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락 주사랑공동체 이사장(목사)

이종락 주사랑공동체 이사장
이종락 주사랑공동체 이사장

지난 10년 동안 버려지는 아이들의 생명을 살리고자 베이비박스를 고안하여 현재까지 1543명의 아이들과 미혼모들에게 새로운 삶을 제공하고 있는 이종락 목사의 그간 겪은 가슴속 이야기를 들어봤다.

베이비박스가 운영된 지 10년이 넘었다. 시작된 계기는 무엇인가?

“지난 2007년 4월 어느 날 새벽 3시에 전화가 왔다. ‘장애아를 키우고 있는데 먹고살기 힘들어서 아이를 키울 수 없어 교회대문 앞에 갖다 놨다. 잘 부탁한다’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래서 급하게 대문 밖으로 나가보니 고양이 한 마리가 후다닥 도망가더라. 거기에 생선박스가 있었는데 그 안에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다운증후군의 미숙아였다. 아이를 안았을 때 차가운 느낌이 이미 저체온증이 오고 있는 것 같았다. 간단하게 응급조치 후 병원으로 데려갔다. 그 당시 버려지는 아이들이 많았다. 건물 주차장이며 계단, 대문 앞 등, 그래도 낮에 버려지는 아이들은 금방 눈에 띄기 때문에 문제가 덜한데 밤에 아이를 몰래 놓고 가면 속수무책이었다. 이런 문제들의 해결방안을 계속 고민하다 아내와 상의해서 만들어지게 된 것이 바로 베이비박스다.”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이는 얼마나 되나?

“베이비박스에 버려진다는 표현은 맞지 않다.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엄마들로부터 아이를 지키고 생명을 살리는 마지막 방법이 베이비박스다. 왜냐하면 아이엄마들이 정말로 아이를 버리려고 한다면 말 그대로 아무데나 유기 할 것이다. 그러나 전국에서 베이비박스를 찾아온다는 것은 아이를 지키고자하는 마음, 이 아이를 살려달라는 엄마의 마음으로 베이비박스를 찾는 것이다. 베이비박스는 그런 엄마들의 마음과 아이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베이비박스에는 1년에 약 220여 명 정도의 아이가 들어온다. 많을 때는 280명의 아이가 들어올 때도 있다.”

베이비박스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

“아이엄마가 아이를 놓기 위해 베이비박스를 열면 베이비박스가 열림과 동시에 벨이 울리게 되어 있어 10초 안에 직원이 베이비박스로 가서 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다른 직원은 아이엄마를 만나 상담을 하게 된다. 절차를 살펴보면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아이는 먼저 사진을 찍고, 날짜 등을 기록하고, 아이의 상태를 확인한 후 112에 신고한다. 신고 후 2~3시간이 지나 파출소에서 확인을 하러 오고, DNA검사를 하게 된다. 검사자료가 구청으로 이관되고, 이후 구청에서는 시립병원으로 아이를 데려가서 종합검진 후 결과에 따라 장애아인 경우에는 장애인시설로 보내지게 되고, 건강한 아이인 경우 영아일시보호소로 가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다시 보육원으로 옮겨진다. 이것이 베이비박스에 오는 아이들의 기본적인 행정절차이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아이엄마의 경우 다른 직원이 상담을 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행여 엄마들이 죄책감으로 자살을 하거나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상담을 통해 아이들이 다시 엄마와 가정으로 돌아가는 비율이 약 30%정도로 상담의 효과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미혼모가 낙태하지 않고 출산 후 유기하지 않고 마지막에 찾는 곳이 바로 베이비박스이기 때문에 여기까지 힘들게 온 아이엄마를 먼저 칭찬해 주는 것으로부터 상담을 시작한다. 그 다음 바른 성에 대한 성교육을 한다. 그리고 여기오기까지 힘든 시간에 대한 치유의 시간을 함께한다. 보통 여성들은 출산우울증이 온다. 그것을 달래주는 것이다. 상담 말미에 이 아이를 위해서 기도하는 엄마가 되어줄 수 있는지 묻는다. 대부분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한다. 이렇게 인연이 되서 베이비박스에 6개월 이상 장기 보호를 하던 아이 87명이 다시 엄마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베이비박스 운영비는 어떻게 마련하나? 지자체 지원은?

“베이비박스 운영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든다. 특히 이곳에서 생활하는 아이와 엄마의 경우 기본적인 아이용품들, 분유, 기저귀, 장남감 등을 지원해주고 매월 20만원씩 현금지원도 하고 있다. 다른 기관은 일시적 지원에 그치고 있지만 이곳에서는 3년 동안 지속적으로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지원해주고 있다. 믿기지 않겠지만 구청이나 시청에서의 금전적인 지원은 전혀 없다. 그러나 행정처리 등 협력은 잘 해주는 편이다. 운영비의 대부분은 주사랑공동체를 사랑하는 사람들, 기업 등 국내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채우고 있다. 또한 2016년 미국에서 베이비박스를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든 ‘드롭박스’라는 영화가 미국전역에 상영됐다. 전 세계적으로 2000만명이 관람했으며, 관람객들 중 일부가 해외에서 우리에게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고 있다.”

2016년 미국에서 베이비박스를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든 ‘드롭박스’의 메인 포스터 사진
2016년 미국에서 베이비박스를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든 ‘드롭박스’의 메인 포스터 사진

베이비박스가 아이를 버릴 마음을 갖게 조장한다는 시각도 있는데?

