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값진’ 일

이종혁 미국 SSG/AP Recovery 정신보건사회복지사
이종혁 미국 SSG/AP Recovery 정신보건사회복지사

2015년부터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정신보건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현재는 수감 중 정신 건강 이상 판정을 받아 가석방된 클라언트를 대상으로 재활 치료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내가 담당하는 클라이언트들은 대부분 마약·정신질환·홈리스·트라우마 등의 이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역의 많은 사회복지 실천 분야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프로그램 중 하나로 여겨진다.

한국과는 다르게 미국은 마약이 일상 속에 깊이 침투해있어서 마약으로 인한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하다. 게다가 터무니없이 비싼 의료비와 낮은 의료서비스 질 때문에 그들은 기본적인 치료조차도 받기 어려운 환경이고, 정보에 취약한 사람들은 사회보장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치안도 좋지 않아 집 없이 떠돌며 지내는 노숙자들은 항상 범죄에 노출되어 있다.

이곳에서 만난 클라이언트들은 내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망가져 있었고 때문에 그들을 대하는 일이 어려운건 물론이고 때로는 위험하기도 하다. 감옥에는 자리가 없을 정도로 수감자가 넘쳐나는 바람에 경범죄 전과를 가진 정신질환자의 경우는 가능한 지역사회로 돌려보내 재활치료를 받도록 하는 추세다. 아이러니하게도 풍요로운 땅의 소외계층의 현실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비참하고 어두웠다.

사회복지사가 클라이언트를 돕는다?

“아! 정말 좋은 일 하시네요.” 직업을 소개할 때면 항상 듣게 되는 반응이었다. 나는 그럴 때면 “뭐 나쁜 일 하는 사람도 있나요?”라고 냉소적으로 받아치곤 했다. 아무래도 좋은 일을 한다는 표현이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일상적일 수 있는 ‘좋은 일’은 어느 순간부터 가장 상투적이고 직업적인 것이 되어 있었고, 내가 하는 일이 진정으로 ‘좋은 일’인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내가 노력해도 클라이언트가 변하는 경우를 별로 보지 못했고, 내가 그들에게 왜 필요한 존재인지 알 수 없었다. 반복되는 좌절로 인해 직업에 대해 회의감을 가지게 되었고 하루하루 일하는 것이 즐겁지 않고 자주 짜증이 나기 일쑤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사회복지사인 나는 길에서 노숙자나 구걸하는 사람들을 보면 도움을 건넨 적이 거의 없다. 어쩌다 어려운 이웃을 보고 마음 아파하고 작은 도움을 주며 스스로 위안하는 친구를 보면 그 모습이 아름다워 보이지 않고 위선적인 행동으로 보일 정도로 삐딱해져 있었다.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던 나의 초심은 없어지고, 그것은 현실 감각이라곤 없던 어린 시절의 바보 같은 마음같이 느껴졌다.

이렇게 나는 알맹이가 없는 사회복지사, 삭막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초심을 잃어버리니 직업관은 항상 위태로웠고 내가 하는 일이 자랑스럽지 않았다. 나를 좋은 일 하는 사람으로 바라보는 남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기만 했다. 나의 직업에 단순한 ‘좋은 일’이 아닌 다른 이유가 필요했다. 거의 2년간 이런 슬럼프에 빠져 있었고 그동안 클라이언트를 대하는 일이 나에겐 그저 어렵고 더 이상 의미 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진상’ 클라이언트와의 만남…‘변화’를 경험하다

이런 나에게 우연히 의지와는 상관없이, 변화가 찾아 왔다. 그 변화는 다름이 아닌, 한 ‘진상’ 클라이언트와의 만남에서 비롯됐다.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마약 중독에 심각한 정신질환으로 사실상 재활이 어려워 보였다. 나와 나이가 비슷한 또래인데도 불구하고, 이미 정신병원과 감옥에 여러 번 다녀온, 통제가 어렵고 대화가 어려운 사람이었다. 여러번의 전과에 가끔 폭력적 성향까지 있어 회사에서 가장 체격이 좋은 남자라는 이유로 내가 담당하게 됐다.

첫 만남부터 치료를 거부했고 묻는 말에 대답도 잘 하지 않아 30분 이상 함께 시간을 보낼 수가 없었다. 항상 사회복지사를 비난하고 욕하기 일쑤여서 자주 지치곤 했다. 그는 재활하기에는 너무 늦어 보였고, 도와줄 수 있는 것도 별로 없어보였다.

이렇게 마음 속 한편에는 ‘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라는 강한 부정적 선입견을 가지고 클라이언트를 대했던 것 같다. 그저 만나면 근처 공원에 가서 바람이나 쐬어주고 햄버거 가게에 앉아 이야기나 들어주자는 마음으로 일주일에 한두번씩 만남을 유지했다. 클라이언트 또한 법원의 명령 때문에 의무적으로 나와의 만남을 가져야만 했다. 그렇게 둘 다 서로 원하지 않지만, 정기적으로 만나야하는, 그런 이상한 만남이 유지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와 길을 다니거나 상점에 들어가면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의 새로운 반응을 경험하게 됐다. ‘무시하는 눈길’, ‘무서워하는 눈길’, ‘피하는 몸짓’ 등. 한번은 같이 식당에 들어갔다가 사람들의 눈초리가 기분 나빠 그냥 나온 적도 있었다. 가게에 물건을 사러 들어가면 마치 도둑을 바라보는 눈초리로 감시당하기도 했다. 그나마 내가 함께 옆에 있을 때면 덜 한 편이었다. 클라이언트는 언제나 있는 일이라는 듯 무감각했지만 내 클라이언트를 그렇게 대하는 사람들이 너무 못마땅했다.

