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일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처음 시행된 날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1999년 8월 1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여 그 해 9월 7일 공포됐다.

이 날을 기념하여 ‘사회복지의 날’이 제정됐다(사회복지사업법 제15조의2). 그것은 당시 전국적으로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연대하여 법률 제정을 추진했기 때문에 정부 발의 또는 의원발의 같은 입법 절차와 달리 아래로부터의 입법 추진이라는 민주적 과정을 거친 것이 특징이었다.

당시 선거를 통해 50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뤄낸 국민의 정부가 이 점을 높이 평가해 사회복지의 날을 법정 기념일로 제정한 것이다. 입법 당시인 1999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정권 출범기에 선언했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외에 제3의 국정기조로 ‘생산적 복지’를 선언했다.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한 지 이틀 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이 법은 1년 남짓 준비기간을 거쳐 2000년 10월 1일 시행됐다. 당시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였던 국민의 정부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추진하면서 ‘생산적 복지’를 대안으로 설정했다.

생산적 복지는 당시 영국 노동당 정부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내걸었던 ‘제3의 길’을 벤치마킹해 우리식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절충하겠다는 ‘제3의 길’, 복지를 시행하되 생산적으로 하겠다는 ‘생산적 복지’, 둘 다 다소 상반되거나 이질적인 ‘시장경제’와 ‘국가개입’의 융합을 도모하겠다는 정치적 수사였다.

사회복지를 강화할 필요성은 증대하고 있었으나 사회복지를 반대하거나 불편해 하는 세력들 역시 만만치 않았던 상황에서 중도주의를 겨냥했던 정부들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모호하고 불분명한 기초법상 ‘자활’ 명칭

그리하여 국민의 정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9조 제5항을 ‘생산적 복지의 꽃’이라고 했다. 이는 소위 ‘조건부 수급’이라 하는 것이다. 즉, “보장기관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에게 자활에 필요한 사업에 참가할 것을 조건으로 하여 생계급여를 실시할 수 있다. 이 경우 보장기관은 제28조에 따른 자활지원계획을 고려하여 조건을 제시하여야 한다.” 이것이 생산적 복지의 꽃이었다.

이 규정에 근거해 자활급여(법 제15조)와 제2장의2 자활지원(법 제5조의2〜제18조의5) 등이 시행되고 있다. 이를 소위 ‘자활’이라고 부른다.

그 명칭이 ‘자활사업’인지(법 제9조 제5항), ‘자활급여’인지(법 제15조), ‘자활지원’인지(법 제2장의2), ‘자활지원사업’인지(법 제17조), 아니면 그냥 ‘자활’인지(법 제15조의2, 제15조의3, 제16조 등) 법적으로 모호하고 불분명한 상태로 20년 가까이 내려오고 있다.

현장에서는 ‘자활업계’라는 용어까지 쓰이고 있다. 그 동안 ‘자활’ 또는 ‘자활사업’이 생산적 복지에 기여했는지, 현 정부가 내세우는 ‘포용적 복지’에 부합하는지 냉정한 분석과 평가가 필요하다. 이는 참으로 엄청난 입법의 불비(不備)이며, 국회와 정부의 직무유기라 할 수 있다.

‘자활’이란 단어가 사회복지법에 등장한 것은 1982년에 개정된 ‘생활보호법’이다. 당시 이 법 제1조(목적)에 “이 법은 생활유지의 능력이 없거나 생활이 어려운 자에게 필요한 보호를 행하여 이들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활을 조성함으로써 사회복지의 향상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규정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전신(前身)이라 할 수 있는 생활보호법의 제정 당시(1961년)의 목적은 “본법은 노령, 질병, 기타 근로능력의 상실로 인하여 생활유지의 능력이 없는 자 등에 대한 보호와 그 방법을 규정하여 사회복지의 향상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였다.

많은 뜻 내포한 자활, ‘사업’? 혹은 ‘급여’?

이로부터 약 20년 뒤인 1982년 개정하면서 법의 목적에 ‘자활조성’을 명기했던 것이다. 이는 당시 제5공화국 전두환 정권이 세계를 휩쓴 신자유주의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대처리즘(Thacherism)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별 고민 없이 도입한 것으로 보이며, 당시 이를 둘러싼 변변한 논쟁도 없었다. 이 규정은 그 후로도 계속 이어지다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으로 전부 개정되었다.

그러나 법의 목적은 여전히 “이 법은 생활이 어려운 자에게 필요한 급여를 행하여 이들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활을 조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로 생활보호법과 동일하게 유지했다. 단순히 ‘보호’가 아니라 수급권이라는 ‘권리’를 인정하는 사회보장법으로 전부개정했다는 법이 법률의 명칭만 바뀌었을 뿐 동일한 입법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황당한 개정이었다.

생활보호법이나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모두 공공부조법이었다. 그러나 공공부조의 원리나 성격, 더 근본적으로는 가치마저 다른 자활 규정들이 대거 배치되면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정체성이 모호한 법이 되어버린 것이다.

즉, ‘공공부조법’인지, ‘일자리법’인지, ‘사회적 경제관련법’인지, 불분명한 법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자활’ 현장에서 일하는 종사자들의 정체성은 매우 모호하다. 사회복지 영역인지, 일자리 사업 영역인지,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 같은 사회적 경제영역인지, 명확하게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이것은 공공부조법에 ‘자활’이라는 다의적(多義的)이고 ‘사업’인지, ‘급여’인지, ‘영역’인지 모호한 개념과 존재가 혼합되어 파생되는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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