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동네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전 문재인 정부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
꽃동네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전 문재인 정부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

한국 복지국가의 현 좌표

한국의 복지국가 역사는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가? 김대중 정부가 복지국가의 초석을 놓기 시작하여 노무현 정부에서 기초공사를 짓고 설계도면을 그렸으나 이명박, 박근혜정부에 와서 기존에 해오던 공사는 중단되고 다른 설계도를 만들지도 않은 채 갈팡질팡 행보와 의미 없는 땜질 공사에 급급함으로써 한국 복지국가의 미래에 암운을 던져왔다고 볼 수 있다.

그 사이 대한민국의 사회와 경제의 위기는 최고조에 이르렀고 불평등과 양극화로 인해 대부분 민생은 나락에 떨어졌다. 삶은 고단하고 노동은 쉽지 않으며, 행복과 희망을 발견할 수 없는 국민들이 늘어났다. ‘헬조선’이란 말이 공감을 살 정도였다. 실제 2017년 현재 대한민국에 드리워진 위기의 그림자는 5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생활의 위기이다. 우리네 일상생활에서 불안이 일상화되어있다. 의료와 주거, 교육, 육아, 노후에 있어 결국은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도록 방치된 느낌을 개개 국민들은 지울 수 없어 생활상의 안정적 여유가 부족하다.

이런 기본적인 생활 필수재에 들어갈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심초사해야 한다. 더군다나 아예 생계 자체가 당장 해결되지 않는 빈곤층이 노인인구의 약 절반, 아동의 10분의 1, 전체 국민의 15% 내외로 추정되고 있다.

둘째, 노동의 위기이다. 노동은 생활을 이어가는 소득의 확보를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한 개인의 사회적 소속감과 자아실현에 있어 필수적이다. 그러나 노동현장에 참여하지 못하는 청년이 전체의 4분의 1에 이르고 있고, 여성의 경우는 여전히 2분의 1만 일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노동을 한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다는 것이다. 중위소득의 3분의 2 이하를 받는 저임 노동자가 전체의 25%에 달하여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국가 중 최고수준을 보이며, 그나마 일정정도 이상의 임금을 확보한다고 해도 이는 연간 2300시간이라는 OECD국 중 최장시간을 노동한 대가이며, 비정규직과 여성, 중소기업 노동자라는 차별을 감수하면서 겨우 얻어낸 것이다.

기업문화는 거의 봉건시대를 방불케 하는 권위주의와 족벌체제로 굳어져있어 개인의 창의력과 존중감을 저당 잡힌 결과이다. 그렇다고 회사를 뛰쳐나와 자영업의 세계로 뛰어든 전체 일하는 계층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이들은 5년 안에 반은 폐업 수순을 밟는 예정된 고난의 길에 서있을 뿐이다.

셋째, 경제의 위기이다. 대한민국의 경제는 언제나 위기였다. 그러나 현재의 위기는 심상치 않다. 김대중 정부 이후 각 정부의 5년 집권기간 중 평균 경제성장률은 김대중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계속 하락해왔기에 저성장이 고착된 상태이다. 재벌과 대기업에 쏠린 경제 집중은 ‘통제받지 않는 자본권력’으로서 중소기업과 지역상권을 파괴하는 불공정의 핵심이 되고 말았다. ‘패자부활’이 없는 혁신경제의 장에서 새로운 경제동력이 만들어지긴 요원하다.

넷째, 사회의 위기이다. 올해 연간 출생아 숫자가 처음으로 30만명대로 추락할 것이 확실한 가운데 인구소멸 지역이 속출하고 고령화 속도를 한층 높이고 있다. 여기에 사회 각 분야에서 원칙과 소신, 양심에 따라 자기 직분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은 해고의 명부에 이름을 올리는 것과 같기에 부실과 부패가 잔존하고 이것들이 각종 인재가 속출하는 원인이 된다. 사이코패스의 등장이나 묻지마 살인, 잔혹범죄가 빈발하고 있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이들도 다른 국가들을 압도하여 ‘자살공화국’의 불명예를 안고 있다.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성과 합리성이 담보된 근대사회인지부터가 의심스럽다.

