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흥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
조흥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

대한민국 100년의 세월

2020년 경자년은 대한민국 국호가 정해진 지 101년을 맞이하는 해이자, 안중근 거사 110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 대한민국 100년의 세월은 너무나 격동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 35년의 치욕스런 역사와 함께 해방을 맞이했지만 당시 국민소득은 형편없었다.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통계는 1897년 대한제국 때부터 나왔다고 하는데, 1897년 1인당 국민소득은 7 달러였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가 1948년 수립된 후 최초 국민소득 추계 사업은 1951년부터 시작됐는데, 한국은행이 발간한 최초의 국민소득 추계자료에 따르면 한국전쟁을 겪은 후유증에 의해 1953년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67달러(1975년 기준)에 불과했다. 그 당시 세계에서 에티오피아 다음으로 가난한 2위 빈곤국가였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많이 피폐해진 한국은 1960년대 베트남전쟁이라는 특수상황을 활용해서 빠른 기간에 경제를 회복하는데 성공했다. 개발독재체제 하에서 1970년대에 경제발전을 강요당해 희생해야만 했던 농민들과 군부독재로 죽어간 시민들도 상당수 있었지만 이 당시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했던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1960년대와 1970년대의 경제 고도성장기를 거쳐 드디어 1983년에 1인당 GNP 1만 달러를 돌파해 세계 경제규모 10위의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이후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했고, 1989년에는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달성하여 선진국을 향해 재도약 하게 된다.

이후 1994년도에 세계 경제규모 5 위의 강대국으로 떠오른 한국은 잠시 외환금융위기(IMF)의 어려움도 있었지만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여 2006년에 2만 달러대를 회복하고 2000년대 들어서 인터넷 발전을 이루어 IT강국이 된 것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이후 경제 대국의 반열에 섰고, 2만 달러를 회복한 2006년 이후 12년 만인 2018년에 1인당 국민총소득(GNI) 3만 달러시대를 열었다. 이처럼 한국은 압축경제성장을 통해 단기간에 절대빈곤을 해결했고 생활수준도 높아져 왔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실제 서민들의 삶도 그만큼 풍요로워진 것일까? 소득 3만 달러 도달 시점에 선진국들이 달성한 복지·노동 등 실질적인 ‘삶의 질’ 수준과 비교하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게 중론이다. 저소득층의 소득은 감소하고 있고 일자리 창출의 여력은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부의 대물림, 영세 자영업자의 민생 문제, 대·중소기업 노동자 간 임금 격차 확대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소득주도성장정책과 52시간 근무제 등의 실시를 통해 경제민주화·공정경쟁 확립·혁신성장 기반의 신성장 정책을 펴고 있지만 정책 효과는 아직 크게 체감하기가 힘들다.

물론 전적으로 현 정부의 책임으로만 볼 수는 없다. 현 정부 훨씬 이전인 2000년대 초반부터 국가 경제규모의 팽창으로 인해 경제성장률이 계속 떨어져 오고 있으며, 예기치 못한 급속한 저출산·고령사회 대두, 오랫동안 지속된 사회 양극화, 청년 실업, 대·중소기업 격차 등의 구조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뿐만 아니라 여소야대 하에서 협치 기반 취약에 따른 입법 한계도 있으며, 예기치 못한 미중 무역전쟁, 한일 무역전쟁 등 국외적인 문제들의 영향이 복합적으로 끼친 바가 크기 때문이다.

포용복지의 필요성

최근 들어 경제학자 누구도 빠른 성장주도 하에 사회복지, 사회보장체제가 충분히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경제성장 중심만의 발전은 국민의 행복을 보장해주지 못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점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궁핍화 성장, 고용 없는 성장 등으로 발생한 분배구조 악화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의 하나로 IMF, World Bank, EU, OECD 등 국제기구들은 포용성장(inclusive growth)을 들고 나왔다.

국제기구마다 개념 정의는 약간 다르지만 △빈곤개선, 불평등 축소 등 소득분배 개선 강화 △인적 자본을 위한 투자 증진 등 교육 강조 △부가가치와 생산성 증대를 위한 기술창조 등 경제혁신 강조 △일자리 창출, 차별금지, 사회적 포용과 참여의 활성화 △사회보장 확충을 위한 누진적 조세체계 구축 등을 강조하는 점은 공통적이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포용’을 무엇을 품거나 보듬어 안는 것으로 판단해 관용과 시혜의 용어로 해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포용은 무엇을 품거나 보듬어 안는 것

이 아닌, 공평, 친밀감, 상호존중을 의미한다. 포용을 관용과 시혜의 용어로 해석할 경우 포용성장, 포용복지 역시 다분히 성장 중심, 잔여적 복지의 성격을 드러낼 수 있으며, 사회권의 의미와 동떨어지는 문제를 야기하게 돼 공적 책무성의 국가정책 방향을 오히려 방기하거나 후퇴시킬 수 있다.

