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고려장’… 건강권·생명권에 심각한 피해

“얼마 전 활동지원이 끝났습니다. 가족도 없어 활동지원사가 아니면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오늘도 침대에서 간신히 나왔습니다. 65세가 된 이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만65세 연령제한 사라져야 합니다. 활동지원 끊기고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를 월 591시간 이용하던 김용해 씨(54년생)는 지난해 만65세가 되면서 장기요양서비스로 넘어가 서비스 시간이 월 90시간으로 삭감됐다며 이 같이 호소했다. 장애인이 만65세가 되는 생일 다음 달까지만 활동지원급여를 받을 수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 때문이다.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는 2011년 10월 ‘장애인활동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른 활동지원급여제도가 시행되면서 시작됐다. 신체적·정서적 장애 등의 사유로 혼자서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운 장애인에게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최중증장애인에게는 생존을 위한 권리이자 지역사회 통합과 참여를 위한 필수 서비스다.

장애인활동지원 연령 제한 폐지 운동본부가 1월 7일 서울 중가 국가인권위원회 로비에서 발대식을 갖고 ‘장애인활동지원 연령 제한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사진제공 뉴시스]
장애인활동지원 연령 제한 폐지 운동본부가 1월 7일 서울 중가 국가인권위원회 로비에서 발대식을 갖고 ‘장애인활동지원 연령 제한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사진제공 뉴시스]

65세 이후엔 ‘비장애노인’ 되나?

만6세 이상부터 만65세 미만인 등록 장애인은 소득에 상관없이 활동지원 등급에 따라 활동지원 수급을 받을 수 있다. 활동지원서비스를 통해 장애인은 ‘집에만 있거나 시설에 갇혀 있기만 하는 존재’가 아닌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현재 장애인활동지원제도는 만65세 이상이 되면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적용 대상이 되어 자립생활에 중점을 둔 지원에서 요양과 보호만 지원하는 내용으로 변경된다. 즉, 활동지원을 수급 받던 장애인은 만65세가 되는 해에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따라 수급심사를 받아야 하고, 심사 후 장기요양 등급이 나오게 되는 경우 활동지원은 중단되고 하루 최대 4시간의 요양서비스를 받거나 요양시설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에 장애계는 올해 초 ‘장애인활동지원 만65세 연령 제한 폐지 운동본부’를 발족하고 ▲만65세 연령제한 피해 당사자 인권위 긴급 진정 상담 및 지원 ▲장애인활동지원법 개정 추진 등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운동본부는 “장애인활동지원을 받던 최중증장애인에게 ‘제도간 형평성’을 이유로 노인장기요양으로 강제 전환시키는 것은 장애인으로서의 특성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비장애노인’이 되는 것처럼 만드는 터무니없는 정책”이라며 “‘현대판 고려장’이라 불리는 만65세 연령제한을 폐지하고 장애인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활동지원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운동본부, 10만명 목표 온라인 서명 진행

국가인권위원회에도 이와 관련한 진정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65세 생일을 맞이했거나 곧 맞이할 예정인 중증장애인 12명에 대해 해당 지자체에는 “65세가 된 중증장애인의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중단으로 생명 또는 건강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되지 않도록 관련 서비스를 제공할 것”과 보건복지부 등 관계기관에 “시급성과 절박성을 감안해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조속한 지원 대책을 마련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긴급구제 및 긴급 정책 권고를 결정했다.

인권위는 결정 이유로 “65세에 도달했다는 이유만으로 하루 최대 22시간까지 지원받던 활동지원서비스를 3~4시간으로 급격히 축소되게 하는 현 제도는 중증장애인의 기본적인 생리욕구 해결을 불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욕창, 저체온증, 질식사 등 건강권과 생명권에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시설 입소를 강요하는 해당 기준은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현저히 저해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긴급구제’가 강제성은 없어 당장 실효성 있는 대안이 나오기는 어려워 보인다. 2016년부터 인권위는 몇 차례에 걸쳐 보건복지부장관에게 장애인활동지원 수급자인 장애인의 경우 만65세가 되면 장애인활동지원 제도와 노인장기요양보험 중 필요한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을 개정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지난해 9월에는 3명의 중증장애인에 대해 같은 이유로 긴급구제를 결정했지만, 복지부는 서비스 대상과 목적이 다르고 재정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인권위의 권고를 수용하지 않았다.

한편, 장애인활동지원 만65세 연령 제한 폐지 운동본부는 65세가 넘어도 활동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10만명을 목표로 온라인 서명을 진행 중이다. 3월말 기준으로 1200여 명이 서명에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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