다섯째, 정부신뢰의 위기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정부와 공무원들의 존재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세금은 국민총생산의 20%에 해당하는 만큼 내고 있지만, 복지지출 등으로 직접적인 혜택으로 돌려받는 몫은 국민총생산의 10%에 불과하여 서구 선진국의 국민에 비해 훨씬 미약하다. 때때로 불거지는 정치인들의 무능과 무소신, 국정농단과 같은 사태까지 겹치면 정부는 분노의 대상이자 불신 그 자체이다.

이러한 한국의 5대 위기를 극복하는 하나의 주효한 해결책은 복지국가이다. 이미 선진국들이 밟아온 복지국가의 역사에서 웅변으로 알 수 있고, ‘시장의 폐해를 사회적으로 통제하여 구성원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국가체제’로 정의되는 복지국가의 기본 정의를 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앞에서 밝힌 대로 한국복지국가는 그간 보수정부 9년여 동안 길을 잃었다. 오히려 퇴보했다고 보아야 한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하에서 개별복지제도에 있어서 왜곡과 방임의 흔적은 뚜렷하다.

공공부조정책에 있어 2015년 개별급여체계로 바꾸고 상대적 빈곤 개념을 도입했지만, 오히려 중위소득을 적용한 결과 최저생계비 계측에 따른 빈곤선적용 때에 비해 생계급여의 기준소득증가율은 줄어들었으며, 부처별로 분산된 개별급여들로 인해 기초생활보장제도는 파편화되고 말았다.

건강보험제도의 보장률은 여전히 제자리이며, 15조원에 이르는 흑자가 있어도 이를 보장성 강화에 활용할 생각은 없었다. 의료공급체계의 왜곡현상을 바로 잡을 의지도 없으며, 오히려 이명박정부 때부터 감행한 ‘의료의 영리화’는 여전히 진행 중인 채로 공적 의료보장체계의 내재된 폭탄과 같은 상태이다.

노후소득보장체계로서의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두 제도에 있어서도 노후소득의 보장성 강화는 요원하다. 기초연금의 경우 박근혜 정부 시절 20만원으로 상승되었지만, 국민연금수급자의 역차별과 물가 상승률만의 증가율 적용, 그리고 기초생활수급자 배제 등의 문제를 낳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국민연금 급여를 정상화하는 어려운 사회적 합의과제는 엄두를 내지 않았고 오히려 국민연금 기금을 삼성일가의 경영세습을 위해 부당하게 운용했다는 혐의를 받는 등 연금기금의 관리운용에 치명적인 한계를 노정하고 말았다.

영유아보육의 경우도 심각하다. 이명박 정부 말기 그렇게도 반대하던 보편적 복지였건만 그 대표적인 정책인 무상보육을 갑작스럽게 결정하게 된다.

물론 보육부담을 줄인다는 점에서 다행이지만, 준비되지 않은 정책의 갑작스런 실시와 예산 투여는 혼란을 야기하였고, 가정양육수당 역시 여성에 의한 아동양육 책임을 더 강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찬성할 수 있는 정책이 아니었다. 여기에 박근혜 정부는 ‘맞춤형 보육’정책을 들고 나와 어린이집의 혼란을 가중시켜버렸다. 가장 중요한 과제인 국공립어린이집의 확충이나 개별가구에 대한 추가적인 보육료 부담의 공적 흡수 같은 문제는 더 이상 추진되지 않았다.

아동, 청소년, 노인, 장애인, 가족 분야의 복지서비스 분야에서도 특별히 획기적인 진전이 이루어진 것은 없다. 오히려 중앙정부가 사회보장위원회를 두고 지방정부의 사회서비스 등 복지정책전반을 모니터링하고 중복이나 낭비사업이라 분류한 사업들에 대해 추진을 막는 정책을 폈던 것은 지방자치를 역행하는 것이었으며, 지방정부의 복지정책 의지를 꺾어버리는 희극적인 정책이 아닐 수 없었다.

복지전달체계에 있어 ‘읍면동 복지허브화’사업을 전개한 것이 박근혜 정부 때의 의욕적인 정책으로 평가되지만 읍면동 평균 1.4명 정도의 증원만으로 3명의 방문복지팀을 만들어 사례관리와 방문서비스를 하라고 하는 것은 제대로 된 성과를 내기 애초에 불가했다.

