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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 노동을 통해 본 노동자로서 고령자의 현실과 문제
  • 승인 2020.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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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지 교수
최혜지 교수

노동에 상응하는 정당한 보상을 받았는가는 노동자가 사회를 정의로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준거로 작동한다. 동일한 노동을 수행하고도 정규직 노동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낮은 임금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세상은 정의롭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고용주와 고객의 손에 자신의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을 넘겨주고 그들의 변덕으로 일자리를 잃게 될 수 있다는 불안감과 생존 수단을 잃게 되었을 때의 허탈감은 종종 분노로 전환된다(마르크스와 엥겔스, 2005). 노동의 양과 질에 상응하는 정당한 사회적 보상을 인정하지 않는 부조리한 사회와 아무것도 요구하지 못하는 자신 모두를 향한 분노는(정수남, 2009) 우울과 자발적 소멸의 비극으로 구체화된다. 주민의 갑질에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경비원의 비극적 선택은 부정의한 세상을 향한 불안정 노동자의 분노와 노동자의 최소한의 권리도 지켜내지 못한 우리 사회의 수치심을 동시에 증거한다. 이 글은 고령자의 불안정 노동 실태와 불안정 노동이 고령자의 삶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살펴봄으로써 고령자 인권의 일차원을 짚어 보고자 한다.

불안정 노동이란?

노동은 개인의 삶을 구성하는 구심으로 기능하고, 노동자의 삶의 질을 결정한다(노연희, 김명언, 2011). 노년기는 생계유지의 수단으로써 노동에 대한 의존성이 약화되고, 고령자에게 노동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노년기의 일상은 노동 중심에서 여가 중심으로 재편되고, 고령자는 노동에서 벗어나 자산을 기반으로 안정된 생활을 누릴 것으로 기대된다(김윤영 외, 2015). 그러나 노후소득보장의 제도적 기반이 취약한 한국적 상황에서 고령자의 노동은 선택이기 보다 필수다. 생계에 대한 대책 없이 주된 일자리로부터 밀려난 고령자는 공적 연금을 받기까지 평균 10년 이상을 소득감소 또는 소득절벽의 상태에 놓이게 되고, 이후 생애 평균소득의 24%에 불과한 낮은 액수의 연금에 의존하게 된다(연합뉴스, 2017).

이로 인해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의 경제활동참여율은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고(OECD, 2016), 고령자의 총소득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율(38%)은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높다(OECD, 2015). 그러나 노동의 기회는 소수의 고령자에게만 주어지며 안정적인 노동의 기회는 더욱 제한적이어서 고령자는 임시직, 일용직 등 낮은 질의 불안정한 일자리조차 관대하게 수용한다(Standing, 2014). 특히 생산성의 정점을 지난 비효율적 노동력이라는 편견과 고령자는 안정적인 노동으로부터 은퇴했다는 노동 경로상의 특성 때문에 고령자의 불안정 노동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자본이 생산한 불안정한 고용구조는 고령자의 노동 불안정성을 확대하여(Arnold & Bongiovi, 2013) 신자유주의를 배후에 둔 노동 유연성의 그늘로부터 고령자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

불안정 노동은 다양한 차원의 노동 안정성이 결여된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에(서정희, 이지수, 2015) 어떤 차원의 노동 안정성에 주목하는가에 따라 불안정 노동의 정의는 다양해진다(백승호, 2014). 예컨대 Vosko(2010)는 시간제 또는 전일제 등의 고용형태, 임금의 적정성, 사회보장, 대표성 여부에 주목하여 불안정한 노동을 고용 불확실성, 소득 불안정, 제한된 사회보장 혜택, 법적 권리의 부재를 특징으로 하는 보수적 노동으로 정의한다. 한편 Standing(2014)은 안정적 고용형태, 임금의 적정성, 직무의 연속성, 직무기술과 지식의 숙련 가능성, 근로안전보장, 대표성 여부를 노동 안정성의 하위차원으로 규정하고, 이들 차원의 안정성이 확보되지 못한 노동을 불안정 노동으로 정의한다.

불안정 노동의 증가는 노동시장의 분절, 서비스 산업의 확대가 주요 원인으로 주목된다. 특히 고령 노동자가 주로 고용되어 있는 서비스경제 사회로의 전환이 불안정 노동을 확대하는 경로는 서비스 산업 고유의 특성과 고용형태의 변화로 요약된다. 일반 제조업과 달리 상품의 저장이 불가능한 서비스업은 수요의 변화에 공급이 신속하게 대처해야 하기 때문에 수요가 확대될지, 축소될지를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서 정규 인력을 고용하는 것은 부담이 된다(백승호, 2014 재인용). 또한 노동 숙련을 필요로 하지 않는 서비스 노동의 특성상 한국 서비스 산업의 주류를 이루는 소규모영세 서비스업은 노동수요가 단순 서비스에 집중되어 있다. 서비스 산업의 이와 같은 특성에 따라 서비스 산업은 주변부 일자리를 중심으로, 즉 파견, 용역 등의 비전형적 고용을 중심으로 확대되어 왔다.

