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정책실장
이용석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정책실장

노인을 위해 종합계획을 세우고 활기찬 노후를 위해 제도를 만드는 ‘우리’나라는 있어도 고령장애인의 기준을 정하고, 맞춤형 복지제도를 설계하는 ‘우리’나라는 없다. 고령장애인에 대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지원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14%를 넘어 초고령사회를 향해가고 있다. 특히 장애인의 연령 분포는 장애유형별 편차는 있지만, 만65세 이상이 46.6%로 가장 높고, 50~64세가 30.3%로 높을 만큼 장애를 가진 고 연령층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고령장애인은 대체 누구를 지칭하는가? 아직까지 명확한 법적 기준은 없다. 다만, 장애노인 즉 고령장애인은 장애가 있는 노인을 의미하며 노인복지법에서 규정한 만65세 이상의 장애인구를 의미한다.

하지만 학계를 중심으로 장애인구의 경우 조기노화와 비장애인에 비해 낮은 기대수명 등 좀 더 이른 연령의 고려가 필요하니 50세 이상 장애인을 고령장애인으로 정의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리고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에서는 55세 이상을 고령자로, 50~54세를 준고령자로 정의하고 있으니, 법적 기준을 고려할 때 55세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갖는다.

고령장애인은 누구인가?

장애인은 신체, 심리, 기능, 사회심리적인 변화를 경험하는 조기노화 상황을 겪게 되는데, 조기노화는 장애발생 이후 15~20년 이상이 되면 급격하게 진행된다. 이러한 변화는 2차적 장애를 불러와 심리적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2~3배로 높이는 등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되어 결국 장애에 노화가 더해짐으로써 삶의 질이 급격하게 나빠지게 된다. 이러한 어려움을 보완할 수 있는 우선적인 사회서비스가 고려되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고령장애인은 장애를 언제부터, 얼마나 경험하게 되는지를 기준으로 ‘고령화된 장애인’과 ‘고령화로 인한 장애인’이 차이가 있는데, 두 고령장애인 유형의 복지서비스 욕구가 다르다. 노화로 인해 장애인이 된 사람들의 복지서비스 욕구는 장애의 원인인 신체적 건강 회복을 위한 의료서비스에 맞춰져 있다.

그에 비해 고령화된 장애인들은 기존의 장애인 서비스 영역에 남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현재의 노인서비스가 장애특성을 반영해 설계된 서비스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고령화된 장애인은 장애인으로 살아오면서 겪었던 고용불안, 빈곤 등을 해소할 수 있는 각종 사회서비스, 자기옹호, 당사자주의 인식 및 사회참여 제도에 익숙한 상황에서 노인복지서비스로의 전환을 서비스의 박탈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령기준을 낮추어 몇 세부터를 고령장애인으로 볼 것인가 보다 더 중요한 점이 있다. 몇 세까지를 장애정책 및 서비스 대상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현재 장애영역과 노인영역의 정책 및 서비스는 분절적이다. 65세 이상의 장애인은 자동적으로 노인서비스로 이동해야 하는가? 장애인구의 급격한 고령화 경향을 고려할 때, 향후 이와 비슷한 현재의 제도에 대한 논란은 지속될 것이다.

고령장애인, 활기찬 노후의 역설

‘활기찬 노후(active ageing)’에 대한 개념정의는 WHO에서 정리한 바 있는데, ‘고령화되어 감에 따라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건강, 사회참여 및 안전에 대한 기회를 극대화하는 과정’으로 정의내리고 있다(WHO, 2002). WHO에서는 건강, 사회참여 및 안전에 대한 기회를 지속적으로 유지함으로써 수명연장이 동반되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그러한 과정을 표현하고자 ‘활기찬 노후’라는 용어를 채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활기찬 노후’는 전생애에 걸쳐서 신체적, 사회적 및 정신적 안녕(wellbeing)을 위한 능력을 실현시키게 해주고 자신들의 욕구, 희망, 능력에 따라 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으로 보고 있고, 그 이면에는 원조가 필요할 때 적절한 보호·안전 및 케어를 제공하는 것도 포함하고 있을 뿐 노동시장의 참여나 신체적인 활동능력 향상이 그 목적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장애인의 연령 증가에 따라 욕구는 증가하지만 반대로 서비스 이용경험은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를 ‘활기찬 노후의 역설(Paradox)’이라고 규정했다. 그렇다면 전 생애를 걸쳐 장애인으로 살아온 사람이 다시 ‘노화’라는 이중의 어려움을 겪게 되고 만65세가 되어 고령장애인으로 분류돼 노인서비스로 이동하게 되면 활기찬 노후를 통해 잘 늙어갈 수 있을까?

