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일본의 커뮤니티케어와 관련된 이슈들이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어, 한국형 커뮤니티케어의 도입을 둘러싼 논의과정에서 정책설계와 지원방식에 대한 많은 시사점을 제시해주고 있다. 일본 지역포괄케어의 현황을 살펴보고,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생각해본다.

지역사회 통합 돌봄과 지역포괄케어

2018년 11월, ‘어르신이 살던 곳에서 건강한 노후를 보낸다’는 슬로건과 함께 ‘지역사회 통합 돌봄’ 기본계획이 발표됐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 2026년까지 한국 실정에 맞는 커뮤니티케어 모델을 개발하고 법 제도 정비 및 인프라 확충을 통해 지역사회를 바탕으로 한 통합 케어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기본계획에서 말하는 커뮤니티케어란 ‘주민들이 살던 곳(자기 집이나 그룹홈 등)에서 거주하면서 개개인의 욕구에 맞는 서비스를 누리고 지역사회와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주거, 보건의료, 요양, 돌봄, 독립생활의 지원이 통합적으로 확보되는 지역주도형 사회서비스 정책’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본격적인 실시에 앞서, 2019년 6월부터 8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선도 사업이 진행되고 있고, 그 성과와 과제를 둘러싼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일본에서는 우리나라보다 한 발 앞서, 커뮤니티케어에 준하는 정책으로서 지역포괄케어 시스템 구축이 추진되고 있다. 2005년부터 지역포괄케어에 대한 정책화 논의가 시작되어, 2012년에는 관련법률 정비를 통해 본격적인 추진을 위한 제도기반이 마련됐고, 이후 각 지자체 실정에 맞는 케어시스템 구축을 위해 다양한 노력들이 전개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일본의 커뮤니티케어와 관련된 이슈들이 우리나라에도 소개돼, 한국형 커뮤니티케어의 도입을 둘러싼 논의과정에서 정책설계와 지원방식에 대한 많은 시사점을 제시해주고 있다. 이번 글을 포함한 앞으로 몇 번의 원고에서는, 일본 지역포괄케어의 현황을 살펴보고,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그 첫번째로, 이번 글에서는 일본 지역포괄케어의 원류라 일컫는 히로시마현 미츠기쵸(御調町, 2005년부터 오노미치시에 통합됨)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미츠기쵸의 지역통합케어 시스템 구축사례는 지역포괄케어 제도화의 청사진을 제시한 중요한 실천모델로 알려져 있다. 그 추진배경과 과정, 성과를 중심으로 사례를 되짚어보기로 하자.

지역포괄케어 시스템이란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전체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일본의 지역포괄케어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자. 지역포괄케어 시스템은 지역사회의 고령자가 지금까지 살던 지역에서 잔존능력을 활용하면서 자립된 일상생활을 계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한 서비스 지원체계를 말한다. 이를 위해 지역사회 실정에 맞추어 의료, 요양, 예방, 주거 및 일상생활지원 등 포괄적인 서비스제공이 요구된다.

지역포괄케어는 고령자가 자택에서 약 30분 이내 권역인 중학교구(中學校區) 정도의 일상생활권 내에서 자가 및 고령자주택 등과 같은 재가에서 생활하면서, 방문간호·의료·요양 등 다양한 서비스 이용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계속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처럼, 그 개념과 구성요소를 보면 우리의 지역사회 통합 돌봄과 많이 닮아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지역포괄케어의 실천적 원류는 1974년경 히로시마현 미츠기쵸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미츠기 종합병원단지를 중심으로 한 의료, 보건, 요양, 복지의 통합적 제공이 성과를 얻으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해, 2000년대 이후 지역포괄케어 시스템의 제도화 논의 과정에도 많은 시사와 영향을 준 대표적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미츠기쵸 지역포괄케어 추진 성과

1970년대 초반, 미츠기는 인구 8800명, 인구밀도 106/㎢(전국평균의 1/3)인 전형적인 농촌지역이었다. 고령화율은 16.7%로 전국 평균(9.1%)보다 20년 이상 빠른 수준이었다. 한편, 재가 와상노인 수가 히로시마현 전체 평균보다 30% 이상 많았다.

