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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등급제 폐지, 정말로 이루어졌나?
  • 승인 2019.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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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한’ 장애인 여부로 구분됐을 뿐…큰 차이 체감 안 돼
이용석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정책홍보실장
이용석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정책홍보실장

지난 8월 22일 보건복지부는 작정하듯 꽤나 의미심장한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수요자 중심 장애인 지원체계 구축 50일, 장애인 삶의 변화 나타나다!’라는 제하의 보도자료는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도입된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를 통해 제공하기 시작된 활동지원서비스 시간과 지원대상이 대폭 확대됐다는 내용이다.

복지부의 주장은 수급자격 갱신기간이 된 1221명의 급여변화를 분석해 보니이 중 79.8%(974명)가 급여량이 증가하고, 19.2%(235명)는 급여량이 유지되며, 1.0%(12명)만이 급여량이 감소했다는 것이다.

또한 기존에 서비스 신청이 제한됐던 경증장애인도 신청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종합조사를 통해서 일상생활지원 필요도가 인정돼 서비스를 지원받게 됐고, 장애유형, 장애정도, 연령 등에 따라 지원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선별하여 맞춤형 상담을 했는데 그 대상이 7월 한 달 간 1085명이었고, 이들에게 무려 1만4686건의 서비스를 선별 안내하였으며, 5100건의 서비스 신청을 유도해 서비스 신청(7663건)이 전년 동월 대비 24.6% 증가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장애인 소득보장 강화를 위해 2018년 9월 장애인연금 기초급여를 월25만원으로 올리고, 2019년 4월에는 생계 의료급여 수급자를 대상으로 30만원으로 확대하였고, 특별교통수단 이용대상을 ‘1·2급 장애인’에서 ‘중증장애인 중보행상 장애가 있는 경우(기존 1·2급 이용자 포함)’로 확대하고, 법정대수도 이용대상 200인당 1대에서 150인당 1대로 확대했다고도 했다.

또한 공공어린이 재활의료기관 건립을 지속 추진 중이며(2019년까지 5개소), 장애인 건강주치의, 지역장애인 보건의료센터(2019년까지 6 개소) 및 장애친화건강검진기관(2019년까지 28개소) 확충을 통해 건강관리 서비스를 확대하고 의료 접근성을 강화하고 있다고도 했다.

그야말로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장애인 환경과 제도가 장애등급제 폐지를 선언하고 불과 50여 일만에 눈에 띄도록 개선되고 서비스의 시간과 대상이 늘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정말일까? 정부의 주장대로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장애인당사자들의 삶의 질이 향상됐을까? 그런데도 왜 장애인당사자들은 지금의 장애등급제 폐지는 ‘사기’라며, ‘진짜 장애등급제 폐지’를 요구하며 저 뜨거운 거리에 나와 있을까?

지난한 과정 거친 장애등급제 폐지

장애등급은 1981년 「심신장애자복지법」이 제정된 이듬해인 1982년에 도입됐다. 그리고 1989년 「장애인복지법」의 시행을 통해 장애인복지서비스의 대상 기준으로 공고화되기 시작해 30여 년에 이르기까지 복지행정의 편리성을 제공해왔다. 이렇듯 장애등급제는 우리나라 장애인복지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였으며, 그 대상이 가장 많고 보편적인 각종 감면·할인제도의 근거로 작용해 왔다. 또한 활동지원서비스 등에 대해서도 대상자와 지원수준을 결정하는 핵심적 기준이었다.

‘장애등급제 폐지’에 대한 논의는 이를 국민명령 1 호로 선정하고 실천한 문재인 정부 이전부터 있어왔다. 지난 2012년 대선에서 공약으로 장애등급제 폐지가 거론되면서 본격적인 장애인 복지정책 어젠다로 확장됐다. 당시 장애등급 1급인 중증장애인만이 활동지원제도의 대상이 되는 문제의 불합리성이 장애계를 중심으로 거론되고 장애등급과 상관없이 장애인당사자의 환경과 욕구 등에 맞도록 활동지원서비스가 제공돼야 한다는 것과 국민연금공단에서 활동지원서비스 대상을 선정할 때 장애등급 재심사를 실시하면서 장애등급 하향조정을 통해 대상의 수와 지원시간을 예산에 맞춰 제공한다는 의심에서 시작된 장애등급제 폐지 주장은 2013년 당시 박근혜 정부의 장애판정체계기획단 구성을 통해 활발한 논의가 시작됐다.

