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우 강남대 교수
한동우 강남대 교수

사회적 경제(economie socialé) 영역 : 상호의존적 지역 기반의 복지공급 주체

사회적 경제가 경제행위의 주체로서 일정한 형식과 규범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국민국가가 형성되던 18세기이다. 이 시기에는 시민권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활성화되면서 ‘결사의 권리’가 보장됨에 따라 사회적 경제 조직들의 조직화가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현대적 의미에서의 사회적 기업이나 비영리 조직들이 사회적 경제를 특징짓는 대표적 결사체라고 한다면, 경제행위 주체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사회적 경제는 20세기 이후,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롭게 등장한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경제 논의의 핵심은 이 영역을 구성하고 있는 조직들을 보다 광범위한 정치경제적 맥락 위에 배치함으로써 이들 조직의 경제적 생명력을 식별하고 평가하는데 있다.

사회적 경제는 종종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사이에 존재하는 제3의 영역으로 정의되며,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비영리조직, 그리고 자선조직들로 구성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회적 경제는 20세기 이후 자본주의 사회가 본격적으로 경험한 시장실패와 정부실패를 보완하는 대안적 영역으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산업화나 근대국가성립보다 훨씬 앞서 형성되어 있던 자발적 영역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사회적 경제는 국가나 시장영역과 경쟁하는 관계에 있다기보다는 이들 영역과는 사뭇 다른 방식과 원칙에 의해 작동되는 영역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나 시장영역 내에도 사회적 경제의 특성을 갖는 행위가 존재할 수 있으며, 그 반대도 성립한다.

시장과 국가영역은 점차 제3의 영역으로 범위를 확장하는 경향을 보이며, 제3의 영역 역시 시장과 국가영역으로 침투해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영역 간 침투는 모든 차원에서 확대되는 추세에 있다. 복지국가는 민간의 비공식 영역을 제도를 통해 합리화하며, 시장에 대한 규제를 확대하고자 한다. 반대로 시장은 국가의 역할을 대체함으로써 영역을 확장하며, 서비스 산업의 확대를 통해 민간영역을 상품화한다.

한편 국가가 주도하는 공익적 서비스의 수탁자로서 민간영역의 역할이 확장되기도 하고, 기업 사회공헌활동의 핵심적 파트너로서 시민사회의 비영리조직이 활성화되기도 한다. 이러한 추세들은 경제행위의 세주체들이 서로 공유하는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회적 경제를 작동시키는 원리는 시장이나 국가와 는 다르다. 사회적 경제는 확장된 자아(extended self)로서의 가족과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하며, 재화와 서비스의 교환이 시장의 이윤동기나 국가의 통제가 아닌 신뢰와 호혜성을 기반으로 한 상호의존(interdependency)에 의해 이루어진다(한동우, 2012).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사회적 경제는 사회자본의 구성 요소를 핵심적 작동기제로 활용하기 때문에 지역에 내재된 역량을 동원하고 네트워킹함으로써 개인이나 가족의 문제가 지역의 역량을 통해 자발적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사회서비스 공급체계의 사회적 맥락

최근의 사회서비스 공급체계는 두 가지 ‘현실적’ 맥락에서 논의된다. 하나는 이른바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대한 국가의 집합적 대응방식으로 사회서비스를 제도화함으로써 사회보장 시스템을 소득 보장과 서비스 보장의 두 축으로 변혁하는 것과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소득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주로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일자리 창출 전략으로서의 맥락이다. 한국 사회에서 사회서비스 제도화는 새롭게 창출된 일자리를 통해 서비스를 공급함으로써 복지 수요를 충족할 뿐 아니라, 소득 양극화 해소에도 기여한다는 전략에 기초하고 있다. 이는 사회투자국가의 기본 가정인 인적자본수준과 고용의 높은 연계성을 바탕으로, 사회서비스에 대한 수요와 새로운 일자리를 동시에 창출하려는, 다시 말해서, 하나의 시스템 내에서 두 가지 효과를 통합하고자 하는 시도로서 이해된다.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대한 집합적 대응으로서의 맥락은 복지국가의 사회보장 시스템 자체를 변혁하려는 시도와 관련된다. 종래의 사회보장 시스템이 공공부조와 사회보험을 중심으로 저소득층(혹은 잠재적인 저소득층)의 소득을 보조하는 방식으로 구축되어 있었다면,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대한 인식과 대응은 사회서비스를 기존의 소득유지 제도와 같은 층위에 배치함으로써 한 사회 내의 사회보장시스템을 소득유지 제도와 사회서비스제도로 구성하고자 시도한다.

『사회보장기본법』은 제3조에서 사회보장을 “출산, 양육, 실업, 노령, 장애, 질병, 빈곤 및 사망 등의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모든 국민을 보호하고 국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소득·서비스를 보장하는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서비스를 말한다”라고 정의함으로써 이러한 시도를 제도적으로 구체화한다.

