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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온 장애인의 날. 그 단상"
  • 승인 2020.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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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기 교수
이승기 교수

1981년 장애인의 날이 공식적으로 정해지고 40년이 흘렀다. 올해는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이쯤이면 언론에서 산발적으로나마 심층적으로 다루어지던 장애 관련 이슈가 많이 줄어든 느낌이다. 그러나 장애에 민감한 사람이 아닐지라도 장애에 관심이 그다지 많지 않은 사람이라도 조금만 주위를 돌아보면 여전히 장애 이슈는 첨예하게 진행 중이며 우리 곁에서 동행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현재에도 깊고 넓게 펼쳐져 있는 장애를 관통하는 본질적 이슈는? 차별이 아닐까. 지하철에서, 광장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일상생활 속에서, 그리고 우리의 잠재적 의식 속에도 자리 잡은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느낌과 차별들. 장애는 힘든 것이다. 수많은 제도에서 장애는 구색 맞추기 일 때가 많다. 해결 기미도 잘 보이지 않는다.

1981년 장애인의 날이 만들어진 해 6월 5일 심신장애자복지법이 제정되었다. 장애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규정한 최초의 법이다. 그 법을 지금 보면 새삼 장애에 대한 제도적 발전이 그간 눈부시게 이루어졌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법조문은 겨우 32개 조문이다. 실질적인 내용은 장애인의 시설수용에 관한 것이 거의 전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심신장애자복지법의 후행 법률인 장애인복지법은 현재 90개 조문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외에도 별도의 법률이 제정되어 건강, 권리, 차별, 고용, 교육, 이동, 활동지원, 편의시설 등 대부분의 생활 영역을 망라하고 있다.

문제는 장애 친화적이지 않은 우리 사회

장애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눈치 챘겠지만, 이러한 결실은 장애인 당사자와 활동가, 가족의 헌신적인 노력과 투쟁으로 맺은 것이다. 이렇게 양적으로 질적으로, 장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진전이 있었음에도 장애는 여전히 버겁고 고단한 문제이다.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커다란 문제의 핵심을 짚으라면 우리 사회가 장애에 친화적이지 않다는 점이 아닐까? 아침 출근길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을 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지 보여주는 실험도 있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출근길 복잡한 지하철을 타기 위해 줄 앞에 서 있어도, 뒤에 서 있던 비장애인이 자신을 스쳐 먼저 지하철을 타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오히려 비장애인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이렇게 복잡한 시간에 왜 지하철을 타러 나왔는지 힐난하는 듯한 시선도 아련히 다가온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만들고 저상버스를 도입하고 장애인차별금지법을 통해 차별금지도 제도화 해보았지만, 그건 치열한 순간에 작동하지 않는다. 여유로울 때, 가외의 시간에 비장애인에게 불편이 없는 한도 내에서다. 주요한 순간에 함께 하지 못하고 일상생활에서 배려를 받아야만 한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지하철을 타기 위해 서 있는 줄은 비장애인이 서있는 줄과 마찬가지라는 생각, 비장애인 몇 사람이 탈 수 있는 공간이 요청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날은 언제 올까? 오기는 하는 것일까?

장애인의 날이 되면 행사준비에 분주해진다. 이번 해는 예외이긴 하지만. 고위직 인사들이 참여해서 축사도 하고 시상도 하고 장애를 위해 앞장서겠노라고 호언장담도 한다. 그런 행사는 필요한 것이다. 상징적이기도 하고 그만큼 관심을 환기하기도 하고. 그러나 그뿐이다. 40년 동안 그랬다. 장애인의 날에 의해 장애의 고단함이 덜어지도록 변화된 것은 아주 미미했다. 오히려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나가는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들의 일상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힘을 응축시켜 폭발하여 변화를 끌어내곤 했다.

장애를 바라보는 시각 전환 위한 장기 플랜 준비해야 할때

그러나 언제까지 그렇게 촉발된 이슈를 통해 사회가 변화하기를 기다려야 하는가? 이제 좀 새로운 시도를 해보아야 하지 않는가? 그런 변화가 나타나도록 하는 것은 결국 사회가 가지는 장애에 대한 생각의 전환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교육을 통해, 실제 생활에서 비장애인이 장애인과 접촉하며 상호간 공감과 서로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장애를 바라보는 시각을 전환하기 위한 장기적 플랜을 준비해야 한다. 유치원부터 시작하는 장애에 대한 교육. 초등학교를 거치고, 중학교를 거치고, 고등학교를 거치고, 대학교를 거치고, 직장을 거치고, 평생에 걸쳐 장애에 대해 교육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철저하게 이행된다면 지금부터 40년이 지난 2060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는 것은 무척 쉽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다. 출근길 지하철을 기다리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자연스럽게 순서에 맞추어 지하철을 탈 수 있을 것이다.

장애는 시작이고 촉발점일 뿐이다. 아동, 여성, 노인들도 이러한 변화의 물결에 동참해야 한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으로 존중받는 사회. 장애로 시작하여 사회의 전 분야에서 그러한 발전이 일어난다면 장애인의 날은 장애인의 행사가 아닌 전 국민의 행사로 축하받을 것이다. 그 자리는 모두 웃으며 다시 한 번 힘을 내자고 다짐하며 그간의 수고를 격려하는 자리가 되지 않을까? 장애인의 날이 그렇게 기념되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