결국 보수정부 10년 동안 개별 복지정책의 미온적 관리나 왜곡된 설계 등은 궁극적으로 한국 복지국가의 발전이란 측면에서 커다란 아쉬움을 남긴다. 기조에 있어서는 선별주의와 가족주의, 주체에 있어서는 민간과 영리시장의 의존, 재정에 있어서는 법적 의무지출 중심의 순증주의가 유지되었다.

이는 현시점의 위기 수준을 고려해서도 그리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도 당연히 미래의 좌표로 설정되어있어야 할 보편적 복지국가와는 너무나 엇나가 있는 것이었고 이로써 상대적인 지체와 왜곡의 한국 복지국가의 앞길을 험난하게 만든 결과만을 남겼다고 정리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국가 비전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국정농단과 촛불혁명, 그리고 이어 전개된 대통령탄핵과 갑작스런 19대 대통령 선거,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 국정과제의 발표 등 지난 10개월 동안 대한민국을 달군 일련의 기록들이다.

시민혁명사에 있어 새로운 이정표를 만든 촛불혁명이 탄생시킨 문재인 정부는 ‘국민주권시대’를 내세우며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국가비전으로 천명하였다. 지난 7월 중순 5대 국정목표와 20대 전략, 100대 국정과제, 487개 세부실천과제를 발표하면서 향후 5년간의 정책추진의 청사진을 내놓았다.

이러한 정책설계도를 관통하는 것은 더 좋은, 더 많은 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는 것과 민생을 정부가 책임지겠다는 것, 이 두 가지 기조이다. 전자는 촛불혁명으로 확인된 살아있는 국민들의 주권의식을 참다운 민주주의의 구현으로 향후 일상에서 아래로부터 직접민주주의를 구현하도록 정치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며, 후자는 경제에서의 공정과 정의를 구현하고 더불어 함께 성장하는 국민경제를 만드는 한편 복지국가 확립을 통해 국가가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겠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는 경제사회민주화를 통해 담대한 복지국가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국가운영의 기조로 분명히 확립되어있다.

포용적 복지국가론

1)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할 복지정책 과제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의하면, 5대 국정목표 중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가 복지정책 내지 복지국가 추진과제가 집중되어있다. 특히 아래에 있는 5개의 국정전략이 복지국가 구축에 필요한 복지, 성평등, 교육, 노동, 보건의료, 생활안전, 생태환경, 문화 등의 영역이 집중되어있다. 여기에 들어있는 세부적인 복지정책과제들만을 요약하여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 소득보장정책

아동수당제 신설, 기초연금 인상, 청년고용촉진수당제 도입, 부양의무제 단계적 폐지, 장애인연금 인상, 국민연금 및 고용보험 사각지대 완화, 노인일자리 참여수당 인상,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상향조정, 육아휴직 급여의 급여액 인상 등

▷ 서비스보장

영유아 | 국공립 어린이집 및 유치원 이용률 40% 달성, 표준보육 비용 현실화 및 맞춤형 보육 폐지

아동청소년 | 퇴소아동 자립 강화, 아동보호서비스의 공공성강화, 시설보호에서 가족중심 보호, 온종일 돌봄서비스(방과후보육서비스) 체계 구축, 지역아동센터 및 그룹홈 종사자 처우개선, 청소년 방과후 아카데미 확충, 아동청소년의 통합적 접근 등

어르신 | 치매안심센터 및 치매안심병원 확대, 치매노인에 대한 본인부담 경감, 경증치매 급여 제공, 노인일자리 80만개로 확충 및 급여 40만원 인상, 경로당 기능 강화 등

장애인 | 장애인등급제 단계적 폐지,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최중증장애인 상시돌봄체계 구축, 어린이 재활병원 확충, 지역사회 정착 생활환경 조성, 장애인문화예술체육 활동 지원강화 등