문재인 정부도 이러한 문제인식을 갖고서 OECD가 표방한 의미의 포용성장정책을 주창하면서 포용성장에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가 포함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여기서 포용성장은 ‘국가발전을 위해 어떤 국민도 배제하지 않고 성장의 몫을 고르게 나눠줄 수 있는 성장’을 뜻하는데, 이는 성장 담론의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소득주도성장은 노동자, 서민, 시민을 대상으로 한 수요자중심 성장모델로서 분배를 통한 성장기반 조성에 관한 담론이고, 혁신성장은 기업, 서비스기관 등 공급자 중심의 성장모델로서 경제의 미래성장 방법에 관한 담론이다.

이에 비해 공정경제는 경제민주화 질서를 확립하는데 필요한 요소로서 담론이라고 할 수는 없다. 공정경제는 건전한 시장경쟁을 통해 성장의 기본환경을 조성하고, 공정배분을 위한 시장의 효율적 배분기능을 정비하는 구체적인 경제정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이 되려면 그 전제로서 공정경제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에서 공정경제는 포용성장에 포함된다.

이러한 포용성장과는 대비되는 혁신적 포용국가의 핵심인 포용복지의 개념은 ‘경제성장의 과실로서의 소득보장과 사회서비스를 모두가 골고루 누리도록 복지제도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사회위험에 대한 보장성을 강화함으로써 개개인이 행복한 일상생활을 하도록 하는 복지’라 할 수 있는데, 이는 분배 담론의 하나이다.

따라서 포용복지는 △계층, 세대, 지역 간 배제를 극복하고, 미래세대를 위한 사회통합 빈곤극복 기회균등 사회를 위한 복지정책 추진 △노동시장 차별 문제 해결 △기회불평등 인식의 확산 저지 △교육을 통한 인적자본과 사회자본 형성 △공공과 민간의 균형적 일자리 창출 △사회보장 확충을 위한 누진적 조세체계 구축 등 주로 재분배 기능을 정책적으로 강하게 요구한다.

이렇게 볼 때 포용복지는 포용성장과 적절히 연계되는 개념으로서 포용성장을 통해 포용복지를 성취하며, 역으로 포용복지를 통해 포용성장을 더 활성화하는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 포용성장을 통해 포용복지가 성취되며, 역으로 포용복지를 통해 포용성장이 더 활성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포용복지의 국민 체감도 증진을 위하여

올해 2020년은 어떤 해가 될까? IT(정보 기술), BT(생명공학), AI(인공지능) 등 과학기술 분야에선 올해에도 놀라운 진전이 있을 것이기에 경제성장도 조금씩 나아질 것으로 본다. 그리고 재정 확장정책에 따라 소득보장도 차차 나아질 것이다.

하지만 좀 우울한 이야기이지만 생각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 갈등과 대립이 심해지고, 대화와 타협은 여전히 힘들 것 같다. 진영논리가 굳어지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나 집단이 하는 말과 행동은 무조건 찬성하고, 싫어하는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서는 무조건 반대하는 경향이 계속될 것으로 여겨진다.

이념, 노사, 빈부, 지역, 세대, 남녀 등 갈등이 여전히 존재하며, 이러한 갈등은 한 번 불거지면 치유되기는커녕 새로운 갈등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 이유는 갈등 문제해결의 핵심이 ‘이슈, 어젠다’ 중심에서 ‘사람, 이해당사자(stakeholder)’ 중심으로 옮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을 보지 못한 채 이슈를 풀려고 하면 오히려 더 꼬이게 되고 심할 경우 또 다른 이슈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람이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갈등 문제해결의 원천을 사람에서 찾는 것이야말로 포용복지가 지향하는 것이다. 작년에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학교 파업시위를 주도한 스웨덴 출신의 16세 된 기후 환경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지구를 위한 긍정적인 변화에 불을 댕겼다. 그 영향력은 대단했다.

