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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정신, '코로나 블루' 치유를 위한 '사회적 백신'
  • 승인 2020.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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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Before Corona)를 넘어, A.C.(After Corona)의 일상으로

김가원 연구원
김가원 연구원

2015년 3월 미국의 저명인사 초청 강연회인 TED에 빌 게이츠가 출연했다. "만약 앞으로 몇 십 년간 무엇인가가 천만 명이 넘는 사람을 죽인다면 그건 아마 전쟁이 아니라 전염성이 매우 강한 바이러스일 겁니다." 짧은 8분 스피치에서 그는 우리 인류가 전염병에 대한 준비가 매우 부족하다고 경고했다. 그로부터 5년. 그의 발언은 현실이 되었고, 전 세계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 놓였다.

코로나19 관련 TV, 라디오 뉴스, SNS와 연일 울려대는 재난 문자는 평범한 우리 일상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한국기자협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 두 달 여간 국내 18개 일간지·경제지가 보도한 기사 중 '코로나' 단어가 들어간 기사가 6만 개 정도라고 한다. 하루에 1000개 정도 나온 꼴이다. 5월 6일 기준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자는 370만명, 사망자는 25만명이며 계속 증가 추세에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지역감염 사례가 안정·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대구광역시는 코로나19 상황이 안정화 흐름을 보이자 그간 경증 환자 격리치료에 활용한 생활치료센터 운영을 4월 30일부로 모두 종료했으며, 정부는 5월 6일 그 간의 '사회적 거리 두기'를 '생활 속 거리 두기'로 전환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엔 이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의 가장 근본적인 종식 해결 방안인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최소 5년은 걸릴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즈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앞으로 세계 역사는 'B.C.(Before Corona, 코로나 이전)와 'A.C.(After Corona, 코로나 이후)로 나뉠 것이라 했다. 이는 코로나19를 기원전(BC), 기원후(AD)에 버금가는 분수령으로 구분한 것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이 역사의 한 시대를 규정하는 이정표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코로나19 사태와 그로 인한 여파는 이미 우리 삶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더 이상 우리는 코로나19의 감염 확산 현황 수치에만 관심을 멈추지 않는다. 코로나19는 장기전이다. 이제 코로나19와 공존하는 일상을 생각해야 할 때다. B.C.(Before Corona)를 넘어 A.C.(After Corona) 일상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보아야 한다.

봉쇄된 일상, 코로나 블루(Corona Blue)

A.C.(After Corona)시대에 사는 요즈음, '코로나 블루'를 호소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코로나 블루(Corona Blue)는 '코로나19'와 '우울'을 뜻하는 'Blue'가 합성된 신조어다. 이는 코로나19의 확산과 함께 일상에 큰 변화가 닥치면서 생긴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을 뜻한다. 구체적인 원인은 뉴스와 재난 문자에 대한 지나친 우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한 일상생활의 제약 등이다. 주요 증상은 자신이 코로나19에 걸릴 수 있다는 불안감과 작은 기침에도 감염을 의심하는 두려움에서부터, 외출을 자제함으로써 답답함과 무기력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 나아가 두통, 어지러움, 소화불량, 식욕 감퇴 등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연구팀 발표에 의하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사회적 거리 두기의 일환으로 시행되고 있는 격리 조치가 우울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은 우울할 때 자신을 기운나게 하는 것들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는데, 코로나19로 인한 폐쇄와 사회적으로 고립된 상황에서는 이런 활동 선택이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의 국민 정신건강 실태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국민 10명 중 4명(42.5%) 이상이 우울감 정상 범주를 벗어났다고 밝혔다. 특히 중등도 이상의 우울 위험군은 17.5%로, 2년 전(3.8%)보다 4배 이상 늘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일상화로 사회적 관계가 느슨해지면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도 줄고 있다. 한국리서치 조사에 의하면 '우울할 때 도움을 청할 사람이 있다'는 답변은 68%에 그쳤다. 지난해 조사에서 86%를 보인 것에 비하면 무려 18%포인트가 줄었다.

지난 3월 18일 제주시에서는 실종됐던 중증 자폐성 장애인인 18세 아들과 어머니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3월 29일 대구에서는 코로나19로 장사가 안 돼 월세 내기가 힘들다고 호소하던 50대 자영업자가 도심에서 분신을 시도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사회적 관계지수가 OECD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재난 사태로 우울과 불안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사회적 관계가 취약해지면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는 사회적 위험도가 급격히 높아진다. '코로나 블루' 극복에 있어서 공동체 회복을 통한 사회적 관계망 구축이 절실한 이유이다.

코로나 블루(Corona Blue)를 극복하는 공동체의 힘

'코로나 블루' 극복을 위해 지역사회에서는 다양한 노력이 펼쳐지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주요 다중이용시설은 출입이 제한되었지만, 가정으로 찾아가는 구호물품 전달, 다양한 심리·정서적 프로그램 등을 제공함으로써 공공과 민간, 사회복지기관과 기업 및 다양한 유관기관들이 '코로나 블루'에 맞서 공동체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 '코로나 블루'를 극복하고 일상의 재개를 준비하는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자.

