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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족·지역사회 돌봄체계망 구축해야 한다
  • 승인 2018.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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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돌봄’ 토대 구축 위한 ‘시간의 빈곤’ 굴레 벗어나야
송다영 인천대 교수
송다영 인천대 교수

저출산 정책은 과연 실패했나?

저출산 정책이 실패했다는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저출산고령화기본계획(이하 기본계획)이 시행되기 시작한 2006년 이후 2017년까지 122조4000억원을 투입했으나, 2017년 기준 합계출산율이 1.05명(목표치 1.27명)에 머물렀고 출생아수는 출생통계가 작성된 이래 사상 최저치인 35만8000명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저출산 정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한 이유를 예산의 대부분이 무상보육, 육아휴직 등 자녀가 있는 가족에 집중되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3차 기본계획(2016-2020)은 청년일자리·주거대책을 대폭 확대하였다. 고용불안정과 높은 주거비 부담이 결혼과 출산을 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요인이라는 진단이다. 이 모든 대책이 개별적으로 틀리지 않았다. 예산을 투입하면 산출물(output)이나 일정한 효과(effect)가 나와야 하는 기능론적 사고에 입각한다면 저출산 정책은 분명 어딘가 구멍이 있으며, 그것을 메울 수 있는 새로운 대책을 계속 찾아낼 수밖에 없다. 제1,2차 기본계획이 결혼하여 자녀를 출산한 그룹을 대상으로 한 정책에 집중되었다면, 제3차 기본계획은 결혼을 하지 못하는 집단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다.

그런데 지금 이 시점 우리가 직시해야 할 사항은, 저출산 대책이 과연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정책이어야 하는가이다. 이제까지 저출산 정책의 기조에는 ‘저출산→생산인구감소→사회적 부양부담 증가→저성장·침체·국력하락(심하게는 한국사회공멸)’과 같은 사회적 위기 시나리오가 바탕에 깔려 있었다. 이 시나리오는 한편으로는 대다수의 시민들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조성하여 왔으며, 한편으로는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들에게 무의식적 압박과 심리적 불편함을 경험하게 했다.

또 일각에서는 이런 기조가 계속 반복되면서 정책 피로감과 회의적 시각들도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자녀를 출산하는 이유는 그 자체가 삶의 이유이자 기쁨이기 때문이지, 고령사회로 전환 속에서 증가하는 사회적 부양비용을 감당하기 위한 생산인구를 확보하기 위함은 아니다. 즉 저출산→저성장(→그러니까 아이를 출산합시다!)이라는 위기론은 개인화, 자율성, 유동화된 생활양식이 확대되고 있는 현재 한국사회의 시민들(특히 젊은 세대)에게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저출산 대책은 시민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실제 속에서 새롭게 설계되어야 한다. 인공지능과 제4차 산업혁명이 부상하는 시점에, 저출산 대책이 인구수 총량보다는 인구의 질로 정책 초점을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저출산 대책이 ‘저출산→ 고출산’이라는 경로 전환에 관심을 맞추기 보다는 양육(출산 포함) 환경의 불안정성→안정성과 질 향상으로 정책목표를 맞추고 아동을 잘 키워나가는 돌봄에 대한 관점을 전환해야 하겠다.

최근 우리나라 1차, 2차 기본계획의 실패가 보육서비스 중심으로 한 예산의 과도한(?) 투입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는 잘못된 판단이다. 우리나라는 이제 겨우 OECD 평균(GDP의 1%)에 달하는 보육예산을 투입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사회는 지난 10년 동안 보육에 너무 많은 예산을 소비했기 때문에 이제는 효과도 없는 정책을 그만두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1984년 합계출산율이 1.74명으로 저출산 현상이 명백하게 발생하기 시작된 시점으로부터 2005년 국가적 차원의 보육정책이 작동하기 시작할 때까지 20년을 넘게 아무런 대책 없이 시간을 허비했던 점을 반성해야 한다.

1980년 86만에 달하던 출생아 수는 1984년 67만명, 1985년 65만명, 1986년 63만명, 1987년 62만명과 같이 현저히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는 약간 보합세를 보이다가 IMF 이후 급격히 줄어든다. 즉 전체적으로 20년 넘게 태어나는 인구수가 절대적으로 줄어들었고 기간 누적이 되어 있는 상황이라 출산율이 급반등하기는 어렵다. 여기에 IMF 이후 상시화된 고용불안정 심화는 점차 취업→결혼→출산의 생애과업이 함께 불안정해지면서 저출산 현상이 더욱 두드러져 나타났다.

