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
김기태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

범죄에 대한 처벌은 가난한 사람에게 더 가혹하게 내려진다. 가난한 범죄자가 ‘법의 따뜻한 지혜’로 선처를 받거나, 복지 제도에 연결되어 사회로 복귀하기보다는 ‘엄벌’로 사회에서 퇴출 선고를 받는 것이 현실이다. 사고, 질병, 사업실패, 가정해체 등 이유는 다르지만 안전망 없이 떠도는 삶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복지는 손이 닿을 수 없을 만큼 멀리 있었고, 범죄의 유혹은 가까웠다.

구속영장 심사를 담당한 판사들에 따르면 가난한 사람들의 주요 죄목은 절도, 무전취식, 대포통장·대포폰 등 명의범죄로 생계형 범죄의 비중이 높다고 한다. 빈곤한 삶이 해결되지 않으면 언제든 어디서든 이러한 생계형 범죄는 일어날 수 있지만, 엄벌로 인해 사회로의 재정착이 차단되면서 빈곤을 해결할 가능성은 더욱더 줄어든다.

빈곤하면서 전과까지 있는 사람은 범죄 피의자로 지목받기 쉽고, 일자리나 주거지를 구하기가 어려워진다. 이렇게 아무 대책 없이 벌을 받고 출소한 사람들은 같은 잘못을 반복할 위기에 놓이거나 삶을 포기해버린다.

예를 들어 빈곤을 해결할 가능성도 없고, 사회로 재정착할 가능성이 없어진 사람 중에서는 겨울을 나기 위해 구속해달라고 하거나, 출소하자마자 다시 잡혀갈 요량으로 무전취식을 하는 사례도 있다. 이 과정을 요약하자면 “빈곤을 가혹하게 처벌하는 ‘빈곤의 형벌화’가 한 번이라도 범죄를 저지른 가난한 사람들이 ‘빈곤과 범죄의 회전문’을 빠져나오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다.

주거부정은 가장 첫 번째 구속 사유로 명시

빈곤을 형벌화하는 사례는 주거부정에 대한 구속, 경범죄 시 처분, 생계형 범죄에 대한 처벌에서 찾을 수 있다.

먼저 구속제도를 살펴보면, 피의자 구속은 범죄혐의의 중한 정도와 더불어 ‘도주 우려가 있거나’, ‘증거 인멸 우려가 있는 경우’에 제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주거가 불안정한 사람들은 구속단계에서 다른 시민들에 비해 차별받고 있다.「형사소송법」이 제정된 1954년부터 ‘피의자가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즉 주거부정(不定)은 가장 첫 번째 구속 사유로 명시돼 있다.

초범 또는 피해가 경미하거나 혹은 피해복구에 대한 의지와 반성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법원에서 구속영장을 발부하지 않고 애초에 검찰에서도 구속영장을 청구하지도 않을 가능성이 크다.

다른 시민들은 범죄혐의가 너무 커서 혹은 사법절차를 방해하거나 회피하려는 ‘의도’가 있을 때 제한적으로만 구속하지만, 주거가 불안정한 시민은 별다른 의도가 없어도 무조건적인 구속 수사가 원칙이다.

최근 대구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배고픈 홈리스(homeless)가 배달음식을 훔쳐 주거부정으로 구속된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사안이라 노숙인복지시설을 주소지로 하여 구속을 피할 방법을 알아봤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받아주는 시설이 없었고, 법원은 주거가 일정하지 않아 별다른 연락 방법이 없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수사기관과 법원에서 별도로 주거부정을 구속 사유로 지정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불구속 상태로 수사와 재판을 하기 위해서는 필요할 때마다 피의자(피고인)에게 관련 내용을 통지하고 출석을 시켜야 하지만 주거부정인 사람들은 언제든 떠나거나 사라질 수 있어 사건이 미제로 남거나, 어떻게든 수사가 이루어지더라도 재판 결과를 집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거부정인 사람들은 「경범죄 처벌법」의 특례 처분도 받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쓰레기 투기, 노상 방뇨, 구걸 등 경범죄는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과료의 형에 처하게 되어 있지만, 대부분은 특례로 범칙금을 내면 형벌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범칙금을 거부하거나 주거부정인 사람은 곧바로 즉결심판 절차에 회부되기 때문에 ‘범칙금’이 아닌 ‘벌금’을 받게 된다. 이 역시 구속과 마찬가지로 주거부정이면 서면으로 범칙금을 부과하고 징수하는 절차를 이행하지 못할 것을 우려하여 다른 시민과 차별을 하고 있다.

