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계적인 직업지원 위한 법·정책 필요…전달체계 전면 개편 이루어져야

장애인 정책의 주요 목표는 ‘자립’

장애인의 자립생활이 이루어지는 포용사회(Inclusive Society). 정부가 ‘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2018~2022)’에서 제시한 비전이다. ‘모두가 누리는 포용적 복지국가’라는 정부의 국정기조를 반영하면서, 이의 실현을 위한 핵심 정책목표로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사실 장애인정책의 목표로 ‘자립’이 제시되는 것은 그다지 낯설거나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최근 몇 년 동안 각종 장애인정책이나 제도에서 가장 빈번하고 당연하게 언급된 단어가 ‘자립’과 ‘사회참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자립’은 우리사회에서 장애인정책의 주요 목표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장애인 고용률 34.9%…일자리 정책 한계

그러나 장애인의 자립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전략이나 방안으로 눈을 돌려보면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지역사회에서 자립해 살아가기 위해 주거, 건강 의료, 일자리, 문화, 교육 등 다양한 요소들이 충족돼야 한다. 특히 성인이라면 일을 통해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사회에 참여하는 것이 기본일 것이다. 그러나 각종 장애인 일자리 정책에는 장애인 의무고용제도 개선, 직업훈련 기관 확대 등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방안만이 나열되어 있을 뿐, ‘장애인의 일을 통한 자립’이라는 기본 틀을 구축하고 튼튼하게 하기 위한 접근은 찾아보기 어렵다.

2019년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고용률은 34.9%로 전체 인구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며 실업률은 6.3%로 약 1.6배 높다. 중증장애인의 경우 고용률 20.9%, 실업률 7.3%로 상황이 더욱 나쁘다. 2019년 9961명의 장애학생이 특수교육을 받고 졸업했지만 이 중 취업자 비율은 약 18%에 불과하고, 4300여 명이 비진학·미취업 상태에 놓여 있다.

장애인 고용 지표들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으며, 일부 지표는 오히려 악화됐다. 앞서 언급한 장애인 일자리 정책의 한계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다.

직업지원 분야별 법적 근거 및 소관 부처 달라

이러한 한계를 벗어나 ‘장애인의 일을 통한 자립’을 위한 기본 틀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체계적인 장애인 직업지원을 위한 법·정책과 전달체계의 전면적인 개편이 이루어져야 한다.

일반적으로 장애인 취업 지원은 ‘진로 및 직업 교육(전환교육), 훈련·직업재활, 취업지원, 취업후 지원(고용유지)’의 단계로 진행된다. 그런데 현행 법에서는 진로 및 직업교육(전환교육)은 「특수교육법」에 근거해 교육부가, 훈련·직업재활은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과 「장애인복지법」에 근거해 고용노동부와 보건복지부가, 취업지원 및 취업 후 지원은 고용노동부가 주로 담당하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각 직업지원 분야별로 상이한 법적 근거와 소관 부처, 그리고 이에 따른 각각의 전달체계는 서비스 내용이나 과정의 중복, 기관 간 정보공유와 상호 연계 부족, 서비스 단절 등의 문제가 지속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특히 중증장애인 직업재활 관련 영역에 있어 실시 기관(장애인직업재활시설)의 설치·운영은 「장애인복지법」에, 직업재활 서비스 내용은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에 근거한 이원적인체계로 모호한 역할 범위, 상충되는 법령, 일관된 정책 방향 부재, 체계적 지원 부족 등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에서 장애인직업재활 관련 조항을 고용노동부와 보건복지부 공동 책임으로 규정하면서, 관할 부처의 이원화 문제와 한계를 기능적 일원화로 극복하려고 시도(김성희 외, 2013)하였으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지난 2018년 4월 고용노동부, 교육부, 보건복지부가 장애학생 원스톱 취업지원을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고용노동부와 교육부가 직업재활시설을 활용한 신규 사업을 계획하는 등 의미 있는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현재의 장애인관련 법·정책 틀 내에서 당면 문제를 수정·보완하는 접근 방식으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에 한계가 있어 보인다.

일을 중심으로 한 장애인 정책 재설계 필요

장애인 일자리 지원의 고질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장애인의 일을 중심으로 한 장애인정책 재설계와, 직업 지원의 전 단계를 촘촘하고 유기적으로 연계하도록 하는 관련법과 전달체계의 전면적 개편이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성인기 진입 장애인 직업지원을 위해 학령기 중증장애인 수요, 적성·흥미, 직업능력 등에 따른 직업지원계획 수립과 전환서비스 조기개입, 고용서비스와의 유기적 연계, 전달체계 내 기관 현황과 역할 등을 고려한 필요 기관·인력의 계획적 확충 등이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중증장애인 직업재활 및 직업서비스 지원을 위한 법」을 제정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나, 실현 가능성을 고려해 현행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의 개정이나 현재 논의되고 있는 「장애인권리보장법」에 관련 내용을 담아내는 방법 등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직업재활시설 인프라 확충 등 지원 시급

일반 경쟁고용이 어려운 중증장애인에게 직업 생활의 기회와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는 직업재활시설 인프라 확충과 제 기능을 위한 지원도 시급한 과제다. 2019년 전국 690여 개의 시설에서 2만여 명의 장애인이 근로 또는 훈련하고 있다. 그러나 매년 특수교육을 받고 졸업하는 1만여 명의 장애학생들과 비경제 활동인구를 고려하면, 현재 직업재활시설 인프라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실제로 2016년 ‘장애인직업재활시설 효과성 분석 및 운영개선 연구’(장애인개발원, 2016)에서 장애인직업재활시설 이용 대상 장애인구 대비 시설 수를 분석한 결과 최소한 350개의 시설이 추가적으로 설치돼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한 같은 연구에서 229개 기초자치단체 중 직업재활시설에 대한 수요를 충족하거나 초과한 지역은 58개(25.3%)로 나타나, 지역별 불균형 문제도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직업재활시설이 양질의 직업재활서비스와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적정 인력 지원도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그러나 2018년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 직원배치기준에 따른 종사자 정원은 5236명이나 실제 종사자 수는 4024명으로 충원율이 76.9%에 불과하다.

지역별 평균 종사자 수 격차도 최대 8.2명으로 나타나 시설 인프라뿐 아니라 인력 지원에 있어서도 지역별 편차가 큰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장애인이 거주 지역에 상관없이 직업 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직업재활시설 확충과 인력 지원, 지역별 불균형 해소를 위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장애인이 당연하게 일하며 살아갈 수 있어야

최근 커뮤니티케어 등 ‘지역사회에서의 삶’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정책 목표가 이동하고 있다. 단순히 주거지만 시설에서 지역사회로 이동하여, 지역사회에 ‘그냥 있는’ 것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어울려 살아가는 삶’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정책의 목표일 것이다.

이러한 정책 목표 실현을 위해 일을 통한 자립은 기본 전제 조건이다. 그러나 ‘서울시 장애인 탈시설 종단연구 2019(장애인개발원)’에 따르면 거주시설에서 독립한 장애인 152명 중 주당 1시간 이상 근로한 비율은 31%에 불과하며, 전년도 조사(36%)보다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장애인의 주거지는 지역사회로 옮겼지만, 일에 대한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지역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성인이 되면 직업을 가지고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평범한 일상이다. ‘장애인의 일을 통한 자립’을 특별한 정책적 목표로 내세우지 않아도, 장애인이 당연하고 평범하게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의 고민과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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