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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제를 비판하는 이유들
  • 승인 20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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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준 교수
홍경준 교수

기본소득제에 대한 논란이 최근 뜨겁다. 이 글은 기본소득제를 비판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내가 기본소득제를 비판하는 이유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기본소득제는 새롭다 하지만 실은 새롭지 않다. 둘째, 기본소득제는 현실문제와 시대변화에 대해 너무 단순하다. 셋째, 기본소득제는 폐쇄적 민족주의에 편승하여 국가 간 장벽 쌓기를 부추길 수 있다. 이 세 가지 이유들 각각에 대해 두 개씩의 논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1-1. 이름이 새로움의 충분조건이 아니다.

기본소득제의 도입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얘기는 기본소득제의 전면화는 미래의 과제이기 때문에 부분기본소득제의 도입부터 시작하자는 것이다. 부분기본소득제로 출발하면, 종착지는 완전기본소득제일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국에서 소개되는 부분기본소득제의 하나는 충분성을 뺀 방식이다. 최근에는 긴급재난지원금이 부분기본소득제의 하나라면서 재난기본소득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경우도 등장했다. 이러한 프로그램도 기본소득제의 하나라면 그것은 결코 새롭지 않다. 일본, 홍콩, 싱가포르도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국과 같은 형태의 현금 지급을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 국민에게 현금을 지급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일본은 2009년 자민당 아소 다로 정권 시절 정액급부금제도를 실시한 바 있다. 물론 이러한 제도들을 (부분)기본소득제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정기성이라는 중요한 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러한 제도를 기본소득제의 하나라고 주장하기도 하니, 그런 것이라면 새로울 것이 뭐냐는 것이다.

부분기본소득제의 또 다른 형태는 무조건성에 제한을 두는 방식이다. 청년기본소득제, 농민기본소득제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 역시 새로운 것은 아니다. 사회보장제도에는 이미 이것이 사회수당(Demogrant)이라는 이름으로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복지의 발전이 상대적으로 늦은 한국에는 2018년 9월에야 아동수당이라는 제도가 도입되었지만, 프랑스는 1932년, 영국·체코는 1945년부터 시행 중이다.

1-2. 소득 재분배만 강조하는 것은 낡은 생각이다.

사회보장제도의 핵심기능이 소득계층들 사이의 수직적 재분배라는 주장이 있다. 이러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한국의 사회보장제도가 경제사회적 약자보다 강자에게 더 후한 급여를 주고 있기 때문에 그 원래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기본소득제의 도입을 주장하는 사람들 또한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한다. 모든 특권적 자원의 향유로 얻어진 추가소득을 조세로 환수하여 모든 사회 성원에게 평등하게 재분배해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사회보장제도이든, 복지국가 프로그램이든, 기본소득제이든 고소득자의 소득을 환수하여 현금으로 재분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보장제도와 복지국가의 핵심기능을 소득계층들 사이의 수직적 재분배로 보는 생각이 낡은 것이라면 어떨까? 나는 사회보장제도의 핵심기능은 소득계층들 사이의 수직적 재분배가 아니라 사회위험의 분산에 있다고 본다. 또한 수직적 재분배에서 사회위험 분산으로 그 기능이 전환되었기 때문에 더 발전할 수 있었고, 사회성원들에게 더 많은 편익을 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회위험 분산 기능은 복지를 통해 이득을 얻는 수혜자의 범위를 확장하는 경로를 통해 소득재분배 효과를 높이기도 한다. 사회위험 분산 기능은 복지를 통해 이득을 보는 사람들의 범위를 확장함으로써,‘복지동맹’의 형성을 가능케 하고, 대의 민주주의 하에서의 정치적 지속가능성도 높인다.

왜 그런가? 소득지위와 위험지위가 반드시 반비례관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실업을 예로 들어보자. 숙련 전속성이 큰 기능직 고소득자의 실업위험이 숙련 전속성이 작은 노무직 저소득자의 실업위험보다 더 낮다고 단언하긴 어렵다. 질병, 노령, 돌봄과 같은 사회위험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소득지위와 위험지위가 일치하지 않기에 중산층과 큰 숙련 전속성을 요구하는 기업 등이 저소득층과 함께 복지동맹으로 연대할 수 있고, 정치적 다수가 될 수 있다.

기본소득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기본소득제를 포함한 사회복지제도의 핵심기능을 주로 재분배와 관련하여 이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소득계층들 사이의 재분배에서 위험집단들 사이의 사회위험 분산으로 발전해온 그간의 경과는 물론이고, 그러한 발전의 의미와 효과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2-1. 기존 제도의 폐지, 구조조정, 보완은 단순하지 않다.

