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계적·지속적인 연구 필요…자살예방 정책 컨트롤 타워 설치해야

오강섭 한국자살예방협회 회장
오강섭 한국자살예방협회 회장

불행하게도 1990년대 말 이후로 우리나라 자살률은 가히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인구 10만명 당 자살률은 OECD국가 중 부동의 1위를 십 수년째 지속하고 있다. 매우 안타깝고 속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 이렇게 높은 자살률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과연 줄이는 것은 가능하기는 한 걸까?

답부터 말하자면 가능하다. 과거 자살률이 높았던 나라들이 자살률을 대폭 줄인 성공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해냈다면 우리라고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를 보면 일본은 과거 우리나라 보다 훨씬 심각한 자살문제를 가진 나라였고 항상 교과서에 스칸디나비아 국가들과 함께 자살률 최고 국가 중의 하나였다.

그런 일본이 지난 12년간 약 30%의 자살률을 감소시켰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보다 훨씬 낮은 자살률을 보이는 국가가 됐다. 그리고 앞으로 5년간 추가 30%를 감소시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럼 일본은 어떻게 이런 성공적인 감소를 이루어 낼 수 있었을까?

일본, 맞춤형 자살예방 및 유가족 지원 노력

여러 가지 국가적 노력이 있었지만 인상적인 것 중 대표적인 부분이 첫째 연구다.

일본은 중앙자살예방대책 본부 안에 박사급 연구원으로 구성된 연구팀을 꾸려 지속적인 연구를 수행했다. 연구를 통해 ‘왜 그 지역이 자살률이 높은지’, ‘어떤 대책이 효과적인지’ 등을 증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 중앙심리부검센터 연구결과도 이런 면에서 주목해야 한다. 올해 발표에 따르면 정신질환 중에는 조현병을 가진 사람의 자살이 많았고 신체 질환 중에는 건선 그리고 신체 손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살을 많이 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적 편견이 심한 질환을 앓는 사람들에서 자살이 많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바로 고위험군인 것이다. 고위험군을 파악하고 이들이 가진 문제에 현실적인 접근을 하는 것이야 말로 자살예방의 기초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지속적인 각종 연구가 필요하다.

두 번째 인상적인 것은 맞춤형자살예방이다.

일본에서는 도·도·부현이라는 각 지자체별로 자살예방을 위한 회의가 구성되어 있다. 자치단체장이 의장이 되어 정기적인 대책회의를 연다. 자살 추이를 지켜보며 시의 적절하게 예방대책을 세우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실질적인 회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지역별 맞춤 활동을 일부 시작하고 있지만 전 지역, 전 자치단체로의 확대가 시급하다.

세 번째는 유가족에 대한 대폭적인 지원이다.

일본 자살예방활동의 한 뿌리는 ‘라이프 링크’라는 민간단체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단체는 유가족을 중심으로 운동을 시작해 자살예방관련법을 제정하고 자살이 더 이상의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국가 및 사회의 문제인 만큼 국가가 나서서 자살예방대책을 세우도록 촉구한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도 이제라도 유가족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

정부는 범 부처간 협업을 통해 2022년 자살률을 17명으로 줄일 계획이다. SOS 생명의전화는 24시간 365일 운영되며, 위기속에 있는 대상자의 이야기를 듣고, 도움을 주고 있다.
정부는 범 부처간 협업을 통해 2022년 자살률을 17명으로 줄일 계획이다. SOS 생명의전화는 24시간 365일 운영되며, 위기속에 있는 대상자의 이야기를 듣고, 도움을 주고 있다.

자살과 생명에 대한 인식 전환 필요

그럼 우리나라는 어떻게 자살률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특징적인 높은 자살률을 줄이기 위해 시급하게 해결됐으면 하는 문제를 제언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각종 연구를 통해 높은 자살률의 특징을 밝혀내야 한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10명이 채 안 되는, 자살률에 있어 평범한 국가였다. 그런데 1998년부터 자살률이 높아지기 시작해 2011년 최고점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 같은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물론 이 기간 IMF사태, 카드 대란 등 경제적 위기가 있었고, 이 시기에 자살률이 크게 증가한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어려운 경제적 상황이 자살률을 증가시키는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경제적 위기만을 주된 원인이라고 본다면, 우리나라 보다 경제적 문제가 더욱 심각한 국가가 한 둘이 아닐 것이므로 그것만으로 높은 자살률을 설명하기엔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높은 자살률 원인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는 보다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종단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즉 우리나라 문화와 사회현상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연구가 요구된다.

둘째, 한국인의 생명 및 자살 인식의 문제점을 바꾸어 가야 한다.

일반적으로 자살에 대해 관대하고 이를 미화하거나 정당화하는 사회에서 자살률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과거 일본이 그러했고 현재 우리 사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으로 우리 사회는 자살에 대해 관대하고, 때로는 미화하고 동정심을 갖는 경우가 많았다. ‘오죽하면 자살을 생각했을까?’, ‘얼마나 힘들면 자살을 시도했을까?’ 식의 동정심은 자살행동을 정당화하는 빌미를 제공하기 쉽다.

‘어떤 경우, 어떤 상황에서도 자살은 절대 안 된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자살과 생명에 대한 분명한 인식 전환을 위한 대중적 국민운동 전개가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세 번째, 한국의 자살예방 정책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자살예방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중장기 계획을 세워 추진했으며 지금도 이런 계획은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올해 초에도 정부에서는 자살예방 국가 행동계획을 발표해 자살률을 대폭 낮추기 위한 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전략을 추진하고 △자살 고위험군 발굴을 위한 전사회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적극적 개입 및 관리를 통해 자살위험을 제거하고 △사후 관리 강화를 통해 자살확산을 예방하기 위한 보다 구체적인 정책 및 전략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앞으로 4년 후인 2022년 자살자 수는 8700여 명, 자살률은 인구 10만명 당 17명 수준으로 감소시키려 노력 중이다.

전 국민의 관심과 협조로 자살률 낮추자

그러나 이런 높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 일본도 자살예방법 제정 초기에 중앙자살예방 대책 본부를 총리실 직속으로 운영해 정책을 수행했다.

과거 자살은 개인적인 문제라, 예방도 어렵고 어찌 할 수 없는 문제라는 패배의식이 팽배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자살이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는 사회적 문제이고 ‘자살도 노력하면 줄일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자살은 분명 줄일 수 있다. 일본이 했던 것처럼 우리도 할 수 있다. 아니 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살예방관련 전문가만이 아닌 전 국민의 관심과 협조가 필수적이다. 전문가들은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그리고 비전문가들도 ‘자살만큼은 우리 사회에서 절대 안 된다’는 인식하에 자살예방의 파수꾼이 된다면 앞으로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지속적으로 낮아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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