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체계 재정립하고 관련 연구 필요…사회적 합의 선결돼야

최근 경기도가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관련 조례안을 입법 예고하는 등 기본소득이 이슈가 되고 있다. 청년수당을 지급하고 있는 성남에 이어 전남 해남에서도 내년부터 전 농가에 농민수당을 지급할 계획이다. 월간 〈복지저널〉은 기본소득이 이슈가 되는 배경과 제도 도입의 장단점을 알아보기위한 좌담을 마련했다. 서상목 한국사회복지협의회장이 진행을 맡고 강남훈 한신대 교수,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 정원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정창률 단국대 교수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서상목 회장 예전에는 기본소득을 ‘이상향’으로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점차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다. 지난 1년 사이 아마존에 기본소득과 관련된 책이 많이 나왔고 올해 다보스포럼에서도 기본소득 세션이 있을 정도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로 기본소득이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기본소득은 오래된 개념인데 왜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지 배경을 설명해 달라.

강남훈 교수 전 세계적으로 사회양극화가 심해진 것이 가장 직접적인 계기다. 사회양극화는 여러 가지 차원이 있다. 노동하는 사람과 노동하지 않는 실업자 사이의 양극화는 실업수당 등 기존의 복지제도 내에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양극화, 즉 자산소득과 노동소득 사이의 양극화, 특히 노동사이의 양극화가 너무 심해지다 보니 전통적인 사회복지제도 내에서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 수십 년 흘러온 것 같다. 이것이 기본소득 논의가 활성화 되는 배경이 아닐까 한다.

김용하 교수 무엇보다 기존의 사회복지제도에 의해 이루어지는 소득보장체계가 충분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중 넓은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특히, 산업사회의 정형적인 노사관계에 기초한 일자리 감소로 사회보험의 기반이 약화되고, 최근에는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미래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새로운 사회적 분배체계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그 대안으로 기본소득이 이슈가 되고 있다.

정창률 교수 기본소득 주장의 근거는 다양하다. 복지정책에 매우 이질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기본소득을 찬성하기도 한다. 1980년대 미국에서 복지국가 해체를 주장한 찰스 머레이의 경우가 그렇다. 따라서 기본소득을 논의할 때 어디에 방점을 두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핵심적 배경은 지난 100여 년 동안의 사회복지정책의 기본적 구조인 사회보험, 공공부조의 틀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기본소득 아이디어로 연결되는 것 같다. 특히 문제가 일어나는 지점은 사회보험이다. 대부분 국가에서 사회보험은 빈곤예방 및 소득유지를 위한 핵심적 제도인데, 노동시장의 변화로 인해 비정규직이 많아지는 등의 문제가 생기면서 사회보험이 잘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많아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를 가정한 사회보험제도의 근본이 위태로워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노동시장변화와 관련해서는 기술 발전이 일자리를 뺏을지 아니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것인지는 알 수 없는 부분이다. 다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정보에 대한 이용비용으로 기본소득 비용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논의도 나오고 있다.

정원호 연구위원 4차 산업혁명과 맞물리면서 일자리 절벽의 대안으로 기본소득이 많이 부각되고 있다. 소수의 고양질 일자리, 다수의 저임금 일자리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이런 사회현상을 기존의 전일제 노동에 기반한 포드주의적 복지국가체제로는 더 이상 포괄하지 못한다는 관점에서 기본소득이 대두되는 것 같다. 이 외에도 우리나라에 닥친 부동산 문제, 미세먼지 등 환경문제 해결에도 기본소득이 유효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현재 쟁점인 보유세와 관련해 보유세를 올리면 부동산 투기문제가 잡힐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토지나 자원은 개인이 만든 게 아니므로 개인소유가 되는 것은 부당하고 모든 국민에게 권리가 있기 때문에 세금을 걷어 공동의 권리로 배분하자는 게 기본소득과 관련한 토지보유세 사상이다. 환경문제도 에너지 과소비자들이 오염시키는 걸 배상하도록 해서 환경세를 기본소득으로 하자는 의견도 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기본소득’의 명과 암을 논의하기 위한 좌담이 마련됐다. (왼쪽부터)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 정창률 단국대 교수, 서상목 한국사회복지협의회장, 강남훈 한신대 교수, 정원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기본소득’의 명과 암을 논의하기 위한 좌담이 마련됐다. (왼쪽부터)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 정창률 단국대 교수, 서상목 한국사회복지협의회장, 강남훈 한신대 교수, 정원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서상목 얼마 전 한 언론사에 ‘기본소득제도, 양극화 해소의 비법인가?’를 주제로 기고하면서 ‘우리나라도 검토할 필요가 있겠다’는 의견을 냈다. 기본소득제도와 관련해서는 다양한 입장과 의견이 있는데, 찬반의견과 그 이유를 말해 달라.