공공부조와 사회보험을 주축으로 하는 기존의 사회보장 시스템이 현금이전 전략을 사용하는 것이라면, 사회서비스 제도화는 현물성 휴먼서비스 제공 전략을 적용한다. 소득유지 중심의 사회보장제도의 목표가 복지국가의 경제적 최저선을 보장하는 것이라면, 사회서비스는 일상 생활상 안전을 보장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한 사회의 두 가지 측면을 다루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휴먼서비스로서의 사회서비스는 본질적 속성상 인간관계를 통해 제공되기 때문에 제도의 적격성(eligibility) 여부에 따라 급여가 (기계적으로) 제공되는 소득 유지 프로그램과는 달리, 서비스 제공자의 숙련도, 인격, 신념 등 지극히 개인적 요소들에 의해, 제공자와 대상자 간의 관계 형식과 질에 의해, 그리고 서비스가 제공되는 환경적 조건에 의해 서비스의 본질적 요소들이 달라질 수 있으며, 따라서 획일적이거나 표준화된 내용과 방식으로 제공되기 어려운 특성을 갖는다.

게다가 사회서비스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파생되었거나, 그것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재화와 서비스의 등가성에 대한 정보를 균형적으로 소유하는 것으로 가정하는 시장에서의 합리적 교환과는 달리, 친밀성(intimacy), 신뢰(trust), 호혜성(reciprocity) 등의 가치가 비공식성과 비합리성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교환되는 특성을 갖는다. 사회서비스의 이러한 특성은 그것의 공급체계에 대한 논의가 내용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득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일자리 창출 전략으로서의 사회서비스 공급은 사회서비스의 본질적 속성과는 관련이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매우 미미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사회서비스의 확대는 국가마다 정치경제적 및 사회적 조건과 경로에 따라 서로 다른 궤적을 그리고 있으나, 한국에서의 사회서비스 발전은 다분히 저소득층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시장 형성적 성격을 갖고 있다.

한국의 사회서비스 제도는 가구 내 이중소득자(dual earner)체제를 전제로 하는 것처럼 보인다. 공적 영역에서 서비스 산업의 발전은 좋은 일자리를 가진 맞벌이 부부의 재생산 노동(가사노동)을 저소득 미숙련 여성노동자들과 이주여성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부분적으로 사회복지의 문제를 노동권에 대한 피상적 인식을 기반으로 해석하려고 하는 시도와 관련된다. 일자리 관점에서 볼 때,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좋은 일자리(decent jobs)를 얼마나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이 분야의 고용안정성이 평균적인 수준으로 유지될 수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일자리를 통해서 사회서비스가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는지가 핵심적인 논의 사항이 되어야 할 것이다.

경제성장을 통해 전반적인 소득이 향상되면 산업구조가 제조업 중심에서 서비스업 중심으로 개편된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입증된 것이다. 서비스업 중심으로의 산업구조 개편은 시장 내에서 서비스에 대한 수요증가, 제조업과 서비스업 사이의 노동생산성(혹은 임금) 차이, 사회구조의 변화 등 다양한 요인으로 설명되는데, 한국의 경우도 현재 서비스업 고용비중이 70%에 이르고 있으며, 이는 과거 20년 동안 꾸준히 상승해 온 결과이다.

그러나 한국의 서비스산업 노동생산성은 제조업의 40%, 선진국의 30〜50%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부분적으로 사회서비스영역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탄력성이 높은 공간으로 인식되는 조건이기도 하다. 증가하는 복지수요에 대해 서비스 공급과 고용을 연계함으로써 정부 재정능력 한계를 극복하고, 동시에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소득 양극화 해소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서비스 분야는 매우 매력적인 분야로 인식될 수 있다.

사회서비스 산업이 노동집약적이어서 고용유발효과가 크며, 공익적 서비스의 공급과 저소득층의 소득향상을 순환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판단은 정부로 하여금 이 분야의 시장형성을 위한 투자를 과감하게 확대하도록 해왔다. 다시 말해,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일자리는 탈산업 사회에서 제조업 부문 구조조정의 출구로 인식되면서,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대응하는 전략으로서의 사회서비스 제도화가 현실에서는 ‘고용위기 해소를 위한 투자전략’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정책적으로 창출된 일자리들은 기존의 서비스 산업 내의 다른 일자리들과는 차별적인 직무특성과 임금 구조 등으로 인해 산업 내에서 분절된 노동시장을 형성함으로써 노동생산성, 부가가치 등의 측면에서 기대만큼의 성과를 보이지 못하며, 오히려 저임금 일자리를 양산함으로써 고용불안정과 소득양극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이론적으로 주장되거나 경험적으로 입증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경제 방식의 사회서비스 공급