따라서 제1차 기본계획 이후 10년 동안 보육예산이 투입되어도 출산율이 회복되지 않는 배경에는 안정된 아동 양육을 할 수 있는 토대로서의 노동시장 및 제반 사회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화되지 않았고 더 악화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보육예산의 증가가 출산경로를 바꾸지 못한 주된 원인으로 홀대받는 것은 무리한 책임전가이다.

보육을 포함한 각종 돌봄정책의 새판 짜기 필요

물론 보육을 포함한 각종 돌봄 관련된 정책이 갖는 구조적 한계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이미 여러 곳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보육정책은 저출산 위기 속에서 상당히 빠르고 광범위하게 진행되어 왔다.

2006년 제1차 기본계획이 시작된 이래, 2013년 전 계층 무상보육과 양육수당 지급 등이 급속하게 확대했다. 영유아보육 이외에도 초등돌봄을 포함하는 등 대상자의 연령층을 넓혀 가고 있다. 그러나 아동양육을 둘러싼 사회적, 국가적 지원이 확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존재했었던 딜레마는 달라지지 않고 있다.

첫째, 여전히 모든 아동에 대한 제대로 된 돌봄이 제공되지 않고 있다. 일부 계층에서는 과잉돌봄이, 일부 계층에게는 과소돌봄만이 제공되는 부정의가 존재한다. 무상보육이 이뤄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양육수당을 받고자 제대로 된 보육서비스에 접근기회 조차 갖지 못하는 아동이 있으며, 장시간 노동과 정시 퇴근이 이뤄지지 않는 관행으로 보육시설 이후 부모가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방치되는 아동은 수없이 많다. 초등학생 돌봄을 위한 초등돌봄교실(24만명), 지역아동센터(8만명), 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6000명)도 있지만 포함대상은 매우 제한적이다. 전체 초등생 273만1307명중 33만명에 불과하다. 약 8.3%만이 포함되고 있다. 이처럼 부모와 자라나는 아동을 위한 안전, 안심, 안정된 양육환경의 부재는 여전한 숙제다.

둘째, 돌봄의 사회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유급과 무급을 불문하고 돌봄이 여성에게 과도하게 편중되어 있다. 가족 내에서도, 노동시장에서도 돌봄과 관련된 일들은 거의 여성이 전담하는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

셋째, 두 번째 구조와 연결된 사안으로 돌봄에 대한 제대로 된 가치 평가와 권리보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전히 돌봄노동에 대한 가치는 평가 절하되어 있으며, 이전과 다르지 않게 나쁜 근로조건과 열악한 노동환경과 연결되어 있다.

넷째, 불안정한 양육 환경과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임신이나 출산 후 일을 그만둘 가능성이 높고, 노동시장으로의 재진입 유인도 강하지 않아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답보상태에 놓여 있다. 결국 보육을 포함한 많은 돌봄정책이 지난 10년간 양적 확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같은 틀 안에 갇혀 기존 경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경로의존을 하는 현실이다. 궁극적으로 돌봄정책의 핵심은 ‘질 높은 돌봄을 통한 믿고 안심할만한 돌봄체계의 확충’이다. 그런데 지난 10년간의 정책은 이 기본적인 체제를 실현해내지 못했다.

단적인 예로, 질 높은 보육정책의 핵심인 국공립보육시설은 10년이 넘도록 약 5%에 머물러 있으며 이로 인해 안심할만한 보육체계가 미흡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질 낮은 보육으로 인해 여성들은 아이의 안전과 건강에 대한 걱정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거나, 가족구성원(대개 조부모)에게 돌봄을 다시 부탁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경제적으로 여력이 있는 계층은 피고용인을 고용하여 보육시설이 해결하지 못하는 돌봄시간의 공백(대략 3시에서 부모가 돌아오는 7시 전후)을 메우는 방식을 택한다. 이처럼 돌봄의 사회화라는 정책기조에도 불구하고, 돌봄의 근본을 해결하지 않는 정책적 한계 때문에 많은 중산층이 돌봄을 가족을 통해, 또는 시장을 통해 해결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즉 돌봄의 사회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돌봄의 재가족화, 시장화 기제가 계속되는 경로의존성이 재생산되고 있다.