사회복지의 급여는 다양한 형태를 가진다. 현금과 현물 뿐 아니라 돌봄과 같은 서비스 급여, 취약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춘 기회라는 급여도 있다. 급여를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재원 또한 재정지출과 조세지출, 사회보험기여금, 기부금, 이용자 요금 등으로 다양하다. 급여를 전달하기 위한 파이프라인 역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체, 민간의 영리・비영리 조직들이 복잡하게 결합되어 작동한다. 인간의 생활을 보장하는 집합적 방식들인 생활보장체계는 다양한 제공주체와 전달체계, 급여와 재원들이 복잡한 방식으로 결합된 것이며, 저마다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의 네트워크라는 것이다. 문제는 도처에서 발견되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문제들이 기본소득제 하나로 정리될 수는 없다.

물론 기본소득제의 도입이 모든 사회복지제도의 폐지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의료보장이나 사회서비스가 기본소득제와 동반할 수 있는 제도로 흔히 언급된다. 최근에는 기존 제도를 그대로 두고, 새로운 재원의 발굴을 통해 기본소득제를 추가하자는 병행론도 제기되고 있다. 예산제약은 사회 변화와 인식 전환에 의해 돌파가능하다는 것이다. 너무 단순한 생각이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한 재난지원금의 용처를 둘러싸고도 가구구성원들 사이에서 다양한 일이 일어났음을 상기해보자. 재정지출의 몫을 정하고, 나누는 일은 전문가의 책상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새롭게 발굴한 재원인가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기본소득제의 시행을 위해서는 다른 제도의 예산 조정이 따를 것이다. 복지제도 통폐합이든, 재정 효율화이든, 소득공제와 세액공제 폐지를 통한 소득세제 정비이든 그 최우선순위는 기존의 복지제도 관련 예산일 가능성은 매우 높다.

2-2. 사회보장제도도 변화할 수 있다.

기본소득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오고 있는 커다란 변화에 대해 사회보험을 근간으로 하는 사회보장제도는 적절하게 대응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사회보장제도에 대해 기술혁명이 가져올 변화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보는 것이다. 지식과 정보에 기반을 둔 기술혁명이 가져오는 변화는 사회보험의 발전에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다. 사회보험이 필요한 이유의 하나가 정보 불균형으로 인한 시장실패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회위험에 대한 빅데이터 정보의 축적과 활용은 사회보험을 사보험으로 대체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반대로, 빅데이터 정보의 축적과 활용은 지금보다는 훨씬 더 정교하고 신속하게 사회위험을 분산하는 사회보험을 출현시킬 수도 있다.

같은 맥락에서, 개인의 소득활동에 대한 빅데이터 정보의 축적과 활용 또한 사회보험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지금까지 사회보험이 표준적 형태의 고용관계를 중심으로 설계된 이유 중의 하나는 노동이 이루어지는‘공동의 작업 공간’인 사업장이 보험료를 징수하는데 유일하거나 편리한 통로였기 때문이다. 사회보험료를 봉급 지급명부(payroll)에 기초한 세금(tax)이라고 부르는 배경이다. 이 오래된 관행이 기술혁명의 거대한 변환 과정에서도 그대로 유지될 것인가? 디지털기술의 확산은 사업장을 통한 보험료 징수의 관행을 개인의 개별적 소득자료에 기초한 납세(tax)방식으로 바꾸게 할 수도 있다. 점차로 모든 사람의 다양한 소득원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 사회보험은 고용지위와는 상관없이 개인 소득에 기초한 사회보험으로 변화할 수도 있다.

3-1. 기본소득제의 급여자격 조건은 배제적이다.

