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분과 차별이 발생하지 않는 사회 구현

이승기 성신여대 교수
이승기 교수

장애등급제가 2019년 7월 1일부터 폐지된다. 장애등급제는 지난 30년 동안 장애인과 관련한 제도적 토대로 작용해왔다. 소득보장을 비롯해 감면·할인제도 및 서비스 지원에 있어서 공공기관과 민간기관을 포괄하여 대상자 결정과 지원수준을 결정하는 핵심적 기준으로 활용되었다. 따라서 장애등급제를 폐지하는 것은 장애정도에 관한 구분을 없애자는 차원을 넘어, 장애인과 관련된 제도와 실천영역을 아우르는 전반적인 개편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번 장애등급제 폐지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장애등급이라는 말은 사라지지만, 장애정도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그 정도도 중증과 경증으로 구분하여 시행되어 장애등급제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한 초기 논의에서 중증과 경증으로 장애정도를 구분하는 이원화 경로를 거치지 않고 장애등급을 완전히 폐지하고자 했던 목표는 달성하지 못하게 되었다.

장애등급제 폐지로 인한 혼란은 중경증제도의 도입으로 상당부분 줄겠지만 이것은 장애인과 관련한 제도의 변화도 그만큼 작아질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장애등급제 폐지? 등급제 흔적 여전히 남아”

장애등급제에 대한 가장 큰 비판은 장애등급을 기초로 한 급여와 서비스 제공이 부당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이었다. 장애인은 동일한 장애정도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교육정도, 직업경험, 가족관계, 질병, 주거형태, 경제적 수준 및 사회적 관계망 등 다양한 차이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러한 차이를 무시하고 장애등급이 급여 및 서비스 제공의 결정적인 기준으로 적용되는 것은 타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의에서 볼 때 장애등급제가 폐지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장애등급제의 폐지가 신체적·정신적 제약의 물리적 혹은 의학적 상태에 대한 평가 자체의 폐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즉, 장애등급제 폐지는 의학적 상태에 대한 파악 자체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장애상태에 대한 의학적 판단이 장애인에 대한 급여와 서비스 제공의 한 요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의학적 평가와 더불어, 장애인의 교육정도, 직업경험, 가족관계 등 급여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다양한 기준이 설정되어야 하며, 이러한 의미에서 의학적 기준이 장애등급이 되는 현행 장애등급제는 폐지되어야 하는 것이다.

장애등급제 이원화…변화의 폭 ‘미미’

장애등급제의 완전한 폐지가 아닌 장애정도를 중경증으로 구분하는 이원화체제의 도입으로 당초 기대했던 변화의 폭은 상당히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먼저, 소득보장 영역의 경우 중증장애인에게 지원하는 장애인연금과 경증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장애수당제도는 근간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약간의 조정은 있겠지만 그것은 주로 행정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변화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기에 체감적 변화는 미미할 것이다.

둘째, 장애인에 대한 감면·할인제도의 경우에도 커다란 변화는 없을 전망이다. 장애등급과 상관없이 모든 장애인에게 적용되는 감면·할인제도는 그대로 유지될 것이고, 장애등급에 따라 차등적으로 감면·할인이 적용되는 제도는, 중증과 경증으로 구분하여 현재도 이미 시행되고 있어서 소득보장 영역과 마찬가지로 약간의 조정만 거치면 가능하다.

셋째, 장애인복지서비스 전달체계에 미치는 영향도 별반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서비스가 비영리민간기관에서 제공되고 있고 현재에도 장애등급이 결정적으로 영향을 주는 서비스는 몇 가지의 바우처 제도 이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이상의 내용을 볼 때 장애등급제 폐지가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예견된다. 이번 장애등급제폐지의 골자는 현행의 6등급 체제의 장애등급제가 2등급 체제로 변경되는 것이므로, 장애등급제 폐지가 아니라 장애등급제의 단순화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장애등급제와 연결된 대부분의 현행제도의 경우 이미 중증과 경증으로 구분하여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중증과 경증의 경계선을 어떻게 세밀하고 조화롭게 조정할지의 문제만 남아있을 뿐 다른 변화는 기대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장애등급제 폐지와 갈등

장애등급제 폐지와 관련된 초기 논의에서는 장애등급제 폐지로 인한 상당한 갈등과 혼란이 야기될 것으로 예견되었다. 특히, 중 증장애인의 경우 현재의 제도적 지원이 대폭 감소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기류가 매우 팽배했으며,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정부는 장애등급제 폐지로 인한 혼란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지속적으로 표출되었다. 서비스 제공기관의 경우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서비스 지원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막연한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장애등급제의 완전한 폐지 대신, 중경증의 이원화 체제로의 결론은 이러한 불안과 갈등을 급속히 잠재웠다. 장애등급제 폐지로 변화될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앞서 논의했듯이 소득보장영역도, 감면·할인 영역도, 전달체계영역도 장애등급제 폐지가 가져올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으므로 심각한 갈등 상황은 사실상 마무리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장애등급제 폐지의 의미 찾기

장애등급제 폐지가 가져올 영향이 미미한 상황에서 그 의미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장애등급제 폐지의 의미는, 장애인이 필요한 욕구를 먼저 파악해야 하며, 장애정도는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다양한 급여 기준 중 하나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장애등급→서비스 결정→서비스 지원이라는 일방향적 차원에서, 서비스 지원을 중심으로 장애정도, 소득, 고용, 건강, 주거, 개인적 상황 등이 함께 고민되는 다차원으로의 진전을 말한다.

이렇게 본다면, 장애등급의 이원화 체제는 6등급으로 세밀하게 구분되는 것이 예전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그러한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것은 향후 장애등급제가 완전히 폐지되는 방향으로의 발전이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울러 장애등급이 이원화 체제로 변화되어 출발한다 하더라도 소득보장, 감면·할인제도, 전달체계 등의 개편이 이와 무관하게 발전될 수 있으므로, 다양한 기준 중의 하나로 장애정도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게 된다. 다만, 장애등급제가 완전히 폐지된다면 이러한 논의가 강제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지만, 이원화 체제는 이것을 자율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변화 속도에 있어서 차이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따로 생각되지 않는, 그래서 구분과 차별이 발생하지 않는 사회가 가장 바람직한 사회일 것이다. 한 사회는 기본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설계되어지므로, 비장애인은 장애인에 비하여, 경제적 우위에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하여, 사회구조와 체계에서 상대적 혜택을 받게 되며, 이것은 격차의 심화로 이어지고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장애등급제 폐지는 단순히 장애등급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우리 사회에서 불리함을 극복하고 진정한 시민으로서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출발이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구조적으로 분절되어있는 사회를 극복하여 진정한 통합사회를 이루어가는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장애등급제의 폐지는 장애에 대한 의학적 기준을 단순히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서 이와 같은 새로운 체계의 도입을 촉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장애에 대한 새로운 조망과 이에 맞는 제도의 정비가 조속히 이루어져 장애로 인해 일상생활에 제약을 받지 않는 그래서 장애인이 아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삶을 영위해 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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