그래서 툰베리에 자극받은 다보스 포럼이 올해 50주년을 맞아 4차 산업혁명시대에 기업경영의 윤리원칙을 제시한 ‘다보스 헌장’을 소개하고 ‘이해당사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를 촉구한다고 하니, 타임지가 툰베리를 ‘올해의 인물’로 뽑은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기에 국민의 행복을 위한 포용복지의 체감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어느 분야보다 사회복지계의 역할이 중요하다. 학계든, 실무계든 소득보장과 함께 사회서비스보장에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 물고기를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좋은 노동’, ‘좋은 일자리’도 궁극적으로는 ‘좋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지, ‘많은 돈’이하는 것은 아니다.

아동수당, 보육, 기초연금, 치매책임제 등의 국정과제가 성공적으로 추진되고 있으나, 아직도 체감할 수 있는 보편적 사회서비스 이용 시스템 구축이 상당히 미흡하다. 출생부터 사망까지 누구나가 누려야 할 삶의 기본권적 요소를 개인과 가족이 충족시키기 어려울 때, 대인관계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지원해 줌으로써 다양한 사회문제를 예방하게 하는 사회서비스보장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사회서비스의 대부분은 인적서비스로서 서비스의 강화는 곧 일자리 확충이 동반된다는 강점이 있다. OECD 보건복지 종사자비율 증가(2000~2015년)에서 한국의 증가율은 3위로 높지만, OECD 35개국 평균(10.5%)에 비해 낮은 수준인 6.8% 수준에 머물러있어 고용대책 차원에서도 이에 대한 특단의 정책적 관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작년 6월 서울 장충체육관에서는 ‘2019 사회복지정책대회’가 열렸다. 전국의 사회복지 관계자 약 6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회복지 국가책임제 실현’의 슬로건과 함께, 사회복지정책 4대 요구사항을 강하게 제안했다.

첫째, OECD 국가평균 사회복지예산 확보 둘째, 사회복지종사자 근로환경 개선 셋째, 사회복지종사자 사회복지전담공무원 수준 급여 현실화 넷째, 사회복지사업 민관 협치 강화 등이었다. 40여 년 전에 필자가 대학 다닐 때 나온 구호와 별반 달라진 게 없지만, 이처럼 정부에 요구할 것은 당당히 요구하는 게 필요하다. 사회복지사가 행복하지 않은데 국민들의 욕구가 잘 채워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으로부터 더 큰 신뢰와 호응을 받기 위해서는 사회복지 현장의 질적 개선이 절실하다. 제도적 제약과 기능의 경직성을 갖는 정부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사회복지계는 법과 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일을 해 나가는 정부보다 훨씬 혁신적이고, 유연하고, 선제적인 다양한 프로그램과 개입을 통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삶의 질을 높이는데 유리하다.

최근 10년 동안에 사회복지 현장은 갈수록 시장화 돼가고 있음을 접하게 된다. 휴먼서비스 자체는 경쟁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데도 정부는 예산, 처우개선 등을 내세워 경쟁을 시킨다. 또 어떤 지방자치단체는 적절한 기준 없이 무분별한 지도점검과 각종 평가와 감사를 통해 사회복지현장의 자율성과 융통성을 약화시키기도 한다.

사회복지계는 이러한 경쟁 일변도로 인한 사회복지실천 현장에서의 사회서비스 정체성과 발전에 대한 대안을 내놓아야 하며, 사회복지사 자격제도 개선과 후배들을 위한 실습제도 개선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 특히 사회복지 현장에서의 실천은 자율성과 신뢰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사회복지계는 실천 현장의 자율성을 최대한 실현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 뿐만 아니다. 사회복지조직 내에서의 시각과 접근방법의 차이, 세대 간 소통의 불일치 및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문제의식의 고취를 통해 다양한 의견수렴과 대안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정부와 사회복지계 간 처우 및 근로환경 개선에 대한 이해 차이를 넘어서 역할 분담과 협력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포용복지제도를 구축하는데 사회복지계가 앞장서면 좋겠다.

사회복지계는 국민과 직접 만나 얘기를 듣고, 나누는 사람들의 조직이기 때문에 국민이 체감하는 포용복지정책의 효과성에 대해 잘 평가할 수 있으며, 국민 욕구의 시급성과 필요성을 근거로 하는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 설정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니 사회복지계의 포용복지에 대한 열정을 국민들이 체감하게 될 때 비로소 사회복지 예산의 증대, 한국에 맞는 사회복지 서비스 전달체계의 구축, 사회복지종사자 처우와 근로환경의 개선 등이 자연스레 이루어질 것이다.

사회복지계의 건승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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