고령장애인의 활기찬 노후에 대한 개념적 접근과 지원방안에 대한 논의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큰 이슈는 ‘건강’과 ‘빈곤’이라 할 수 있다. 건강은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안녕한 상태(보건복지부, 2015)’이며, 특히 고령장애인에게 조기 노화와 2차 장애 등을 고려한 신체적 건강의 쇠퇴를 예방하고 기능증진 방안이 고려되어야 한다.

이러한 상황을 현재 시행되고 있는 ‘장애인건강권법’상의 ‘장애인주치의제도’에 제도화함으로써 소위 ‘문재인 케어’의 범위, 즉 지역사회 안에서 다양한 체계를 마련해야 하지만 결국 보건복지부를 포함한 당국의 시행의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빈곤문제 해결이 곧 고령장애인의 복지

인구의 고령화와 함께 심각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노인들의 ‘빈곤’이다. OECD 한눈에 보는 연금 2017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66~75세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4 2.7%, 76세 이상 노인의 빈곤율은 60.2%로 비교 대상 38개 회원국 중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66~75세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OECD 회원국 평균인 10.6%의 4배, 76세 이상은 OECD 회원국 평균 14.4%의 4.2배에 달하며, 전체 인구의 상대적 빈곤율이 14.4%인 것과 비교하면, 66~75세 노인은 3배, 76세 이상은 4.2배로 빈곤율이 높았다. 이러한 심각한 빈곤 문제는 고령장애인의 심리상태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예를 들어 2017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45~64세의 63.9%, 65세 이상의 63.2%가 주관적 소속계층이 하층이라고 밝혔으며,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 대상이 45~64세는 18.9%, 65세 이상은 10.6%로 나타났다. 또한 ‘지난 1개월간 개인 소득의 수입원별 평균 금액’은 45~64세 이하는 147만9000원, 65세 이상은 81만 2000원으로 2018년 1인 가구 최저생계비인 167만원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고질적인 빈곤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고령장애인의 ‘활기찬 노후’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고령장애인의 삶의 질을 어떻게 향상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는 곧, 만연한 빈곤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연령이 증가할수록 장애인가구의 가구소득은 감소하고 장애인의 노화를 경험하는 인구의 경우 가구자산이 상대적으로 낮은 경향을 보이며, 노화과정 장애경험 인구의 경우 과부담 의료비 지출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고령장애인의 경우 취업 등을 통해 소득보장이 되지 않으면 결국 공적 부조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우리나라 장애인의 국민연금 가입률은 18세 이상 장애인 3명 중 1명인 34.1%에 불과하다. 다른 공적·민간연금 가입률도 극히 저조한데, 개인연금 3.8%, 공무원연금 2%, 사학연금 0.4%, 군인연금 0.3%, 보훈연금은 1.9%의 가입률에 지나지 않는다. 그 결과 장애인의 48.4%가 중위소득으로 구분하는 ‘상대적 빈곤층’이고, 장애인의 31.1%는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절대적 빈곤층(보건복지포럼 2015년 8월호 장애인의 경제 상태와 정책과제)’이다. 이 같은 사실은 장애인 특히, 46.6%에 달하는 고령장애인은 ‘삶의 질’은커녕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과도한 의료비 지출에 허덕이고 있다는 것의 방증이기도 하다.