칼 폴라니(K. Polanyi)는 <거대한 변환; 우리 시대의 정치적 경제적 기원>에서 토지와 화폐, 노동을 상품화하고 사회를 시장화하려는 운동과 그것을 저지하려는 운동 사이의 작용과 반작용이 우리 시대, 즉 자본주의의 전개과정이었다고 말한다. 자본주의의 전개과정에서 우리가 경험한 바는 무엇인가?‘시장의 작용으로부터 사회를 지키려는’운동이 모두 진보에 의해서만 주도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 항상 성공했던 것도 아니라는 점, 언제나 보편적 가치의 확장에 기여한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파시즘 역시‘시장의 작용으로부터 사회를 지키려는’운동이었다. 나치독일의 복지정책은 노동자를 비롯한 여러 사회계층에게 신분상승의 기회, 근대적 여가의 향유, 대량소비사회에의 참여, 광범한 복지혜택 등을 주도록 설계되었다. 사회보험 가입대상의 확대, 행정체계의 합리화가 이루어졌고, 세금에 기초하여 전 국민을 포괄하는 사회보장제도의 도입방안도 제시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나치독일의 사회복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발전과 진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정책은‘민족공동체(Volksgemeinschaft)’라는 파시즘의 이념을 토대로‘민족의 동지(Volksgenosse)’와‘공동체의 이방인(Gesellschaftsfremde)’을 철저하게 가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론‘시장의 작용으로부터 사회를 지키려는’운동 중에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증진하는데 기여한 성공적이었던 것들도 있다. 사회보험의 제도화와 사회보장, 복지국가의 개화가 그것이었다. 이러한 운동들은 종족의 관념에 기초한 공동체(ethnie)를 국민이라는 관념에 기초한 공동체(nation)로 바꿔서, 이주민을 분리하고 격리하기보단 원주민을 구성하는 정체성의 경계를 확장하는 조치를 발명하고 활용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국민국가(nation state)라는 상상된 정치적 공동체였다. 이러한 운동들은 또한 급여의 자격 여부(deserving vs. undeserving)를 개인이 가진 속성보다는 사회의 구조적 결함과 관련된 것으로 확장해왔다. 이제는 빈곤을 완전히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회위험 또한 원인과 결과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만 물을 수 없기 때문에 사회위험인 것이다. 욕구도 마찬가지다. 인간 기본욕구의 미충족이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과 관련되어 있다는 인식의 확산에 따라 사회적 기본욕구의 개념이 등장한 것이다. 사회보장제도와 복지국가가 개인의 권리와 자유의 확장에 기여한 이유는 이처럼 급여의 자격을 개인의 속성에 귀속되는 것으로부터 점차 탈피해왔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제의 철학적 기초는 모두를 위한 실질적 자유라 한다. 사회관계가 낳는 모든 특권적 자원에서 파생하는 추가소득의 재분배가 이를 실현할 수단이라고 한다. 사회보장제도와 복지국가의 한계를 극복하자고 한다. 과연 그러한가? 기본소득제의 가장 중요한 속성은 적용대상의 보편성과 급여자격의 무조건성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적용대상과 급여자격의 최대치는 국적이나 영주권을 가진 사람들, 특정 정치공동체에서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로 제한된다. 그러므로 부분이든 완전이든 모든 기본소득제의 이름은‘국민’기본소득제,‘원주민’기본소득제이다. 보편적이지도, 무조건적이지도 않다. 기본소득에 대한 자격조건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가 국민이 아니라 외국인이어서,‘동지’가 아니라‘이방인’이라는 것이 적절한가?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이념의 퇴조 이후 지속적으로 확대되어온 보호무역주의, 기술안보주의, 노동력 이동과 이민에 대한 규제, 자국기업에 대한 리쇼어링 등은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과 함께 폐쇄적 민족주의를 강화시킬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물론 기본소득제의 도입 주장이 이런 흐름과는 무관하다 하겠지만, 그 의도와는 상관없이 기본소득제는 국가 간 장벽 쌓기를 부추길 수 있다. 이를 발전이고 진보라고 할 수는 없다.

3-2. 우리만 공유부의 소유권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기본소득제는 돈이 많이 든다. 어마어마하게 큰 규모의 돈을 조달하는 방안으로 제시되는 것 중 주목할 것은 공유부(common wealth)에 대한 부분이다. 공유부는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사회구성원 모두의 소유물이므로, 이로부터 나오는 수익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배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지자본주의론자들에 따르면, 인지자본주의 가치 창출과 자본 축적의 핵심 자원은 사회구성원의 자유/무료 노동이다. 이 노동은 자발적이며 자유롭게 지식, 정보, 문화, 관심, 정동의 형식으로 가치를 창출하지만, 이러한 가치는 플랫폼을 제공한 자본에게 일종의 지대수익으로 전유될 뿐 아무런 화폐적 보상이 제공되지 않는다. 자유/무료 노동인 이유다. 아직 충분히 구체화되지는 않았지만, 빅데이터를 활용해 수익을 올리는 플랫폼 기업을 겨냥한 데이터(정보)세에 대한 논의 또한 이러한 주장과 연관지울 수 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인지자본주의의 발전이 더욱 가속화되고, 자유/무료노동에 대한 화폐적 보상방안이 제도화된다면 기본소득제에 필요한 재원조달의 어려움은 사실 상당부분 해소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온다 해도 나는 기본소득제에 찬성할 수 없다. 기본소득제는 공유부를 창출한 사람들 중 일부만을 골라 수익을 배분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토지의 경우는 공유의 경계를 비교적 쉽게 설정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토지는 대한민국 국민의 것이므로, 거기서 나온 수익을 대한민국 국민만이 공유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탄소나 데이터는 어떠한가? 대한민국 기업이 배출한 탄소 때문에 지구온난화가 심화된다면, 그 피해에 대한 보상은 대한민국 국민에게만 해야 하는가? 데이터는 더욱 그렇다. 플랫폼 기업이 전유하는 막대한 지대수익의 원천이 되는 자유/무료 노동을 대한민국 국민만이 제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환경이나 정보가 공유부라는 점을 인정한다 해도, 그 공유에 대한 권리를 특정 국민국가의 구성원으로만 제한하겠다는 발상은 옳지 않다. 가난한 개발도상국 국민들의 자유/무료노동을 잘사는 선진국 국민들의 기본소득제 재원으로 사용하는 것은 정의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