그런 눈길이 싫어서 클라이언트를 만날 때면 항상 가장 깔끔한 옷을 차려입고 나갔다.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는 클라이언트와 그의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가급적 피하고, 식당에 가면 보란듯이 팁도 넉넉하게 올려놓고 나오곤 했다. 사람들의 반응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다른 건 몰라도 내 클라이언트를 그런 시선으로부터 보호해주고 싶었다.

그런 내 마음을 클라이언트가 느꼈는지 아니면 단순히 시간이 지나서 편해졌는지 그가 서서히 말문을 열고 치료에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를 만난 지 3개월 정도 되어가던 어느 날, 헤어지려던 찰나 그가 문득 말했다.

“선생님을 만나는 시간이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 선생님과 만나서 이야기 하고 활동도 하면 마음이 좋아지고, 보호받는 느낌이 들거든요. 아무래도 선생님이 나에게 남은 마지막 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동안 보지 못한 진실 된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다. 나에겐 적개심과 의심만 가지고 있는 줄 알았던 클라이언트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은 정말 몰랐다. 그의 말 한마디에 나는 하루 종일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내 옆에 남은 ‘마지막 한 사람’, 사회복지사 선생님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이라는 단어였다. 그동안 기계적으로 자신을 대했던 나를 이 사람은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한 사람’이라고 느꼈던 것이다. 그런 클라이언트를 섣불리 판단해버리고 너무 진심 없이 대해 왔던 것이다. 그런 나의 태도에 큰 죄책감이 들었고 부끄러웠다. 그말 한 마디가 내 직업관에 큰 변화를 줬다. ‘내 중심’이 아닌, ‘클라이언트 중심’으로 변했다. 상투적으로 생각했던 ‘만남’이 클라이언트에게는 너무 소중했고 사회복지사의 지원이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클라이언트를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고 나니 많은 것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가 더 잘 보이게 되었고, 그의 눈높이에 맞춰 접근하게 됐다. 그런 진심이 전해졌는지 클라이언트와 나 사이에는 서서히 신뢰가 생기게 됐다. 내 말이라면 대부분 존중하고 협조해줬다. 동료들은 클라이언트의 태도 변화를 보고 다들 놀라워했다.

일 년 반이 지난 지금, 그는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마약 사용량을 줄였고, 계속 줄여나가고 있다. 현재는 지역에 있는 직업 전문학교에서 용접을 배우면서 재활을 준비하는 꿈을 가진 젊은이로 거듭나게 됐다. 물론 그가 재활에 끝까지 성공해서 번듯한 사회인이 될지 다시 마약에 빠지거나 나쁜방향으로 흘러갈지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아주 희망적으로 보인다.

그동안의 발전으로 그는 스스로뿐만 아니라 나에게 매우 소중한 경험을 선물해줬다. 앞으로도 계속 재활에 성공해 정상적인 사회인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고 ‘그의 마지막 사회복지사가 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그동안 사회복지사가 일방적으로 클라이언트를 도와주는 직업이라는 생각은 나의 착각과 오만이었다. 내가 가장 ‘진상’이라고 생각했던 클라이언트는 한 마디 말로 나에게 새로운 직업의식을 심어주었고 동시에 개인적인 성장을 하게 해주었다.

사회복지사도 클라이언트를 통해서 성장하고 정말 중요한 것을 배우게 될 때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려운 클라이언트일수록 더 배우는 게 많고 그 경험은 나에게 결국 큰 자산이 된다. 사회복지사는 단순히 ‘직업’이 아닌 ‘끊임없는 배움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의 나의 닫힌 마음 때문에 뒤늦게 느끼게 된 교훈이었다.

사회복지현장에서 많은 실천가들이 소진을 경험하고 이야기한다. 사회복지사라면 대부분 공감하는 ‘과도한 업무’와 ‘그 노력에 미치지 못하는 월급’.

소진을 여러 번 하고도 남을 만한 이유이지만, 우리에게는 특별한 것이 있다. 다른 이들은 평생에 한 두번 만나기도 힘든 사람들을 우리는 매일같이 상대하고 그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한다. 그들의 문제를 예방 또는 해결하기 위해 입체적으로 일한다. 때로는 그것이 ‘잘하면 본전이고 못하면 비난 받는’ 그런 맥 빠지고 피곤한 일이라고 느낄 수 있지만, 그들을 통해 매일 반복되는 직장에서 새로운 배움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모르겠다.

사회복지사가 받는 급여는 돈으로 환산되는 금전적인 가치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른 이들은 알지 못하는 어둡고 낮은 곳, 그곳에서 얻는 많은 경험을 통한 성숙과 배움이 사회복지사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혜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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