당시 장애등급제 폐지의 주요한 쟁점은 네 가지였다. 우선 장애정도를 구분하는 의학적 기준에 대한 정비, 그에 따른 소득보장 체계 개편, 그리고 장애인감면·할인제도 조정과 장애인복지서비스 전달체계 개편 등이었다. 당시 장애판정체계기획단합의 사항을 살펴보면 소위 촛불시민혁명을 계승하고 있다는 문재인 정부의 장애등급 폐지 내용보다 훨씬 진일보한 내용이다.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한 중간단계로 중·경의 단순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고 합의를 했다는 것이다.

중·경 단순화 과정을 거치지 않는 완전 폐지는 장애인 소득보장(장애인연금, 장애수당 등)체계에 대한 의학적 기준, 직업 근로능력기준, 사회적 환경 여건 등을 고려한 종합판정체계의 마련으로 이어지고, 장애정도별로 각종 할인제도의 할인율에 차등을 두지 않으며, 더 나아가 단일 감면율 적용방안까지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명령 제1호로까지 선포했던 문재인정부에서 새롭게 마련된 장애판정체계기획단에서는 2013년에 합의된 내용이 상당부분 축소되기 시작했다. 급기야 2016년 기획단은 장애등급제를 종합판정체계로 전환하여 서비스 필요도 등을 반영한 통합적 판정체계로 전환한다는 내용만 발표했을 뿐, 소득보장체계 정비와 감면·할인제도 개편 등에 관한 사항이 사실상 누락하면서 현재의 상황이 어느 정도 예견됐다.

결국 장애등급을 폐지하는 것은 단순히 장애등급을 없애는 차원을 넘어 장애인복지 전반에 대한 제도의 개편과 확장은 물론 우리나라 장애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되는 포괄적인 과제였음에도 현재의 장애등급제 폐지는 장애인당사자를 장애정도에 따라 장애정도가 ‘심한 장애인’과 장애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으로 분류함으로써 장애인당사자의 낙인감을 극대화한 용어로 장애등급을 단순화한 것에 불과하다.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부각된 쟁점

그동안 장애등급제는 소득보장, 직업재활, 교육, 감면·할인제도, 보건의료 등 우리나라 공적 장애인복지뿐만 아니라 민간 영역의 서비스 지원의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행정적 근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등급제는 의학적 기준의 신체·정신적 손상만을 보는 한정적 제도라는 것, 다양하고 복잡한 서비스 영역에 획일적이고 단순한 기준인 등급으로만 적용해 복지사각지대를 포괄하지 못하는 한계가 드러나는 등의 장애계의 비판에 직면했다.

장애등급제 폐지 주장의 시작이야 활동보조서비스의 제한적 대상에 대한 비판과 외연을 확장하는 것이 주된 계기였지만 우리나라 장애인복지제도의 패러다임 변화 즉, 장애인당사자의 의학적 상태뿐만 아니라 개인적 환경과 욕구에 맞는 서비스 제공 등에 맞는 시스템 개편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주장은 당연한 요구였다.

현재의 이른바 장애정도가 심한 장애인과 장애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으로 구분한 단순화는 전면적인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혼란을 방지하고, 완충 기간 동안 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논의를 통해 완전한 장애등급제 폐지 실천방향을 도모하자는데 있다. 하지만 그 속내에는 장애등급제 폐지로 발생할 예산의 증가, 행정적인 어려움, 장애정책 관련한 정부부처들의 제도적 개편 등 그야말로 정부 입장에서는 골치 아픈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겠느냐는 관료들의 안일한 태도와 다음 정부에 떠넘기면 그만이라는 현 정부의 무책임의 결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소득보장체계의 경우, 장애인당사자의 소득보장체계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최저생활의 보장과 장애인당사자를 대상으로 한 장애수당, 장애인연금, 장애연금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야 수급조건이 소득 중심이어서 장애등급과 상관없지만 장애수당과 장애인연금은 소득기준과 장애등급이 가장 주요한 수급조건이다.