강남훈 기본소득제도 도입은 찬성이다. 소득불평등에 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도 정치인들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영국 노동당 당대표인 제러미 코빈은 다 음 총선공약에 기본소득을 파일럿으로 넣겠다고 선언했다. 노동당 전 대표인 에드 밀리밴드는 ‘기본소득이 대안이다’고 주장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복지제도가 아주 잘되어 있는 핀란드나 네덜란드에서 기본소득과 유사한 제도를 실험한다는 건 현재 제도가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캐나다 자유당도 당 강령에 기본소득이 채택돼 들어갔다. 이렇듯 세계적으로 흐름이 많이 바뀌었고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소득보장 문제를 기본소득이라는 대안을 빼고 생각하기에는 답답한 상황이다.

김용하 각국에서 논의되는 기본소득이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기본소득을 정의하기 쉽지 않다. 그렇지만 원론적으로 기본소득의 개념이 충족되기 위해서는 첫째, 보편적으로 지급되어야 하고, 둘째, 사회보험료 등 비용부담을 전제하지 않고, 셋째, 자산소득조사 등이 지급요건으로 요구되지 않고, 넷째, 일정수준 이상의 현금급여가 지급되어야 한다. 국가 단위에서 기본소득이 시행되고 있는 나라는 없다. 다만, 지역적으로 제한적인 기본소득이 실험되고 있다. 특히, 최근 핀란드에서 시행된 장기실업자에 대한 기본소득제도는 정의상 기본소득이라 하기 힘들다. 기본소득 개념이 원칙적으로 구현된 제도는 스위스에서 국민투표에 부쳐서 부결된 바 있다. 기본소득을 지급하기 위해 필요한 재원부담과 조달방법이 핵심 쟁점이라 할 수 있고, 기존의 생산 및 분배체계에 대한 문제가 있지만 이를 대체할 정도로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본소득은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입장에서 출발한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는 원시 공산주의 이념에 가깝다. 현재의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에서는 적용되는데 한계가 있다. AI와 로봇에 의한 생산이 주가 되는 경제사회에서는 기본소득이 정말 필요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현재로는 시기상조다. 일부 지자체에서 검토하는 기본소득은 기초연금이나 아동수당과 같이 사회수당 개념에 가깝다. 필요에 따라서 기존의 사회보장체계가 미치지 못하는 부분에 사회수당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제한적으로 이루어지는 사회수당도 다른 여타 제도와 정합성을 가지고 시행되어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자원배분이 왜곡될 여지가 있다.

정창률 기본적으로 현재 상태에서는 시기상조라고 본다. 기본소득의 의의를 가지려면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정도는 가야하는데 ‘한 달에 5만원 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문이 든다. 한 달에 50만원을 준다 치더라도 예산에서 현실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흔히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이유로 재정적 문제와 근로유인에 대한 문제를 든다. 재정적 문제의 경우 영국에서 ‘매주 61파운드를 주면서 기존의 복지혜택을 정리하면 소득세를 3%p만 올리면 된다’는 보고서가 있다. 서구 국가들은 복지제도가 성숙해 있기 때문에 기본소득이라는 이상향까지 조금만 점프하면 갈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도랑이 너무 멀어 점프하기에는 아직 힘들다. 근로유인에 대해서는 다소 유보적이다. 먹고 사는게 힘들어 아픈 부모를 돌볼 수 없었는데 기본소득이 있으면 부모를 돌볼 수 있게 되는 등 우리가 생각하는 노동과는 크게 다른 일의 개념이 생길 수 있다. 나미비아 등의 실험에서도 의외로 근로유인에 부정적인 영향은 줄고 사람들이 가사일에 참여하려는 경향 등이 발견된다는 결과도 있다. 정리하자면 장기적으로는 좋은 대안으로 삼을 수는 있으나 현재 단계에서는 기존의 사회복지제도를 변화시키는 것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예를 들어 일을 하지 못해 국민연금을 납입하지 못하고연금을 받지 못한다면 연금에 대한 상식을 교정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고, 실업도 보험에 가입하지 못해 급여를 받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실업에 대한 구조를 바꾸는 것 또한 방법일 것이다. 이처럼 변화하는 노동시장에 대해 기존의 복지제도에 대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정원호 기본소득제도는 찬성이다. 2016년 기본소득에 대한 보고서를 쓰면서 재원을 가상 시뮬레이션 해봤다. 모든 소득에 대해 공제제도 없이 10%씩 다 걷고 토지세와 환경세도 1인당 토지 배당 5만원, 환경 배당 5만원을 걷어 한 달에 30만원씩 주는 모델을 만들어 보니 185조원이 필요했다. 185조원을 새로 걷으면 물론 저항이 있겠지만 이걸 목적세로 하게 되면 소득분배나 토지배분이 워낙 불평등하게 되어 있어 수혜계층이 80〜90%가 된다. 수혜계층이 많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도 관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근로유인효과와 관련해서는 이론적으로 보더라도 기존의 최소소득보장제도와 비교하면 기본소득의 근로유인 효과가 클 수밖에 없다. 최소소득보장제는 100만원 이하 계층에게 일을 하지 않아도 돈을 주기 때문에 90만원 받는 일은 안할 수도 있지만, 기본소득은 70만원 받는 일을 하고 있는데 기본소득을 100만원 주면 170만원이 되니까 일을 하는 거다.