정부는 지난해 제2차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 종합계획을 발표하고 노인일자리 80만개를 제공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3급 이상중증장애인, 즉 고령장애인을 계획에서 말끔하게 제외했다. 이렇듯 국가는 정책계획에서조차 고령장애인을 배제하고는 여전히 ‘자격을 갖춘 노동인력으로 양성’되어 일을 통해 먹고 살라고 요구하는 이른바 생산적 복지정책만을 내놓고 있다.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설계된 노인 정책에 고령장애인에 대한 정책적 관심은 없어 보인다. 한 예로 고령장애인이 만65세가 되면 활동지원서비스는 자동 중단되고 강제로 노인장기요양보험으로 전환되는 것처럼 고령장애인을 장애인서비스에서조차 분리해 배제시키고 있다. 노인 정책에서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배제시키고, 장애인서비스에서는 노인이라는 이유로 활동지원서비스마저 중단시킴으로써 소득보장도 돌봄서비스도 받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영국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고령화 문제가 오래전부터 사회정책의 대상이었지만, 장애인의 고령화는 정책의 차원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이후부터 특히 2차 세계대전 당시 장애인이 된 사람들이 노인세대가 되고, 1920년대 이후 소아마비 등 다양한 전염병에 의해 장애인이 된 사람들이 노인세대가 됨에 따라, 고령장애인의 존재와 그들의 욕구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시작됐다고 한다. 현재 영국에서는 고령장애인에 대한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장애인과 노인을 구분하고 있지 않다. 계층 전체를 대상으로 욕구에 따라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활동지원제도를 통해 돌봄서비스가 더 필요한 노인은 돌봄서비스를, 사회적 활동지원이 더 필요한 장애인은 활동보조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 우리나라처럼 연령에 따른 칸막이가 없다. 또한 사회서비스를 개인예산제도를 통해 공급함으로써, 이용자의 선택과 통제권을 국가가 적극적으로 대응해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고령장애인의 사회적 문제를 최소화 할 수 있다.

연령이 증가할수록 장애인가구의 가구소득은 급격하게 감소한다. 반면에 장애인은 조기노화로 인한 신체적 기능의 현저한 감퇴가 2차 장애를 유발하게 되어 과중한 의료비 지출 비중이 높아지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연령이 증가할수록 이용할 수 있는 복지서비스는 오히려 감소한다는데 있다. 결국 고령장애인은 소득의 감소와 조기노화로 인한 2차 장애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증가하지만 장애인 복지서비스의 책임도 노인복지서비스의 책임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 머물러 있게 되는 것이다.

복지서비스의 당사자 결정권 보장

앞서 언급했듯이 ‘생산적 복지’의 정책적 환경에서 고령장애인은 국가의 정책에서 말끔하게 배제되는데, 국가는 정책계획에서조차 고령장애인을 배제하고는 여전히 ‘자격을 갖춘 노동인력으로 양성’되어 일을 통해 먹고 살라고 요구한다.

이렇듯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설계된 노인 정책에 고령장애인에 대한 정책적 관심은 없다. 결국, 고령장애인에 대한 지원은 △‘고령장애인’ 연령에 대한 명확하고 현실적인 개념 정립과 △이를 통해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지원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지원방안이란, 가장 먼저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빈곤 문제 해결 즉, ‘나쁜 일자리’의 강요가 아닌 지역사회 내에서 가능한 공공적 성격의 일자리 개발을 통한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소득보장체계 마련이 필요하다. 또한 ‘활기찬 노후’를 위한 건강관리 체계와 ‘장애’에서 ‘노인’으로 전환되는 활동보조서비스 등 복지서비스의 당사자 결정권이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의 각 정당 공약 어디에도 고령장애인을 위한 제도는 없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아니, 노인을 위해 종합계획을 세우고 활기찬 노후를 위해 제도를 만드는 ‘우리’나라는 있어도 고령장애인의 기준을 정하고, 맞춤형 복지제도를 설계하는 ‘우리’나라는 없다. 평생 ‘장애’와 ‘가난’이란 이중의 굴레를 떠안고 살아내다 마침내 늙음에 이르러 다시 한정되고 제한적인 복지서비스와 맞닥뜨렸을 때 고령장애인은 삶의 위기의식을 느끼거나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장애로 인해 돌봄 대상으로 전락한 후 가족에게 느끼는 심리적 부담, 경제적 어려움 등의 부정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통합적서비스 체계 구축 등 현실적 대책이 마련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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