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전문가로서 중심 세우고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 잡아야

조향희 부산광역시 사상구청 복지정책과 희망복지지원계장
조향희 부산광역시 사상구청 복지정책과 희망복지지원계장

“요즘 업무도 힘들고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자꾸 들어요. 그래서 오래 근무하신 선배님들은 어떻게 견디셨는지 궁금합니다.”

후배 A가 예상치 않게 ‘울컥’하며 꺼낸 말에 우리는 짧게 침묵했다. 첫째는 그런 생각을 하는데 놀랐고, 잠시지만 눈물을 보일 만큼 힘들었다는 데 더 놀랐다. 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어떻게 견뎠나?’ 가장 힘들었던 시간을 생각해 보았다. 그만두고 팽이버섯을 키우자는 동료의 비현실적인 제안을 현실감 있게 상상해 보기도 했었다. 그날의 욕은 그날 다 토해낼 듯이 사람을 향해 그리고 세상을 향해 한 바가지 욕을 해댔던 내가 떠올랐다. 결국 자존감을 높이거나 제3자의 눈으로 나를 보면서 평정심을 가져보라는 말로 마무리했다.

시책이 아닌 사람이 남아야 한다

희망복지지원, 내가 3년째 담당하고 있는 업무다. 누군가 말하길 ‘의미도 모르고 일하면 개념 없는 일’이라 했다. 희망복지란 법정 지원으로 해결이 어려운 다양한 개인의 문제를 찾아내고 분절된 서비스를 서로 연결하여 그 무엇이 되었든 지역 속에서 함께 이루어 가는 일이다. 이 일은 기적과도 같이 내가 사회복지공무원이 되면서 처음 먹었던 마음을 기사회생(起死回生), 되살려 놓기도 했다.

요즘 희망복지업무의 최대 관심은 ‘주민력’이다. 주민 속에서 주민과 함께 이루어야 만이 진정한 지역 회복이요, 공동체성의 복원이기 때문이다. 개별화된 개인이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개인 간의 소통이다. 어떤 일에 내 이야기를 털어놓지 못하면 그 일에 책임도 없고 관심도 없다. 소문난 지역복지의 모범사례들도 다가가서 살펴보면 일회적인 이벤트가 많고 대단히 작위적이다. 공통점이 있다면 반드시 주민 중에 강력한 누군가가 있고 나머지 침묵하는 다수가 있을 뿐이다. 이런 경우 강력한 에너지의 주인공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중단된다. 주민력이란 말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부산 사상구도 2017년부터 ‘다복따복망’이라는 인적안전망을 운영하고 있다. ‘다 함께 행복하고 따뜻한 복지안전망’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다복따복망은 1년 남짓한 기간을 넘기면서 후한 평가로 상도 받고 전국적인 주목도 뒤따랐다. 지역주민과 골목 가게 사장님들이 핵심이 되는 인적안전망이다.

그런데 일을 할수록 주인공인 주민들은 없고 시책만 남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공무원이 손을 놓아도 작동하는 인적 안전망이 되려면 결국엔 시책이 아닌 사람이 남아야 했다. 지금까지 계속되는 다복따복망의 진화는 여기서부터였는지 모른다.

조향희 계장(아랫줄 가운데)은 '주민력'을 키우기 위해 공감토론 교육과정을 개설하고 수료생들과 '수평적 쌍방향 의사소통 마을 플랫폼'인 공감마당을 진행하고 있다.
조향희 계장(아랫줄 가운데)은 '주민력'을 키우기 위해 공감토론 교육과정을 개설하고 수료생들과 '수평적 쌍방향 의사소통 마을 플랫폼'인 공감마당을 진행하고 있다.

내 얘기 잘하고 남 얘기 잘 듣는 ‘공감토론’ 개설

첫 단추부터 다시 꿰기로 했다. ‘공감토론’, 내 얘기 잘하고 남 얘기 잘 듣는 훈련이다. 주민이 만드는 인적안전망은 주민이 말하고 주민의 의견을 듣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공감토론 교육과정을 개설하고 수료생들과 23개의 공감마당도 진행했다.

