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기준 우리나라 자살률(인구 10만명당 자살로 인한 사망자)은 24.7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국가 중 가장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또한 자살률이 OECD 평균보다 높았으며 자살관련 이슈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어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에서 자살로 인한 사망은 여러 사망원인 중 10번째로 많았으며 지난 10년 동안 전국에 걸쳐 약 25%가 증가했다. 심지어 1999년부터 자살률이 감소한 주는 네바다주 한 곳 뿐이었다. 2016년에는 약 100만명의 미국인이 자살을 시도했으며 이 중 4만5000명이 사망했다.

이러한 사회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에서는 지난 2010년 정부 관료와 민간 전문가를 모아 자살예방기구인 ‘자살예방을 위한 국가행동연합(NAASP)’을 발족했다. 이 자살예방기구는 공공-민간의 파트너십을 이루어 2012년 ‘자살예방을 위한 국가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자살예방을 위한 국가 전략에서는 자살 예방을 위해서는 적절한 건강관리시스템 구축을 특히 중요하다고 보고 있으며, 지역사회, 학교, 1차 진료기관, 응급실 등 신체 및 정신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기관들에 대해 포괄적인 접근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이와 같은 시스템 내에서 자살사망자들이 자살을 시도하거나 사망하기 이전에 관련 서비스를 받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2010년 자살예방기구 ‘국가행동연합’ 발족

미국 내 의료 및 건강관리 서비스는 일반적으로 민간에서 독립적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일부 정부지원이 필요한 기관을 제외하고는 정부가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감독하지 않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개인은 민간보험회사를 통해 본인 부담으로 건강보험료를 지불하고 있으며 소수가 주정부 또는 연방보험시장을 이용하고 있다. 2010년 오바마케어(ACA)를 통해 모든 미국인이 반드시 건강보험을 소지할 것을 강제했으나 여전히 수백만명은 비용문제로 인해 적절한 의료 및 건강관리 시스템에 접근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자살과 관련하여 정신문제에 대한 치료를 받는 사람들조차도 종종 자살을 예방하거나 해결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받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에서 자살로 사망한 모든 사람의 20~80% 가량은 사망 이전 해에 관련 치료를 받았고, 30일 이내에는 거의 절반이 치료를 받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건강관리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이 여전히 자살로 사망하는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지목되고 있지만, 자살예방을 위한 국가전략 보고서에서는 크게 △자살위험 감지의 부정확성 △자살행위 개입과 관련한 증거기반 실천의 부재 △자살위험 단계와 치료 강도의 불일치를 자살행위의 잠재적 원인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살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잘 구분하기 위해 다양한 환경에서 검증된 보편적인 선별검사를 계속해서 권장해왔다. 그러나 실제로 현재의 건강관리서비스 체계 내에서 대다수의 개인은 이러한 검사를 받지 못하고 표준화된 선별도구도 개발되지 못했었다. 뿐만 아니라 임상전문가들은 자살의 위험에 놓인 사람들에게 개입서비스를 제공하거나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방법 등에 대해 적절하거나 구체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다.

이에 따라 국가행동연합에서는 건강관리서비스 체계 내에서 특히 자살위험의 탐지, 증거 기반, 자살 관련 중재, 그리고 자살탐지 관련 절차를 구체화하고 자살예방과 관리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적 가이드라인으로 ‘자살제로 전략(ZS, Zero Suicide Initiative)’을 수립했다.

자살예방·관리 위한 ‘자살제로 전략’

자살제로 전략은 자살의 예방과 관리를 위한 국가전략의 핵심 구성요소다. 그리고 자살을 근절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건강관리서비스 체계 내에 자살예방서비스를 제공하고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한 전략적 틀이라고 할 수 있다.

자살제로 전략의 전제는 건강관리시스템 내에서 자살과 관련한 치료를 받는 개인의 자살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특정한 자살예방 노력이 자살률 감소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한 연구에 따르면 자살제로 전략을 이용했을 때 자살률이 70% 정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제로 전략을 달성하기 위해 7 가지 필수요소로 구성된 자살제로모델을 제안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4가지는 환자를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가에 대한 임상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고 나머지 3가지는 시스템을 구현하기 위한 요소와 관련이 있다.

첫 번째 시행요소인 ‘선도’는 자살예방을 위한 문화를 구축하기 위해 리더십과 행정을 참여시켜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자살예방은 개개인의 책임이 아닌 시스템의 문제이기 때문에 투명한 조직환경을 조성하는 정책을 수립해야 하고, 이를 위해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개인으로 하여금 책임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고 안전에 중점을 둔 팀 접근 방식으로 조직을 전환하게 한다. 그리고 자살과 관련하여 최적의 치료에 대해 모든 사람에게 책임이 있음을 인식하게 한다.

두 번째 시행요소인 ‘훈련’은 유능한 자살예방 인력의 개발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다. 자살제로모델에서는 정신건강 전문가뿐만 아니라 개개인이 자살위험 징후를 파악하고 자살위기의 개인과 효과적으로 상호 작용하는 방법에 대해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선’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건강관리서비스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새로운 절차를 구현하기 전에 조직에서는 현재의 건강관리시스템 내의 임상실습 내용 및 교육을 평가하여 실무적인 요구사항에 대해 지식-실습 간 격차를 파악한다. 리더십은 이에 따라 구현계획을 개발하고 체계적인 데이터 수집을 활용해 훈련에 대해 지속적으로 평가하여 개선할 사항을 알린다.

