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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위기, 그 이후의 세상은?
  • 승인 2020.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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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회 교수
구인회 교수

이제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계인구가 100만명이 되었고 사망자는 5만명을 넘어섰다. 얼마 후 이 글이 공개될 시점에는 이 수치들이 벌써 흘러간 옛이야기가 될지도 모를 속도로 바이러스 확산이 진행되고 있다. 불과 몇 달 전 우한이라는 중국의 한 지역에서 새로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해외토픽 거리로 전해지더니 영화에서나 등장할 것 같은 상황이 우리의 현실이 되어버렸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계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여러 국가들의 명암이 교차하고 있다. 중국은 바이러스 발생에 투명하게 대처하지 않은 탓에 엄청난 국민의 희생을 치르면서 세계적인 감염 확산의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중국과 밀착된 관계에 있는 우리나라도 급격한 확산을 피하지 못해 감염자가 1만명을 넘었다. 다행히 한국은 발 빠른 초기 대처로 바이러스 확산의 고삐를 잡는 데 성공하였다.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의 국가들은 선제적 조치로 초기 감염 확산을 피해갔다.

그런데 정작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집중 타격을 받은 곳은 서구 국가들이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는 사망자가 이미 만 명대에 들어섰고, 독일, 프랑스, 영국이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에서는 하루 사망자가 천명에 이르렀고 현재 속도라면 수십만 명의 목숨이 희생될 수도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인구 밀도가 높고 도시로 인구가 집중된 동아시아 산업국가들이 바이러스 감염 사태의 예봉을 피해 가는데, 훨씬 발전한 경제와 안전한 사회 환경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되던 서구의 선진 산업국가들이 바이러스의 침공에 무력하게 무너지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초기대응으로 방역성공 ‘동아시아’ vs 느슨한 대응으로 방역 뚫린 ‘서구국가’

사스와 메르스 등 신종 바이러스 감염사태를 치르면서 얻은 경험을 통해 동아시아 국가들은 기민한 판단과 체계적인 방역에 성공하게 되었다. 반면에 서구 국가들은 느슨한 대응으로 초기 방역에 실패하면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21세기 들어서 20년을 지나는 시점에 거둔 동아시아의 성공은 1990년대 초반 세계은행이 발간한 보고서 “동아시아의 기적”을 연상시킨다. 당시 세계은행은 한국과 대만, 홍콩과 싱가포르를 아시아의 호랑이로 지칭하면서 이들 국가들이 단기간의 산업화를 통해 이룩한 경제적 성공을 칭송하였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평등한 소득분배도 동시에 달성한 모범적 사례로서 남미국가들의 실패와 비교되었다.

많은 학자들은 이러한 성공의 비결을 산업화 과정을 주도한 국가의 적극적 역할에서 찾았다. 기업들의 비생산적 지대추구를 억제하면서 전략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였고, 농업 등 취약산업에 대한 보호와 지원을 병행하는 데에서 국가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이렇게 사회의 집합적 이익을 도모하는 데에서 발휘된 동아시아 국가의 유능함은 감염병 시대의 방역 사업에서 다시 한 번 빛을 발하였다.

그런데 한국과 동아시아가 이룬 이러한 초기방역의 성공은 코로나19 바이러스와의 장기적 싸움에서의 승리로 이어질 수 있을까? 바이러스 확산이 진행되면서 감염 여부를 밝히는 진단 테스트와 감염경로를 추적하는 역학조사 등 보건 방역 중심의 대응도 한계에 이르고 있다. 이제 ‘사회적 거리두기’가 주요한 대책으로 실행되고 있다. 초기 대응에 성공한 한국과 동아시아 국가들은 자발적인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행하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유럽국가들에서는 봉쇄와 격리라는 강제적인 조치가 진행되고 있다.

그나마 이들 부유한 국가들에서는 일상적인 치안질서가 유지되는 속에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실행되고 있지만, 인도와 아프리카 등 빈곤 국가들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군대와 경찰을 동원한 폭력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생업을 중지하고 집안에서 생활하는 것을 요구하는데 빈곤과 불평등이 심한 사회에는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취약층이 많다.

인도와 아프리카 등 저개발국에서는 수많은 하루벌이 노동자들이 방역의 사각지대에서 노숙과 기아의 위협에 놓여 있다. 미국과 같은 불평등 사회에서는 감염 위험이 뉴욕 등 대도시의 빈민가와 러스트 벨트라 불리는 쇠락한 공장 밀집지역 저소득층에게 집중되고 있다. 부유한 나라들에서는 천문학적 수준의 재정을 동원한 위기지원으로 대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것이 여의치 않은 가난한 나라들에서는 폭력이라는 손쉬운 방법이 동원되게 된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생활방역...체계적 사회안전망 없이 지속 안 돼

전문가들은 지금의 코로나19 위기가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는 상당 기간을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면서 살아야 하고 다행히 상황이 호전된다면 엄격한 생활방역을 지키면서 생활해야 할 것이다. 장기에 걸친 사회적 거리두기와 생활방역은 체계적으로 작동하는 사회안전망 없이는 지속할 수 없다. 국가가 생업 활동을 제한하는 상황에서 영세한 자영업자, 불안정 고용 상태의 근로자들부터 직격탄을 맞게 되고, 안정된 대기업의 정규직 근로자들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 이러한 재난적 위기 상황에서 공공의 안전장치가 중요해지고, 미국을 필두로 여러 나라가 슈퍼 경기부양책을 내놓고 있다.