처음 토론을 시도했던 날, 둘러앉아 이야기하자는 말에 주민들은 앉았던 의자를 들고 다른 사람 뒤로 숨어버렸다. 우리들의 현주소였다. 그때를 생각하면서 사람들은 말한다. “확실히 사람들과 주제를 갖고 얘기하는 게 편해졌어요.”, “제가 얼마나 남 얘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는지 알게 됐어요.” 매우 긍정적인 신호였다.

2020년은 지역과 골목으로 한 발 더 다가가려고 계획하고 있다. 열린 이야기 마당을 펼치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나는 지난 3년간 이렇게 희망복지 업무로 신나게 달렸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들이 생겨났고 새로운 시도로 가슴이 뜨거웠다. 사업의 성패는 저 멀리 불특정 다수, 주민들에게서 부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직원끼리 모인 이야기 마당 연습 자리에서 후배 A는 그만두고 싶은 속내를 털어놓은 것이다. 정작 주민력을 키운다며 시작한 공감마당에서 오히려 나조차 바로 옆 후배와 소통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갑자기 얼마 전 충격적으로 들었던 다른 후배들의 말도 생각났다.

“저는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왜 이렇게까지 도와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너무 힘이 듭니다. 직장이니까 다니고 있어요. 여기서 살아나갈 수만 있으면 좋겠어요.”

정작 사회복지직 후배들이 말하는 희망복지의 현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보이지 않는 복지사각지대를 찾으라고 한다. 찾아오는 악성 민원 해결로 하루가 짧은데 말이다. 직접 못하면 주민들의 인적안전망을 만들라고 한다. 그런데 주민들은 관심이 없다. ‘도전! 고독사 제로화’라고도 한다. 1인 가구가 30%를 훌쩍 넘고 개인주의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이 시점에서 고독사 예방은 이미 물 건너간 도전일지 모른다. 그렇게 고독사가 발생하면 사회복지공무원은 죄인 아닌 죄인이 된다.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그렇게 보는 것만 같다. 희망(고문)복지, 이쯤 되면 불가능에 도전하는 희망이라는 이름의 고문복지다.’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요즘은 신규 사회복지공무원 70~80%가 비전공자다. 사회복지 개념도 의미도 잘 알지 못하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주기적으로 느끼는 직업적 회의라 치부할 수도 있지만, 사람을 대하는 일이므로 길지 않아야 한다. 막연한 이상을 품고 공무원이 되었지만 힘든 근무 현실 속에서 ‘사회복지다움’을 뿌리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순간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사회복지가 바로 설 수 있다는 자각이 들었다.

다행한 것은 희망고문이란 ‘결과의 실패’를 전제로 한다. 희망복지가 희망고문복지는 되지 않아야겠다. 희망고문이라 느끼는 이유는 결과의 실패를 예측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우고 가야 할 것은 몇 명을 얼마나 빨리 발굴하고, 얼마나 많은 서비스를 연계했는가가 아니므로 당연히 실패는 없다. 단지 사회복지 현장을 수치로 계산해 내고 실적에 급급한 행정체계를 탓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다여서는 안 된다. 사회복지공무원의 일이 희망고문이 되지 않으려면 스스로 전문가로서 중심을 세우고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잡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이제 우리는 함께 읽을 ‘복지 도서’를 챙겨 일주일에 한 번은 마주 앉는다. 돌아가며 소리 높여 읽고 서로 이야기하고 기록으로 남긴다. 그렇게 ‘학습’과 ‘소통’이라는 자양분으로 함께 자라는 중이다. 우리부터 시작한이 느린 걸음이 언젠가는 우리를 아무리 힘든 여건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사회복지공무원으로 성장시킬 것이다. 그래서 주민력만 탓하지 않는 당당한 주민의 버팀목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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