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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도입 필요성은 공감하지만…방식에는 온도차 뚜렷
  • 승인 2020.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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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와 진보 정책전문가, 사회안전망 구축 대안으로 ‘기본소득’ 성찰
1월 14일 한국사회복지협의회 6층 대강당에서 ‘보수와 진보, 기본소득을 논하다’라는 주제로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발제자와 토론자들이 다양한 의견을 펼치고 있다.
1월 14일 한국사회복지협의회 6층 대강당에서 ‘보수와 진보, 기본소득을 논하다’라는 주제로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발제자와 토론자들이 다양한 의견을 펼치고 있다.

복지사각지대 해소 대안으로 ‘기본소득’ 부각

지난해 11월 서울 성북구에서 70대 노모와 40대 세 딸 등 일가족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던 이들은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아니었기에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하고 결국 경제적·사회적 고립감 속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

2014년 발생한 ‘송파 세 모녀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복지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정책적·제도적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여왔으나 이와 비슷한 사건들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 이번 ‘성북구 네 모녀 사건’으로 선별적 복지의 확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더욱 탄력을 받으며 자연스레 기본소득이 복지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기본소득은 인간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모든 개인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일정 수준의 현금을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것이 원칙으로 소득 재분배 효과가 큰 복지정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서구권 국가에서는 진보와 보수 진영 모두 기본소득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데 진보 진영에서는 불평등 해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보수 진영에서는 기본소득 지급을 위해 무분별한 복지정책을 통합·조정한다면, 사회보장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 ‘기본소득앓이’ 중

국내에서는 2000년 초반에 기본소득에 대한 학술적 논의가 있었지만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하다 2010년 즈음에 비로소 서서히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다 경기도 성남시가 2016년에 청년배당(현 청년기본소득)을 도입하면서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성남시는 당시에 3년 이상 거주한 만 24세 청년 전원에게 연간 5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하자 안팎으로부터 ‘복지 표퓰리즘’이라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성남시에 이어 서울시(청년수당), 경기도(청년배당), 전남 해남군(농민수당), 강원도(육아 기본수당) 등 여러 지자체에서 잇달아 기본소득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12월에는 경기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보건복지부가 공동으로 주최한 ‘2019 저출생 극복을 위한 해법 찾기 대토론회’에서 저출산 문제 해결의 대안으로 기본소득제 도입 필요성이 제시됐다. 게다가 정치권에서도 이번 4·15 총선을 겨냥해서 기본소득 보장을 정책 의제로 설정하고 있고, 이를 공약으로 내세우는 예비후보들도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그야말로 우리나라는 기본소득에 열광하고 있는 셈이다.

해외는 찬반 입장 ‘팽팽’, 실패 사례도 있어

이처럼 기본소득이 국내에서는 상당히 ‘핫이슈’가 되고 있지만 정작 해외에서는 엇갈린 반응과 평가를 볼 수 있다. 유럽을 보면, 국가별로 인식차이가 극명히 갈린다. 2016~2017년에 18개국을 대상으로 실시된 유럽사회조사(ESS)에서 기본소득에 대해 찬반 입장을 물어봤다.

조사 결과 찬반이 팽팽한 국가는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였고, 찬성이 앞서는 국가는 벨기에, 아일랜드, 핀란드 등이었다. 반면에 노르웨이, 스웨덴 등 북유럽 복지국가를 비롯해 스위스, 독일, 아이슬란드, 오스트리아 등에서는 반대가 다수 여론을 차지했다.

심지어 스위스는 2016년 4월 모든 성인에게 월 2500스위스프랑(약 30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기본소득제 도입 법안을 발표했지만 그해 6월 국민투표에서 77%라는 압도적인 반대로 제도 도입이 부결됐다.

이와는 달리 핀란드는 국가적 차원에서 2017년 1월에 2년간 실업상태에 놓여 복지수당을 받고 있는 2000명을 대상으로 월 560유로(약 72만원)를 지급하는 기본소득제 실험을 실시했다. 하지만 당초 정책의 목적이었던 실업률 개선 효과가 극히 미미하자 실패라는 평가를 남기며 이듬해에 중단됐다.

캐나다는 온타리오 주정부가 2017년 7월에 18~64세 주민들 중 최근 1년 이상 빈곤선 아래에 머문 4000명을 대상으로 개인에게는 1만6989캐나다달러(약 1410만원), 부부에게는 2만4027캐나다달러(1995만원)를 1년에 한 번씩 3년간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시행 1년 만에 “비용 대비 효과가 크지 않고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포기를 선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다. 특히 핀란드의 실험에서 비록 고용효과를 개선시키진 못했지만 대상자가 삶에 대한 행복지수가 높고, 삶의 질이 향상됐다고 느낀 의외의 유의미한 결과가 나왔던 점에서 기본소득은 계속 탐구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보수·진보가 함께 논의하는 자리 마련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보수와 진보 정책 전문가들이 함께 현재의 사회안전망을 성찰해야 할 시기라는 점에 공감하고 정책토론회를 통해 기본소득을 논하고자 한 자리에 모였다. 제주연구원이 주최하고, 사회안전망 4.0 포럼이 주관하며, 한국사회복지협의회가 후원한 이 정책토론회는 ‘보수와 진보, 기본소득을 논하다’라는 주제로 1월 14일 한국사회복지협의회 6층 대강당에서 열렸다.

