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한다는 것’은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 깨달아

백지은 사회복지사는 “클라이언트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성장하고 있음을 느끼게 됐다”고 했다.
백지은 사회복지사는 “클라이언트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성장하고
있음을 느끼게 됐다”고 했다.

“선생님은 장애(障礙)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장애(長愛)란 길게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더 많이 생각하고 행동해 사랑을 표출하는 것, 장애를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바라보는 것, 그 다름의 차이를 좁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소명이라 생각합니다.”

2007년 대학을 막 졸업하고 4월, 첫 입사 면접 때 이야기 한 것이 기억난다. 면접을 보러 가는 길의 담벼락에 피었던 꽃과 면접 시간 떨림이 아직도 생생하건만, 올해로 장애인복지 현장에서 13년째 근무하고 있다.

대학 시절 재활학과와 사회복지학과를 복수 전공해, 사회인으로 첫 발을 내디딘 분야도 직업재활이었다. 발달장애인과 함께 취업을 준비하기 위해 일상생활 및 직업과 관련된 다양한 훈련을 진행했고, 보호작업장이라는 구조화된 환경에서 발달장애인 근로인들과 빵과 쿠키를 생산해 판매하고,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다.

스물넷 새내기 사회복지사였던 나는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그 때 대학에서 배웠던 것들을 사회복지 현장에서 실천하겠다는 다부진 다짐과 열정이 있었다.

‘발달장애인들과 누구보다도 많이 알고 친해져야지’, ‘직업훈련교사로서 많은걸 알려주고 교육해야지’ 등 발달장애인 직업훈련교사로 시작해 ‘직업훈련교사라면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는 나름의 모습을 규정해 놓고 행동했던 것 같다. 대학시절 내내 사회복지 실천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들었지만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라포 형성’ 역시, 추상적으로 머리로만 생각해 실천을 시작했던 것 같다.

‘더디지만 함께 가는 길’ 터득하다

보호작업장에서 근로인들과 함께 빵과 쿠키를 만들고 판매한다는 것이 새로운 경험이어서 그랬는지, 새내기여서 그랬는지, 매우 즐거웠다.

‘오늘은 소시지 빵을 마스터해야지’, ‘쿠키를 100개 만들어야지’, ‘올해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야지’ 등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기대감과 성취감이 있었다. 또한 이런 나를 마냥 막내딸처럼 예뻐해 주고 따뜻하게 바라봐 준 직장의 부모님, 제빵기사님들이 있었다. 그래서 나에겐 보호작업장에서의 근무가 참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숙한 이런 모습들이 시간을 거치면서 많은 경험들로 조금씩 다듬어졌다. 두 곳의 보호작업장에서 7년간 근무하면서 발달장애인과 함께 일하는 것이 단순히 교육과 지시 전달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마음을 전달하는 방법과 더디지만 함께 가는 길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렇게 긍정적인 생각의 변화가 있었지만, 시설생산품 판매와 발달장애 근로인 교육·훈련, 행정서류 및 회계 업무 등 갈수록 많아진 업무로 잦은 야근을 하며 체력적으로 소모되면서 소진이 왔다.

그러면서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장애인 복지현장에서 나는 어떤 실천가가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수시로 하게 됐다. 대학을 졸업하고 실천현장에 나올 때 ‘쿠션이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그런데 ‘나와 함께 하는 클라이언트에게 언제나 푹신한 사람이 되어야지’라고 다짐했던 내가 없었다.

업무도 클라이언트도 일처럼 느껴졌고, 보람도 많았지만 소진도 왔던 7년의 보호작업장 업무를 정리하고 이직을 하게 됐다.

2013년 개관을 준비하던 서울중구장애인복지관에 채용이 됐다. 개관 후 처음 맡게 된 업무는 직업적응훈련반이었다. 발달장애 훈련생들이 일상 및 사회생활적응훈련, 직업적응훈련을 통해 취업을 준비하고 취업하도록 돕는 것이다.

개관 후 직업적응훈련생들을 모집했고, 서비스를 시작하는 시기에 모집된 클라이언트는 총 12명이었다. 그러나 이중 11명이 타 기관에서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었고, 타 기관에서 종결하고 대기 중인 클라이언트는 한 명이었다. 그렇게 한 명의 클라이언트와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클라이언트 중심으로 개별적인 지원 실천

8년 동안 발달장애인 직업훈련을 하면서 대부분그룹 활동 혹은 소그룹 활동으로 진행해 일대일 지원은 처음 경험해보는 것이었다. 한 명을 대상으로 일상생활훈련, 사회생활훈련, 직업교육, 여가활동, 요리활동 등의 서비스를 지원하면서 일대일 지원이 클라이언트의 직접적인 욕구와 능력을 파악하기 더 좋은 조건임을 알게 됐다.