장애정도가 심한 장애인·장애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으로 구분한 현재의 장애등급제 폐지 제도 하에서는 3급 장애인들이 장애인연금 대상으로 전환되기는 하겠지만 어차피 수급조건에 소득 기준까지 있기 때문에 그 대상의 증가는 미미할 것이다. 따라서 장애인의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기본적 소득보장체계 마련을 위해서는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한 소득보장과 이동, 의료, 돌봄 등의 영역이 따로 포함돼 보장돼야 한다.

또한 장애인당사자의 직업·근로능력 기준과 사회적 환경에 따른 고용서비스의 대상 적용에 있다. 현재 고용노동부에서는 고용서비스 대상자에 대한 직업·근로능력 평가기준 마련을 위해 연구용역에 착수해 있는데, 그 방식이 장애인당사자의 직업·근로능력을 평가해 데이터베이스화해 이를 고용주에게 제공해 장애인당사자를 선택하는 기준으로 삼으면 안 될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사회적 환경 등을 중심으로 한 종합적인 평가를 통해 장애인당사자 중심의 맞춤형 고용환경과 직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무고용비율을 맞추기 위해 노동자를 구하는 사업주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장애인당사자의 장애정보를 제공하겠다는 안일하고 무책임한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 외에도 짚을 것들은 태산이다. 우선 감면·할인제도를 들 수 있다. 감면·할인제도는 장애인당사자 대상이 가장 많고 매우 포괄적이며 장애등급기준 방식과 전장애등급 기준 방식으로 매우 복잡하지만 장애인당사자들의 체감지수가 가장 높은 제도이기도 하다. 문제는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장애정도가 심한 장애인·장애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으로 구분해 감면·할인이 적용되다보니 현장에서 장애인당사자들의 모멸감이 크다. 심한 장애인으로 낙인화되고 규정되면서까지 감면·할인을 받아야 하냐는 하소연부터 혐오표현이라는 분노에 이르기까지 장애등급으로 구분할 때보다 더 모멸감을 느낀다는 장애인당사자들의 항의도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단일감면·할인율 적용을 통해서 감면·할인 대상의 장애정도 구분을 없애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것은 장애인등급폐지 주장을 촉발시킨 장애인활동지원제도의 서비스 대상과 급여량을 결정하는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표’의 불합리성이다. 장애인활동지원제도는 2007년 첫 해 서비스 대상자 1만6000명에 예산이 286억원으로 시작돼 12년이 지난 지금은 예산이 무려 35배나 증가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장애인복지제도로 자리 잡았다. 이후 장애계는 장애인활동지원제도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거듭했고, 대상자 선정과 급여량 결정 방식은 ‘인정조사표’에서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표’로 바뀌게 됐다.

문제는 두 가지 모두 서비스 판정 기준의 모호성이다.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제공돼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라면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표’가 정말 이 원칙에 충실하도록 설계돼 있을까? 장애계는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표’의 ‘(수단적) 일상생활동작’이라는 소위 ‘정상성’과 ‘의료적 관점’에 가까운 기능 수준을 정해두고, 서비스 적격성과 서비스 시간을 결정한다고 비판한다. 결국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새롭게 설계된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표’의 목적은 서비스 대상을 억제하기 위한 엄격한 선별도구일 뿐이며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한의학적 손상과 기능 제한 여부가 강화되면 될수록 장애등급제 폐지라는 정부의 주장은 ‘사기’가 되는 것이다.

아직 사라지지 않은 장애등급제

지난 8월 28일 서울 관악구에서 기초수급으로 생활하던 한 장애인당사자가 죽은 지 2주 만에 발견됐다고 한다. 이웃에 의해 발견됐을 당시 시신은 뼈가 보일 정도로 부패가 진행된 상태였다고 한다. 고인은 당뇨 합병증으로 2016년 한 쪽 다리를 절단해 장애인이 된 이후에 국민기초생활수급과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아왔으나 최근에는 활동지원서비스가 중지된 상태였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듣고 참담한 심정이었다. 정부는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50일간의 성과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실제 장애인의 삶에서 의미 있는 변화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자화자찬하는 와중에 복지사각지대에 있던 한 장애인당사자는 외롭게 홀로 숨을 거뒀다.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에도 정부의 발표와는 달리 장애인당사자는 아직도 빈 방 한 구석에서 쓸쓸히 죽어가고 있다.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의 장애인정책이 선별적이고 시혜적인 방식의 기존의 복지 시스템의 재배치쯤으로 그친다면 장애등급제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