종합해보면 돌봄의 질에 대한 보장이 없는 정책은 중산층 이상의 가족의 불신으로 인해 다시 시장과 가족에게 돌봄을 맡기게 되는 시장화, 재가족화 기조가 강화되고 있다. 이와 같은 중산층의 이탈은 전체적으로 사회적 돌봄 안전망을 훼손시킴으로써, 현재 중요한 문제로 지적되는 돌봄서비스 부문 근로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이로 인한 낮은 질의 돌봄이 재생산되는 악순환에 놓여 있다. 결국 믿고 안심할만한 돌봄체계의 미비는 보육시설이 늘어도 여성 경제활동은 물론 출산도 늘지 않는 모순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시민적 권리로서 좋은 돌봄을 확보하기 위한 제언

이 현실적 딜레마를 해결하는데 대대적인 인식의 전환이 요구된다. 사람을 키워내고 살려내는 돌봄은 투입(input, 예산)→산출(output, 출산율)과 같은 산술 공식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출산 총량을 넘어 태어난 아동이 잘 자라나게 하는 환경,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권으로서 좋은 돌봄을 보장받게 하는 사회구조를 만들겠다는 정책방향이 만들어져야 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보육정책이 제대로 된 효과를 갖지 못한 이유는 믿고 안심할만한 돌봄체계 구축이 수반해야 할 재정에 대한 부담으로 파편화된 정책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보육정책에 예산을 충분히 배정하지 않음으로써 중산층은 정책을 이탈하여 자신들만의 대책을 각개전투식으로 찾아가고, 저소득층 아동은 좋은 돌봄을 받지 못하는 부정의가 발생하고 있다. 이런 부정의한 현실을 타개하려면 시민적 권리로서 좋은 돌봄을 보장할 수 있게 하는 것을 정책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

그동안 돌봄은 아주 구체적인 행위나 서비스 제공 등으로 제한되게 이해되었고, 사회적 돌봄정책도 특정시기(3세 미만, 6세 미만, 65세 이상)의 돌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 개입(각종 사회화정책)을 투입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돌봄은 긴 생애에 걸쳐 수행되어야 하는 지속성을 갖기 때문에 기본적 삶의 질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조명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돌봄은 개별 정책들의 대상자나 급여수준 확대뿐만 아니라 촘촘한 사회적 돌봄체계망 구축을 목표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여기에는 국가, 가족(개인)뿐만 아니라 지역사회(공동체)가 함께 돌보는 사회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그동안의 돌봄정책은 사회화는 지향했으나 ‘함께돌봄’의 민주적 지향은 약했다. 돌봄을 여성만, 가족만 짊어지게 하는 사회는 문제가 있다. 또 국가가 모든 돌봄의 책임을 맡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따라서 좋은 돌봄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성과 남성이 함께, 가족과 사회가 함께, 국가는 물론 지역사회가 함께 나누어 책임지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처럼 함께 돌보는 민주적 원리가 작동하면, 현재 한국사회가 고질적으로 안고 있는 여성의 ‘독박육아’, 계층 간 돌봄의 양극화, 광범위한 돌봄공백의 사각지대가 사라질 수 있다. 함께 돌보는 사회가 만들어지면 지금 한국사회가 당면한 딜레마인 저출산과 낮은 여성경제활동 참가율이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다.

물론 함께 돌봄이 가능한 사회가 되려면 단순한 정책 개발이나 재배치를 통해서는 가능하지 않다. 이제까지 한국사회 전반의 운영원리에 대한 재편도 함께 수반되어야 한다. 즉 노동시장을 중심에 둔 발전주의 패러다임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한국사회는 명목적으로는 장시간 노동을 줄이고 ‘저녁이 있는 삶’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 정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는 여전히 발전주의 중심의 사고에 묶여 있다.

이에 따라 아동이나 가족구성원을 돌보는데(혹은 개인적으로 자신의 생활을 유지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돌봄시간(자기돌봄 시간 포함) 권리를 정책에 관철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장시간 시장노동에 돌봄을 추가로 더 해야 하는 일하는 여성들은 절대적 ‘시간빈곤’의 악순환에 빠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남성도 장시간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돌봄에 참여할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함께 돌보는 사회가 되려면 누구나 일을 하면서도 충분하게 자신들만의 생활시간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함께 돌보는 사회는 (단지 가족구성원을 함께 나누어 돌봄으로써 저출산 문제를 해결한다는 목표에 머물지 않고), 사회구성원이라면 누구든 일, 쉼, 삶을 누리고 즐기는 진정한 복지사회를 이끌어나갈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