최근 들어 발달장애인의 인권과 권리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고, 정책에도 반영되고 있다. 특히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개인별예산제도, 개별화지원, 주간활동, 돌봄서비스, 도전적 행동 지원 등 발달장애인 권리에 대한 주장을 반영한 서비스들이 증가하고 있다.

아직도 당사자 입장에서는 미흡한 부분이 많겠지만, 조금씩 변화되고 있는 환경을 보고 있으면 이전의 기관위주로 취했던 방식이 아닌 당사자 위주의 많은 서비스들이 변화하고 있음을 체감한다.

지금 근무하고 있는 서울중구장애인복지관도 모든 서비스를 클라이언트 중심으로, 개별적인 지원으로, P2P를 실천하려고 노력 중이다. 특히 지금 내가 맡고 있는 평생교육지원팀은 장애인 취업지원과 성인발달장애인 직업훈련 및 주간활동을 지원하고 있어 더 개별적인 지원과 P2P를 실천하고 있다.

처음 복지관에 입사해 직업적응훈련반에서 발달장애인 12명을 지원했을 때, 특수학교를 막 졸업한 자폐성장애인이 한 분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아직 성인으로 전환이 되지 않았던, 수업을 들으면서 무조건 1등을 해야 하는 분이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질문을 하면 대답은 무조건 본인이 해야 하고, 다른 사람의 대답을 듣거나 본인이 원하는 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을 경우, 물건을 던지거나 갑자기 달려들어 머리를 잡아당기거나 밀치는 등의 몸싸움을 하는 도전적 행동을 보였다.

클라이언트와 함께 하는 시간이 쌓이면서 발달장애인의 도전적 행동은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울 때 나오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간을 가지고 욕구를 더 파악하려고 주의를 기울였다.

무엇이든 잘해야 하는 압박감을 갖는 그 분에게 ‘1등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이곳에선 1등은 없다’고 수시로 이야기하고, 다른 이용자들과 함께하는 활동을 알려주고, 함께 살아가는 삶에 대해 지지와 격려를 해주자 도전적 행동이 점차 줄었다.

시간이 흘러 그 분도 어엿한 성인으로 성장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고, 나도 평생교육지원팀 팀장으로 승진하게 됐다.

‘나 또한 함께 성장하고 있었다’

‘성장한다는 것’은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있었다. 개별화지원의 일환으로 그 분과 함께 시립요양센터의 카페로 바리스타 직무 실습을 나가게 됐다.

그 분은 매너 좋은 남자가 되어, 문을 열고 닫을 때 뒷사람이 오는 지 확인하고, 뒷사람인 내가 들어올 때까지 문을 잡아 주었다. 바리스타 실습처 사무실을 방문해 ‘기분 좋은 하루되시라’고 안부인사도 하고, 카페에 찾아오는 손님에게는 친절하게 응대했다. 실수를 했을 때는 나에게 말하고, 본인 스스로에게도 ‘다음부터는 이렇게 하겠다’고 이야기 하는 모습을 보였다.

비가 많이 오던 어느 날 실습지로 가는 길이었다. 우산 창살이 다 부러져 비를 맞고 있는 클라이언트에게 우산을 하나 샀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했다. 그러자 이해가 되지 않았는지 나를 두고 혼자 길을 빠르게 걸어가는 것이었다. 나는 이야기 했던 곳에 서서 기다렸다. 그 분은 빠르게 걸으면서 내가 있는 곳을 재차 돌아보더니, 움직이지 않는 걸 확인한 후에 다시 나에게 걸어왔다.

나는 ‘우산 창살이 다 부러지고 구멍이 많아 비를 맞았기 때문에 우산을 사야 한다. 이렇게 비를 많이 맞으면 감기에 걸려 바리스타 실습을 갈 수가 없다’고 이야기 했다. 그러자 ‘편의점에서 우산 사요’라고 스스로 이야기 하더니 편의점에 가서 교통카드로 우산을 하나 사왔다.

그 모습을 보면서 클라이언트가 얼마나 성장하고 있는지와, 또한 그 성장 속에 나 역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됐다.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잖아’ 이 노래 가사처럼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관계가 되는 것은 시간과 노력이 다분히 필요하다. 특히 조급함은 금물이다.

오늘도 서울중구장애인복지관에는 장애인과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이’가 될 수 있도록 현장에서 노력하고 있는 사회복지사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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