고령자 불안정 노동의 실태

고령의 경제활동인구 중에서 불안정 노동자가 차지하는 구성비는 2000년 53.6%, 2009년 55.3%, 2015년 60.2%로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반면 임금이 중위소득의 3분의 2 미만으로 소득보장이 취약한 고령 노동자의 구성비는 2000년 81.3%, 2009년 75.7%, 2015년 74.9%로 꾸준히 감소했다. 이는 임시직, 일용직 등 비상용직 고용상태에 처해 있고 일자리의 지속성 또한 보장되어 있지 못한 고령 노동자의 비율은 증가한 반면 저임금 고령 노동자의 비율은 감소했음을 의미한다. 근로 중 발생하는 질환과 사고로부터의 보호와 재해에 대한 보상이 보장되지 않는 고령 노동자는 2000년 79.2%에 달했으나 2009년 59.3%, 2015년 51.8%로 비교적 큰 폭으로 감소했다.

노동조합 가입을 통해 노동자로서 대표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고령 노동자의 비율은 2000년 97.0%, 2009년 94.5%, 2015년 94.2%로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숙련기술을 획득하거나 사용할 기회가 제한된 고령 노동자는 2000년 40.4%로 다수를 이루었으며, 이후 2009년 32.7%, 2015년 30.6%로 꾸준히 축소되었다. 자신의 기술과 지식수준에 적절한 직무에 배치되고 지위상승의 기회로부터 소외된 고령 노동자는 2000년 18.1%에서 2009년 20.4%, 2015년 20.3%로 약한 증가세를 보였다(최혜지, 정은수, 2018b).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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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불안정 노동의 차원별 고령 노동자의 구성비 추이

 
노동시장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에 있는 고령 노동자는 동일 사업체에서 종사상 지위만을 변경하여 퇴직 시기를 늦추거나, 재취업 과정에서 안정된 종사상 지위를 포기하게 되는 노동 경로적 특성으로 인해 일자리의 불안정성이 높다. 더불어 고령자는 주된 일자리에서 은퇴해 이모작 일자리에 재취업할 가능성이 높으며, 연령상 취업경쟁에 취약하다는 점을 인식해 노동조건에 타협적이기 때문에 고령자는 불안정한 일자리를 수용하는 경향이 높다(최혜지, 2018).

고령자의 재취업은 소득수준, 전문적 경력 보다 가정의 재정적 욕구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는 연구결과(방하남, 신인철, 2011)는 노후소득보장제도가 취약한 우리나라의 고령자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불안정성이 높은 일자리도 수용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와 같은 심리적, 노동 이력적 특성으로 인해 성별, 학력, 직종의 조건이 동일한 경우에 고령자는 청년, 장년보다 불안정 노동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최혜지, 정은수, 2018b).

고령자 불안정 노동의 결과

문제는 불안정 노동이 고령 노동자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다. 계약관계가 종료되면 직장으로부터 퇴출되는 불안정 노동자에게 동료와의 관계는 언제 단절될지 모르는 임의적 유대이다. 현실적으로 정규직 노동자 사이의 결속을 비집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동료이자 내부자로 받아들여지기는 쉽지 않은 노동환경은 불안정 노동자가 자발 또는 비자발적으로 노동관계에서 자신을 소외시키는 결과로 귀결된다(윤정향, 2003).

물론 개인의 사회적 관계가 노동을 통해서만 형성되는 것은 아니지만 노동현장에서 형성된 관계는 개인의 사적 유대에서 지배적 위치를 갖기 때문에(유정원, 송인한, 2016) 불안정한 고용상 지위는 노동자의 소외를 촉진하는 부정적 결과를 낳는다. 무엇보다 고용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승진이나 경력 개발의 기회로부터 배제되고, 특히 정규직 노동자와 차이가 있는 임금은 노동자로서 동등하게 처우 받아야 할 권리가 사회적으로 부정당한 것으로 인식되어 소외감이라는 부정적 정서를 확대한다(Benach et al., 2000).

승진이나 경력 개발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불안정 노동자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근거하는 사회적 관계로부터 배제된다(윤정향, 2003). 물리적 작업 환경으로부터 경제적 보상에 이르기까지 정규직 노동자와 동등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고령의 불안정 노동자는 배제를 경험하게 되고, 분노와 우울로 고통받는다(Benach et al., 2000). 장기간 불안정 노동에 노출된 노동자는 부정의한 사회를 향해 분노하고(이훈진, 2000), 분노가 자신의 내부를 향하게 되면 우울로 발전된다(Freud, 1985). 분노와 우울로 표상되는 불안정 노동자의 낮은 삶의 질은 자신의 노동이 사회적으로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는가에 대한 인식에 기초한다. 즉 불안정한 지위, 저임금으로 대표되는 고령 불안정 노동자의 삶은 사회적 무시에 근거하고 있으며(박형신, 정수남, 2013; 정수남, 2009), 이는 불안정 노동자의 문제는 분배와 동시에 인정의 메커니즘을 통해 접근해야 함을 강조한다(최혜지, 정은수, 2018a).

경비원 이전에 적지 않은 세월을 성실한 가장으로, 시민으로 살아온 삶. 경비원의 일에 수고를 아끼지 않은 책임감 있는 노동자로서의 삶을 부정하고, 무시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수많은 불안정 노동자, 그들의 노동에 어긋남 없는 사회적 보상과 인정을 부여하는 것은 그들이 가진 권리이며 우리가 해야 할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