서상목 의견은 나뉘었지만 반대의 경우 시기상조라는 의견이었다. 만약 기본소득제도를 도입한다면 어느 정도 수준에서 시작해야 하는가?

정원호 기본소득 정의에 대해 오해가 있다는 생각이다.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에서 정의한 기본소득은 현금으로 주고, 개별적으로 주고, 보편적으로 주고, 무조건적으로 주고, 정기적으로 주는 것이다. 그런데 흔히 충분한 금액을 줘야한다는 주장을 한다. 충분성은 기본소득 개념이 아니다. 기본소득 모델을 구성할 때 완전 기본소득으로 할 거냐, 부분 기본소득으로 할 거냐에 대한 구분은 가능하지만 금액으로 기본소득을 판단하는 건 맞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충분하기까지는 재원이 부족하므로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김용하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이 제대로 관철되려면 노동소득을 대체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을 해야 임금을 주는 것인데 노동을 전제로 하지 않고 사회적 임금을 주는 것이 기본소득이다. 사회수당은 복지급여일 뿐이다. 1차적 분배관계가 끝나고 그 분배관계에서 미흡한 부분을 사회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2차적 재분배관계이다. 그런데 기본소득이 제대로 이야기되려면 1차적 배분관계에서 바로 기본소득이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그 기본소득이 노동소득의대체되는 개념이고, 그렇게 될 때 기존의 복지급여와 구분 되는 것이다. 금액을 떠나 그런 의미에서 이야기 한 것이다.

정원호 임금은 노동에 대한 대가인데 기본소득은 근본적인 근거가 노동과 무관하게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생존권리다. 노동의 대가인 임금을 대체하는 것이 기본소득이 될 수 없다고 본다.

김용하 생산요소인 자본, 노동, 토지, 경영 중 노동에 의한 기여분이 장기적으로 사라질 수 있다는 거다. 따라서 그걸 대체하는 개념으로서의 기본소득개념이 요구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현재는 그 단계까지는 진행되지 않았다고 보고 그런 원칙적 의미에서 기본소득과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같은 틀 속에서 복지체계를 전반적으로 재조정하면서 자리 잡을 수는 있겠지만 이는 기본소득 보다는 사회수당 개념에 가깝다.

강남훈 낮은 금액으로 시작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의견이 있는데, 현실적으로는 낮은 금액으로 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월 20~30만원 정도다. 기본소득을 정의하고 운동하는 사람들이 매년 모이고 있는데 모든 인구에 대해 충분한 기초생활이 되는 금액을 기본소득으로 주장하자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기본소득 운동을 하는 주체들이 기본소득은 낮은 금액에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정의하고 있다. 기본소득이 전통적인 복지제도에서 사회수당에 해당한다는 주장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를 기본소득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그것이 언젠가 전체 국민에게 가야하는 단계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은 인간다운 최소생활을 보장한다는 게 아니다. 자산불평등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인간으로 태어나면 토지나 환경 같은 공유자산이 존재하고 우리 모두가 공동소유자로서 사용료를 받아 배당으로 나눠주는 것이 마땅하다는 다른 철학이다. 그 금액이 국가별로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고 금액에 상관없이 이는 공유자산의 주권자가 된다는 의미를 갖게 되는 거다. 성남의 경우 ‘1년에 100만원으로 청년들에게 무슨 경제적 보탬이 되겠냐’는 의견이 있지만 그 청년들은 전혀 다 른 정치행태를 보인다. 청년수당 이후 성남의 19~24세 투표율이 전국 최고를 기록했다. 금액을 떠나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면 ‘나도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그게 복지국가를 만드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서상목 많은 사람이 ‘잘 사는 사람에게도 기본소득을 줘야 하느냐’는 문제제기를 하는데, 이에 대한 의견도 말해 달라.