지역 기반의 복지공급 논의에서 ‘지역’은 ‘중앙’ 혹은 ‘중앙 정부’의 대척점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으나, 지역은 경제적 이성과 제도적 합리성이 지배하는 영역으로서의 ‘제도영역’에 대응하는 것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지역은 재생산 노동의 공간 혹은 자활노동의 공간으로서, 비공식성과 상호의존적 원칙이 지배하는 생활세계라고 할 수 있다. 지역 기반의 복지 공급은 공공 행정의 대상으로 구획화되어 있는 행정구역으로서의 지역사회가 아니라, 개인과 가족, 그리고 비공식적 네트워크가 복잡하게 얽혀 상호의존적인 방식으로 구조화된 시민사회로서의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복지 공급에 있어서 지역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은 복지 자원을 동원하고 조직함에 있어 지역의 내재된 역량을 파악하고, 이에 부합하는 공급체계의 기반을 식별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지역사회는 복지공급의 방식에 따라 현실적으로 제도와 프로그램이 작동하는 제도적 영역과 생태적 원칙이 작동하는 지역적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문제 해결을 위한 역량을 생산하는 영역과 생산된 역량을 기술적으로 전달하는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최근 사회적 경제 조직들을 사회서비스 공급자로 활용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이러한 관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과거에도 사회적 기업을 활성화하여 공익적 서비스 제공과 일자리창출을 동시에 목표로 하는 정책을 추진한 적이 있고, 형식적으로는 현재도 그 정책이 유효하긴 하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시도는 국가가 제도적으로 접근하기 전부터 자발적으로 있어 왔으며, 사회적 경제 영역이 상대적으로 발달한 유럽국가들에서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이러한 시도가 있어 왔다.

최근의 사회서비스 공급에 있어서 지역사회 내 다양한 층위의 조직과 결사체들이 중요한 공급자 혹은 매개자로서 고려되고 있지 않은 것은 전통적인 사회복지서비스 공급과정에서와 마찬가지이다.

복지 공급에 있어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며, 지역 기반의 복지 공급체계에도 정부로부터의 재정 지원 및 행정적 지원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내재적 역량을 - 의도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 복지 공급체계의 중요한 요소로 인식하지 않는 것은, 제도와 프로그램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근대적 발상에 불과하다.

제도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사회문제를 제도의 문제로만 인식하는 오류를 낳게 되고, 제도의 문제는 제도를 신설하거나 보완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는 오류의 순환을 낳게 된다. 따라서 지역 기반의 복지공급 체계 구축을 위해서는 현재 한국 사회의 복지공급 체계의 구조를 이해하고, 이 구조내에 있는 복지 역량들을 어떻게 자리매김하고 네트워킹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요구된다.

사회서비스 공급은 생산된 서비스를 전달하는 기술적 과정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 생산을 위한 자원, 생산과 전달, 규제 등 서비스 공급의 모든 과정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제까지 사회서비스 공급과 관련된 논의는 제도화된 사회서비스에 국한하여 제도의 효율성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에 한정되어 온 경향이 있다. 사회서비스 공급체계를 서비스 공급의 모든 과정을 포괄하여 논의하게 되면, 제도화에서 배제된 영역까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자원체계 | 사회적 경제 방식의 사회서비스 공급체계에서는 민간 부문에서 자발적으로 조성된 자원(돈, 인력, 시설)을 모두 포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민간의 자선적 기부금,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등 사회적 경제 영역 내의 경제행위 주체들의 출자금과 회비, 배당금,기업 사회공헌활동, 자원봉사활동 등이 모두 사회서비스 공급체계의 자원으로 고려된다.

생산과 전달체계 | 비영리조직과 사회서비스 공급을 위해 설립된 영리법인이나 개인사업자들 외에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지역사회조직과 결사체들이 사회서비스의 생산과 전달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사회적 경제 방식에서는 공급자와 소비자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공동생산과 공동소비가 가능하다.

규제체계 | 사회서비스 공급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규제 장치는 역시 관련 법률이지만, 사회적 경제 방식의 공급체계에서는 서비스 생산자들과 소비자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결성된 협회 등이 중요한 규제자로 행위 할 수 있다. 서비스 공급에 대한 규제는 서비스를 소비하는 소비자들이 직접 공급자를 감시하는 방식을 택할 수도 있고, 민간 부문의 자원제공자들 역시 서비스 공급과정을 감시하고 규제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

제도 외의 요소를 사회서비스 공급과정에 포함시키기 위해서는 사회적 경제 영역에의 공급체계 구성 요소들을 일정 부분 제도 내로 내부화하거나, 사회서비스 제도와는 별도로 지역 기반의 복지공급체계를 강화하는 측면에서의 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한편, 현행 사회서비스 제도의 형식과 내용을 크게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사회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제도 외부에서 충족시키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는 대안이다. 예를 들어,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 사회적 경제 영역의 다양한 행위 주체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방식을 통해 지역 기반의 복지 공급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하나의 정책 대안이 될 수 있다.

* 이 기사는 월간 복지저널 2018년 1월호(통권 113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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