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흥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
조흥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

매년 9월 7일은 ‘사회복지의 날’이다. 사회복지의 날은 국민들로 하여금 사회복지에 대한 이해를 돕고, 사회복지사 등 관련 종사자들의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국가가 정한 기념일이다.

이렇게 사회복지의 날을 9월 7일로 제정한 것은 노동능력이 없는 가난한 자를 위한 ‘생활보호법’을 노동능력이 있더라도 가난하다면 국가가 지원을 해 주고, 자활을 돕는 획기적인 인권신장과 사회복지 발전의 표징으로 전면 개정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처음 공포한 날인 1999년 9월 7일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따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사회복지의 날과 사회복지주간에 기념식, 토론회, 백일장 등 관련 행사를 진행하며, 사회복지 발전에 이바지한 사람들을 선정하여 시상한다. 이 법은 우리나라가 외환위기 이후 실업자와 빈곤층들을 지원하기 위해 1999년 9월 7일에 제정되었지만, 시행은 다음 해인 2000년 10월 1일부터 이루어졌다. 그러니 올해 2019년 9 월 7 일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 20주년이 되는 뜻깊은 날이며, 내년 2020년 10월 1일은 시행 20주년이 되는 날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제정과정과 변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제정과정은 1987년 민주항쟁 이후 한국 복지정치의 지형이 획기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즉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 국민기초생활보장을 위한 문제 제기와 의제 형성, 정책대안의 제시에 이르기까지 시민운동단체가 큰 역할을 하여 법 제정을 성사시켰던 것으로 이는 한국 시민사회의 진보를 보여주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한국의 빈곤정책은 1961년 생활보호법을 기초로 하여 이후 약 38년간 몇 차례의 법 개정을 거치면서 부분적으로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빈곤의 책임을 개인과 가족에게 돌리는 잔여적, 시혜적 차원에 머물고 있었다. 그 결과 급여 대상의 포괄성, 급여 수준의 적절성, 대상자 간의 형평성, 제도의 효율성과 효과성이라는 측면에서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었다.

이러한 생활보호법의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된 바, 이 법은 첫째, 법의 내용 중 보호, 피보호자 등의 시혜적인 문구를 보장, 수급자 등의 권리성 문구로 변경하여 국가책임을 강조함으로써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권리를 강조하였고, 둘째, 최저생계비 이하의 모든 국민에게 기초생활을 보장하고, 자립, 자활을 도모하는 최종적인 사회안전망으로서의 역할을 수행코자 하였으며, 긴급구호제도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였고, 셋째, 사회 전체적인 빈곤의 책임을 강조함과 동시에 자활제도를 두어 수급자들도 빈곤 탈피를 위해 노력할 것을 규정하여 생산적 복지의 이념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변천을 살펴보면 크게 2015년 6월 이전의 통합급여방식과 2015년 7월 이후의 맞춤형 급여방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된 이후 15년 동안 시행된 통합급여방식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생활보호법에서는 행정차원에서 전국적으로 동일한 개념의 1인당 최저생계비를 적용함으로써 지역별로는 상대적으로 생활비가 많이 들어가는 대도시 지역의 수급대상자가 탈락하게 되는 단점을 줄이기 위해 1999년 처음으로 계측된 최저생계비를 수급가구 선정 및 급여기준으로 활용하였다.

둘째, 생활보호법에서 생활보호 대상자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하는 소득기준과 재산기준을 동시에 충족하여야 했는데, 이 경우 일부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러한 소득인정액 제도는 소득평가액과 재산의 소득환산제도로 구분되는데, 자동차 등 재산의 소득환산율이 너무 높아 이를 하향 조정해야 하며, 주거용 재산 적용상한액을 폐지하고, 기본재산공제액은 대폭 상향 조정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셋째,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는 보충성의 원칙을 도입했는데, 이 원칙은 정부가 정한 기준선 이하와 수급가구의 소득 차액만큼을 급여로 보전해주는 방식이다. 이러한 보충성의 원칙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수급가구 및 수급자의 근로의욕을 낮출 수 있다는 점과, 부정수급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한편, 2015년 7월 이후부터 시행된 맞춤형 급여방식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존 통합급여체계로 운영되던 급여를 생계, 의료, 주거 및 교육급여 등 개별급여체계로 변경 운영하였다.