4가지의 임상요소 중 ‘선별’은 모든 환자에 대한 증거기반의 선별 및 자살위험 평가에 대한 지침을 제공하기 위한 요소다. ‘보장’은 위험이 높은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최적의 경로를 보장하여, 전문화된 치료와 보다 강력한 임상적 개입을 통해 개인별 자살관리 계획을 수립하도록 한다. ‘치료’는 즉각적인 안전을 유지하기 위한 단기개입, 자살사고와 행동의 감소를 목표로 하는 장기개입을 포함하여 증거기반의 개입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다. ‘전환’은 병원이나 응급실 퇴원과 같은 치료 전환 중 개인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와 자살행동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조한다.

자살제로모델, 외래환자에 효과적

역사적으로 응급실이나 입원기관이 위기관리에 효과적이라고 알려져왔지만 최근에는 외래 서비스기관이 자살예방과 관리를 위해 중요한 장소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정신건강에 대한 대부분의 진료가 외래환자 담당 의료기관에서 이뤄진다. 자살 관련 외래환자의 경우 절반 이상이 자살사고를 보고했으며 4분의 1 이상이 자살 시도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자살사고 또는 자살시도를 경험하는 외래환자가 결국 자살로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보통 외래환자가 입원환자나 응급실 환자보다 더 오랜 기간 서비스를 받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개입의 기회가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자살제로모델이 전국적으로 추진되면서 국립정신건강연구소(NIMH)에서 해당 모델의 효과를 평가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지원했다. 특히 뉴욕 주의 행동건강클리닉에서 자살제로모델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뉴욕 주정부에서는 개별 정신건강 클리닉을 모아 2017년부터 매년 약 8만6000명의 메디케이드 이용 환자에게 관련서비스를 제공해왔다. 참여하는 모든 클리닉은 자살예방 치료에 대한 사정, 개입 및 자살예방 감독(AIM-SP) 프로그램에 따라 모든 임상절차를 운영하고 있다.

AIM-SP는 모든 환자에 대해 정기적인 종합검사 및 종합위험평가를 제공하며, 고위험 환자 중심의 자살-안전보호 절차(SSCP)를 운영한다. 환자의 진단 및 평가를 위해서 학술적으로 검증된 ‘컬럼비아 자살심각도 등급척도(C-SSRS)를 활용하여 평생 및 최근의 자살 생각과 행동을 확인한다.

고위험 환자(예, 지난 90일 이내에 자살의도, 계획 또는 시도가 있었던 경우)는 신속하게 SSCP 하에서 치료를 진행한다. 이들의 치료를 위해 재평가 및 모니터링 횟수를 늘리고 임상치료의 강도를 높이며 개인별 맞춤 개입을 진행한다. 임상전문가는 SSCP에 해당하는 모든 환자와 적어도 매주 개입 회기를 유지하고 각 세션마다 환자를 재평가하여 필요에 따라 안전 계획을 수정한다.

환자가 예약을 취소하거나 불참하는 경우에 임상전문가는 환자의 안전을 보장하고 치료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연락을 취하게 된다. 이때 연락의 형태는 환자의 상황과 클리닉의 정책에 따라 전화, 문자 메시지, 이메일 또는 가정 방문을 취할 수 있다. 고위험 환자가 응급실에 방문하거나 입원하는 경우 퇴원 후 72시간(특히 자살 위험이 높은기간) 이내에 약속을 잡는 것이 우선시된다. 임상전문가는 다른 치료기관과 협력하여 치료 전환 기간에 치료의 연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한다.

환자는 임상전문가의 판단 아래, 자살의도, 계획, 시도, 응급실 방문 또는 입원기록이 없는 때로부터 90일 후에 SSCP를 해제할 자격을 갖는다. 자살위험이 낮은 환자들 역시 임상전문가의 판단에 따라 고위험 환자와 유사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은 치료 계획 검토 시에 최소한 분기마다 재검진을 받아야 하며, 평가에서 자살위험이 드러나는 경우 재차 SSCP에 대해 논의하게 된다. 또한 위험수준에 관계없이 모든 환자에게는 진료 외 시간 동안 연락이 가능한 위기번호, 지역별 위기지원서비스(예: 모바일 응급번호, 응급실, 911) 및 생명의 전화에 대한 정보가 제공된다.

자살위기 대처 위해선 시스템 구축 필요

자살은 엄청난 사회문제이며 개개인의 노력만으로 자살을 예방하거나 줄일 수 없다. 결국 자살위기를 대처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자살제로 전략은 관련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의 자살을 줄이는데 효과적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자살제로모델에 대한 효과성은 앞으로 보다 자세히 규명되어야 하겠지만 지금까지의 연구로부터 자살을 예방하고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또한 미국 50개주 중에서 뉴욕 주의 자살률이 가장 낮다는 점에서 자살제로모델의 운영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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