권리로서 복지를 요구할 수 있다는 내용은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이고 획기적인 것이었다. 식민지 제국과 군사독재 권력의 체제에서 국가의 보호라는 가부장적 조치에 의존해오던 가난한 국민이 이제는 자신의 생존권 내지 복지권에 근거하여 국가로 하여금 생계급여를 제공하도록 정당하게 청구할 수 있다는 민주 독립국가의 복지제도가 비로소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기초법은 복지권의 권리장전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복지국가의 기본’ 만드는 일

이렇게 보면, 기초법은 굉장하거나 대단한 역사적 진보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2014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라는 유서를 남겨 놓고 비극적인 최후의 선택을 하여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던 소위 ‘송파 세 모녀 사건’은 기초법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고발한 사건이었다. 그 이후 각 지역에서 유사한 사건들이 줄을 이어 오고 있다. 우리가 미안해하고 국가가 엎드려 사죄해야 할 일이지만 거꾸로 가난한 국민이 자신의 장례비용을 봉투에 남긴 채 죄송하다는 유서를 남겼으니, 이는 실로 생산적 복지가 사람을 잡은 꼴이다.

기초법의 가장 큰 문제이자 과제는 ‘부양의무자 기준’이다. 이는 실제로 가난하더라도 국가로부터 부조를 받을 수 없는 사각지대를 만들어 내는 고약한 장치이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부양에 관한 한 사적 부양을 우선하며 원칙으로 한다는 것을 선포한 것이다. 사적 부양을 받을 수 없는 개인만을 국가가 보충적으로 부양하겠다는 정책적 의지를 표명한 제도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자 시절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으나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포용적 복지국가정책은 그 핵심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공약으로 내걸었던 부양의무자 조건의 폐지를 입법하는 것이 기초법 시행 20주년을 맞는 현단계에서 가정 시급하고도 적절한 정책이 아닐까 한다.

적어도 포용적 복지국가라면 부양에 관하여 공적 부양이 원칙이 되어야 할 것이다. 공적 부양을 원칙으로 하려면 공공부조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해야 할 것이다. 개인 간의 부양은 민법상 부양청구와 부양이행이라는 채권채무 관계로 남겨 놓고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부양은 국가의 책임으로 규정해야 할 것이다.

사실, 가난한 사람이 스스로 가난을 입증하여 생계급여를 요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제도인 지 깨달아야 할 것이다. 게다가 부양의무자에 조건까지 적용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을 매우 억울하게 만드는 것이다. 기초법 시행 20주년을 맞이하여 부양의무자 기준의 폐지를 다시 한 번 촉구하는 바이다. 이것은 단순히 공공부조법인 기초법의 한 부분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추구하는 복지국가의 기본적인 수준과 형태를 만드는 일이다. 진정으로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복지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