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처 자세에 따라 ‘죽음의 질’ 천차만별…가족·사회와 ‘좋은 죽음’ 준비해야

원혜영 국회의원
원혜영 국회의원

독자분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드리면서 웰다잉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내가 죽으면 묘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시신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장례식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적더라도 평생 모아온 재산이 어디에 어떻게 나누어지면 좋겠는지 생각하고 결정을 해 놓은 분이 있는지? 유서를 써 놓은 분은 있는지? 임종을 앞두고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어떻게 할지 건강할 때 작성을 해 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놓은 분은 있는지? 언젠가는 다가올 ‘나의 죽음’에 대해 가족들과 얘기를 나눠본 분은 있는지?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도 예측 할 수도 없다. 그렇기에 반드시 준비가 필요한 것이지만 우리 문화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한 부분인 죽음을 애써 외면하거나, 언급조차 꺼려하고, 아무런 준비 없이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이렇게 죽음은 누구에게나 정해진 일이지만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그 내용과 질은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 웰다잉은 단순히 유복하고 안락한 죽음을 의미하는 개념이 아니다. 죽음에 대한 생각과 결정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존엄하고 아름답게 삶을 마무리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명절 같이 가족들이 다 모였을 때 자연스럽게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을 모아가는 기회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누구나 살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화두를 던지고, 잘 살기 위해 고민하고, 공부하고, 일하고, 다른 사람의 삶의 방식을 배우기도 한다.

그런데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자문은 잘 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눈앞의 현실을 살아내기에 급급해서, 죽음은 당장의 나와는 상관없는 먼 미래의 일로 생각하고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고 살고 있다. 이제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화두를 나와 가족, 그리고 사회에 과감히 던지고, 우리 스스로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실천운동에 나서야 한다.

지난 2008년 2월,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김모 할머니가 폐종양 조직검사를 받다 과다출혈로 뇌에 산소 공급이 되지 않아 식물인간 상태에 빠져 인공호흡기를 부착했다. 가족들은 김 할머니가 평소 기계에 의존해 생명을 연장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표시했다면서 인공호흡기를 제거해 달라고 했는데, 병원에서는 ‘인공호흡기를 뗄 법적인 근거가 없다’, ‘호흡기를 제거하면 의사가 처벌을 받는다’며 거부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가족들은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2009년에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하여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 사건이 바로 잘 알려진 소위 ‘김 할머니 사건’이다.

이 판결이 있은 후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문제의 중요성이 제기되었고, 2015년에 여야 국회의원들을 모아 ‘웰다잉 문화조성을 위한 국회의원모임’을 결성했다. 그리고 여러 차례 토론회와 공청회를 열고, 동료 국회의원들을 설득해서, 2016년 1월에 무의미한 연명의료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법적으로 제도화하는 ‘연명의료결정법(「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준비되지 않은 죽음’ 가족 부담·사회 갈등의 원인

이 법은 제1조에서 법의 목적에 대해 ‘이 법은 호스피스ㆍ완화의료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와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 및 그 이행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환자에 대한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고 자기결정을 존중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크게 느낀 것이, 이렇게 사람이 죽기 전에 스스로 결정을 해야 하는 자기결정권 존중의 문제가 비단 연명의료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호스피스 같은 임종기에 나의 돌봄에 대한 문제, 그리고 내가 죽고 나서 나의 재산 처리에 대한 문제, 장례식이나 장묘에 대한 문제 등과 같이 매우 다양한 부분에서 죽기 전에 스스로 결정해야 할 것들이 많은데, 우리사회에서는 본인 스스로 아무런 결정을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그리고 내 삶을 돌아보고, 정리하고, 나의 삶을 기록하는 어떤 문화도 없다. 유산을 기부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고, 누구 하나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다. 유언이나 유서쓰기 같은 것도 너무 활성화가 안 되어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렇듯 우리사회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참 외롭고, 힘들고, 비참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평생을 존엄하게 살아온 한 인간이,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는 스스로 아무런 준비 없이,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된 채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인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연간 사망자 수가 약 3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 국민 10명 중 6명은 자신이 살던 곳에서 임종을 맞이하기를 희망하고 있지만, 전체 사망자의 70% 이상, 암 사망자의 90%가 병원, 요양시설 등 낯선 곳에서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고 있다.

