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기쁨으로 가득 찬 노인복지회관 만들어 갈 것

♬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 마누라가 말리고 자식들이 놀려대도 나는 할 거야. 컴퓨터를 배우고 인터넷을 할 거야. 서양말도 배우고 중국말도 배우고 아랍말도 배워서 이 넓은 세상 구경 떠나나 볼 거야~

이다현 만안노인복지회관 주무관(왼쪽)과 자원봉사자 어르신
이다현 만안노인복지회관 주무관(왼쪽)과 자원봉사자 어르신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단다’라는 노래의 가사다.

지금 일하는 곳으로 발령을 받고 일하면서 머릿속에 이 곡이 떠올랐다. 이 노래가 어울리는 이곳은 경기도 안양시 평생교육원 소속 만안노인복지회관이다.

사회복지시설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사실 나는 행정직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16년 근무 경력중 5년이나 복지업무를 담당했다. 그것도 사회복지 한 분야만이 아닌 한부모, 아동, 장애인복지까지 여러 분야를 경험했고 이번엔 노인복지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게 됐다. 총 근무 경력 중 3분의 1을 사회복지 관련 업무를 했으니, 이만하면 준 사회복지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일하고 있는 노인복지회관에서는 노인교육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학습운동·예술·컴퓨터·스마트폰 등 여러 분야의 다채롭고 재미있는 교육을 기획·홍보하고 모집 및 운영하는 것이 주요업무다.

처음엔 ‘이런 걸 나이 든 어르신들이 배우러 오려나’하는 생각도 잠깐 했는데 그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다. 달리 ‘평생교육’이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었다. 계획한 모집정원을 훌쩍 넘겨 매번 컴퓨터 추첨을 해야 한다. 합격자들은 마치 복권이라도 당첨된 듯 크게 기뻐하고 대기자들은 ‘언제쯤 수업에 들어갈 수 있냐’며 사무실 문턱이 닳도록 찾아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

개강 후 아침 일찍부터 공부하러 배낭을 메고 총총거리며 오는 모습, 댄스수업 들으러 화려한 의상으로 꽃단장하고 오는 모습을 보면 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가끔 ‘친구는 붙이고 나만 떨어뜨렸다’며 담당자를 찾아 사무실을 박차고 들어오는 어르신을 보며 가슴이 벌렁거리고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지만, 주머니에서 껍질이 꼬깃꼬깃해진 사탕을 꺼내주며 ‘이렇게 좋은 교육을 무료로 배우게 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해주는 분들 덕분에 없던 힘도 불끈 솟아나곤 한다.

이제는 정규 커리큘럼 외에도 ‘어르신들이 어떤 걸 좋아하실까’ 항상 궁리하고 마치 숨겨놨던 선물 보따리를 ‘짠!’하고 풀어놓듯 특별교육을 기획하고 선보인다. 교육이 성황리에 운영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무언가를 배우는 그 시간을 통해 어르신들은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 세월을 돌려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가는 체험을 하고 계신듯하다. 또 살아온 세월이 버거워 미처 배우지 못한 분들은 그 시절 경험하지 못했던 학생 신분을 누리며 어찌나 행복해 하는지 모른다.

‘어르신’이나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불리기보다는 ‘학생’으로 불러 달라는 말에 인간에게 배움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배움이 노후를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 알게 되었다.

이젠 이곳에 적응해서 어르신들과 즐겁게 생활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겉으론 웃으며 어르신들을 대했지만 그들을 완전히 이해하며 진심으로 다가가진 못했던 것 같다.

노인복지회관에 오기 전까지 이렇게 많은 어르신들을 한 곳에서 본 적이 없었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 세대에게 관심이 없었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마치 나는 지금 이 나이에 머물러 있고 절대 늙지 않을 것 같았다. 나이 듦이 상상조차 안됐고, 처진 내 얼굴이, 가늘어져 힘없는 내 다리가, 굽은 허리와 숱 없는 머리카락이…. 이런 상황이 나에게 올 거라는 생각을 할 일말의 단초도 없었다.

‘늙어봄’의 간접경험 통해 깨달음 얻어

처음엔 식사 후 화장실에서 틀니를 빼서 헹구는 모습을 보고 문화충격을 받았는데, 그 후 호기심에서 시작하여 나중엔 어느 정도 안쓰러움과 나아가 애정으로 어르신들의 얼굴을 찬찬히 마주하고 들여다보니 주름진 그 얼굴 속에 젊은 날의 모습이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때로 장난기 어린 모습을 보일 때면 어딘가 소년 소녀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갑자기 나태주 시인의 시집 제목이 떠올랐다. ‘오래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어르신들도 그냥 열심히 살다보니 스스로도 모르게 어느덧 세월이 그렇게 흘러버린 거고 이제는 싫어도 어쩔 수 없이 젊은이들에게 의지해야 될때가 온 거다. 할 수 있으면 분명 모든 걸 스스로하고 이 세상을 맘껏 누리며 살고 싶으실 테다. 이곳에서 일하기 전까지 이런 생각을 정말 단 한 번도 하지 않고 살아왔다. 노래 가사처럼 난 늙어보지 못했으니까.

‘늙어봄’의 간접경험을 통해 인생을 깊게 성찰하고 나의 미래를 생각해보게 해주신 어르신들게 또 그들의 젊어봤던 세월에 감사드린다.

이제 평균수명이 길어져 2030년 정도가 되면 놀랍게도 60대가 중년이 될 거라고 한다. 그 때 되면 노인이란 말이 어색해져 내가 일하는 곳이 ‘신중년 복지회관’으로 명칭이 바뀔지도 모르겠다는 재밌는 상상도 해본다.

오늘도 어르신들께 활짝 웃는 모습으로 출근을 하며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안내데스크에서 90세 신중년 자원봉사자 어르신이 나를 반겨주신다. 배움의 기쁨으로 가득 찬 만안노인복지회관은 언제나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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