부산광역시는 코로나19로 사회적으로 고립된 주민들의 심리적 방역을 위해 '마을건강센터'를 운영하여 주민밀착형 재난 대응을 펼치고 있다. '마을활동가'들이 우울증 및 치매 등의 우려가 있는 건강 소외계층 가정을 방문해 건강꾸러미를 전달하고 활용법도 교육한다. 건강꾸러미는 컬러링북, 퍼즐 등 우울감을 해소하고 인지 능력 향상을 돕는 놀이 및 교육재료로 구성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소규모 공동체 활동인 '건강동아리' 자조모임을 지원하는 등 공동체를 활용한 다양한 '코로나 블루' 대응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경기도 안산시 자살예방센터는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 자살 고위험군에 대한 집중 돌봄 사업에 착수했다. 최근 상담 과정에서 우울감을 호소하는 주민이 많이 늘었기 때문이다. '정신건강전문요원'이 시민들의 정신건강 상태를 수시로 파악하며, 아동, 청소년, 성인, 노인 등 대상별 맞춤형 스트레스 관리를 돕는 '살구(살리고 구하고) 백신'을 각 가정에 배송하는 심리지원을 펼치고 있다. '살구 백신'은 마스크, 손 세정제 등 방역 물품과 반려식물 키트, 스트레스 극복 권고 안내문, 자살 예방 마스코트 ‘살구’ 관련 홍보물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길음종합사회복지관은 감염에 대한 불안감과 외부활동 제한으로 인한 '코로나 블루'를 호소하는 독거노인에게 '마음방역 희망박스'를 전달했다. '생활지원사'들이 어르신 가정을 방문해 응원의 손 편지를 읽어드리고, 식료품, 마스크, 파스 등 구호물품과 함께 심리방역 식물로 '콩나물 재배 키트'로 구성된 희망박스를 통해 어르신들의 우울감 및 고립감을 해소하고 있다. 또한 생활지원사와 어르신이 함께 콩나물을 재배하고 반찬 조리까지 하는 과정을 성장일지로 기록한다.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 블루가 해소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자체와 사회복지기관, 후원기업이 함께 힘을 모은 것이다.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는 SK하이닉스 사회공헌활동인 '실버프렌드'를 통해 '코로나 블루'를 혁신적으로 극복하고 있다. '실버프렌드'는 IT기술을 융합하여 독거노인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편리한 생활을 지원하고자 SK하이닉스가 2018년부터 실시한 사회공헌 사업이다. 이 중 '도란도란 서비스'는 기존 단순히 센서를 활용해 어르신 가정 내 움직임을 모니터링 하여 고독사를 방지하고자 실시한 서비스에 인공지능 스피커를 활용해 어르신이 직접 IT기기와 대화하고 상호 작용하는 서비스가 더해진 것이다. 2019년 2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도란도란 서비스'는 사회적 고립감이 심화되는 ‘코로나 블루’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IT기술을 접목한 공동체 구축으로 그 역할이 재조명되고 있다.

이상 열거한 사례들은 지자체, 보건소, 자살예방센터, 사회복지기관, 기업 사회공헌팀 등 다양한 기관이 코로나 블루라는 사회문제에 함께 공감하고 협업하여 해결해 나감으로써 우리 사회에 ‘공동체’ 기능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사회적 백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질병 퇴치를 '인류가 마주할 수 있는 가장 큰 도전'이라 말한 빌 게이츠는 코로나19 이후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인 치료제와 백신이 없는 상태에서, 오늘도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전 국가적 위기를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얻었다. 앞서 우리는 코로나 블루에 대처하기 위해 지역사회의 공동체 구축을 통한 '코로나 블루' 극복 노력을 살펴보았다. 이것은 사소해 보이지만 우리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가치이다. 그야말로 공동체는 감염병을 이겨내는 '사회적 백신'인 것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는 데 가장 위대한 영웅은 각자의 위치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한 '우리' 모두라 생각한다. 정부는 코로나19 관련 다중이용시설 및 사회복지시설 대응 지침, 돌봄 서비스 등 개별 정책 관련 운영 지침 등을 마련해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고자 했다. 사회복지시설은 휴관과 동시에 요보호 이용자에 대한 헌신적인 보호, 지자체 등 유관기관과 긴밀한 협조체계로 이 위기를 견뎌냈다. 한국사회복지협의회는 재난 현장 최일선에 있는 다양한 사회복지시설을 지원하고, 위기 상황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 대정부 정책 건의를 하는 가교 역할을 수행했다. 이러한 일은 수많은 사회복지시설의 협조와 기업의 나눔 활동, 시민의 자발적인 자원봉사 참여 등 우리 모두가 코로나19 사태에 정면으로 맞서 공동체의 힘을 모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A.C.(After Corona) 시대의 시작, 코로나 블루를 극복하여 코로나 이후 대응 전략을 모색하는 현 시점에서,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다독이는 공동체 정신이야말로 우리가 귀하게 새겨야 할 가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