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의 일상화, 뉴노멀 시대

하지선 연구원
하지선 연구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이제 사람들은 감염병이 일상화되는 시대를 이야기 한다. 학계에서는 지구 온난화와 같은 환경 변화 등의 영향으로 신종 감염병이 4~5년 주기로 반복해서 유행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정부는 '사회적 거리 두기'에서 '생활 속 거리 두기'로 전환하면서 감염병의 일상화에 대응해 나가고 있고 우리사회 각 영역 또한 정부 대응 흐름에 맞추어 각자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대응 방안은 개인이 생활수칙을 지키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초점을 두어서는 안 된다. '손을 잘 씻어야 한다'는 수칙은 손을 잘 씻을 수 있는 시간과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수칙은 국가 지원이 필요한 사안이다.

복지영역 대응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금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수많은 복지 공백을 목격했다. 복지 부문 대응을 위해서는 개인과 개별 기관 차원의 수준 실천을 넘어 재난 속에서 벌어진 복지 공백의 실상을 자세히 알아야 한다. 또 복지환경실태와 복지정책 및 사회안전망에 대한 근본적인 점검에서부터 새로운 방안 도출에 이르기까지 진지한 논의가 따라야 할 것이다.

감염병과 고립, 생존을 위한 버티기 

코로나19에 대한 사회적 조치가 시행되면서 사회복지 분야에 여러 가지 쟁점이 떠올랐다. 고질적인 문제가 재점화되기도 했고,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새롭게 부각되는 것도 있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사회적 거리 두기는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방역 전략이었다. 아직 사태가 종료된 것은 아니지만 일련의 의미 있는 성과도 거두었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세심한 배려가 부족한 탓으로 복지 취약 계층을 또 다른 위험 상황에 직면케 했다.

대면 복지 서비스 불가로 복지기관, 장애인·노인 돌봄 시설은 폐쇄되었고, 무료 급식과 일자리 사업도 중단됐다. 생활 지원과 돌봄 서비스의 갑작스런 중단은 복지서비스 대상자를 하루 아침에 고립시켰고 당장 '먹고 사는 문제'를 발생시켰다.

무료 급식소가 문을 닫거나 간단한 주먹밥으로 대체하자 바로 끼니 걱정을 하는 노숙인과 쪽방 주민의 한숨소리가 들렸다. 정부의 '(임금의) 선 지급 후 노동'대책으로 문제가 다소 완화되기는 했지만 일자리 사업의 중단으로 생업을 잃은 노인들이 반찬과 약을 줄이는 모습도 보았다. 긴급 돌봄서비스를 제공한 서울시를 포함해 정부는 전례 없는 노력과 신속한 대응을 하고 있지만, 문 닫힌 복지관 뒤로 일상이 중단되고 좁고 컴컴한 골방에 고립되어 가는 이들이 눈에 밟히는 것도 사실이다.

한편, 일부 취약계층은 원천적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불가능한 집단이기도 했다. 거리를 두고 싶어도 둘 수 없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이들은 어떻게든 나가 폐지를 주워야 했다. 열악한 환경의 노인요양시설, 정신질환자 폐쇄병동, 중증장애인 생활시설 입소자들은 '코호트 격리'조치로 감염의 두려움을 안고 내내 격리되어 있었다. 1인 1실 공간이 확보되지 않은 채 말이다.

익숙한 주제, 그러나 새로운 논의의 시작

코로나19는 생존과 감염의 두려움을 번갈아 오가는 이들의 고통을 통해 복지의 민낯을 보여주었다. 열악한 우리 사회적 안전망은 재난 상황을 더 고통스럽게 했다. 누군가에게는 매우 필요했을 사회시스템은 정작 작동하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드러난 복지의 사각지대와 소외계층의 삶은 기존 복지체계의 불충분성, 불평등성, 불형평성에 기인한다. 코로나19가 가까스로 진정돼 가는 마당에 새롭게 시작해야 할 것은 복지제도의 근원적인 속성에 대한 반추(反芻)이다. 오랜 구조적 불평등, 불형평은 새로운 시대에 자리 잡아야 할 국가 운영에도 걸림돌이 될 것이다. 지자체와 중앙정부는 재난 상황에서 언제나 최악의 피해를 보는 것은 취약 계층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우리 사회복지 체계의 변화를 예상하기 쉽지 않지만 많은 NGO와 시민단체는 현재에도 장애인, 노숙인, 이주민과 같은 취약 계층이 직면하고 있는 상황을 모니터하면서 정부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사회안전망의 강화

코로나19 안정세 이후 해야 할 첫 번째 사회복지 과제는 사회안전망의 강화이다. 죽지 않을 만큼만 준다는 ‘아마존 복지’가 지속되는 한 감염병이 일상화된 시기에 복지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특히 공적 부조 체계의 강력한 재구조화를 통해 오랜 구조적 불평등과 불형평을 효과적으로 완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부양의무 제도, 빈곤을 증명하기 위한 복잡한 서류 작업과 높은 선정 기준, 미래를 꿈꾸지 못하게 하는 낮은 보장성과 열등처우의 원칙, 신청주의와 미비한 정보제공, 복지의 개인 책임화 등의 폐해를 제대로 인지하고 과감하게 변화를 도모해나가 재난 상황에서도 탄탄히 작동하는 안전망을 갖추어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 지역사회 돌봄 체계 구축 추진