미국은 시민들의 생계지원을 위해 성인 1인당 1200달러씩 현금을 지급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역사상 최대규모의 지원책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불과 몇 주 사이에 실직수당 신청자수가 수백만 명이 늘었다. 실업률이 30%대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니 1930년 경제대공황에 버금갈 위기상황이 올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기업에서는 대량해고로 실직빈곤층을 양산하고 정부는 일시적인 재난수당으로 임기응변하는 대책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코로나19의 타격을 먼저 받은 유럽국가들의 대응은 미국보다 훨씬 침착하다. 노동유연성을 자랑하는 미국과는 달리 유럽에서는 고용 안정성을 강조한다. 유럽에서 기업들은 유급휴직을 늘리고 근로시간은 줄이면서 고용유지에 노력하고, 노동자는 임금삭감을 감수한다. 정부는 과감한 재정지원으로 노사의 연대적 위기대처에 따르는 부담을 덜어준다. 그래도 증가하는 실직자와 저소득층에 대해서는 탄탄한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지속적이고 제도화된 대응방안 마련 시급

우리 정부도 코로나19 위기를 맞이하여 재난지원금을 국민의 70%에게 지원하는 결정을 내리고 그 집행을 서두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의 위기가 일시적 재난수당으로 진정될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서구국가들에 비해 사회보장제도가 미비한 현실을 고려하여, 보다 지속적이고 제도화된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우선은 개인의 건강관리와 가족의 돌봄을 지원하는 유급 휴가와 휴직을 늘리고 근로시간을 단축해야 한다. 아픈데도 휴가를 가지 못하고 아이를 돌볼 겨를을 얻을 수 없는 상황에서 사회적 거리두기와 생활방역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공적인 건강보험, 유급 휴가의 보편적 확충, 근로시간 단축은 감염병 시대의 핵심적 사회정책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노동자의 고용안정을 위해 노력하는 기업에 대한 재정지원을 통해 실직자의 발생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러한 조치는 실직의 고통을 줄일 뿐 아니라, 고용관계를 유지하여 위기 이후 경제활동을 빨리 회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실직자에 대한 실업수당과 빈곤층에 대한 기초보장급여를 한시적으로 크게 확대하고, 저소득층에 대한 실업부조, 기초보장제도 부양의무자 폐지 등 예정된 조치들을 앞당겨 실시하여야 한다. 실직이 빈곤으로 이어지고 빈곤이 가족 해체와 노숙으로 이어지던 1997년 외환위기의 경험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복지와 의료 현장에서의 시설수용 위주의 전통적 접근법을 하루빨리 극복해야 한다. 정신건강, 노인요양, 장애인 생활 서비스를 시설에 수용하여 제공하는 전근대적 방식은 그간 많은 인권문제를 일으켰고, 새로 맞이한 감염병 시대에는 집단감염을 일으키는 위험을 초래한다. 이제 취약층을 시설에 수용하여 관리하는 관행을 버리고 지역사회에서 주민에게 제공하는 재가서비스를 중심으로 보건복지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새로운 감염병 시대, 집단적 연대‧협력의 사회질서 만들어야”

많은 사회가 그렇듯이 한국도 여러 위기를 거치면서 매번 새로운 사회적 삶의 양식을 만들어왔다. 한국은 1950년대 전쟁이 불러온 유례없는 위기를 성공적인 산업화의 기회로 바꾸었고, 1980년대를 거치면서는 정치 민주화의 과제까지 이루었다. 1990년대 후반에 닥쳐온 외환위기에 대한 대처는 위기로부터 빨리 탈출하는 데에서 효과를 거두었지만, 그 과정에서 희생이 너무 컸고 심각한 후유증을 낳았다.

세계화와 노동유연화, 규제완화와 감세 정책 등 외환위기를 거치며 자리 잡은 새로운 사회질서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통해 이루어낸 성공신화를 무너뜨리면서 시민의 삶을 극도의 불안정으로 몰아넣었다. 부자는 더 부유해지고 빈곤층은 더욱 빈곤해지는 사회경제 질서가 등장하였다. 노인의 자살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아동과 청소년들은 과도한 학업경쟁 속에서 희망을 잃게 되었다. 미래를 보기 어려운 청년들에게는 비친 한국 사회는 “헬조선”일 뿐이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지만 이러한 고통의 시기에도 끝이 있을 것이다. 얼마나 오랜 기간, 얼마나 큰 희생자를 만들지가 걱정이다. 더욱 큰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위기를 거치면서 어떠한 사회질서를 만들어 내느냐에 있다. 그간 사회안전망이 제법 구축되었고 보건의료체계도 발전하였지만, 시장의 유연성에 시민 삶의 안정성을 희생시키는 사회체제가 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이러한 시장주의적 질서로는 감염병과의 전쟁에서 살아나기 어렵다. 과연 우리는 새로운 감염병 시대를 거치면서 집단적 연대와 협력에 바탕을 둔 새로운 사회질서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

지금 우리의 대처는 향후 수십 년 우리 사회 시민의 삶, 그 지평을 규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