주최·주관기관 측은 “4차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일자리 환경이 변화하고, 소득보장의 불안정성과 자산 집중화로 인한 소득불평등이 높아지는 시점에서 빈곤의 감소와 소득 재분배를 위한 대안으로 새로운 사회안전망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며 “보수와 진보가 함께 기본소득을 이러한 실질적 해소 방안으로 보고 다양한 의견과 지혜를 모으고자 이번 자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회는 김동전 제주연구원장의 개회사, 원희룡 제주도지사의 축사를 시작으로 보수 진영 정책전문가로 김용하 순천향대학교 IT금융경영학과 교수가 ‘한국형 기본소득의 구상’을, 진보 진영 정책전문가로 이원재 LAB2050 대표가 ‘소득의 미래와 국민기본소득제’를 주제로 발표에 나섰다.

도입보다 기존 제도 ‘점검·개편’이 우선

먼저 발제를 맡은 김용하 교수는 “우리나라는 현실적으로 영미형 복지국가도 돌파하지 못한 상황에서 복지 선진국인 북유럽도 도입하지 못한 기본소득제를 도입하기에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재원조달의 한계, 대부분의 기존 복지급여 대체 불가, 공동체 의식의 미성숙 등을 이유로 완전한 의미에서의 기본소득제 도입의 불가능성을 설명했다.

그는 “국민연금을 포함한 5대 사회보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긴급지원제도 등 우리나라의 사회안전망은 외형적으로 완비됐지만 내실을 살펴보면, 급여가 불충분하고, 수급 자격을 엄격히 따지기 때문에 광범위한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있다”고 현 사회안전망의 한계점을 지적했다.

김 교수는 “현행 사회보장제도를 보완하거나 대체하면서 소외 계층을 사회적 위험에서 포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국가기본보장제’ 도입이 필요하다”며 “현행 복지제도를 전면적으로 점검하고 개편한 후에 국민기본보장제로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최저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국민보장기본선을 설정해 이 기본선 이하의 전 국민에 대해 보충형 소득보장 급여를 지급하면 된다”고 했다.

그는 재원조달에 대해 “현행 사회보장 지출 한도 내에서 가능한 재원을 충당하면서 과부족은 세금으로 된 공동 계정으로 정산하고, 중장기적으로 사회보장세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도 실시 및 재원 마련 당장 가능

이어서 발제에 나선 이원재 대표는 “첫 번째 산업혁명을 대응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해 다가오는 새로운 사회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준비된 것이 바로 국민기본소득제”라며 “2021년부터는 신생아부터 노인까지 모든 국민에게 아무런 조건없이 월 30만원씩 지급하자”고 제안했다.

이 대표는 기본소득제의 실시 방법을 선분배 후과세로 제시하며 “선분배로 가계소득을 늘리고, 중간층 이하 소득을 높이면 소득분배의 문제를 사회적 갈등과 추가 행정비용을 최소화하며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도입의 핵심 열쇠는 ‘사회적 합의’이므로 정치권에서는 이를 전국 단위 선거의 핵심 의제로 제시하고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재원조달에 대해 “2021년 월 30만원 지급기준으로 187조원이 필요재원으로 예상된다”며 “소득세제 비과세·감면 정비로 56조2000억원, 기초연금·아동수당 등 일부 복지제도 폐지·축소로 31조9000억원, 근로장려금(EITC) 등 소득보전 성격의 비과세·감면 정비로 18조3000억원, 지방정부 세계잉여금 활용으로 16조원, 기본소득 과세로 15조1000억원 등으로 187조원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실험 후 도입 검토 등 다양한 의견 나와

발제 후 이어진 토론에서 사회안전망 4.0 포럼 대표인 서상목 한국사회복지협의회장이 좌장을 맡고,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 교수,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 교수,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서상목 회장은 이번 정책토론회에 대해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한 지금이야말로 기존의 보수와 진보란 틀을 넘어 기본소득제에 대한 진지한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먼저 김원식 교수는 “기본소득제를 도입하려면 기존 복지제도의 통·폐합이 전제돼야 한다”면서도 “현금 지급으로 국민들의 복지서비스가 줄어들 수 있을지 의문이고, 또한 다양한 사회복지서비스 공급체계 구축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석재은 교수는 “현행 사회보장체계로는 문제가 있지만 기본소득제가 지속가능한 방안인지 의문이기 때문에 전면적인 도입보다는 실험 등을 통한 과도기적 단계를 거친 후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승노 원장은 “기본소득제는 개인의 필요와 사회적 유연성이 함께 포용돼야 한다”며 “하나의 부처가 아니라 범부처 차원에서 효율성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용혜인 대표는 “기존의 복지제도는 수혜자에게 낙인효과를 주는 폐해가 있는데 기본소득은 이러한 낙인효과에 새로운 변화이자 복지국가에 대한 새로운 상식이 될 것”이라며 “정치적 역할과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