“베이비박스에 대해서 긍정적인 반응과 부정적인 반응이 공존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베이비박스가 아이들의 유기를 조장한다는 말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 베이비박스는 불가피하게 키울 수 없는 장애로 태어난 아이와 미혼모 아이를 유기하지 말고 생명을 살리고자 만들어진 것이다. 예를 들어 길거리에 쓰러진 죽어가는 사람을 신고해 살리고,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 살려내는 것은 당연한 인간의 도리 아닌가? 절대 동의할 수 없는 이야기다.”

한국비영리단체연대가 작년 말에 UN아동권리위원회에 보고서를 제출했다. ‘민간이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내용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성직자가 생명을 살리는 일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국가가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버려지는 아이들을 보고 있을 수만 없어서 성직자로서 나선 것이다. 다른 누구라도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면 당연하게 나섰을 것이다. 베이비박스는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생명을 살리고 있는 것이다.”

혹시 해외에도 베이비박스와 유사한 시스템이 있는가?

“작년 5월 일본 구마모토에서 전 세계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12개국 운영자가 모였다. 모여서 토론회를 개최하고, 매뉴얼을 공유하고, 법·제도들도 함께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토론회가 끝난 후 세계 베이비박스 협력기구를 만들어서 UN에 가입하자는 의견을 제안했고 좋은 호응을 얻어 추진하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아울러 2020년에는 한국에서 베이비박스 운영자 토론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현재 우리나라 이외에도 세계 20여 개국에서 베이비박스와 유사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고 작년 모임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국제교류의 물꼬를 트게 됐다. 또한 방글라데시, 미얀마, 라오스, 필리핀, 에티오피아 등 5개국에서 우리나라의 베이비박스 시스템을 배우겠다며 노하우를 전수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온 상태다.”

‘임산부 지원 확대와 비밀출산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했다고 들었다. 어떤 내용인가?

“베이비박스가 설치된 관악구가 지역구인 오신환 국회의원을 통해서 지난해 2월에 ‘임산부 지원 확대와 비밀출산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했다. 이에 지난해 8월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검토가 이루어지고 입법심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올해 3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 법의 취지는 위기임신에서부터 출산까지 국가에서 책임지는 것이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곤경에 처한 임산부를 지원할 수 있는 책임 및 비밀출산을 위하여 필요한 제도를 마련할 의무를 부담시키고, 나아가 비밀출산을 지원하기 위한 상담기관을 설치·운영하도록 하고, 비밀출산을 원하는 임산부에게 비밀출산 과정과 법적 효과, 임산부의 산전·산후 보호시설, 자녀 및 생부의 권리와 그 의미, 입양절차, 비밀출산 이후 자녀에 대한 친권을 회복하기 위한 요건, 비밀출산 지원제도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 동안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사연이 많고 생사가 오가는 현장이다 보니 심각한 상황들이 많이 발생한다. 한번은 여학생이 학교 화장실에서 혼자 아이를 출산해 아이를 안고 베이비박스로 와서 아이를 넘기고 하혈이 너무 심해서 그 자리에서 바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간 경우도 있었다. 또 다른 사례는 중3 여학생이 아이를 밖에서 출산해서 고시원으로 데리고 들어왔는데 아이울음소리 때문에 고시원총무에게 들켜서 ‘빨리 아이를 데리고 나가’라고 계속 다그치자 고민하던 여학생이 고시원 3층에서 아이를 던지고, 자신은 5층에서 투신자살하려고 마음먹고 방을 막 나서려는 순간 친구에게 연락이 와서 ‘텔레비전에 베이비박스라는게 나오는데 미혼모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해 준다고 하더라’해서 우리에게 온 아이도 있었다. 어떤 여학생은 뒷산에 구덩이를 파고 출산을 했는데 그 이유는 아이를 낳고나서 바로 매장하려고 한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아이를 낳고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엄마의 모성본능이 발동해서 차마 땅이 묻지 못하고 온몸에 흙이 묻은 아이를 교복으로 둘러싸서 온 적도 있었다. 정말 끔찍한 사건이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들이었다. 이 모두가 두려움과 외로움, 출산 우울증 등으로 인해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이곳으로 오는 아이들은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슬픈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다.”

이렇게 버려지는 아이들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아이들이 성적인 지식도 없는 것 같고, 또 이런 아이들이 가정으로부터 따뜻하게 보호받지도 못하는 것 같다. 외국의 경우 성교육이 가정에서 부모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성에 대해서 부끄러워하고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것도 하나의 요인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또 하나는 생명에 대한 존엄성이나 가치관에 대한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는 올바른 성에 대한 지식도 없이 단순하게 쾌락의 도구로만 전락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또한 주변시선을 의식하다보니 미혼모라는 낙인이 찍히게 되는 등 어린나이에 견디기 힘든 상황에 처해지게 되는 문제들도 원인이 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바라는 점이 있다면?

“최우선적으로 현재 국회에 발의 되어 있는 ‘임산부 지원 확대와 비밀출산에 관한 특별법’이 하루빨리 통과되어 미혼모와 그 아이들이 법 제도권에서 보호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또한 지난 10년 동안 베이비박스를 통해 1543명의 아이들이 보호되었는데 정부나 지자체는 아무런 대책이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앞으로 법이 제정되면 베이비박스에 버려지는 아이들의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 것이다. 허나 어쩔 수 없이 베이비박스로 오게 되는 아이들을 위해 이곳을 긴급영아일시보호소로 지정하게 되면 아이들이 굳이 보육원에 가지 않고도 안전하게 보호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미혼모자립센터, 미혼모들의 대안학교 등을 설치하여 위기의 미혼모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싶다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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