둘째, 최저생계비를 기준 중위소득으로 변경하였으며, 각각의 급여에 따른 급여기준선을 별도로 설정하였다. 최저생계비가 기준 중위소득으로 변경되었다는 점은 우리나라 빈곤선 기준이 절대방식에서 상대 방식으로 변경되었다는 점과, 지출 중심의 제도에서 소득 중심의 제도로 변경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선정기준의 개편이 이루어졌다. 특히 생계, 의료, 주거 및 교육급여 등 각 급여별 선정기준선을 달리 설정하였는데, 개편 전에는 지출을 통해 산출된 최저생계비를 이용하였으나, 개편 후에는 기준 중위소득으로 변경되었다.

넷째, 부양의무자 기준을 개선하였다. 부양의무자 기준을 크게 상향 조정하였으며, 무엇보다 처음으로 교육급여에 대해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였으며, 2018년 10월부터는 주거급여에 대해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였다.

다섯째, 전달체계에서 기존 보건복지부 중심의 전달체계를 주거급여는 국토교통부, 교육급여는 교육부, 생계·의료급여는 보건복지부를 책임부처로 개편하여 제도운영에 대한 책임성을 강화하였다. 그리고 세부적 전달체계도 개편하여 주거급여는 국토교통부를 중심으로 LH공사가 함께 담당하게 되었으며, 교육급여는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이 함께 업무를 담당하도록 변경하였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한계와 가능성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저소득층과 빈곤층에 대한 최후의 사회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수의 가구와 개인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러한 사각지대 발생에 많은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부양의무자 기준, 재산 기준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기준이 부양의무자 기준이다. 2017년 제1차 기초생활보장 기본 및종합계획과 2018년 소득분배 악화 등을 고려하여 추가적으로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한 바 있다. 그리고 2019년 5월 정부 재정전략 회의를 통해 부양의무자 기준을 좀 더 완화하여, 2020년부터 중증장애인일 경우 생계급여에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하지 않도록 방향을 정했다. 그러나 여전히 노인대상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의 폐지 시점을 언제 해야 할지에 대한 숙제가 남아있다.

둘째, 1999년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도입될 당시에는 최저생계비를 통해 선정 및 급여기준이 설정되었으나, 이후 2015년 맞춤형 급여체계로 전환되면서 선정기준은 최저생계비에서 기준 중위소득으로 전환되었으며, 급여기준은 최저보장수준을 별도로 설정하였다. 그러다 보니 2015∼2017년까지는 동 방식에 문제가 없었지만, 2018년과 2019년 기준 중위소득 산출 시 기존의 합의된 방식을 적용할 경우 전년도 기준 중위소득에 비해 차년도 기준 중위소득이 하락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향후 기준 중위소득의 안정적 산출과 예측 가능성 등을 고려하여 기준 중위소득 산출방식의 수정이 필요하다.

셋째, 1∼2인 가구의 소득 수준이 나빠지고 있으며, 노인, 청년 등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이들 계층에 대한 돌봄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기존 가구균등화지수 조정에 대한 검토가 요구되고 있다. 가구균등화지수를 과도하게 조정 시 세대 분리, 다른 제도와 영향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정수준에서 가구균등화지수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일본, 스웨덴, 독일 등과 같이 개인과 가구를 함께 고려하는 균등화 방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넷째, 주거급여 확대에 따른 임대주택 공급 차질과 임차료가 증대되고 있다. 유럽의 경우 주택수당 확대로 주거복지제도가 확대되었지만, 그 부작용으로 월세가구에 대한 임차료가 크게 늘어났으며, 주택수당의 복지제도로 인해 임대주택 공급을 줄이고 민간중심의 주택 공급이 확대되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국토교통부는 임대주택 건설에 중심을 두고 저소득 취약계층을 위한 주택 공급이 확대되어야 하고, 주거급여를 함께 운영함에 따라 임대주택보다 민간주택 공급이 늘어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다섯째, 오랜 기간 지역자활센터-광역자활센터-중앙자활센터로 연계된 전달체계를 통해 자활사업을 수행하고 있지만, 그 규모와 탈 수급 효과는 별로 크지 않다. 최근 자활지원제도의 전달체계 개편 과정으로 한국자활진흥원이 설립되었기 때문에 향후 이 기관의 활발한 역할수행에 대한 기대가 크다.