이밖에「형사소송법」에 따라 5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해당하는 경미사건은 체포가 불가능하지만 주거부정은 체포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주거부정은 보석도 불가능하다. 10년 이상 징역, 보복·증거 인멸·도망 우려, 누범인 경우를 제외하면 보석을 청구하면 허가해야 하지만 ‘주거가 분명하지 아니한때’에도 보석을 허가하지 않게 돼있다.

주거부정 차별은 행정 편의를 위한 것

법을 제정할 당시에는 기술적으로 어려웠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시점에서 주거부정을 차별하는 것은 피의자에 대한 신체의 자유보다 행정 편의를 위한 것에 가깝다고 판단된다.

수사와 재판과 관련된 통보, 범칙금에 대한 통보는 꼭 서면이 아니더라도 우편을 대신 수령해 줄 곳이 있거나 혹은 휴대전화로 전달하거나, 동의 하에 별도 장비를 지급하여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 이미 법원에서는 과도한 구속률을 낮추기 위한 논의가 진행돼 왔고, 보석 단계에는 ‘보석금’, ‘신원보증’, ‘거주지 제한’ 등을 통해 ‘구속과 불구속 사이의 중간 제도’가 도입돼 있다.

구속과 불구속만 존재할 때는 수사와 재판에 차질이 생기면 구속영장을 기각한 판사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중간적·대안적 구속제도를 도입한다면 불필요한 구속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국제인권법에서는 재판의 출석을 보증할 수 있는 조건을 부과함으로써 사법절차의 모든 단계에서 석방이 가능하도록 할 것을 명시하고 있고, 시행되지는 않았지만 사법개혁위원회에서는 2004년 영장 단계의 조건부 석방제도 도입에 대해서도 합의를 했다. 특히 주거부정인 피의자는 ‘집’이 없거나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구속되는 것이므로 재판을 받는 동안 머물 곳을 마련해주어 구속을 최소화 할 필요가 있다.

해외사례를 보면 ‘집을 만들어 주는’ 제도는 다양한데, 수사와 재판이 이루어지는 동안 주거부정인 사람을 보호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공적 기관을 만들 수도 있고, 지역사회의 긴급복지지원시스템과 연계해 임시 주거를 제공할 수도 있다. 영국은 지역사회 봉사명령 등 구속의 대안적인 선고가 가능하며, 미국도 경범죄로 기소된 홈리스를 구속하고 처벌하는 전통적인 사법절차의 진행방식과 다른 홈리스 법원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적절한 서비스 제공과 사회 복귀를 돕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접근법을 시도 중이다.

물론 이와 더불어 주거부정을 구속 사유, 보석불허 사유, 체포 사유에서 삭제하는 근본적인 차별 철폐 조치가 필요하다.

가난한 사람이 반복되는 생계형 절도로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정범죄가중법)」로 기소될 경우 형량이 지나치게 높다는 문제도 있다. 「형법」상 절도죄 또는 절도미수죄로 기소된 피고인은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받는다.

생계형 범죄는 비교적 가격이 낮은 생필품이나 음식물 등을 훔치기 때문에 형량이 낮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2~3번 이상 해당 전과가 있어 「특정범죄가중법」으로 기소되면 피해 액수와 관계없이 중형을 받게 된다. 벌금형 처분이 아예 없으며, 징역의 하한도 2~3년이다.