강남훈 부자도 공유자산의 공동소유자로 똑같은 권리를 갖는다. 오히려 잘 사는 사람에게도 기본소득을 줌으로써 공동자산에 대한 과세를 높이자는 합의에 이르기가 용이하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정부에 대한 불신이 큰 상태에서 계속 선별해 세금을 걷자고 하면 국민들에게 설득력을 얻기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압축 성장, 압축복지를 했기 때문에 조세저항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복지국가를 만드는 첫 번째 요소다. 그리고 기본소득만큼 조세저항을 극복하는 확실한 모델이 있는 정책은 없다. 재원과 관련해서는 올해 서울에서 생긴 불로소득이 200조가 넘는다. 이를 막을 수 있는 게 보유세인데, 보유세를 0.5%만 더 과세해 30조원을 걷으면 1인당 1년에 60만원 정도를 받게 된다.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절약되는 거다. ‘기본소득이 아직 심각하지 않다’ 혹은 ‘의미없다’고 한다면 부동산 투기 불로소득에 보유세를 과세해 n분의 1 토지배당으로 나누자는 것만큼 명확하게 대안을 제시한 정책이 있는지 의문이다.

서상목 지금 단계에서 기본소득제도를 도입한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할 것인지를 연구하고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기본소득제도 도입을 위해서는 기존의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복지제도 발전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보는데?

김용하 기존 사회보장체계에서 기본소득 개념과 가장 유사한 것이 사회수당이다. 기초연금제도, 아동수당, 청년수당 등의 공통점은 우리나라 사회보장체계 기본은 사회보험이고 보험료 납입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아동과 청년의 경우 소득이 형성되기 전이어서 납입할 수 없고, 노인은 보험료 납입기회가 없어 국민연금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존의 사회복지체계에서 보험료 납입을 전제로 하는 제도를 중심으로 복지를 운영하기에는 이미 한계에 와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 그런 개념에서는 기초연금, 아동수당, 청년수당 개념을 아우르는 기본소득의 개념을 사회적으로 대체되는 개념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원호 사회수당과 기본수당의 본질적인 공통점은 보편적이고 무조건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차이도 있다. 사회수당은 사회 정책적 목표를 추구한다. 저출산 때문에 아동수당을 주고, 고령화로 인해 노인수당을 준다. 생산연령인 중장년층에게는 줄 수가 없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국민 누구에게나 다 줄 수 있다. 근거와 목표에 있어 차이가 있는 것이다. 복지 이론에서 재분배의 역설이라는 가설이 있는데, 유럽 복지국가를 보면 저소득층에 복지가 집중되는 국가일수록 복지확대가 적다. 대신 보편적인 복지를 하는 국가에서는 복지가 커진다. 재분배의 역설도 복지체제를 선택할 때 중요한 참고가 될 것이다.

정창률 기본소득에 대해 찬성하는 사람들이 ‘안’을 정해놓고 움직인다는 생각이다. 서구 복지국가에서 기본소득이 많이 논의되고 있다고 하지만 스웨덴은 1990년대에 노인수당을 없앴고 영국 등도 아동수당을 축소하고 타겟팅을 강화하고 있다.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라 근로소득이 확실하지 않고, 플랫폼 경제가 생기고, 근로자가 없어지는 다양한 변화가 나타나는데 왜 그 대안이 기본소득이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사회보험의 큰 문제가 근로자, 노동에 대해서만 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비원을 고용하면 그 사람은 사회보험료를 내야하는데 CCTV를 설치하면 안내도 된다. 사회보험료가 높아질수록 노동을 자본으로 대체하려는 노력이 더 커진다. 노동에 대해 사회보험료를 부과할게 아니라 사회보험에 급여를 주더라도 자본이나 새로운 재원을 사용하게 되면 노동의 패널티를 줄일 수 있는 다양한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정원호 세계적으로도 브라질을 제외하고는 국가적 차원에서 기본소득을 시행하는 곳은 거의 없다. 아직 실험단계다. 우리도 성남, 해남과 같이 지자체 차원에서의 실험이 축적되고, 문제점이 나오고, 그걸 통해 사회적 공론화하는 과정을 거쳐 점차 확산될 것이라 생각한다.