국민 기본생활을 보장하는 포용복지

1인당 GNI 3만 달러를 넘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는 과도한 경쟁 중심의 사회에서 국민들을 포용하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정책으로의 전환이 적극 필요한 시점이다. 심화된 경쟁 사회를 조금이나마 완화할 수 있는 것은 복지제도가 확충되고 모든 국민이 함께 누릴 수 있는 ‘혁신적 포용국가’로의 본격적인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주창하는 ‘혁신적 포용국가’의 개념은 정치, 사회, 외교 등 모든 영역에서 차별과 배제를 극복하고 포용성을 증진시킴으로써 국민에게 공정한 기회, 기본권리, 최소한의 생활기반을 보장하며, 각자 개성과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는 자유를 확장하는 국가를 의미한다.

한편, ‘혁신적 포용국가’의 핵심을 이루는 포용복지는 ‘경제성장의 과실로서의 소득보장과 사회서비스를 모두가 골고루 누리도록 복지제도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사회위험에 대한 보장성을 강화함으로써 개개인이 행복한 일상생활을 하도록 하는 복지’를 뜻한다. 구체적으로 포용복지는 △계층, 세대, 지역간 배제를 극복하고, 미래세대를 위한 사회통합·빈곤극복·기회균등 사회를 위한 복지정책 추진 △노동시장 차별 문제 해결 △기회불평등 인식의 확산 저지 △교육을 통한 인적자본과 사회자본 형성 △공공과 민간의 균형적 일자리 창출 △사회보장 확충을 위한 누진적 조세체계 구축 등 주로 국민의 기본생활을 보장하는 기능을 정책적으로 요구한다.

포용복지야말로 혁신성, 공평성, 공정성을 기반으로 국민의 일상적인 생활을 보장하고 차별과 소외 없는 복지제도를 재설계하는 것이기에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공공과 민간의 균형적 일자리 창출과 빈곤 노인 등 시급한 저소득층의 기본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빨리 과감히 개혁해야 한다. 특히 소득 하위계층인 1, 2분위에 대한 대책과 중산층 이상인 3∼5분위에 대한 대책은 달라야 한다. 1인 가구이면서 노인가구가 가장 많은 비중을 점유하고 있는 소득 하위계층인 1, 2분위에 속한 가구에 대해서는 부양의무자 기준 제도를 서둘러 풀어줘야 한다.

둘째,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의 실현을 위해 촘촘한 사회안전망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아동수당, 보육, 기초연금, 치매책임제 등의 국정과제가 성공적으로 추진되고 있으나, 체감할 수 있는 사회서비스 이용 시스템 구축이 미흡하다. 출생부터 사망까지 누구나가 누려야 할 기본권적 요소를 개인과 가족이 충족하기 어려울 때, 대인관계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지원해 줌으로써 사회문제를 예방하게 하는 사회서비스 보장을 강화해야 한다. 사회서비스의 대부분은 인적서비스로서 서비스의 강화는 곧 일자리 확충이 동반된다는 강점이 있기 때문이다.

셋째, 정책 패키지 관점에서 계층별 기대효과를 정교하게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목표에 맞는 정책수단을 발굴해야 하며, 정책 간 상충관계에 대한 입장 정리를 정확히 함으로써 성장과 분배 정책 간 조정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예로서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간의 보완성 및 포용복지를 통한 포용성장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정책수단을 발굴해야 하며, 고용 안정성과 경제 역동성 간 상충관계 등에 대한 입장 정리도 필요하다. 아울러 지속적인 발전 전략을 기반으로 하는 장기 로드맵을 토대로 정책을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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