같은 법에서 가중처벌하는 도주차량 운전자, 일명 ‘뺑소니’에 대한 처벌은 2002년 ‘피해자를 치상한 때에는 1년 이상의유기징역에 처한다’에서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선고할 수 있도록 개정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집행유예도 거의 기대할 수 없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2018년 한해 동안 「특정범죄가중법」상 상습 강도·절도죄로 실형을 선고받은 1587명 중 집행유예를 받은 사람은 단 1명에 그쳤다. 과거에는 형량이 현재보다 높아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형이었다.

헌법재판소에서 2015년 ‘형사특별법으로서 갖추어야 할 형벌 체계상의 정당성과 균형을 잃어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보장하는 헌법의 기본원리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단순위헌 결정(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 2014헌가16)을 내려 무기징역 형은 사라졌으나 하한선이 징역형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문제는 절도죄의 재복역 비율이 높아 한 번 절도를 저지른 사람은 이후 가중처벌로 중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절도죄로 수감됐다가 2014년 출소한 사람 중 46.8%가 2015~2017년 사이 징역형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을 받고 교도소에 재복역했다. 이는 마약류 범죄로 수감된 이력이 있는 사람(48.4%) 다음으로 높은 비율이다.

범죄의 내용에 비해 가혹하게 처벌받는 이른바 ‘장발장 범죄’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특정범죄가중법」개정안은 다음과 같다. △상습 절도는 2~3년의 실형이 하한으로 되어 있는데, 하한을 낮추는 방향으로 개정이 필요하다. △현재는 징역형만 선고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벌금형을 추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피해 금액에 따른 기준을 신설하여, 피해 금액이 경미한 사건에 대해서는 가중처벌하지 않는 방식으로의 개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처벌할 때는 ‘홈리스’, 지원할 때는 ‘노숙인’

위와 같은 법률 개정은 가난한 사람들, 떠도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 및 과도한 처벌을 완화할 수는 있지만 회전문의 한 축인 빈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복지로 해결해야 할 빈곤으로 인한 범죄 문제를 구치소와 교도소에 가두는 것으로 대응해왔다.

구속 여부를 결정하는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에 서는 사람들의 주거부정은 다양한 양태로 나타난다. 거리노숙뿐 아니라 판사에 따라서는 여관·여인숙, 고시원, 쪽방, 일터의 일부 공간, 친척 집, 없거나 적은 보증금, 짧은 거주기간, 단절된 사회적 관계 등이 주거부정으로 여겨질 수 있다.

사법체계에서 통용되는 주거부정은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홈리스의 정의와 거의 동일하거나 그보다 넓은 편이다. 국제사회에서 홈리스는 좁은 의미의 거리노숙인뿐 아니라 임시거처 및 숙박업소 거주자, 가족이나 친구의 집에 거주하는 사람까지 포함한다.

2018년 방한한 UN주거권특보도 쪽방, 고시원, 여관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홈리스로 정의했다. 문제는 주거부정이 국제사회의 홈리스와 포괄 범위가 같거나 혹은 그보다도 더 포괄적으로 해석돼 가난한 사람들의 인신을 구속하는 근거가 되고 있지만, 이에 반해 정책 대상으로서의 홈리스가 사는 곳은 거리, 노숙인시설, 쪽방상담소가 설치된 일부 쪽방촌으로 한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노숙인복지법)에서는 ‘노숙인 등’을 ‘상당한 기간 동안 일정한 주거 없이 생활하는 사람’, ‘노숙인시설을 이용하거나 상당한 기간 동안 노숙인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 ‘상당한 기간 동안 주거로서의 적절성이 현저히 낮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다만 실제로 ‘주거로서의 적절성이 현저히 낮은’ 쪽방, 고시원, 여관·여인숙, PC방·만화방·찜질방 등을 잠자리로 이용하는 홈리스는 보건복지부나 지자체에서 실시하는 ‘노숙인 등’의 조사나 정책에서 대부분 제외된다. 보건복지부가 파악하고 있는 노숙인은 2016년 기준 약 1만8000명이지만, 국토교통부에서 조사한 고시원, 여관·여인숙 등 주택이외의 거처 거주 가구 수는 2017년 기준으로 약 37만 가구다.