서상목 기본소득제도의 핵심은 재원조달이다. 낮은 수준으로 시작하려 해도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복지를 하기 위해서는 세금을 올려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상 세금을 올리는 건 쉽지 않은 문제다. 그럼에도 기본소득제도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으므로 꾸준히 연구하고 검토해나가면 좋겠다. 지금까지의 의견을 종합해 기본소득에 대한 의견을 정리해 달라.

강남훈 민주주의가 도입된 지 수십년 지났지만 세율은 그대로인 저복지국가에 머물러 있다. 기본소득은 정치인으로 하여금 세율을 올려도 된다는 걸 적어도 이론적으로 보여주는 제도라 생각한다. 세금을 올려 보유세든 소득세든 부가세든 n분의 1로 나눴을 때 국민의 80%가 이득을 본다는 계산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가령 보유세를 올릴 때면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도 없었기 때문에 조세저항에 부딪혔지만, 지금은 아이디어가 있고 조세납부유예제도, 토지지분 등 여러 새로운 수단이 있다. 기본소득은 복지수단이 아니라 국민에게 유일하게 세금을 내도록 설득할 수 있는 수단이다. 세금을 올려야 복지를 할 수 있고 마인드를 바꿔야 복지국가로 갈 수 있다.

김용하 제대로 된 기본소득 도입 이전에 기존의 사회보장체계부터 재정립하는 것이 선결과제다.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수당, 복지서비스의 기능과 역할을 재정립해야 하고, 무엇보다 재원분담에 있어 중앙과 지방정부의 재조정이 요구된다. 이러한 사회보장체계를 자리 잡고 난 이후에도 한계가 있으면 기본소득 도입을 검토해도 늦지 않다. 기본소득이 복지국가 단계에서 한 단계 진일보한 사회분배 체계라는 점에서 복지국가 단계에도 진입하지 못한 우리나라에 이를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기본소득개념에 원론적으로 부합되는 제도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때가 아니다. 그렇지만 기존의 사회보장체계로 제대로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사회수당 개념에 가까운 제도에 대한 검토는 제한적으로 검토될 여지는 있다.

정창률 스위스에서 기본소득 운동을 한 사람들의 논의를 보니 기본소득을 기본권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인간의 역사는 기본권 확대 역사라고 볼 수 있는데, 기본소득이 일종의 새로운 형태의 기본권이 될 수도 있겠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가 잘 생각해봐야 될 제도인건 분명하다. 기본소득이 시기상조라는 건 아직은 우리사회에서 이 틀을 바꿔야겠다는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다는 생각에서다. 다만 계속해서 생각해볼 만한 주제가 아닌가 한다.

정원호 성남 청년수당의 경우 중요한 실험인데, 시작할 때부터 선행평가, 동행평가, 후행평가 등 평가가 없는 게 아쉽다. 해남에서도 농민수당을 시행할 때 평가작업을 같이 하면 좋겠다. ‘재원이 얼마가 돼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없다. 성남도 다른 재원을 줄여 시작했고, 해남도 조세를 증세한 건 없다. 재원보다도 ‘기본소득이 복지문제 해결에 필요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중요하다.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면 재원문제는 필요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해결점을 찾아갈 것이다. 기존의 복지제도 문제를 충분히 검토해 기본소득과의 장단점을 비교해보는 작업도 있어야 한다. 기본소득과 기존 제도를 비교하면 기본소득이 소득재분배 효과가 좋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데, 이런 연구들이 축적된다면 긍정적인 전망이 가능할 것 같다.

서상목 기본소득이 현실이 되려면 보수와 진보 양측에서 지지 세력이 생겨야 한다. 진보가 사회권 차원에서 이야기한다면, 보수는 복지제도를 효율적으로 단순화하고 능률적으로 개혁하자는 차원에서 끌어 안았으면 한다. 그 과정에서 사회복지협의회가 문제를 제기하고 보수와 진보를 참여시킬 수 있는 역할을 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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