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 어두운 곳·낮은 곳에 서서 그네들의 아픔 덜어내고파

몹시도 추웠던 지난겨울, 11월 말의 어느 금요일. 사례관리팀 동료의 요청으로 주거환경개선 차 복지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한 가정에 방문했다. 해가 조금씩 서쪽 능선을 따라 넘어가며 어둑어둑해지던 시간, 잠금장치가 없는 문을 열고 희미한 전구 불빛으로 침침히 보이는 거실에 들어섰다.

다 깨어진 유리창, 집안 곳곳에 널어져 있는 잡동사니들, 쾨쾨하게 풍겨오는 곰팡이, 쓰레기 냄새에 선뜻 발을 들이기가 망설여진다. 이곳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것인가? 몇 달은 청소한 흔적이 없는 마루를 보면 차마 신발을 벗고 생활하는 곳이라고는 상상도 되지 않는다. 사회복지사로 3년을 넘게 일했지만 복지관에서 머지않은 곳에 이런 곳이 있는 것을 알지 못했다. 때때로 TV에서나 보던 열악한 환경, 이곳에서 3명의 아이가 살고 있었다.

4, 5월 따뜻한 봄 날씨에 복지관 행사가 이어질 때면 항상 빠짐없이 행사장을 찾아오는 삼남매가 있다. 품안에 고양이 한 마리를 안고 와서는 반갑게 사회복지사들에게 말을 걸곤 한다. 때로는 먹거리 운영에 참여하기도 했고, 축제장 한 가운데 올라 멋들어진 댄스공연을 보여주기도 했다.

사례관리팀 사회복지사들과 친밀해 보이는 모습을 보며 지역사회 내 저소득가정의 아이들이라 어렴풋이 추측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항상 밝아 보이는 모습에, 풍족한 가정환경은 아니더라도 안빈하며 살아 갈 수 있는 환경은 갖추었으리라 여겼던 것 같다. 그날 그 집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말이다.

쓰레기 집에 방치된 아이들

그 이후로 2개월의 시간동안 매주 최소 두 번, 많을 때는 세 번 혹은 네 번까지 그 집에 드나들었다. 처음에 느낀 감정은 분노였다. 이러한 환경에서 아이들만 방치해놓은 부모에 대한 분노, 가난의 고통 속에 아이들을 방치해놓은 사회에 대한 분노, 복지관에 그리 오래 일했음에도 관심 갖고 둘러보지 않았던 나에 대한 분노까지.

어렵사리 마련된 3명의 아이들과 솔직함을 나누는 시간,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일주일 동안 고민이 끊이지 않았다. 간단한 저녁식사 후 회의실에 앉아 오가는 이야기에 이제 겨우 중학교 3학년이 된 소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나또한 중학생이 지고 있는 삶의 무게와 아픔을 들으며 애써 눈물을 감추어야만 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함께하자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스스로 다짐 또 다짐했다. 스스로의 나태함으로 결코 이 아이들을 돌아보는 일에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시급했던 추위를 막는 일, 새 전등을 달아 집 안을 밝히는 일, 동파된 샤워기를 수리하고 온수기를 다는 일 등 계속해서 찾아가도 해야 하는 일이 끊이지 않았다. 먼지가 자욱한 책장을 살짝 들어내면 뒤쪽에서는 언제 우겨넣는지 알 수도 없는 음식물쓰레기가 나오곤 했다. 냉장고 안에는 복지관에서 배달된 반찬통이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채 썩어가고 있었고, 개수대 위 수북한 설거지 속에는 남은 음식물과 곰팡이가 악취를 내뿜고 있었다. 방문을 마치고 집 문을 닫으면 항상 구토감이 몰려왔다. 숨을 쉬기도 힘든 곳에서 아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살고 있다는 것이 마음을 아프게 하곤 했다.

때론 좋지 않은 환경에 익숙해져버린 아이들의 모습이 일을 어렵게 하기도 했다. 바쁜 업무에 2∼3일 정도만 집을 찾지 않으면 조금이나마 치워둔 방 안이 아이들이 먹고 방치한 컵라면용기, 과자봉지로 어지럽혀지기 일쑤였다. 그네들을 설득하여 자구의 노력이 이어지게 하는 법을 전혀 모르는 초짜 사회복지사는 고민에 빠지곤 했다. 따뜻한 말로 다가가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같이 정리해야하는지, 냉정함과 엄격함으로 마치 선생님처럼 따끔히 혼을 내어주어야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나의 미숙함으로 아이들의 성장이 더디어질까 두렵기도 했다.

아무것도 못한 것 같던 하루, 그 하루들이 쌓이니 그래도 집 안 풍경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현관문에 보안장치를 달고, 벽에 초인종을 달았을 때는 아이들과 함께 환호하며 기쁨을 나눴다. 행거를 세우고 빨래건조대를 설치하니 집 안에 널려 있던 빨래더미, 옷더미가 정리되었고, 선반을 설치하니 화장실을 굴러다니던 샴푸, 린스가 자리를 잡았다. 아이들은 여전히 귀찮아하곤 했지만 자신의 잠자리를 정리하고 선반 위에 올려둔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는 일에 조금씩 익숙해져갔다.

새해를 맞고 조금이 지난 1월 말, 인근 주민센터와 지역사회 주민모임, 그리고 당사자인 아이들의 힘을 모아 집 앞 한편을 차지했던 쓰레기더미를 치우고 주방과 거실, 안방을 모두 정리했다. 두달이라는 긴 시간을 이어온 주거환경개선활동의 방점을 마침내 찍은 것이다. 당혹감으로 시작했던 활동, 많은 이들의 관심과 아이들의 노력을 더한 결과물은 완벽하진 않았지만 꽤나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아이들의 삶의 무게는 사실 크게 덜어진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삶 속에서 이 일은 매우작은 지나가는 하나의 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사회복지사로서 누군가의 삶에 더하여진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끝이 없는 삶의 풍파 속에서, 더욱이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범상치 않은 풍파 속에서, 한 명의 사회복지사가 해낼 수 있는 너무나도 미미한 것임이 명징하다. 눈앞의 어려움을 조금 해소하고 사회복지사로서 본분을 다했다는 만족감으로 무력한 자신의 존재를 자위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주거환경개선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동료들과 소주한잔 기울이며 한탄했다.

부족하나마 나와 함께한 시간으로 아이들의 삶을 일으키진 못할지라도 첫 만남에서 흘린 눈물을 잠시나마 잊게 하는 위안이 될 수 있기를. 어두운 길에서 만난 작은 가로등과 같은 반가움 정도만이라도 그네들의 삶속에서 남길 수 있기를.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상황 속에서 찬바람을 막아주는 문풍지 정도로라도 기억될 수 있기를….

언제나 사회적 약자들의 곁에서

지역조직팀 사회복지사로서 일하다 보면 자원봉사, 주민모임, 주민동아리, 후원관리 등의 업무에 배치되곤 한다. 사회복지사로서 이 일들도 물론 의미 있고 감동이 있는 일이다. 하지만 사회복지사로 일함에 있어 결국 서고자 한 곳은 어두운 곳, 낮은 곳, 사회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약자들의 곁이 아니던가.

가정의 달 5월, 증평에서 들려오는 안타까운 소식에 가슴이 아려온다. 나는 언제나 소외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저들의 권익을 지키며, 사회의 불의와 부정을 거부하고, 개인의 이익보다 공공의 이익을 앞세운다. 소외된 이들의 곁에 선 따뜻한 사회복지사, 나의 미천한 역량이 어려운 이들의 아픔을 모두 품을 수는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덜어내는데 쓰임 받는 그런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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