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노숙인의 삶 인정하고 비뚤어진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아야

방동환 사회복지사는 “소통하고 공감할 줄 아는 기본을 지키는 사회복지사가 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방동환 사회복지사는 “소통하고 공감할 줄 아는 기본을 지키는 사회복지사가 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사회복지사로 현장에 첫발을 디딘 곳은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였다. 과거 법 제정 전까지는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 ‘다시서기상담보호센터’로 불렸지만 2012년 ‘노숙인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후에는 ‘서울시립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로 명칭이 변경됐다.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는 노숙인 보호와 상담, 시설입소 및 주거·일자리·의료 등 복지서비스 연계, 노숙인 인식개선과 인권보호 활동을 하고 있다. ‘홈리스의 인간다운 삶의 회복을 위하여 함께 한다’는 미션 아래 ‘거리에서 희망으로 원스톱! 논스톱!’이라는 비전과 존중·화합·변화의 3가지 핵심가치를 갖고 활동하고 있다.

이곳에서 사회복지사로서 노숙인과 인연을 맺었지만 처음에는 내가 알던 사회복지 현장과는 사뭇 다른 모습에 힘들기도 했다. 보통 노숙인이라 하면 상당한 기간 동안 일정한 주거 없이 생활하거나, 혹은 주거로서의 적절성이 현저히 낮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 그리고 노숙인 시설을 이용하거나 노숙인 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마주한 이들은 노숙인 외에도 노숙위기 상황에 놓인 알코올중독자, 정신질환자, 치매어르신, 가정폭력으로 인한 가출자, 출소자, 외국인 노동자 등 훨씬 다양하고 복합적인 문제를 가진 분들이었다.

가장 극단의 빈곤상황에 이르러 더 이상 갈 곳도, 의지할 곳도 없어 결국은 어쩔 수 없이 거리를 선택 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현실을 마주하면서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대체 어떻게 해야 노숙인들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 낼 수 있을까? 사회복지사로서 이들이 자립과 자활이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사회복지사로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그렇게 나 나름대로 내린 결정은 ‘노숙인들과 충분히 소통할 것’, ‘그들의 삶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것’이었다. 이 두 가지를 먼저 준비하지 않으면 ‘번 아웃되는 건 한순간이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노숙인들과 충분히 소통하기 위해서는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했다. 가능한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려 노력했다. 한번은 방송 프로그램 촬영을 협조 받아 담당 PD와 서울역에서 밤늦은 시간부터 새벽까지 아웃리치 거리 상담을 한 적이 있다. 촬영 허락을 받고 거리에서 노숙을 하던 한 분과 촬영을 시작했다. 담당 PD와 이야기를 나누던 그는 본인이 살아온 이야기를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 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걷지도 못하시는 어머니까지…. 집안에는 허구한 날 재산 가압류 처분 딱지가 붙어 있었어요. 그 놈의 빚 어떻게든 갚아보려고 무던히도 노력을 했죠. 결국은 늘어난 빚과 이자를 감당 못하고 신용불량자가 돼서 서울역에 나올 수밖에 없었어요. 신용불량자라고 일도 못 구하고…. 일용직 나가 손수레라도 내 돈으로 사려고 수십만원 모아 장만했고 돈도 좀 벌어서 방도 얻었는데…. 그 때 뿐이더라고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담당 PD가 질문을 했다.

“그럼 혹시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그러자 노숙인은 고개를 떨어뜨리며 답했다.

“제일 중요한 건 가족이에요. 가족…. 나머지는 일시적인 것뿐이고 가족이 꼭 필요하죠.”

거리 상담을 통해 이미 그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는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담당 PD의 질문에 당연히 돈이나 집 등이 필요하다고 답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가족’이었다. 그 순간 ‘내가 제대로 소통하고 공감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해졌던 기억이 난다.

함부로 예단하거나 판단하지 않아야

내가 만난 노숙인은 가난한 환경 속에서 불우한 성장기를 보낸 분이 많았다.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른 출발점에서 삶을 시작한 분들이었다. 인간은 부모를 가려가며 태어날 수 없고, 힘겨운 어린 시절 성장기의 삶을 선택할 수 없다. 때문에 현재의 어려운 삶을 온전히 노숙인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것은 어찌 보면 우리의 잘못된 판단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신분제가 존재하고 그 경계선을 오가는 것이 점점 더 힘들고 불가능해지는 요즘 현실을 보면서 ‘태어날 때 주어진 환경이 그 사람의 남은 삶을 결정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갖게 된다.

그래서인지 어려서부터 가난한 가정환경 때문에 평범한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노숙인의 불행한 삶을 마주할 때마다, 왜 그들이 그렇게 화를내고 술을 찾게 되는지 어렴풋이나마 이해되고 공감됐다. 이후 나는 가능하면 노숙인의 모습을 함부로 예단하거나 판단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그들이 보이는 알 수 없는 혹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도 결국은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지금은 비록 지독한 가난 때문에 낙오자로 혹은 게으름뱅이로 평가받으며 낙인찍힌 삶을 살아가지만 남보다 가진 것이 많이 없을 뿐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자 하는 노숙인의 삶은 존중받아야 하고 포기되어져서는 안된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고 우리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노숙인의 삶을 인정하고 비뚤어진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을 것’,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경청할 것’, ‘내가 먼저 마음을 열 때 라포가 형성될 수 있음을 기억할 것’.

노숙인 복지현장에서 사회복지사가 지켜야 할 어찌 보면 당연한 덕목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으나 가장 기본적인 것을 지키는 것이 가장 사회복지사다운 것 아닐까? 소통하고 공감할 줄 아는 기본을 지키는 사회복지사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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