당시에는, 뇌졸중에서 회복된 환자들이 퇴원을 하더라도 재가에서 충분한 계속적 치료가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퇴원 후 와상노인이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또한 병원의 외래진료와 입원치료, 요양, 기타 서비스는 제각각 제공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환자와 가족들은 통합적인 케어환경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고, 일부 의료관계자들과 지자체는 그러한 주민의 욕구를 인식하고, 와상노인 증가를 억제할 방안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야마구치 노보루 씨는 미츠기 종합병원장을 30여 년간 역임하면서(현 명예원장) 의료 보건복지의 통합적 제공시스템을 고안하고 추진한 주요인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야마구치 원장은 분절된 의료와 요양, 복지, 재활 및 예방 서비스의 통합적 지원이야말로 와상노인을 줄이면서 효과적이고 질 높은 케어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배경은 병원치료만으로 와상노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의료현장에서 몸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1974년부터 의료진이 환자를 직접 찾아가는 방문진료와 방문간호를 시작하면서, 이른바 ‘의료배달’ 서비스가 첫발을 내딛는다. 이후 지자체와 의료관계자에게 계속적으로 통합케어의 필요성과 지원을 피력했고, 점차 여러 협력자들의 공감을 얻으면서 추진이 본격화된다.

1984년 지자체로부터 지원을 받아 병원부설로 설립된 건강관리센터에는 지자체의 보건복지 관련 부서 및 사회복지협의회를 상주시킴으로써 의료와 보건복지의 통합적 지원을 강화했다. 1989년부터는 의료와 긴밀한 연계를 통한 케어서비스 제공을 위해 병원부지 내 노인보건시설을 설립하고, 이후 방문간호, 케어하우스, 그룹 홈 등의 요양서비스 거점이 추가돼간다.

40병상 정도의 소규모병원에서 시작해, 현재는 24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과 보건복지 관련시설을 두루 갖춘 보건복지 종합타운으로 발전했다. 지역통합케어 기반구축이 시작 된지 10여 년이 지난 시점부터 그 성과가 구체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첫째, 와상노인 수의 감소이다. 미츠기쵸는 히로시마현에서 재가 와상노인비율이 가장 높았으나, 지역통합케어 시스템이 도입된 10년 후부터 그 비율이 눈에 띄게 감소(1% 이하)했다. 이는 와상노인이 회복돼 병상에서 털고 일어났다는 것이 아니라, 통합적 케어를 통해 그만큼 와상노인의 발생을 예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성과는 병원과 방문간호, 요양서비스 기관 간의 긴밀한 연계 협력 없이는 이룰 수 없었다고 관련자들은 당시를 회고한다.

둘째, 의료비 상승의 둔화이다. 미츠기쵸의 노인의료비는 1987년까지 히로시마현의 평균을 웃도는 수준이었지만, 그 이후 평균이하로 감소돼 유지되고 있다. 그 이유로는 우선, 다양한 재가의료 및 요양서비스 이용을 통해 오연성 폐렴, 요로감염, 욕창 등 와상노인들의 전형적인 증상이 예방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의료종사자 간 연계 및 노인요양시설 증가 등으로 인해 조기퇴원이 가능해졌다는 점도 주요한 요인으로 분석된다. 다만, 노인의료비 통계에는 장기요양비가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의료비 감소분이 장기요양비용을 증가시켰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음에 유의해야 한다.

