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훈장 동백장 손문권 이일성로원 대표, 무의탁 어르신 맏아들 자처

손문권 이일성로원 대표이사
손문권 이일성로원 대표이사

제18회 사회복지의 날에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는 손문권 이일성로원 대표(74·광주 동구)는 55년 동안 노인복지분야에 종사하면서 어르신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해왔다.

손 대표와 사회복지와의 인연은 운명이었고, 그의 삶은 드라마다. 16세였던 1960년 양어머니인 이정희 설립자를 도와 논과 밭을 일구며 손수 식량을 마련하고 가축 기르기, 밤과 감 농장 운영, 양잠 등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손이 부르트도록 일했다. 당시 시설에서 생활하던 전쟁미망인, 고아, 노인 등의 의식주가 그의 손에 달려 있었기에 쉴 틈이 없었다.

어르신이 사망하면 합판을 사다가 손수 관을 제작하여 리어카로 산에 모셔 삽으로 땅을 파 안치시키는 등 장례절차를 도맡아했다. 초창기부터 무의탁 어르신들의 산소를 벌초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손 대표는 “당시 산을 개간하다 죽을고비도 여러 차례 넘겼다. 보릿고개나 가뭄 등으로 쌀이 없을 때도 많아 눈물로 기도하고, 교회나 군부대 등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요청하는 일도 다반사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좀 더 안정된 여건 속에서 어르신들을 모시기 위해 1965년 재단법인 인가를 받았으나 정부 지원은 거의 없었다. 그러던 중 1967년 군에 입대했고, 제대 후 이일성로원 총무로 복귀했으나 시설의 살림살이는 여전히 궁핍했다.

그는 또 다시 힘을 냈다. 법인 소유 임야를 개간, 뽕나무, 유실수 등을 심어 경제적 안정기반을 만들었고, 무, 배추, 감자 등을 손수 가꾸어 부족한 주·부식 해결에 힘썼다.

1969년에는 어린이집을 설립, 지역사회 어린이들의 교육사업에 나섰고, 시설 생활인 중 결핵환자가 많아 전염되는 악순환이 반복되자 분리 수용할 수 있는 요양원을 제안, 1985년 전국 1호 요양원 허가를 받았다.

1992년에는 가정에서 돌보지 못하는 어르신들의 고독사 문제가 대두되자 재가노인서비스를 시작하는 선구자 역할을 했다. 자원봉사자를 모집해 독거어르신과 결연, 주 2회 이상 돌보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후원자를 개발해 1:1 후원결연을 맺음으로써 경제적 지원도 꾀했다.

손 대표는 1999년부터 북구노인종합복지관을 위탁받아 운영하여 보건복지부평가 시 매회 최우수기관에 올랐고, 이일성로원은 2002년부터 5회 연속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되는데 공로를 세웠다.

또 2002년 실버타운, 2008년 노인전문요양원을 개원해 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복지사업에 헌신하고 있다. 손 대표는 지금까지 1018명의 어르신을 노후에 불편함 없이 따뜻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어머님같이 모셨다. 대부분의 어르신이 무연고였기에 돌아가시면 손수 장례를 치르며, 외롭지 않게 해 드렸다.

이뿐만이 아니다. 매년 벌초를 해왔고, 훗날 후손들이 찾아올 경우에 대비해 묘지마다 일일이 표식을 해두고 기록으로 남겼다. 수십년이 흐른 후 어머니 또는 할머니를 찾은 후손들은 묘지 위치를 정확히 기억하는 손 대표의 정성에 고마워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광주시 복지위원, 광주시노인복시설협회장, 광주시 사회복지법인연합회장, 광주 동구청 사회복지협의체 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지역 사회복지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공로로 2000년 국민포장을 받기도 했다.

그는 “16세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늘 어르신들의 맏아들이었다. 때론 장례를 치르고, 병원을 동행하고, 세면기를 고치고, 채소를 가꾸고…. 세월은 흘러도 내 역할은 그대로다”고 말한다.

* 이 기사는 월간 복지저널 2017년 9월호(통권 109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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