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검색 바로가기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사회안전망
  • 승인 2020.06.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구글+
네이버밴드
네이버블로그
네이버폴라
핀터레스트
URL복사

서상목 한국사회복지협의회장
서상목 한국사회복지협의회장

한국 사회안전망의 진화과정

한국은 선(先)경제개발-후(後)사회개발 전략을 추진하여 성공한 나라로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나라 사회안전망의 진화과정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사회안전망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공적부조사업은 1961년 생활보호법이 제정된 이후 1981년 KDI 연구 결과를 토대로 영세민 자립기반 조성 사업과 빈곤 세습화 방지 대책 등의 개선안이 추진됐다. 1999년에는 국민의 생존권을 법적 권리로 인정하고 보호 수준도 높이는 등의 개혁조치와 함께 법명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으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회보험의 경우 공무원연금법이 1960년 처음으로 시행됐고, 1962년 군인연금법 그리고 1975년 사립학교교원연금법이 추진됐으며, 1988년 국민연금법이 제정됨으로써 전 국민 연금화의 기반을 구축했다. 국민연금 혜택을 받지 못하는 노인을 위한 기초노령연금법이 2007년 제정돼 공적 연금 분야에서의 사회안전망도 기본 골격을 갖추게 됐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근로자 권익보호를 위한 근로기준법이 시행됐고, 1963년 산업재해보호법이 제정됨으로써 근로자 보호를 위한 사회안전망의 기초가 마련됐다. 건강보험 분야는 1977년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보호제도 실시와 아울러 대규모 사업장에 의료보험이 강제 적용되는 의료보험법 개정을 통해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됐다. 이에 더해, 2007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도입됨으로써 건강부문에서의 사회안전망 역시 완성됐다.

우리나라 사회복지서비스 분야 발전은 민간부문이 주도했다. 한국전쟁으로 고아원 등 사회복지시설 수요가 급증했고, 이들 시설의 설립과 운영은 민간 독지가들의 몫이었다. 이 과정에서 외국 원조와 구호가 큰 몫을 했고, 민간복지시설 연합체로 1952년 부산에서 설립된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역시 민간과 정부 간 가교 역할을 담당해 왔다. 1970년 제정된 사회복지사업법은 민간 복지활동의 범위와 책임을 규정하는 기본 틀이 됐다.

1983년에는 사회복지사 자격증 제도를 구체화하고, 법정단체로서 사회복지협의회의 기능을 명시하는 법 개정이 있었다. 1990년 전후로 종합사회복지관이 건립되기 시작했고, 영유아법 제정으로 보육시설이 급증함은 물론, 동 주민센터에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이 배치됨으로써 사회복지서비스 분야에서 정부의 역할이 크게 확대됐다.

우리나라 사회안전망 진화 과정은 크게 네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해방 이후 1961년까지 외국 원조에 의지하던 시기로 1953년 근로기준법과 1960년 공무원연금법 제정 외에는 별다른 업적을 거둘 수 없었다.

두 번째 단계는 1961년부터 1977년까지로, 생활보호법 제정을 통해 영세민 구호사업을 체계화하고 군인, 교원 등을 위한 특수직역 연금을 추진하는 등 경제개발 성과를 바탕으로 사회안전망을 단계적으로 구축해 나갔다.

세 번째 단계는 1977년부터 2010년까지로, 경제발전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사회안전망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크게 높아진 시기다. 그 결과 공적부조는 물론 사회보험 더 나아가 사회복지서비스 분야에 이르기까지 사회안전망 체계를 견실하게 세웠다. 따라서 이 기간은 경제발전과 사회발전 간 나름대로 균형이 이루어졌고, 경제정책과 사회복지 정책의 발전방향에 대한 보수와 진보세력 간 합의도 가능했던 시기였다.

네 번째 단계는 2010년 이후 현재까지로, 2010년 지방자치 선거에서 무상급식이 쟁점이 되면서 사회복지 분야의 정책과 사업이 선거의 핵심공약으로 부각됨은 물론 득표 전략으로 활용됨으로써 사회복지에 대한 지속가능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현행 사회안전망의 문제점

우리나라 사회안전망은 해방 이후 70여 년의 진화과정을 거치면서 나름대로 기본 골격을 갖추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 중 첫 번째 문제는 저소득층 보호를 위한 복지사업 가짓수가 너무 많고 자격 요건 역시 다양하고 복잡해 복지 수혜자가 누락되는 ‘복지사각지대’ 문제와 중복과 탈법으로 복지 혜택을 받는 상황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4년 2월 송파 세 모녀 사건, 2019년 7월 발견된 탈북자 모자 아사 사건 등 참상이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사회보장정보원 설치 등 정부 차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복지사각지대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40%를 상회하는 노인빈곤 문제 그리고 연령이 높을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자살문제 역시 오랜 기간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 역시 우리나라 사회안전망의 허점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우리나라 사회안전망의 두 번째 문제는 지속가능성에 관한 의문이다. 이는 특히 공적연금의 경우 매우 심각하다. 역사가 오래된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은 2018년 현재 각각 2조2000억원, 1조6000억원의 적자를 내고 있는데 그 규모는 매년 증가할 전망이고 이는 전액 국고로 충당해야 한다. 국민연금 역시 현재는 연금 수급자가 적어 적립금이 2019년 7월 현재 700조원에 달하고 있으나, 현재 9%의 보험료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2058년에는 기금이 모두 소진될 전망이기 때문에 이에 따른 정부의 재정 부담 역시 막대한 수준이 될 것이다. 이에 더해, ‘문재인 케어’ 정책 추진으로 건강보험 재정도 보험료 인상을 하지 않으면 재정 위기를 맞을 것이고, 코로나19 후속대책으로 논의되고 있는 ‘전 국민 고용보험’ 추진 역시 정부 복지재정에 큰 짐이 될 것이다.