셋째, 건강진단을 받는 주민수가 증가했다. 미츠기쵸의 건강검진 실시율은 히로시마현 전체와 비교해서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이는 미츠기 병원에 소속돼 있는 보건사가 실시하는 ‘공중위생 추진운동’의 성과라고 평가된다. 다른 대부분의 자자체는 보건사가 공무원신분이고 주로 보건소에 배치돼 있지만, 미츠기쵸에는 미츠기 종합병원에 의료 복지 전문직과 함께 배치돼 있어, 일상적으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연계가 수월하다는 장점을 가진다. 자원봉사자를 포함한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다양한 전문직들의 기능을 활용한 예방교실 프로그램을 운영해, 건강과 예방에 대한 의식이 확산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건강검진자 수가 증가해 급성질환 발생률이 감소했고, 와상노인이 줄면서 의료비 상승이 억제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미츠기쵸 방식이 주는 시사점과 일반화의 한계

미츠기쵸의 사례는 소규모 기초지자체가 독자적으로 지역케어시스템을 구축한 최초의 사례로, 당시로서는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앞서 말한 성과들이 정책입안자들에게 주목을 받으면서 지역포괄케어 시스템 구축이라는 정책형성을 이끌어낸 마중물 역할을 했다고도 평가된다.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한 의료, 요양, 복지 등 다직종 전문직의 연계 협력을 통한 통합케어 서비스 제공은, 지금까지도 많은 지역이 안고 있는 만성적 실천과제라 할 수 있다. 1970년대 당시에 이러한 획기적인 지자체 중심의 케어시스템 구축을 구상하고 실천에 옮겼다는 점에서 가히 높이 평가할 만하다. 당시에는 지방자치가 본격화되기 이전이었고, 장기적인 비전제시와 재정지출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지방행정관계자들의 적극적 협조와 지원이 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미츠기쵸 방식이 지속적으로 추진될 수 있었던 것은, 야마구치 원장이라는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지역의료전문가와 그 지지자들이 있었다는 점, 그리고 지역포괄케어의 성과를 인정하고 지자체 운영의 전략으로 삼아 적극적인 행정·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추진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미츠기쵸 방식이 다른 지자체에도 효과적인 전략이 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측면이 있다. 즉, 미츠기쵸는 복합의료복지시설이라는 거점을 활용해 의료, 요양, 예방, 복지서비스의 통합화를 통해 분절적 서비스 제공의 한계를 개선했다. 이러한 복합시설 혹은 서비스거점 구축을 통한 방식이 미츠기쵸에서 성과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은 (초)소규모 지자체라는 특성을 간과할 수 없다. 즉 의료기관 및 요양·복지서비스 제공기관이 소수이고 밀집돼 있었기 때문에 기관 간 인력 및 기능의 연계 협력이 비교적 수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중소도시, 하물며 대도시는 권역설정을 하더라도 다양한 서비스 공급조직의 이해관계가 상충되고, 전체를 아우를 만한 중간조직을 구성하고 원활히 기능케 하기가 쉽지 않다는 운영상 한계를 가진다. 또한 재정적자 가시화 및 장기화되는 현 상황에서 지자체단위의 복합시설 정비를 위한 막대한 비용부담은 정치적 측면에서도 옹호되기 쉽지 않은 전략이라 할 수 있다.

2000년대 이후 제도화 구상단계에서도 이러한 정책적 일반화의 한계점들이 지적되면서, 결과적으로 지역포괄케어의 정책추진 모델로는 ‘오노미치시 의사회’가 제시한 ‘의료·복지·요양의 연계사업’이라는, 각 영역간의 기능적 ‘네트워크 구축 방식’이 채용된 바 있다. 이후 일본 정부는 지역포괄케어 시스템 구축에 대한 기본방침에 있어서, 특정 모델 제시를 통한 일률적 추진이 아닌, 지역특성과 주민욕구, 재정상황 등을 충분히 고려한 실질적이고 장기적인 지역포괄케어를 구축하기 위한 다양한 방식을 모색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일본의 지역포괄케어는 제도·정책에 근거한 전달체계 혹은 기반구축을 의미하는 ‘시스템’이라는 용어가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그러한 연유이다.

우리나라의 지역사회 통합 돌봄을 위한 정책 추진에 있어서도 이러한 지역사회의 다양성을 고려한 지역밀착형 구축 방식들이 논의돼야 할 것이다. 복합시설형, 네트워크형, 그 이외의 다양한 전략들이 논의되고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장기적인 안목에서 지역의료복지체계가 마련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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