보증금이 거의 없이 주택에 월세로 거주하는 가구도 휴대전화가 없거나, 주변에 가족이나 친구가 없으면 영장 재판에서 주거부정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주거부정에 해당하는 가구의 규모는 국토교통부에서 파악하고 있는 주택 이외의 거처에 거주하는 약 37만 가구를 크게 상회할 것이라 판단된다.

구속하고 처벌할 때는 주거부정을 국제사회에서 정의하는 홈리스 이상으로 폭넓게 보는 반면, 「노숙인복지법」을 근거로 한 복지지원 대상은 문자 그대로의 노숙인인 거리, 시설, 일부 쪽방으로 협소하게 적용하고 있다. 즉, 구속하고 처벌할 때는 홈리스가 대상이고, 지원할 때는 노숙인이 대상이다.

체계적인 복지지원 통해 사회 재정착 지원해야

잘 곳과 먹을 것이 없는 사람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자유를 포기하고 교도소에 가는 것인 상황에서 생계형 범죄에 대한 처벌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힘들다. 형사사법체계에서 배가 고파서 음식을 훔치거나 무전취식을 할 정도의 절대빈곤 상태에 놓인 주거부정인 사람이 발견될 경우 사법절차 진행과 동시에 복지제도를 통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이 진행돼야 한다.

사법절차와 복지시스템을 연결하는 것이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시도되지 않았던 만큼 주거부정인 사람에 대한 복지 연계가 가능해지려면 사법부(법원)와 행정부(법무부, 보건복지부, 국토교통부), 지자체 등 관련 주체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우선 법무부에 형사절차 관련 복지담당부서를 설치하고, 관련 주체들이 참여하는 기구를 마련해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일단 사법절차와 복지시스템이 연계되기 시작하면, 주거부정인 사람이 재판을 치르는 ‘수감 이전’ 단계부터 형이 확정되고 ‘출소 이후’ 지역사회에 재정착하는 모든 단계에 걸쳐 주거가 단절되지 않는 것을 목표로 지원해야 한다.

구체적인 지원 방안은 추후 논의가 필요하지만, 본 연구에서 도출할 수 있는 지원 내용과 그 효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주거부정 피의자를 대상으로 긴급복지지원제도를 활용하거나 주거와 생필품뿐만 아니라 주민등록 복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신청 지원 등 사례관리를 제공하는 임시주거비지원 사업 등 이미 구축돼 있는 홈리스 주거지원 체계를 이용해 수사와 재판의 출석을 담보함으로써 구속을 최소화할 수 있다.

둘째, 현행 법률하에서 소액 절도나 무전취식 같은 생계형 범죄는 피해 금액은 적은 데 비해 형이 무겁다. 보건복지부나 지자체가 활용할 수 있는 자원으로 우선 피해를 보상해 합의하도록 지원하는 기구나 기금을 설치한다면 구속과 기소를 최소화할 수 있고, 형벌의 수위를 낮춰 사회로의 재정착을 원활하게 할 수 있다.

셋째,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이 출소자를 대상으로 공급하는 주거 지원 대상자는 원칙적으로 부양가족이 있는 사람이다. 이를 1인 가구인 대부분의 주거부정인 사람을 포함하도록 하고, 국토교통부와의 협조를 통해 공급물량도 실제 소요에 맞는 규모로 확대할 수 있다.

넷째, 법무부에 설치된 형사절차 관련 복지 담당부서에서는 구치소 출소, 형기만료 출소를 앞둔 시점에서 주거부정인 사람에 대한 체계적인 복지지원이 이뤄지도록 기존 수용자 교육 및 상담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출소 이후 지자체와 연계하여 생계·의료·주거·취업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 이 원고는 한국도시연구소와 경향신문이 공동기획하였으며, 한국도시연구소를 후원하는 회원들의 회비를 통해 수행된 ‘떠도는 사람들의 빈곤과 범죄 보고서’를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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