기존 사회안전망의 세 번째 문제는 고용이 안정되고 ‘평생직장’을 전제로 설계된 기존 사회안전망이 소득 격차가 심해지고 고용 불안이 커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적절할지에 대한 의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모두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팬데믹(pandemic)으로 세계 경제가 마비되는 상황에서 기존 사회안전망은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한국은 물론 미국, 일본 등 선진국 대다수가 어려움에 처한 기업에 대한 긴급자금지원과 동시에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긴급재난보조금’을 지급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새로운 사회안전망의 기본 골격

필자는 기존 사회안전망에 대한 대안으로 최근 국제사회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기본소득제도(UBI: Universal Basic Income)’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사회안전망 설계를 제언한다.

흔히 기본소득제도를 도입하려면 엄청난 규모의 새로운 재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최근 사회정책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시민단체인 LAB2050의 연구 결과에따르면 성인 1인 기준 월 30만원 수준의 기본소득제도 추진에 필요한 재원을 새로운 세금 신설이나 세율 인상 없이 기존 복지제도와 조세 감면제도의 전면적 개편만으로 마련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이 연구 결과에 대한 더욱 심층적인 분석이 필요하나, 기본소득제가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할 수 있다는 기대를 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필자가 기본소득제도를 새로운 사회안전망의 중심에 두려는 이유는 이 제도가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저소득층 지원 제도의 맹점인 근로 의욕 감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대표적 공적 부조 제도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경우 일단 수혜대상으로 지정되면 무상 의료, 생계비 지원, 주거 지원 등 각종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에 수혜자들은 추가 소득으로 인해 수혜대상에서 탈락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각종 복지혜택을 누리는 이들을 ‘준공무원’이라고 부른다. 물론 근로 능력이 있는 수혜자에게는 직업 훈련 및 안정 과정을 거쳐 취업해야 하는 의무가 주어지나 실제로는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소득에 관계없이 누구나 혜택을 보는 기본소득제도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둘째, 선별복지의 경우 항상 문제가 되는 대상자 선별 기준과 과정에 대한 시비가 기본소득제도에서는 발생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은 이번 긴급재난지원금 추진 과정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다. 처음에는 하위 70%에게만 지급하려 했으나, 대상자 선정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급증하자 정부는 지급대상을 모든 국민으로 바꾸었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정한 재난지원금 사용처에 대한 논쟁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현금을 주는 기본소득제도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셋째, 기본소득제도는 현행 사회안전망의 최대 취약점인 복지사각지대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 복지사각지대 문제는 기본적으로 수혜자 선정 기준이 까다롭기 때문에 발생하는데, 모든 국민에게 똑같은 혜택이 돌아가는 기본소득제도에서는 복지사각지대 문제가 발생할 수 없다. 또한 기본소득제도가 정착되면 만성적 적자를 보고 있는 공적연금의 개혁도 가능해질 것이다.

새로운 세금의 신설이나 세율 인상 없이 기본소득제도를 추진하려면 기존 복지제도와 조세 감면제도를 포함한 경제정책의 전면적인 개편이 불가피하다. 우선 우리나라 복지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가짓수가 많고 수혜 기준이 너무 복잡하다는 것이다.

최근 언론보도에 의하면 현행 복지제도의 소득에 관한 수혜기준이 무려 100여 개에 달할 정도로 복잡하기 때문에 이를 4개로 단순화하는 작업을 정부가 추진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기본소득제도 실시로 현금성 복지제도의 통폐합이 이루어진다면 이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조세감면 제도 역시 복잡하기는 마찬가지다. OECD는 한국의 조세 감면제도가 고소득층에게 유리하게 설계돼 있기 때문에 재정의 소득재분배 효과가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따라서 기본소득제도 도입을 계기로 기존의 조세 감면제도를 전면 개편한다면 조세의 효율성은 물론 소득재분배 기능 역시 크게 제고될 것이다. 이에 더해, 우리는 최저임금제, 주 52시간 근로 등 저소득층을 보호하려는 목적의 경제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사회안전망이 확고히 구축된다면 경제 정책은 경제논리에 충실한 방향으로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기본소득제도 추진과 더불어 사회복지서비스 분야에서도 민간의 자발성과 혁신성을 촉진하면서 공공은 서비스 기준을 정하고 준수여부를 확인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사회복지서비스 분야에서 민간 차원의 인적 자원과 시설 운영 경험이라는 무형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코로나19 사태 수습 과정에서 민간 의료계가 보여준 성공 사례를 교훈 삼아, 가칭 ‘한국형 사회서비스(K-SS) 모델’을 개발하여 이를 국내에 정착시키고 더 나아가 국제사회에 전파할 것을 적극 건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