전염병 감염 재난 발생 시 좁은 시설에서 1인 1실이 확보되지 않은 채로 격리되는 일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아야 하겠다. 시설 환경 개선과 더불어 지역 돌봄(커뮤니티 케어) 체계가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 다만 코로나19 이후의 지역 돌봄 체계는 코로나19 이전과는 달라야 한다. 감염병을 상수로 두고 돌봄 인프라의 확충과 운영의 재조직화가 필요하다. 지역 돌봄 서비스 체계 구축의 조속한 활착을 위해서는 공공성 강화가 시급하다. 또한 돌봄 노동자의 업무 환경 변화와 지원도 대폭 개선될 필요가 있다.

또 복지기관이 일정 기간 문을 닫더라도 지역 돌봄 체계가 원활히 작동하여 고립된 채 일상이 무너지는 일 또한 없어야 하겠다. 이에는 의식주뿐만 아니라 대인 관계와 일상 활동에 대한 발 빠른 지원도 포함된다. 금번 대구·경북지역의 코로나19 대응에 있어 다수 자원봉사자가 휴대폰에 기반 한 정신 건강 상담을 실시하여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한 바 있다. 이는 코로나19 이후 지역 돌봄의 상시적 체계에서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예이다.

또한 감염병이 일상화된 시대의 지역 돌봄 체계는 여러 가지 비대면 복지서비스 방식과 결합되어야 한다. 비대면 복지 서비스의 다양한 방법과 내용이 적극적으로 개발되는 것 또한 동시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겠다. 이에는 4차 산업 기술의 도입도 적극 검토해봄직하다.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일상적인 재난 복지 체계 구축

감염병이 일상화된 시대의 지역사회 돌봄 체계와 복지서비스는 지금과는 다른 양상일 것이다. 그 체계는 감염병과 재난에 대응 하면서 현재보다 뚜렷이 지역마다 다른 형태를 지니게 될 것이다. 지역이 보유하고 있는 복지행정 체계, 복지 및 보건 자원, 연계 체계의 속성과 정도, 지역주민의 인구사회학적 특성, 지형, 시설 분포, 나아가 코로나19에 대한 경험 등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지역별(광역 및 기초 자치) 복지서비스와 지역사회 돌봄 체계, 지역 소통구조를 구축한다. 부족한 보건 및 복지 인프라는 구축하고 기존에 존재하는 인적·물적 자원은 협의와 연계 체계 구축을 통해 새로운 복지 체계와 함께 상승(上乘) 효과를 거두어야 한다. 지역별 재난 복지체계를 구축하되 이와 동시에 감염병 발병 시 지역 간 속도감 있는 협업 체계, 그리고 전국적인 감염병 복지 체계도 구축해야 한다. 물론 평상시 시뮬레이션 작업을 통해 원활한 운영을 위해 필요한 예행연습도 필요하다.

시민사회의 재발견 : 재난관리 거버넌스 주체로

금번 코로나19사태에서 또 하나의 가능성을 보았다면 그것은 ‘시민 정신’, ‘시민 연대’일 것이다. 어쩌면 현재 우리나라의 성공적인 코로나 대처는 많은 부분 시민의 역할 덕분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시민들은 사회적 거리두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캠페인이나 정보 공유를 통해 헌신하는 의료진을 응원하였고, 온·오프라인을 통해 이웃에 대한 다양한 격려와 돌봄 활동을 하였다. 또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견제와 지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필자는 이러한 시민의 역할은 새로운 시민사회의 정체성 형성을 위해 의미 있는 시발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경험한 시민의 역할은 감염병의 특성 상 앞으로도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감염병 예방과 대응에 협조하는 역할을 넘어 재난 관리의 중요한 주체로서 정부와 협치를 이루어 감염병 대응을 완성시키는 역할로 자리매김 하게 될 것이다. 정부는 시민이 싹틔운 새로운 역할과 연대적 활동을 지속시키고 정책 환경을 조성하여 이들의 활동을 활성화 하는데 배전의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

결어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은 감염병의 일상화에 대비해야 한다. 시대마다 고민해오던 질문이었지만 뉴노멀 시대에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져본다. '우리는 어떻게 행복하게 살 것인가?’ 금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얻은 답 중 하나는 우리 사회 취약 계층에 그간 충분한 복지가 이루어졌는지 꼼꼼히 들여다보고, 여러 수준과 영역의 단위들이 연대하고 협력하여 함께 전진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 영역은 생활 방역 체계의 마련과 더불어 포스트 코로나 시대 준비를 위해 서서히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 우리 서울특별시사회복지협의회 또한 감염병의 일상화 시대 복지 역할을 조망하고 복지 현장에 따른 맞춤형 대응 계획을 수립하는 데에 앞장서고자 한다. 또한 새로운 시대를 맞아 시민의 역할을 지원하는 조직이 되고자 한다. 선진 복지사회와 함께 행복한 시민을 희망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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