정신건강 | 정신건강복지센터 통합운영, 전문 인력의 대대적 확충 및 처우개선

가족 | 한부모가족 주거지원 확대, 청소년 한부모 자립지원 및 학습권 보장, 건강가정지원센터의 가족센터화 및 사업 확대 등

자활 | 자활대상자 확대 등

▷ 복지인프라

국공립시설의 확대 및 사회서비스공단 설립, 대대적인 공공복지서비스인력 확충, 사회복지종사자 임금격차 해소, 시설평가제 개혁 등

2) 포용적 복지국가의 함의

특히 이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복지정책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포용적 복지국가를 내세움으로써 향후 문재인 정부의 복지국가 상은 ‘포용적 복지국가(Inclusive Welfare State)’임을 널리 알린 바 있다. 그렇다면 이는 어떤 개념일까? 향후 좀 더 공식적인 정부의 개념정의가 기대되지만 필자가 해석하는 바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우선 ‘포용(inclusion)’이란 용어는 달리 말하면, 포섭, 포괄 정도의 용어로도 해석될 수 있다. 영어의 inclusion을 표현하는 한국말을 뜻한다. 사실 OECD에선 2000년대부터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라는 개념으로 경제성장에 있어 좀 더 포용적일 필요가 있음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포용적이란 개념을 복지국가에 적용한 경우는 아직 없었다.

결국 한국의 사회경제적 위기와 복지국가의 구축 방향을 생각할 때 ‘포용적’이란 말의 함의는 네 가지 차원에서 그 구체적인 의미를 갖는다.

첫 번째는 대상계층에 있어서의 포용이다. 이는 한국 복지국가에서 더 많은 계층들이 복지국가 안으로 들어와 복지급여를 누려야 한다는 의미이다. ‘모두가 누리는’이란 수식어가 붙은 의미가 이를 입증한다.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적어도 100만명이 비수급 빈곤층으로 존재하고, 건강보험 및 국민연금에 있어서도 보험료 체납자를 포함하여 자영업자, 비정규직 등 광범위한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또한 당장의 시급성은 없다 해도 많은 중산층에 있어 불식되지 않는 생활 상의 위기와 미래의 위험을 생각할 때 중산층 역시 복지국가의 틀 안에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포용적이란 표현은 ‘보편적(universal)’이란 용어와 동의어에 속한다고 해석된다.

두 번째는 제도에 있어서의 포용이다. 현재 한국의 복지제도는 도입되어 있지 않거나 개혁이 요구되는 것들이 많다. 우선 궁극적으로는 기본소득의 관점에서 각종 수당제도가 다시 한번 재정비되어야 하며 당장은 아동수당제나 청년수당제, 실업부조제 도입이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또한 영유아보육, 건강보험, 국민연금, 사회서비스제를 비롯하여 각종 제도들의 전면적인 개혁도 함께 요구된다. 이런 점들을 총칭하여 제도상의 포용이 필요하다.

세 번째는 급여 상의 포용이다. 현재의 개별 제도 상 책정된 급여수준이 과연 적정한 것인가라는 측면에서 볼 때 원래 제도의 목적에 부합되도록 급여의 조정이 필요한 제도가 많다. 당장 기초연금, 국민연금이 그렇고, 건강보험제도가 그러하며, 육아휴직급여와 실업급여 수준도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상향조정이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영역의 포용이다. 이미 새 정부는 복지-경제-고용이 황금삼각형(Golden Tri-angle)을 이루어 선순환해야 한다고 천명한 바 있다. 그간 복지국가의 포괄 범주를 복지로만 한정지었던 경향성이 정책현장과 학계에 노골적으로 존재해왔고 각기 분절적으로 이해되어왔다. 따라서 노동, 교육, 주거, 보건의료는 물론이요, 경제와 정치, 안보, 재정분야까지 포괄하여 복지국가체제라는 관점에서 한국의 복지국가 상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도 포용은 유효한 개념이다.

맺는 말

이제 한국의 복지국가는 새로운 출발점에 서있다. 그러나 복지국가는 결국 집권세력의 의지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내에 복지국가의 주체세력들이 얼마나 정치사회에 형성되어있느냐가 관건이다.

또한 시민들이 복지국가의 기본 가치인 자유, 평등, 사회연대를 얼마나 수용하고 참여와 자치의 행동양식들을 일상에서 얼마나 구현하느냐에 달려있다. 사회복지계가 담대한 복지국가 실현을 위한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포용적 복지국가는 사회복지계에 커다란 도전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회복지계는 복지국가를 실현할 역량과 의지가 있는가?”라고.

* 이 기사는 월간 복지저널 2017년 9월호(통권 109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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