한 사람의 죽음이 평균적으로 가족 5명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할 때, 매년 약 30만명이 사망하므로, 매년 우리국민 150만명이 죽음으로 인해 다양하고 중대한 영향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간병 부담이 매우 큰 문제이다. 임종환자의 간병인 50%가 환자의 간병을 위해 직장을 그만 두는 것과 같이 생활에 큰 변화를 겪어야 했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이렇듯 가족이나 친구들과 작별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병실에서 호흡기로 연명하다 죽음을 맞이하는, 이러한 준비되지 않은 죽음은 환자 본인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것은 물론, 가족들에게는 큰 부담이자, 사회 전체적으로 큰 갈등과 낭비의 원인이 되고 있다.

우리는 세계에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초고령화사회를 맞이하고 있다. 노인인구가 이미 700만명을 넘어섰고, 2026년이 되면 1000만명으로 인구의 20%가 되고, 2058년에는 40%가 될 것이다. 그에 따라 앞으로 우리나라의 한 해 사망자 수도 급격히 증가해서 2044년이면 60만명, 2060년에는 75만명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초고령화사회에서 노인들의 존엄성을 고민하는 문제는 이미 닥쳐온 미래이고, 서둘러 관련된 문화와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반드시 다가올 이 예견된 막대한 ‘죽음’의 사건들이 가족과 사회가 함께 죽음을 준비하는 ‘좋은 죽음’이 되어 사망에 이르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엄성이 지켜질 수 있도록 웰다잉 문화를 조성하고 정착시키는 일이 시급하다.

성숙한 ‘웰다잉’ 문화 조속히 정착해야

현재 정부의 노인정책은 주로 생활안정, 일자리 창출, 치료비 지원 등 재정투입을 통한 노인복지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사업들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죽음을 준비하면서 스스로의 각성을 통해 자기결정을 하도록 하는 문화의 조성과 이를 위한 종합적인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 좀 더 삶을 자기 주도적으로 존엄하고 아름답게 마무리 할 수 있는 죽음을 준비하는 사회로 변화시켜 가야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9월 30일 죽음과 관련하여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웰다잉에 관한 국가의 정책수립과 지원기구 설치를 의무화하는 「웰다잉 기본법안」을 발의했다. 호스피스·완화의료, 장례·장묘, 장기기증, 유산기부 등 죽음에 관한 사항을 당사자가 미리 결정하여 죽음을 사전에 준비하고, 이러한 당사자의 자기결정을 존중하여 그에 따라 이행되도록 하는 것을 ‘웰다잉’으로 정의하면서 이러한 웰다잉에 대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를 규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가 중간에 멈춰 선다고 한다. 너무 허겁지겁 달리기만 하면 정신이 못 따라 올까봐 달리다가 멈춰서 정신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우리들에게 이와 같이 멈춰 설 수 있는 시기가 노년기에 접어드는 시점이 아닐까 싶다. 이때가 삶을 정리해보는 가장 좋은 때인 것 같다.

노년기에 접어들면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삶의 가치를 찾지 못하고 무기력, 좌절, 허무, 체념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런 상황에서 삶을 정리해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금 일어서는 힘이 생길 수도 있고, 나아가 앞날을 다시 계획할 수 있는 매우 유익한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노년기에 접어들 때 즈음에 이러한 기회가 제공되는 문화와 제도가 필요하다. 이 「웰다잉 기본법안」이 이러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

로마의 사상가이자 정치인이며 시인인 세네카는 “친구여, 우리는 일생을 통해 계속해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만 하네. 그런데 훨씬 더 놀라운 일은 우리는 일생 동안 계속 죽는 방법도 배워야만 하는 거라네”라고 했다. 법과 제도의 변화와 함께 우리 국민들의 인식과 행동도 함께 변화해 가야 한다. 잘 죽는 방법을 배우고 실천해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사회 전체적인 웰다잉 문화가 성숙해 갈것이다.

연명의료나 호스피스, 장례·장묘, 유언장, 유산의 기부, 자서전쓰기, 장기기증 등 다양한 분야에서 죽음을 잘 준비하고, 또 잘 죽는 방법을 배우는 문화가 조속히 뿌리내려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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